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히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8~19)
위의 성구는 단기여행을 가기 전 기도했던 내용이다. 단기여행을 위한 기도제목은 아니었는데 그 기간 가운데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됐다.
부르심의 소망
먼저는 부르심의 소망이다. 작년 겨울 단기여행을 다녀와서 다음에도 참석하겠다는 결단을 했다. 그러나 이번 단기여행을 참석할 수 있는 시간적, 물질적 여건이 되었음에도 참석하기 싫었다. 작년 겨울에 고생했던 기억이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선 결정적인 만남을 허락하셨고 설레는 마음으로 참석할 수 있게 도우셨다.
단기여행에 앞서 진행된 2박 3일의 SLTC를 통해 중국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하심들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이전에 흘려듣기만 했던 말씀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전공을 전문화시킬 욕심으로 유학 왔던 나에게 1년 4개월 동안 중국에 거하게 하셨다. 또한 여러 선교사님의 사역을 보게 하시고 동참할 수 있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이루어진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유학생활 내내 부족한 나에게 먼저 예배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며 즐거워하라는 메시지만 계속 주셨던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이제 중국을 향한 마음을 보여주셨다. 가진 것 없지만 젊음이 있는 나를 돌아보게 하셨다.
단기여행에 참석하기 한 달 전쯤 한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불순종했을 때 낭비되어지는 시간들과 에너지들을 경험하며 가슴치고 후회했던 일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르심의 준비단계였던 것 같다. 그저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는 부르심인 줄 알았는데 부족한 나에게도 중국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주시고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올려드린다.
두 번째는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다. SLTC와 단기여행에서 만났던 조원들을 포함한 여러 만남 가운데에서 동일한 비전속에서의 사귐과 나눔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이전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즐거움이었는데 이 기간 내내 입이 귀에 걸려있었던 것 같다. 특별히 단기여행 조에서는 함께 생활하다보니 부족한 점들도, 그리고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는다는 말씀처럼 금방 풀어지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서로 도우며,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기에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하나로 묶어지는 풍성함 은혜들을 또한 누릴 수 있었다. 한사람 한사람이 그 모습 그대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일해 나가실 것이 참으로 기대되고 그 사람의 존재가치가 그 자체만으로도 기쁨이 되었던 시간이었다.
세 번째는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이었다. 정말 소름이 끼치도록 말씀 그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 앞에선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불신할 수가 없었다. 가진 것 없이 그저 주의 복음을 전하겠다는 그 사명 하나만 붙들고 떠난 발걸음이었는데 주신 그 말씀에 의지하며 믿음가지고 나아갈 때 하나님은 그때그때 주신 말씀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리를 지키셨고 미리 앞서 일을 행해주셨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는 호남성의 지수시 흑수현이란 동네였다. 상해에서 출발할 때부터 교통과의 전쟁이었다. 그때가 설연휴기간이 다가와 기차표를 포함한 여러 교통편이 아주 부족한 때였는데 하나님은 정확하게 차편을 마련해주셨고 무사히 그 땅에 도착하게 하셨고 또 무사히 돌아오게 하셨다. 그날 막차는 이미 떠나고 버스가 없는데 그날따라 승객이 많아 추가 운행된 버스를 타게 하셔서 사명을 붙들고 나아가는 발걸음을 정말 철저히 지키시는 것을 또다시 느끼게 하셨다.
드디어 목적지인 흑수현에 도착을 했다. 그런데 우리가 찾는 투지아족이 보이지가 않았다. 예전 같으면 걱정과 염려가 있었겠지만 이미 앞서 보이신 주님의 일하심이 너무나도 탁월하여 비록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인도하실 주님께 신뢰가 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주린 배를 채우고 이리저리 알아보니 때마침 투지아족 촌장이 시장에 와 있었다. 뒷모습만 보기엔 까다로운 할아버지 같더니 정면으로 대하자 서른 살의 순진한 아저씨였다. 북경에서 투지아족을 조사하러 왔다고 도움을 요청하자 흔쾌히 승낙해주셨다.
오후 4시를 넘어 출발한 산길. 촌장님을 따라 산길을 얼마 걷지 않은 것 같은데 해는 벌써 넘어가고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조금씩 내리던 비로 진흙땅은 더욱 질퍽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데 힘이 얼마나 들던지... 어둠은 점점 짙게 깔리고 갈 길은 멀고... 손전등은 없고 모두들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얼마를 갔을까! 촌장님의 연락을 받고 그의 동생이 손전등을 가지고 내려왔다. 6명의 조원 모두 손전등을 가지고 무사히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데리고 와준 것도 고마운데 촌장님 집에선 몸을 녹일 수 있는 화로와 갓 지은 식사를 풍성히 대접해 주었다. 밥을 먹고 주위에 모여 있는 몇몇 사람들과 관계 만들기를 시도했는데 처음엔 켜져 있는 VCD 덕에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하다가 좀 지나서야 서서히 좀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밤이 깊어져 마련해주신 두 칸의 방에서 감사기도를 드리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조원들과 함께 말씀을 묵상한 후 본격적인 의료 진료와 복음을 제시하려 사람들을 모아달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부탁을 했다. 조원들 각자 파트를 나누어 진료를 시작했는데 난 진료하는 이모 옆에서 통역을 해주는 일이었다. 하나둘씩 모여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경통을 앓는 노인 분들과 감기나 상처가 난 아이들이었는데 이모의 진료에 이어 약이 처방되고 약을 받은 사람에게는 또 다른 조원이 기도를 해주고, 또 다른 사람들은 양말이나 장갑, 사탕 등을 나누어주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의료 진료를 진행해갔다.
의료 진료가 마치고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이모가 메시지를 전하고 조장인 중국친구가 다시 통역을 해 복음을 전했다. 진료할 때까지는 호의적이던 사람들이 막상 복음을 전했을 때는 너무도 냉담해졌다. 특히 촌장님이 그러했다. 단체로 영접기도를 드렸는데 호응이 너무도 없어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을 1:1로 붙잡고 영접기도를 시켰다.
몇 명의 사람들 이외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 속에서 일하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그들을 뒤로한 채 서둘러 산을 내려왔다. 어제 내린 비로 인해 날씨는 더욱 추워졌고 길은 위험했다. 촌장님과 그의 동생의 안내로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교통편에서부터 투지아족을 만나기까지, 그리고 상해로 되돌아오기까지 모든 일정 가운데 주님이 일하셨다는 고백밖에는 나올 것이 없었다. 아무것도 가지고 나온 것이 없었는데, 그저 주님 주신 사명하나만 가지고 조원들과 함께 나선 발걸음이었는데 주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셨다.
글을 정리하며
돌아보면 사실 많은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좀 더 기도로 무장했더라면, 좀더 나의 관심이 영혼들에게 집중되지 않았을까? 좀더 그 땅을 축복하는데 애쓰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그것이다. 하지만 부족한 것은 다음을 더 잘 준비할 수 있는 계기가 됨에 소망을 가져본다. 이번 여행을 통해 이전에 느끼지 못한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더욱 크게 신뢰하게 된 것은 나의 삶에 커다란 축복이라 여긴다.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고후4: 1~2)
여행 일정을 마무리하는 날 주셨던 말씀이다. 주님의 뜻을 보이시고 부르시더니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며 주님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그릇이 되라고 신호주시는 하나님. 이 말씀의 은혜가 너무나 커서 한번씩 주님이 주셨던 영혼에 대한 사명을 모른 척 하고 싶어질 때마다 이 말씀이 떠올라 도망갈 수도 없다. 내겐 평생 요절로 삼으며 새기고 살 말씀이라 여겨지는데 그 모든 것들을 말씀으로 선포하시며 그대로 이루어나가시는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멋진 분이시다.
김현진 | 대학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