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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  통권 170호  필자 : BBC  |  조회 : 2048   프린트   이메일 
[차이나 윈도]
마오쩌동 서거 40주년과 겹친 9월 9일 술축제
(毛泽东逝世40周年恰逢九•九酒水节)

지난 9월 9일은 전 중국공산당 영도자 마오쩌동(毛泽东, 이하 마오)의 서거 기념일이었다. 이미 중국 최고의 갑부로 선정된 바 있는 마윈(马云)은 온라인 쇼핑몰 톈마오(天猫, Tmall; 티몰)를 통해 올해 9월 9일을 ‘99톈마오세계술축제’로 선포하고, 와인의 온라인 판매를 홍보하였다. ‘九’는 ‘酒’와 발음이 같은데, 마치 마윈은 일부러 매년 11월 11일 세일행사인 “쌍십일 광군제(双十一光棍节)” 를 본 딴 듯한 그 술축제를 통해 온라인 판매는 그야말로 대성공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 “술축제”는 마오의 서거 40주년 기념일과 겹치는 바람에 좌익인사들의 불만을 야기했다. 그들은 마윈을 반역으로 지적하고, 그를 질책하지 않는 당국을 비난하였다.   


그러나 마오의 서거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중국 안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민감하고, 논쟁을 피할 수 없는 화제이다. 중국 국방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베트남 국방장관이 방중 기간에 톈안먼(天安门)광장의 마오주석기념관에 들러 헌화하고 참배했다고 발표했다. 그 동안 방중한 해외 관료들의 마오주석기념관 참관에 대한 중국관영 언론의 보도가 없었던 터라 이번 보도는 중국 내외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위인, 남신?

마오의 서거 후 오래지 않아 중국은 개혁개방시대가 열렸다. 마오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구소련의 해체처럼 극렬하지는 않았지만, 중국도 제1세대 혁명지도자의 재평가와 대규모로 지도자 상과 기념비를 치우고 없애는 일을 겪었다. 하지만 근래 중국 민간에 마오의 열풍이 늘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현재 인터넷에서 활약하는 주링허우(90后)와 링링허우(00后)세대의 마오에 대한 관심은 이미 과거 그를 묘사한 정치언어인‘남신(男神)’을 넘어섰다. 마오에 대한 이러한 존경과 이해는 마오 개인의 노력으로 영웅창조의 역사를 이루었다는 관점에서 기인한다.  


계급정치가 옅어지면서 신세대 마음속의 마오는 과거 정치시대의 ‘구세주’나 ‘붉은 태양’ 식의 숭배가 아니라 ‘평생 총을 쏘지 않지만 군대를 인솔하여 강산을 다니고, 많은 영웅호걸이 그를 만나면 그저 머리를 숙이고 (자신을)신하라 칭했다’는 종류의 찬양들이 훨씬 더 많다. 당연히 이 세대에게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 역시 존경하는‘남신’이다. 중국영화공사는 ‘남신 푸틴’ 다큐멘터리까지 제작하여 푸틴의 드러내지 않는 계획을 찬양하고 냉혹한 힘의 매력, 인내와 러시아에 대한 충성과 강인하여 제거되지 않음을 보여준 적이 있다. 당연히 푸틴찬양의 배후에는 중국 정치 지도자에 대한 불만과 중국지도자가 푸틴을 배우기 바라는 뜻이 있다. 올해 마오 서거의 비관영 기념활동에는‘마오 주석 서거 40주년 서화전’과 예전 마오 주석과 함께 일하던 관료들이 거행하는 기념행사가 있다.  


착오, 죄?

마오의 열풍과 대등하게 마오에 대한 비판 또한 계속되어 왔다. ‘마오쩌동의 대기근: 1958-1962년 중국의 재난’의 저자, 홍콩대학의 학자 펑커(冯客, Frank Dikotter)는 마오를 반인류죄를 범한 독재자로 보며 그를 히틀러와 같이 거론한다. 


중국의 저명한 평론가 마오위스(茅于轼)는 마오의 독재로 중국은 가혹한 대가를 치뤘으며, 마오는 중국인의 정상생활을 파괴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마오는 특히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독재자이며 그것으로 쾌락을 누렸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1981년에 마오에 대한 정식평가를 했다. 당시 덩샤오핑(邓小平)의 주재로 기초한 ‘건국이래(약간)역사 문제의 결의: 关于建国以来若干历史问题的决议’ 중 마오의 역사의 공과(功过)와 역사 지위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져 마오를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 위대한 무산계급 혁명가, 전략가와 이론가로 칭하고 그의 공적이 첫째이고 착오는 두 번째로 여겼다. 결의는 또 마오의 착오는 결국 위대한 무산계급 혁명가가 범한 잘못이라고 했다. 이것은 마오에 대한 평가와 비판의 범위를 정하고 제한한 셈이다.
 


盖棺论定(개관론정)

‘관을 덮고 논한다(人未死,勿称赞)’(사후에 업적평가 한다), 영어속담 ‘사람이 아직 죽지 않았으면 칭찬하지 말라(Praise no man till he is dead)’는 중국어의 ‘盖棺论定’과 비슷한 의미다. 하지만 마오 서거 40년이 지났건만 그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중국공산당 원로 천윈(陈云)은 일찍이 “마오가 1956년 서거했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그는 중국 인민의 위대한 지도자이다”고 말했었다. 그의 뜻은 마오의 소위 역사 착오는 모두 중국이 첫 번째 5개년 계획 완성 후 대약진(大跃进), 반우(反右),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때라는 것이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 만약이 있다면, 많은 역사 인물은 모두 오늘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만약 처칠이 2차 대전 중 세상을 떠났다면 영국 역사상 위대한 수상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히틀러가 1934년에 죽었다면 아마도 독일 경제와 민족자긍심을 진흥시킨 훌륭한 정치가가 되었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 문제 학자인 화쯔지엔(华志坚)은 중국에서 마오의 평가는 개인에 따라 다른 주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는 중국에서는 실직 당한 철강노동자와 문화혁명 당시 좌절을 당했던 사람들의 마오에 대한 평가는 분명히 다르다고 말한다.



 

출처 | BBC 中文网 / 사진출처 | 바이두
번역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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