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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1  통권 150호  필자 : 나은혜  |  조회 : 3248   프린트   이메일 
[나은혜 선교문학]
사춘기 딸의 자살 소동

선교 초창기에 있었던 일이다. 갓 선교지에 도착한 선교사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일이라면 단연 자녀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더욱이 자녀들이 사춘기를 맞이할 즈음에 선교지에 들어오게 됨으로서 자녀들의 선교지 적응 문제가 더욱 대두 되었다. 우리 집 둘째이면서 큰 딸인 에스더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그런 에스더가 선교지에 온 것은 한참 꿈 많은 소녀인 15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에스더는 서울 목동에 있는 신목중학교에 다녔다. 공부도 잘했고 아주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몇 명이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사춘기를 맞이한 딸을 데리고 선교지에 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에스더에 대해서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세 아이 중에서 가장 인내심도 많았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착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둘째 에스더만큼은 잘 적응 하리라고 생각 했었다. 그런데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사건이 일어났다.

에스더는 갈수록 선교지 생활을 힘들어 했다. 딸아이는 밤이면 밤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 꿈을 꾼다고 하였다. 그리고 몸은 선교지에서 현지학교에 나가고 있었지만, 마음은 온통 한국에서 자기가 다니던 학교와 친구들에게 가 있는 것 같았다. 현지 학교에서도 유난히 딸아이를 좋아하는 현지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딸아이는 현지 친구들에게 마음을 주지 못하고 힘들어 했다. 딸아이가 있던 반의 한 남학생은 짓궂게도 아예 수업시간에 턱을 고이고 에스더만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그런데 에스더는 그것이 너무 징그럽고 싫다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한국 사람이 없는 현지에서 딸아이는 현지아이들에게 신비한 존재였다. 하얀 피부도 신기했고 예쁘장한 얼굴도 현지 아이들은 큰 호감을 갖기에 충분하였다. 그처럼 에스더는 현지 아이들에게는 사귀고 싶은 친구였지만, 딸아이는 쉽게 현지 친구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심지어는 현지 친구들이 집으로 찾아오는 것조차도 싫어했다. 사춘기에 들어선 딸아이는 한국의 친구들을 못 잊어하고 문화가 다른 이곳 친구들과 사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더니 딸아이의 말수가 점점 적어졌다. 그 대신 어느 날 부터인가부터 자기 방에 들어앉아서는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에스더는 직접 현지 시장에 가서 색색의 비닐 끈 종이를 사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것으로 꽃을 접었다. 꽃을 이어 붙여서 그것으로 천정에 매다는 장식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노란색, 분홍색, 파란색으로 만들어진 장식품들이 딸아이의 적응하기 힘든 세월만큼 점점 쌓여갔다. 에스더는 그렇게라도 해서 현실을 잊어보고자 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에스더가 힘겹게 선교지에서 적응의 씨름을 하며 첫해를 보내던 겨울이었다.

제법 쌀쌀한 어느 날 밤에 에스더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딸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아무리 찾아도 대답도 없고 보이지 않았다. 어디를 나갔을까? 아니 도대체 이 밤중에 에스더는 어디를 나간 것일까? 나는 이곳저곳 집 안팎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딸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식구들 그 누구도 에스더가 밖에 나가는 것을 본 사람이 없었다. 아니, 나간들 타곳에서 어디를 갈 데가 있다는 말인가? 결국 집안 이곳저곳을 뒤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참 만에 문득 베란다 문을 안 열어본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쌀쌀한 겨울 날씨에 베란다에 누가 나가 있을 것인가. 어두울 뿐 아니라 추운 그곳에 말이다. 그런데 베란다 문을 여는 순간, 베란다의 한쪽 구석에 서서 떨면서 울고 있는 에스더를 발견했다. 아니, 이 아이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밤중에 베란다에 나가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런 딸아이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4층 이었다. 때는 겨울인지라 제법 쌀쌀한 날씨였다. 그 춥고 컴컴한 베란다에 나가서 울면서 추위에 떨고 서 있는 딸아이를 보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딸아이를 달래서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한참을 지켜보다가 왜 그랬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나 내성적인 에스더는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더니 한참 후에야 겨우 모기만한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죽으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무언지 모를 불안에 휩싸이며 가슴 한 구석에 덜커덕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이거 큰일 났구나’

생각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그렇게 현지 적응을 힘들어 하는 딸아이를 보면서도 저러다가 제풀에 나아지겠지. 곧 현지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하겠지 하고는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고 만 것이다. 더 좀 딸에게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도 들어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그래서 결국 딸에게 이런 어려움이 닥치게 되다니, 나는 다시 한 번 가슴이 먹먹해 져 왔다. 그래도 나는 주님을 의지하며 마음을 겨우 진정하고 딸아이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딸아이는 아무리 비닐 꽃을 만들어 접으며 한국 친구들과 한국 생활을 잊으려고 해도 잊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지 친구들이 자기에게 관심을 너무 보이는 것도 정말 싫기만 하였다고 했다. 그래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스더는 처음에는 4층에서 뛰어 내려서 죽으려고 했는데, 그러면 너무 아플 것 같아서 베란다에서 밤을 지새우면 추어서 얼어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곳에 나가서 서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딸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사탄이 우리 가족을 공격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딸아이를 차분히 의자에 앉힌 다음에 사영리를 가지고 와서 다시 복음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딸에게 네가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는데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면, 너는 속임을 당하고 있는 것이고, 지금 네가 한 행동은 하나님의 뜻이 아닐뿐더러, 주님을 아주 슬프시게 한 행동이라고 말해 주었다. 나는 그동안 예수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한 에스더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 점검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사영리의 제1원리인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를 에스더와 함께 읽고 나서, 나는

“에스더야,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 것을 우리 함께 읽어 보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자, 보렴. 예수님은 너에게 생명을 주셨을 뿐 아니라, 더 풍성을 삶을 누리게 하려고 오셨는데, 네가 죽으면 그런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없지 않겠니?”

그 다음엔 모든 사람은 죄에 빠져 있다. 라고 하는 사영리의 제2원리를 에스더에게 읽어 주었다. 나는 딸에게, 네가 죽으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죄의 증거이며, 너의 그 생각을 예수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시는지 모른다고 설명해 주었다. 결국 에스더는 그날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로 영접하는 기도를 드리면서 온전히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하였다.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이었을까. 딸아이가 눈 딱 감고 4층 높이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 내리기라도 했으면 어떻게.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소름이 끼쳤다. 나는 아이들을 재우고 난 뒤, 나는 남편과 마주 앉았다. 차를 한잔 가지고 와서 우리부부는 대화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남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여보, 아무래도 이젠 안 되겠소, 사역 이전에 아이들을 돌보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 같소. 선교 사역이야 당신과 내가 평생 해야 할 일이오, 하지만 아이들은 조만간 우리 곁을 떠나오. 그 안에 아이들이 만약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오.”

나는 마치 나의 생각을 읽고라도 있는 듯이 그대로 말하는 남편의 말을 들으며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당신 말이 맞아요. 이번에 제가 정말 얼마나 놀랬는지. 까딱 잘못됐으면 우리 가족 모두 다시 고국으로 귀국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에요. 에스더가 확실하게 구원의 확신을 갖고 예수님을 영접하긴 했지만,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야 하겠어요,”

교수 비자를 받고 선교지에 들어 왔기에, 현지 대학에 나가서 매일 한국어를 가르치며 수업을 해야 하는 남편 대신, 내가 아이들에게 일대일 제자훈련을 했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일대일제자양육 성경공부’ 교재가 있어서 나는 큰 아들 다니엘과 둘째 에스더 두 자녀를 앞에 놓고 일대일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막내는 아직 어렸으므로 함께 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선교지에 적응을 하지 못해서 자살하겠다는 그런 끔찍하고도 엉뚱한 생각까지 했던 에스더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체험했다. 그래서 자신이 했던 행동들과 또 생각들에 대해서 회개를 하였다. 그리고 자기가 한 행동이 얼마나 주님을 슬프시게 한 것인가를 깨달았다. 그 후에 에스더는 자기와 사귀고 싶어 하는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하더니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이후에 에스더는 삼남매 가운데 가장 많은 현지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아이가 되었다. 이 사건을 통해 나는 전 세계에 나가 있는 MK들이 각기 주어진 상황은 다 다를지라도 다양한 어려움과 함께, MK이기 때문에 겪는 슬픔과 아픔이 누구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큰 딸아이의 자살 소동은 선교지에서 발생한 자녀 문제 중에서 가장 큰 위기를 느꼈던 아찔한 사건이었다.


♡ 저자 나은혜는 장로교(통합) 목사로서, 1997년 3월부터 2007년 5월까지 총회 세계선교부 파송선교 중국선교사로 사역하였다. 사역하던 곳에서 비자발적 입국거부로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미국 인디애나 주 그레이스신학교에서 선교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는 중국선교 동원사역을 하고 있으며, 사이버 <선교문학>에 선교수필을 써서 복음을 전하는 일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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