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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1  통권 157호  필자 : 나은혜  |  조회 : 2342   프린트   이메일 
[나은혜 선교문학]
몽땅 망가진 겨울옷가지들


1997년 선교지에 도착해서 첫해를 보냈다. 그해 겨울이 가고 두 번째 봄을 맞이하면서 그동안 입었던 식구들의 모직 점퍼를 드라이클리닝 할 세탁소를 찾았다. 마침 건너편 아파트 입구에 새로운 세탁소가 입점했다. 그 세탁소는 보통의 세탁소가 아닌 것 같았다. 번쩍번쩍 거리는 금빛 간판을 단 것이 아주 근사해 보였다. 현지에서는 세탁사고가 많다고 들었기에 좋은 세탁소를 찾는데 신중을 기하고 있던 터였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처럼 신장오픈한데다 설비도 잘 갖추어진 세탁소니깐 괜찮겠지. 설마 세탁사고 같은 게 나겠어.
 

다섯 식구가 겨우내 입었던 점퍼며 겨울옷가지들을 들고 세탁을 맡기러 갔다. 상냥하게 손님을 맞는 점원을 보면서 마음이 놓였다. ‘역시 좀 잘 차려진 세탁소는 뭔가 다르군.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아’ 안심하고 맡겼다. 그 세탁소는 또 얼마나 친절한지 세탁이 다 되면 집으로 가져다주겠다고 한다. 나는 또 한 번 큰 감동을 받았다.
 

‘세상에 이렇게 친절할까’ 하면서 즐거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며칠이 지났다. 예의 그 금빛 간판의 멋진 세탁소로부터 세탁이 끝났으니 집으로 가져다주겠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간판도 근사한데 친절하기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그 호의에 감격하고 있었다. 물론 완벽한 세탁을 기대했다. 그런데 세탁소에서 배달해 준 옷가지들을 살피던 나는 아연실색했다.
 

아니 우리 식구들이 가장 즐겨 입던 모직 점퍼들이 몽땅 망가져 있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 점퍼와 남편의 점퍼는 하프코트처럼 축 늘어져 있었고, 원단이 모직인 점퍼는 입기 편하라고 팔목과 허리부분에 신축성이 좋은 부드러운 소재를 사용하기에 다림질을 해서는 안 된다. 늘어난 모양새를 보니 그 부분을 모두 다림질을 한 모양이었다. 팔소매도 늘어져서 일반 양복의 팔소매처럼 반듯하게 벌어져 있었다. 살펴보던 나는 그만 기가 콱 막혔다. 그 옷들은 모직인데도 가벼운데다가 기능성이 좋은 옷이어서 입었을 때 따뜻하기도 하고 편안해서 식구들마다 즐겨 입던 점퍼였다. 지금까지 내내 요긴하게 입던 옷들을 이제는 더 이상 입을 수 없게 되었다. 못 입게 된 옷들을 바라보자니 정말 속이 상하고 화가 났다. 신뢰가 간 세탁소였기에 식구들의 겨울옷가지들을 거의 다 맡겼는데 망가진 옷들이 무더기를 이뤘으니 정말 속이 상했다.


더 기막힌 것은 세탁소 직원의 태도였다. 나는 주섬주섬 그 세탁물을 집어 들고 세탁소로 따지러 갔다. 이 옷들을 이렇게 망가뜨려 놨으니 어떻게 하겠냐고. 세탁소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리도 친절하게 굴더니만, 그들의 태도를 완전히 돌변하는 것이었다. 자기들은 아무 잘못도 없단다. 옷을 맡기면서 이 부분은 다리면 안 된다고 말을 했어야 한다고. 미리 말을 안했기 때문에 다린 것이라고, 그래서 자기들은 아무 잘못도 없다면서 세탁요금은 다 챙겨 받는 것이었다(이곳은 옷을 맡길 때 아예 세탁요금을 다 지불해야 한다. 옷을 찾을 때 돈을 내는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우리나라 같으면 그런 옷은 척 보기만 해도 어떻게 세탁해야 할지, 세탁소가 더 잘 아는데.  
 

선교지에 온 첫해, 우리가족은 가장 즐겨 입던 옷들을 선교의 제물로 드렸다. 분명히 선교사가 되어 떠나올 때 무슨 일이 있어도 선교지의 영혼을 사랑하겠다고 결심하며 왔는데, 나는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분노가 일어났다. 이렇게 늘 분노하다가 속병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는 근심까지 생길 정도였다. 나를 속상하게 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사실 선교지의 일상생활에서 현지인들에게 속아 억울함을 당할 때, 배신감으로 인해 힘들었던 마음은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다. 특히 선교지에서의 첫해는 이런 분노의 감정을 추스르느라 힘들었다. 선교하겠다고 그렇게 많이 준비하고, 이곳까지 오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헌신했던 내가, 선교지에서 점퍼 하나도 포기 못하는 변변치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느끼는 실망감 또한 나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매일 아침 QT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나의 삶의 태도를 버리고 선교지의 삶을 수용하는 마음씨를 갖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셨다. 현지 사람들을 내가 바꿀 수 없고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나자 비로소 다시 선교적 소명에 의한 삶의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정말 종종 교양 없고 억지스럽기까지 한 그들을 사랑하기 위하여 나와 내 가족이 이곳에 온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좀 시간이 걸려야 했다. 머리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말이다.



나은혜 | 장로회 신학대학교 선교문학 석사, 미국 그레이스신학교 선교학 박사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지구촌 은혜 나눔의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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