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3월, 선교지인 C국의 H시에 들어 온지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아이들은 현지 학교 입학수속을 마치고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학교는 걸어서 5분 남짓 가까운 거리여서 아이들은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집에 올 수 있었다. 아이들은 특별히 이곳의 화장실 문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해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1997년 당시만 해도 이곳의 화장실은 대도시의 호텔 같은 곳을 제외하고는 수세식 화장실이 아니었다. 한국의 수세식 화장실 문화에서 살던 우리 가족이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 어른인 남편과 나보다는 태어나면서부터 양변기 문화에서 자란 아이들이 적응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나라의 재래식 화장실인 것까지는 그런대로 적응한다고 치자. 우리도 옛날엔 다 그랬으니까. 긴 도랑처럼 만들진 화장실에서 그것도 여러 사람이 함께 앉아 일을 보는 구조인데다가, 쑥스럽게도 문조차 없는 화장실에 아이들이 놀란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한국에서도 이사 다닐 때마다 다른 것은 다 괜찮은데 화장실만은 꼭 양변기라야만 한다고 고집을 부리던 아들은 더 힘들어 했다. 그 아들은 C국에 온 뒤, 언제나 집에 들어오면 허둥대며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학교에서 참고 참은 용변을 시원하게 방출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들은 더운 여름에도 물이나 음료수를 마음 놓고 시원하게 마시지 못했다. 화장실 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렇게 학교에서 돌아와 화장실로 냅다 뛰어야 하는데 다른 가족이 있는 날이면 배를 움켜쥐고 몸을 비트는 일이 습관이 되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은 생리작용을 저렇게 참다가 신장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는 건 아닐까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둘째 딸아이는 한국에서 중2를 마치고 왔지만 이곳에서 다시 중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온 딸아이가
“엄마, 오늘 학교에서 우스운 일이 있었어.”
“그래, 뭔데?”
딸아이는 쉬는 시간에 소변이 보고 싶어서 여자 화장실엘 갔다고 한다. 뭘 어떻게 하든 다 보일 수밖에 없는 문 없는 화장실에서 그래도 가능한 안쪽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런데 누군가 자기의 이름을 부르더라는 것이다. 딸아이는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았더니 자기의 현지인 여 선생님이 용변을 보면서 부르는 소리였단다. 딸아이는 민망해서 선생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는데, 그 선생님은 전혀 개의치 않고
“에스더, 나는 다했으니까, 너 여기서 해.”
하더라는 것이다. 그 얘기를 하는 딸아이의 말이 더 걸작이었다.
“엄마, 그 선생님 진짜 친절하지?”
우리 가족이 선교지에서 겪은 화장실 문화충격 에피소드 중 최고의 히트작으로 우리 집 막내의 이야기가 꼽혔다.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치고 온 막내는 한자를 읽을 줄 몰랐다. 한국에서 아주 간단한 회화 몇 마디만 배우고 왔던 것이다. 선교지에 도착하여 막 학교를 보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 온 딸아이가 나를 보자마자 대뜸 하는 말이,
“엄마, 나 내일부터 학교 안 갈 거야.”
깜짝 놀라, 학교에서 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럴까 하면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막내의 사연은 이랬다. 학교에서 화장실을 가는데 한 남자애가 자꾸 따라와서 결국 화장실을 못 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참고 집에 오느라고 배가 아파서 혼이 났다면서 화장실까지 남자애들이 따라오는 학교를 어떻게 다닐 수 있겠냐는 것이다. 나는 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이튿날 막내딸을 잘 달래서 학교로 보냈다.
그런데 그날 학교에 다녀온 막내딸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 가족은 약속이나 한 듯 폭소를 터뜨렸다. 막내딸은 어제의 사건을 다시 이야기 해 주었다. 그러니까 어제 막내딸이 들어갔던 화장실은 남자 화장실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처럼 화장실에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고 한자로 ‘男厕所, 난처쑤어, 남자화장실)’라고 붙어 있는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막내딸은 용감하게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러니까 어제 막내딸을 따라왔던 그 남자애는 당연히 남자 화장실을 왔던 것이 정상이었다는 것이다. 막내딸아이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가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을 그만 두었기에 망정이지. 만약에 그냥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더라면 남학생들이 놀라서 큰 소동이 났을 것이라는……. 막내의 이야기에 우리 가족은 박장대소했다. 결국 막내딸은 그 사건으로 어려운 중국어 글자를 더욱 더 열심히 배우게 되었다. 화장실을 잘못 찾아 들어간 딸아이의 경험은 중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게 하는 동기부여가 된 셈이니 합력하여 선을 이룬 것이다.
화장실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기는 대학에 가서 언어를 배우고 있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막 선교지에 도착했을 당시 만해도 나는 도저히 문이 없는 화장실에서 일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궁리를 거듭한 끝에 양산을 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아예 문이 없는 화장실 앞에 양산을 펴 놓고 일을 보는 센스. 오히려 그들은 그런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한국인 우리 못지않게 이곳의 화장실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 하는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이었다. 교육청에서 외국어를 가르치는 교수들에게 황산 관광을 시켜줬었다.
그때 함께 갔던 미국인 여 교수는 여행 도중에 화장실을 사용할 때면,
“뿌하오, 뿌하오(나빠요. 나빠요)”
하던 생각이 난다. 이처럼 외국인인 우리가 와서 살아야 하는 이곳의 타문화충격 가운데 화장실 문화충격은 단연 수위를 차지한다. 더욱이 화장실 사용은 날마다 반복되고 자주 있는 일이기 때문에 용변 문제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종종 이곳에서는 화장실에 가는 것이 자유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일종의 두려움인 셈이다. 그곳이 어떤 상황의 화장실인지 모르기 때문에 말이다. 이처럼 화장실 문화충격은 우리 가족이 처음 선교지에 도착해서 제일 적응하기 힘들었던 문화충격이었다. ▩
♡ 저자 나은혜는 장로교(통합) 목사로서, 1997년 3월부터 2007년 5월까지 총회 세계선교부 파송선교 중국선교사로 사역하였다. 사역하던 곳에서 비자발적 입국거부로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미국 인디애나 주 그레이스신학교에서 선교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는 중국선교 동원사역을 하고 있으며, 사이버 <선교문학>에 선교수필을 써서 복음을 전하는 일도 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