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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3.2  통권 175호  필자 : 배다니엘  |  조회 : 7000   프린트   이메일 
[고전을 통해 생각해보는 현대인의 삶]
“남자는 나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나를 예뻐해 주는 이를 위해 얼굴을 꾸민다”

여러 해 전, 남모를 가정사를 가졌던 한 여제자가 있었다. 어려울 때마다 필자에게 찾아와 자신의 비밀스러운 속내를 털어놓곤 했기에 4년 내내 그 학생과 특별한 멘토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우연한 사건을 통해 그 학생이 4년 동안 마음속으로 정말 좋아했던 선생은 동료 K교수였음을 알게 되었다. 하긴 K교수는 외모, 인품, 실력 면에서 필자보다 훨씬 훌륭한 분이었다. 누군가를 선호하는 것은 그 학생의 자유였기에 이해를 하면서도 내 자신은 남에게 있어 아쉬울 때 찾는 사람일 뿐 좋아할 만한 사람은 되지 못했다라는 것에 대해 스스로 실망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이릉(李陵) 장군을 변호한 죄로 한(汉)나라 무제(武帝)에게 궁형(宫刑: 생식기를 없애는 형벌)을 받은 사마천(司马迁)은 130권에 달하는 발분저서(发愤著书) 《사기(史记)》를 써낸 역사가였다. 그가 ‘사람’에 대한 남다른 공감의식을 담아 집필한 《사기》에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일화가 실려 있어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는데, <자객열전에 나오는 ‘예양(豫让)의 고사’ 역시 그 내용이 애잔하다.
 

예양(豫让)은 자신을 인정해주던 주군 지백(智伯)이 양자(襄子)에게 죽임을 당하자 그의 원수를 대신 갚고자 하였다. 그는 양자의 집에 잠입하여 양자를 살해하려다가 발각되자 얼굴을 몰라보도록 ‘몸에 옻칠을 하고 숯을 삼켜(漆身吞炭)’ 스스로 문둥이가 되었는데 아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친구가 가까스로 알아보고 예양에게 “일단 양자의 신하로 들어가 있다가 기회를 엿보아 그를 처단할 것”을 권유했으나 예양의 대답은 단호했다.
 

“이미 남에게 충성을 하기로 맹세했던 이가 마음을 바꾸어서 그를 죽이려 한다면 이는 서로 다른 두 마음을 품는 것이다. … 내가 이 일을 하려는 까닭은 후세에 남의 신하가 되었다가 다시 다른 마음을 품는 이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라. (既已委质为臣, 而又求杀之, 是二心也. … 然所以为此者, 将以愧天下后世之人臣, 怀二心者也.)”
 

의로운 방법을 통한 복수가 아니라면 후대에 부끄럽다 생각하여 거절한 것이다. 처음에는 잘하는 듯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초심을 잃어버리고 이익을 추구하는 이에게도 좋은 경구가 된다. 예양이 결국 복수하다가 죽을 것을 간파한 친구가 “주군 지백이 이미 죽었는데 왜 그리 집착하는가”를 묻자 예양은 지백이 자신을 알아준 고마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한다. 결국 예양은 거사에 실패하고 죽었지만 누구의 청탁을 받지도 않았고 대가가 약속되지도 않았던 일을 위해 의리를 지켰던 그의 일화와 어록은 가슴으로 전해오고 있다.
 

“사나이(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인은 자기를 예뻐해 주는 사람을 위해 얼굴을 꾸민다. (士为知己者死, 女为悦己者容.)”
 

살면서 가장 기분 좋은 일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자신의 존귀함을 확인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진정으로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나를 용납해주는 이는 많지 않다고 느낄 때가 있다. 노력해도 쉽지 않은 것이 인간관계인데 자신의 매력마저 없을 때는 더욱 안타깝다. 잘하려고 해도 웬일인지 내 주변에는 사람이 늘 부족하고 능력의 한계를 느낄 때도 많다. 그럴 때면 좋은 인상과 성품으로 주변을 감동시키거나 밝은 성품으로 친화력을 발휘하는 매력의 소유자가 한없이 부러워진다.
 

인간관계에 자신이 없고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질 때면 자신이 받았던 은혜를 생각하며 의리를 지켰던 예양의 이야기를 생각해본다. 인문학이란 ‘사람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학’ 즉 사람을 중심에 놓는 사고인데 이때 요구되는 것이 ‘역지사지(易地思之)’ 의식이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내 섭섭함과 안타까움을 뒤로 감추고 타인을 먼저 이해하며 오랫동안 조용히 의리를 지키다보면 “겪어보니 좋은 사람이네”라는 평과 함께 스스로의 자존감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과연 매력이 별로 없는 사람인가? 이왕 그렇다면 타인에게 의리라도 지킬 일이다! 문득 이런 자문을 해본다. “나는 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주님에게 과연 의리를 지키고 있는가?”





 

배다니엘 | 남서울대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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