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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31  통권 147호  필자 : 밝은뜰  |  조회 : 2946   프린트   이메일 
[선교사의 삶과 사역]
실패한 사역자

 “그저 통과한 일꾼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꾼이 되고 싶습니다.” 라는 C.T. 스터드의 고백은 사역자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열망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사역자들이 하나님나라를 향한 순수한 열망과 자기 확대에 기초한 공명심의 경계선에서 오락가락 한다. 소위 ‘성공한 사역자’ 증후군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
다음은 내가 사역자로서 처음으로 실패했던 경험이다. 이 실패로 인해 변화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고 그 다음에 이어졌던 실패들과 앞으로 다가올 실패들에 대해 기꺼이 반길 수 있는 마음이 되었다. 

대학 1학년 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92년에 선교에 헌신한 나는 94년 졸업 후 학원강사를 해서 훈련비를 마련하고 1년간 공동생활을 하며 선교단체 간사훈련을 받았다. 96년부터 모교에서 사역을 시작하면서 20대 혈기 왕성한 나는 몸이 망가질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각종 성경공부와 모임을 인도하고 양육하면서 행정적인 일들까지도 처리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랐다. 함께 공동체생활을 하는 지체 간에 관계도 좋았고 경제적 어려움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내게 후배들을 비롯한 여러 지인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나 또한 스스로 하나님께 쓰임 받고 있고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달리고 있으니 지금은 온전하지 않아도 인정받는 일꾼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다가 96년 여름, 중국으로 단기선교를 떠나게 되었다. 어린 사역자인 내가 중국어도 모르면서 팀을 이끌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마침 미국에서 신학공부 중이던 스위스선교사님이 연결되어 우리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 스위스선교사님은 15세에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고, 중국이 개방 되자마자 북경대학에 입학 한 분으로 6개 국어에 능통했다. 우리는 다량의 성경과 신앙서적들을 나눠서 갖고 다니며 기회가 닿는 대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처음으로 계획하지 않은 만남과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다. 짜여 진 스케줄 안에서 꼬박꼬박 순서대로 공부하고 자라가는 공식적인 훈련만 해 오던 나는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기차를 타고 가다가 처음 만난 사람의 집으로 가서 묵었다. 그리고 그분을 따라가 봤더니 그 동네의 기독교인들과 연결되고, 그들에게 성경과 책을 나눠주고 서로 축복하며 기도하고 사랑을 나누는 교제를 갖고…….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그리고 선교사님의 태도에서도 많은 도전을 받았다.

나보다 훨씬 연세가 많았던 그분이 

“I’m just a little boy.”

라며 자기는 이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나아갈 생각이라고 하시는데 무계획적이거나 현실성이 없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아마 그 겸손함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안정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체들을 대할 때 몸에 밴 섬김에 매우 놀랐다. 한 번은 어떤 학생이 발을 다쳐서 치료를 했는데 의사가 물에 닿지 않게 해야 한다고 하자 그 자리에서 자기 양말을 벗어서 바로 신겨주었다. 다른 사람을 돕는데 생각하고 연구하는 시간 없이 몸이 바로 반응하는 것이다. 그분에게 어떤 훈련을 받았는가 물어보니 한 번도 훈련기관에 연결되어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룻이 보였던 인애(원어: 헤세드)의 한 부분이 commitment 헌신이라고 하시면서, 룻이 오랜 시간 끝까지 그 시어머니를 따라간 모습처럼 잠시 중국을 다녀가 주는 것도 참 고맙지만 바라기는 오래(long term) 중국을 사랑하는 사람이 나오길 바란다고 하셨다. 나에게는 장기선교사로서의 삶에 대한 결단을 확고히 하는 순간이었다. 

단기선교에서 돌아 온 후 고민에 빠졌다. 과연 무엇이 훈련인가? 그 선교사님처럼 비공식적 훈련을 받은 사람이 훈련 과정 다 밟아서 사역하는 나보다 무언가 훨씬 더 나은 것 같았다. 당시에는 딱히 정확하게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답답함에 짓눌렸는데 2학기 내내 그 선교사님의 말과 행동을 곱씹으면서 나와 다른 그것이 왜 내게는 없는 지 그 고민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가게에서 빵을 사 들고 나오는데 중년의 야윈 한 아저씨가 나를 쳐다보는데 빵이 필요한 것 같았다. 처음으로 떨리는 마음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빵을 내밀며,

“이것 드세요”

라고 했다. 아저씨는 고맙다며 바로 받아갔다. 그때 나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흥분을 느꼈다. 이전의 삶에서는 내 안에 감동이 되어서 흘러나와 나누는 삶, 바로 하나님 사랑의 자연스러움이 부족했던 것 같다. 아마도 이렇게 성령께서 내 안에서 일하신 것은 하나님의 일에만 빠지지 말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고 그 친밀함을 갖고 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누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여전히 ‘마음의 훈련’이 이루어지지 않은 나는 그 해 말에 혼자 지난 사역을 돌아보고 평가하며 사랑도 없고 열매도 없다며 스스로 잘못되었다고 단정 지었다. 그리고 섬기고 있던 선교단체를 떠나 고향으로 내려왔다. 떠나 온 후 생의 목표를 잃고 몇 달 동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나의 문제만을 생각하다가 잠시 후 정신을 차려보니 주님의 소중한 양떼를 무책임하게 버렸다는 자괴감이 무섭게 짓눌렀다. 평생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숨만 크게 내쉬어도 눈물이 쏟아지던 날에 하나님께서는 에베소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와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주셨다. 나와 주님과의 대화가 새로워졌다. 그리고 끊임없이 울리는 중국선교에 대한 부르심이 나를 일으켜 세우고 나는 달라진 마음으로 중국을 오래 품는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으며, 교회에서 청년들을 한 명 한 명 다시 만나고 나를 깊이 이해하고 품어주시는 목사님과 사모님의 사랑과 배려를 받으면서 ‘마음과 함께 가는’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순서가 뒤집힌 사역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게 되었고 조금씩 더 자연스럽게 내 안에 있는 예수님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 후로 소위 ‘영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마음과의 전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분별은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주도하시지 않는 사역과 인위적인 성장은 나를 너무 불편하게 만든다. 앞으로도 이 싸움을 계속하며 나아갈 것이다. 비록 또 다른 실패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할지라도 이런 실패의 과정이 없으면 나는 참다운 사역자가 될 수 없음을 안다. 주께서 나를 붙드시는 한 계속해서 실패하는 사역자가 되고 싶다. 


필자 주: 중국에서 사역한 지 이년쯤 된 어느 날 우연히 그 십수 년 전 나를 감동시켰던 선교사님의 소식을 알게 되었다. 중국의 한 소수민족을 위해 직업학교를 세우시고 그 지역에서 많은 현지인들에게 존경 받는 교육가로 살고 계셨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중문 기독 잡지 《해외교원》에도 이 선교사님의 이야기가 실렸다. 기고한 분은 “예수님을 보는 것 같다”라고 그 선교사님을 묘사했다. 주님 안에 더 깊어진 선교사님의 모습은 어느 정도 현지 문화와 삶에 익숙해져 다소 해이해져 가던 나를 정신을 차리게 해 주셨다. 예전에 나에게 어떤 실패가 있었는지 기억나게 하고 이쯤이면 되었다 하는 안일한 마음을 버리고 다시금 푯대를 향해 달려가도록 도전을 주었다. ▩



밝은뜰 | 전 중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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