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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  통권 159호  필자 : 小美(샤오메이)  |  조회 : 2826   프린트   이메일 
[내가 만난 하나님]
스스로 원할 때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

제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한국에 있는, 6.25전쟁에서 헤어졌던 외삼촌을 찾으면서 시작됐습니다. 6.25전쟁 전, 한반도에서 먹고 살기 힘드셨던 외할아버지께서는 외할머니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 큰 아들을 두고 중국으로 넘어오셨습니다. 중국으로 넘어온 외할아버지께서는 전쟁이 끝난 후, 38선으로 인하여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으며 만주 땅에서 12년 동안 유랑생활을 하다가 중국에서 조선인 할머니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결혼하여 5남매를 낳으셨는데, 저희 어머니는 그중 막내딸이었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 생전에 남한에 두고 온 가족들을 늘 생각하시며 남한에 두고 오신 두 아들의 이름을 중국에 있는 자녀들에게 일러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헤어졌던 가족을 10년 전에 찾게 되었고 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 한국에 두고 오셨던 아들(저의 외삼촌)은 교회의 장로님이셨고, 찾았을 당시 중국 요령성 철령에 선교하러 오려던 참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중국에 있는 조카들 중 철령과 제일 가까운 도시에 있었기에 외삼촌이 선교 사역을 하실 때 통역을 하기로 했습니다. 중국에서 예수님이 누구인지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저는 한국에서 오신 외삼촌을 통해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삼촌과 선교사님께서 중국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경공부와 주일예배 때 선교사님의 설교 통역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예수님에 대하여, 복음에 대하여 들었을 때는 전혀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3년 동안 통역하였습니다. 뒤돌아보니 저는 어느 순간인지 잘 모르겠지만,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전에는 나의 직업, 일이라고만 생각해서 주일에 교회에 갔었는데 이제는 삼촌한테 끌려서 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게 되었습니다.
 

3년 동안 삼촌과 선교사님과 같이 있으면서 신학교를 가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많이 받았지만, 저는 결코 가지 않겠다고 거절하고 또 거절했습니다. 3년 동안 통역을 하면서 저의 소망은 큰 도시로 가서 친구들처럼 직장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3년이 흘러, 삼촌은 한국으로 들어가시고, 선교사님도 중국어로 설교할 수 있게 되어 저는 통역하는 일을 그만 두고 다른 도시로 떠났습니다. 5년의 직장 생활은 이 길(신학공부)을 다시 스스로 가겠다고 결정하게 만든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5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일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의 마음의 생각을 바꾸어 가셨습니다. 어느 날 다시 외삼촌께서 신학교에 가지 않겠냐고 했을 때 저는 가겠다는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신학교까지 오게 된 과정은 모두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기적입니다. 전에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려고 비자신청을 했을 때 3번이나 거절을 당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청했던 비자는 선교사님과 중국교회 단체들과 같이 한국교회를 방문하는 것이었는데 공안에 노출되면서 비자도 거절되고 선교사님은 공안국에 불려가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심문 중 제가 거론되었었는데, 선교사님께서 이름을 다르게 얘기하셔서 저는 괜찮게 되었습니다(교회의 다른 분들은 여권압수, 심문 등을 당함). 이로 인한 비자 거절이라 저는 유학생 비자가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나오게 돼서 모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신학교에서의 4년의 시간은 저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신 기적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은혜가 충만한 시간이었습니다. 4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북한을 품게 하시고 또한 북한 땅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신학대학원에 진학하여 신학을 더 깊고 넓게 공부하고자 합니다. 그 길을 함께 걸어가 주실 하나님께 저의 소망을 둡니다. ▩
 
 
♣ 小美 | 중국인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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