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의 삶과 사역 20여년을 정리하면서 남는 것은 오직 감사
부족한 것도 많고, 연약함과 무지함에도 주님의 은혜가 항상 함께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저는 집에서 TV를 보다가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신장염으로 투병생활을 시작했고 계속되는 재발로 학교는 중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세가 되는 해에는 급성신부전에서 만성신부전으로 진행됐고 인공신장기로 투석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47Kg였던 제가 여러 합병증으로 투석을 마치고 집에 오면 파김치가 되어 누워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때 TV에서 보게 된 저보다 더 마른 아프리카의 작은 꼬마! 그리고 그때 마음속에서 나오는 음성,
‘저 아이에게도 예수님이 필요한데,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못쓰게 망가진 몸이지만 저를 사용해 주세요. 하지만 사용하시려면 잘 고쳐서 써주세요.’
이것이 저의 헌신이었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빌립보서 1:20)
사람마다 부르심의 방법과 모양은 달라도 이 순간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에도, 그리고 사명의 부르심에도 주님을 개인으로 만나서 모든 것을 드리는 그 경험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주님과 저만이 아는 헌신을 한 후에는 저의 삶도 달라 졌습니다. 한 주에 두 번, 한 번에 투석시간만 다섯 시간씩 평생을 투석으로 연명하다 이 땅을 떠나야만 했던 인생! 소망도 의미도 없었던 나의 인생에 새로운 소망이 생겼습니다. 매주 두 번씩 병원에 가야만 하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그렇게 살다 갈 수밖에 없는 제게는 의학이나 이성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선교의 소망!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는 부르신 주님의 전적인 책임지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의 부르심에도 하늘 아버지의 전적인 책임지심이 있듯 사명으로 부르심도 주님께서 전적으로 책임지십니다.
모(母) 교회도 없이 신학교를 졸업했을 때 큰 아이는 한 살, 작은 아이는 생후50일이 채 안되었고, 대만에는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는 간단한 중국어 회화 정도만, 아내는 중국어를 전혀 못하는 상태에서 선교지에 왔습니다. 전혀 앞길도 보이지 않고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홍해를 가르시듯 주님께서 선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난 20여 년, 주님은 신실하게 저의 삶과 사역의 모든 것을 책임지셨습니다.
구원의 부르심이든 사명의 부르심이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은 인생의 방향을 조정하는 것입니다. 언제든 부르실 때에 떠날 준비!
중국선교로의 부르심은 26살 때로 기억합니다. 검정고시를 통해 신학교를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부터 중국어를 배우러 여기저기 쫓아 다녔습니다. 어려운 경제형편 때문에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곳을 찾았는데, 인공신장기로 투석을 하며, 신학교 수업이 끝나면 정동에 있는 화교교회로 달려가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발음과 기초회화를 배우는 것이 전부였지만 저는 이미 선교를 하기로 결단을 했기 때문에 주님께로 방향을 전환하고 철저히 준비했습니다. 주님의 때에 건강도, 가정도 다 채우시고 대만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인공신장기 투석 10년째가 되던 서른 살이 되던 해, 마음 깊은 곳에서 고백이 흘러나왔습니다. ‘이 질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전에는 나에게 절망을 주었던 죽음의 질병이 이제는 감사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전에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구절이 내게는 가장 견디기 힘든 말씀이었습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감사할 것 하나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시 건강도, 집도 없는 고1 중퇴의 학력에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구절이 저를 가장 힘들게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죽음의 질병으로 인해 젊은 나이에 저는 죽음에 맞서서 싸울 수 있었고, 주님을 만나 인생의 의미를 찾았고, 제가 걸어가야 할 인생의 길을 알 수 있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비로소 조금은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 없으며 (…) 없으며 (…) 없으며 (…)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3:17-18)
감동 먹으신 주님!
주님을 사랑하는 한 형제를 통하여 환경을 바꾸시는 하나님. 본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형제, 서울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제대한 후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한 형제. 주님은 그 형제를 찾아가서 감동을 주셨습니다. 학교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어느 날, 거기에 비치되어 있는 관악구 신문을 보다가 제 기사를 보고 저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을 때 주님은 말씀을 통해 그 형제를 감동하게 하셨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한일서 3:16).
주님께서 주신 감동의 의미는 바로 ‘네 신장을 기증하라!’였습니다. 형제는, ‘주님! 주기는 주되 시험이 끝나고 주겠습니다.’라고 고백하고 그렇게 한 달 여의 갈등 끝에 그 형제는 주일예배를 드리던 중 같은 성경구절로 설교하시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의 눈물과 함께 마음의 결정을 하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형제님, 왜 회개하셨습니까? 그리고 눈물까지…’ 형제의 대답은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하게 저를 감동시키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셨는데, 신장은 목숨도 아닌데 내가 왜 이렇게 망설였는가!’그래서 회개했다고 합니다.
이식수술을 위해서는 체질이 맞아야 가능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많은 형제들 중에 그 형제를 찾아 감동하게 하셨습니다. 수많은 검사를 통해 이식이 가능하다는 결과를 받고 수술하게 되었습니다. 거액의 수술비도 지금도 어느 분인지도 모르는 형제, 자매님들의 헌금으로 채워주셨습니다. 10여년 투병생활 중 제게는 여러 합병증이 생겼습니다. 특히 투석 중 수혈을 하다 B형 간염에 감염되었습니다. 외과의사는 간염 때문에 이식수술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내렸지만 하나님은 또 치료해 주셨습니다. 수술을 거절했던 그 병원에서 재검사를 한 결과 간염균이 없어졌다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신실하신 주님은 이렇게 망가질 대로 망가진 저를 수리하시고 선교를 위한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 없으며, (…) 없으며, (…) 없을지라도
주님이 원하시면 됩니다.
순종하면 주님의 풍성한 공급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혹은 선교사로 부르심에 응답하는 중요한 한가지는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고 현실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선교지로 혹은 주님의 나라로,
언제든지 출발할 준비를 하면서…… ▤
♧ 다음 호에 계속 됩니다.
♣ 윤승일 | 대만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