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쇼핑
2006.6.20  통권 96호  필자 : 유관지  |  조회 : 2079   프린트   이메일 
[발행인통신]
대역을 잘 하고 있나요?

홍콩이라고 하면 여행가들에게는 쇼핑 천국, 무역을 하는 분들에게는 동서양 무역의 중계지, 그 밖의 여러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중국선교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홍콩은 중국선교의 교두보(橋頭堡)였습니다. 중국교회에 대한 정보를 얻고, 중국으로 무엇을 보내고…, 홍콩은 중국선교를 위해 참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중수교가 이뤄지기 전까지 홍콩은 중국의 출입구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1990년을 전후해서 홍콩 교계 지도자들의 관심은 ‘97이후(After 97)' 에 집중되기 시작했습니다. 1997년 6월 30일을 기해서 홍콩의 통치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는데 홍콩의 교회나 홍콩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중국선교활동은 그 이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중국 당국은 ‘홍콩을 반환 받더라도 1국 2체제(나라는 중국 하나이지만 체제는 사회주의, 자본주의 둘을 유지한다.) 원칙에 의해 홍콩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했지만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더욱 그랬습니다. 홍콩교회의 지도자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중국 통일전선 부문의 지도자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홍콩 안에서 신앙의 자유는 보장하지만 홍콩에서 대륙에 영향을 주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못을 박더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일도 있습니다.

그 때 홍콩 교계 지도자들에게 ‘97 이후 어떻게 할 것이냐?' 라고 물으면 처음에는 '우리는 순교를 각오하고 홍콩을 지킨다!'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만이 아신다.' 하는 분들이 늘어가더군요. 결국 중국선교기관들이 하나, 둘 홍콩을 빠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때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 홍콩을 발판으로 한 중국선교활동은 아무래도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그러면 서울이 그 대역을 해야 한다. 지리적으로는 타이완(臺灣)이 더 가깝지만 타이완 교계의 역량이나 둘의 관계가 우호적이 아닌 점을 생각하면 서울이 중국선교의 새로운 전초기지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참 많이 했습니다.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10년이 흐르고 있습니다. 주장하던 대로 되었는지, 아니 나부터 그런 인식에 변함이 없는 것인지 돌아보고 싶어집니다.

지난 4월 하순 어느 날 밤, 저는 하얼빈에서 저녁 7시 반에 떠나 옌지(延吉)로 가는 침대차 안에 있었습니다. 하얼빈 여러 교회에서 설교, 한인 선교사와의 만남, 신학교 강의 등으로 매우 피곤해져서 열차가 출발하는 것과 동시에 곤하게 잠이 들었습니다. 옷도 벗지 못한 채 자다가 열차가 정거하는 진동에 눈을 떠보니 시간은 아침 5시, 날이 훤하게 밝아오고 있었고 열차는 뚠화(敦化)역으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차창 밖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아, 중국!'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옌지역에 도착하기까지 두 시간 반 동안, 점점 밝아오는 광활한 중국 동북대륙의 벌판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중국이 영적으로도 이렇게 밝아지기를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마음을 담아 이번 호를 독자 여러분에게 드립니다. 도움이 되기 바랍니다.


유관지ㅣ 발행인, 목양교회 담임목사,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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