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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28  통권 112호  필자 : 유관지  |  조회 : 2244   프린트   이메일 
[발행인통신]
회상(回想)

지난 2월 9일부터 13일까지 중국어문선교회 주최로 진행된 제4기 선교 중국어 학교(MCA) 개회예배의 설교를 하기 위해 MCA가 열리는 불광동 팀(TEAM) 수양관을 찾았습니다. 개회예배 설교를 하면서 먼저 팀 수양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팀 수양관은 복음주의동맹선교회(The Evangelical Alliance Mission)가 한국선교를 하면서 세운 기관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말하고 ‘팀’이라는 이름은 그 선교회 이름의 영문 첫 글자들을 모은 것인데 팀 사역 의식을 가지고 서로 협력하면서 중국선교를 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1977년에 ‘공동운영’이라는 이름으로 FEBC가 운영권을 인수한 극동방송도 팀선교회가 세운 기관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1956년에 극동방송이 세워지자 버거스트롬(한국 이름 朴壽敦)이라는 선교사가 와서 중국어방송을 담당했습니다. 이 분은 인천화교교회 강단도 자주 섬겼고 중국어가 아주 능숙해서 방송을 듣는 분들은 이 분이 중국인인 줄로 알았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대만에서 온 사무엘 왕(王恒) 선교사가 중국어 방송을 담당하였습니다. 서슬이 시퍼랬던 3공화국 시절, 방송을 감독하던 관공서에서 “이 방송은 한국 땅에서 한국 전기를 쓰면서 방송을 하는데 한국을 소개하는 내용이 하나도 없으니 해적방송 아니냐?”고 하는 바람에 "한국 소개(韓國簡介: Korea Review)”라는 프로그램을 급히 편성해서 제작하느라고 수고를 많이 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대만으로 돌아간 뒤에 그곳을 방문할 때마다 만났는데 살아 계시다면 80대 후반의 할아버지일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홍콩에서 온 T선교사가, 그 다음에는 화교인 C목사가 중국어 프로그램 실무를 맡아 애를 썼습니다. 이 두 분은 지금 중국선교방송 분야의 국제적인 중진이 되어 해외에서 방송선교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 기술 책임자로 노먼 블레이크라는 분이 있었는데 이 분은 중국이 공산화되기 이전 중국선교의 중추기관이었던 중국내지선교회(CIM) 소속이었습니다. “선교사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 분이었습니다. 팀수양관 언덕에 서서 예배 시작 시간을 기다리면서 이런 분들의 모습을 회상하며 잠시 고개를 숙였습니다.  

90년대까지도 중국선교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들뜬 흥분, 표피성(表皮性), 비전문성,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것들이 많이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교 중국어 학교(MCA)에 참가한 선교사들의 열심과 진지함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가지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선교사들의 헌신에 대해 경의를 표했습니다. MCA의 내용도 참 알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MCA의 교재가 우선 그랬습니다.

중국선교에서 이제 껍데기 시대는 간 것 같습니다. 이번 호는 “디아스포라 중국인 사역”을 특집으로 하였습니다. 디아스포라 중국인들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선교대상이며 또 선교자원입니다. 이번 호를 통해 사실이 다시 한 번 부각되기를 바랍니다.

봄입니다. 중국선교의 사명과 소명과 의욕이 더욱 푸르러지는 계절을 함께 이루어갑시다.





유관지 I 감리교북한교회연구원(NCRC) 원장·호서대겸임교수·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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