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흡한 시작, 미쁘신 하나님 몇 년 전 일이다. “따르릉” 한 통의 전화벨이 울렸다. ‘C국 어느 지역에 직접 와서 선교사 자녀들을 위해 캠프를 열어 줄 수 있는지’ 부탁의 전화였다. 전화를 받고 한참 고민했다. 정말 귀한 일인데, 너무나 하고 싶은 사역인데, 봉사할 사람과 필요한 재정을 모으는 것이 두려워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주저주저 하고 있었다. 기대감과 두려움의 줄다리기에서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의 말씀으로 확신을 주셨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The one who calls you is faithful and he will do it)”는 말씀이 내 속에 충만해지니 용기도 생기고 소망도 커져 갔다. 믿음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생각하는 것이라 하지 않았는가? 비록 시작은 미흡하였지만, 그 약속의 말씀이 지금까지 나를 MK(Missionary Kids) 사역자로 서있게 한 것 같다.
나의 경력과 미천한 경험은 MK 사역자라는 호칭을 얻기에는 여전히 부족함이 많다. 그러나 어떠한 방식으로든 MK들을 섬겨야겠다는 마음만으로도 MK를 섬기는 사역자로서의 자질이 충분하지 않나 싶다. 더욱이 선교사자녀를 섬기는 사역에 대하여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참 기쁘다. 한편으로는 필력의 미력함으로 좋은 기회를 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도 있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한다.
한국교회의 관심 밖, MK를 위한 사역 일반적으로 선교사자녀들을 Missionary Kids(MK)라고 부른다.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대부분의 시기를 부모님의 문화 밖에서 보낸 아이들로서 모든 문화에 다 잘 적응하나 어느 문화에도 전적인 소속감을 느끼지 못해, 자신들과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소속감을 누리는 아이들” 이라는 표현이 있다. 선교사자녀들에게는 부모의 문화와 태어난 문화, 생활하는 문화가 섞여져 발생되는 독특한 문화적 특성이 있다. 그래서 MK를 TCK(The third Culture Kids) 즉 ‘제3 문화의 아이들’이라고도 부르며, 또 Trans-Cultural Kids 라고도 부른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에 의한 한국 선교현황을 살펴보면 한국은 2000년 162개국에 8,13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선교사자녀의 수를 약 6,500-7,000명으로 추산했다. 2004년에는 168개국에 12,159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MK의 수는 약 11,000명으로 추산했다. 2009년에는 173개국에 19,413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MK의 수는 15,000명 이상으로 추산했다. 현재 KWMA에서는 2030년까지 10만 선교사 파송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만약 KWMA의 계획대로 선교사가 파송된다면 매년 3,670명의 선교사가 파송되며, 그에 따라 선교사자녀 역시 매년 1,000명 이상씩 증가할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우선순위에 밀리는 MK 교육 현대 한국선교의 쟁점으로 선교사들의 도시집중현상과 선교사들 간의 단절로 인한 중복사역, 불안정한 선교사역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등장한 선교용어가 전방개척선교와 선교사 재배치문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확한 현장 분석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들의 재배치와 전방개척선교는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것 같다. 가야할 방향은 분명히 아는데 자동차가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외국의 경우에 선교사 한 가정이 파송 되면, 선교부에서 선교사의 노후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제시하고 파송되는 지역의 교육여건을 살펴 자녀의 교육 학령에 따른 교육 일정을 제시해주고 거기에 맞는 후원이 시행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많은 경우 이런 부분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 없이 파송하기 때문에 부모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선교사자녀 교육문제가 해결되지 않다 보니 많은 선교사가 학교가 있는 대도시에 모여 있다. 미전도 종족이 살고 있는 오지를 향해 더 깊게 들어가고 싶어도 자녀 교육에 발목이 묶여 있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선교사의 마음 VS 부모의 마음 한국의 높은 교육열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이제는 교육경쟁의 나이가 더 낮아져서 좋은 학군 지역의 부모들은 미취학의 시기에서부터 아이에게 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곳곳을 다니며 선교사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선교사가 부모라는 입장에 놓이게 되면 그들도 역시 자녀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은 부모님이고 또한 한국인의 피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선교사에 대한 영웅적 이미지를 조금은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선교사도 밥은 먹어야 하고, 옷도 입고 살아야 하듯, 그들 또한 자녀에 대한 사랑이 강한 부모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선교사는 슈퍼맨도 람보도 아니다. 하나님을 힘입어 살아야 함을 다시 한 번 인식해야 할 것 같다. 부모선교사가 자녀에 대해 신경 쓰는 부분들은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정체성 확립(16.8%), 교육환경(16.8%), 새로운 환경적응(14.7%), 신앙교육(10.5%), 언어문제(6.3%), MK 사역자(3.2%), MK 학교(2.1%)순이다. 부모선교사의 자녀에 대한 걱정은 교육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 있으며, 또한 부모선교사가 자녀 교육문제에 대해 얼마나 큰 부담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MK 교육에 대한 필요성은 절실하지만, 한국 교회의 MK 사역은 세 가지의 영역에서 소외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로 부모선교사와 그들이 이루어가야 할 사역의 긴장 속에서 소외되어 있다. 선교사들은 선교사역과 자녀 교육의 문제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둘째로 한국교회의 선교정책에서 소외되어 있다. 한국교회의 선교정책은 선교사의 총체적인 부분에서 조차 힘이 모아지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MK에게까지 정책적 배려를 하기에는 여력이 없는 것 같다. 세 번째로 한국교회후원에서 소외되어 있다. 한국교회는 MK의 교육을 파송된 부모선교사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여기고 있다. 자녀 교육에 대한 후원금을 책정하지도 않고 전혀 관심도 없어 보인다. 이렇게 세 가지의 영역에서 소외된 한국 선교사자녀들은 결국 선교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될 것이다. 분명하게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선교의 사각지대, 그곳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바로 MK 사역이다. 중국의 한 선교사는 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 적이 있다. 사실 그 감사의 말은 지금도 종종 내 가슴을 찔러 아프게 한다. “중국에서 조차 소외되어 있는 아이들을 사랑하기 위해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말을 들을 때 가슴에 비수가 꽂힌 듯 했다. 부모는 중국의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왔다. 하지만 그들이 사랑해야 할 자신의 자녀들은 정작 부모로부터 충분히 사랑을 받지 못했다. 중국의 영혼만큼도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MK 지원현황 한국교회의 선교사자녀 지원상황은 어떨까 생각해 보자. 한국교회의 선교사자녀 지원상황은 최근에 본 영화《헬프》가 생각난다. 그 영화는 1960년대 흑백 갈등이 심한 지역인 미시시피주 잭슨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상류층의 여성들은 아이를 출산하면 흑인 가정부를 고용하여 키운다. 그래서 아이들은 때로는 흑인 가정부를 진짜 엄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마음에 남는 한 장면이 있다. 어느 날 아주 어린 백인 여자 아이가 사소한 잘못으로 엄마에게 아주 많이 났다.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흑인 가정부 에이블린에게 달려가 안기며 “에이블린이 진짜 나의 엄마야!”라고 외친다.
MK들을 위한 캠프를 섬기면서 간혹 ‘무임승차’ 라는 말을 간혹 듣는다. 무임승차란, 마치 상류층 백인 여성이 자녀에 대한 분명한 양육의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육의 책임을 흑인 가정부에게 미루어 자녀를 키우는 행위처럼 한국 선교사자녀에 대한 교육과 책임을 서구의 교회와 선교단체에 미루어 맡기는 것을 말한다. MK-NEST의 백인숙 선교사는 “통계적으로 한국 MK의 40-50%는 국제 MK 학교, 30-40%는 현지의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나머지가 정부에서 세운 한국학교에 보내거나 홈스쿨링을 하기도 하고, 한국 MK를 위한 학교에 다니죠. 현재 한국 선교사자녀들이 많이 다니는 국제 MK 학교는 서구의 선교부에서 막대한 돈을 들여 학교를 짓고 운영비를 지원하며 교사선교사를 파송해서 운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한국선교사와 선교부는 아무런 비용 부담 없이 그동안 무임승차를 해온 셈이지요. 어떤 국제 MK학교는 학생의 80%가 한국 선교사자녀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나 선교회는 학생의 학비 이외에는 아무런 부담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 그 나라에서 서구 선교사에 대한 제재가 더 엄해져 서구선교사들이 다 떠나게 된다면, 그때는 서구선교부에서 그 학교에 대한 지원을 끊을 수도 있습니다. 막상 그렇게 학교가 문을 닫게 되면 한국선교사들의 자녀교육 문제가 심각해질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선교적 유아기일 때 한국이 서구의 배려 속에서 혜택을 누리며 살아도 도의적 문제가 없겠지만, 한국교회 스스로 세계 선교 2위국임을 자부하며 10만 명 선교사 파송이라는 슬로건을 외치는 현 상황에서도 무임승차라는 평을 들어야 하다니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진짜 부모는 한국인데 우리 MK들이 다른 사람들의 품에 안기어서 “나에겐 진짜 엄마가 있지만 그분은 전혀 저를 신경 쓰지 않아요. 저를 돌보아 주는 당신이 저의 진짜 엄마에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한국교회는 에이블린에게 아이를 맡겨버린 상류층의 어느 우아한 여성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선교사자녀 교육을 위한 필요들 선교사자녀 교육을 위한 가장 시급한 필요들을 순서대로 정리해 보면 MK 사역자 양성(13.7%), 교육비(13.7%), 교육환경(9.6%), 정체성확립(5.5%), MK 학교(5.5%), MK 교육모델(4.1%), 부모와 관계(4.1%), MK 호스텔 및 상담센터(8.2%)이다. 이 중에서 장기적인 부분과 단기적인 부분들, 그리고 재정의 규모가 방대한 것과 재정의 규모가 비교적 작은 것들로 나누어 살펴보면 개인이 섬길 수 있는 것과 단체가 할 수 있는 것, 한국교회 전체가 연합해서 이루어야 할 것들을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장기계획사역-로컬 MK 학교, 현지 호스텔, 재입국 세대를 위한 생활관, 인가학교(모두검정고시), 한국 홈스쿨링학제 인정, 국제학교 교사파송(훈련과 발굴), 장학기금 마련 등 둘째는 단기필요사역-단기학교(국사, 수학, 국어), 단기캠프(영적고향) 마지막으로 지속적인사역-MK 교사훈련 파송, MK들과의 연계, 기도와 관심-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MK 사역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역이기도 하지만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MK들의 문제를 만들어 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타문화적응, 언어적응 그리고 교육환경이다. 그리고 이런 요소들이 만들어 내는 문제들은 대부분 MK들의 정서에 좋지 못한 영향을 주게 된다. 그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압력과 시련을 이겨낸 MK들은 그야말로 빛나는 보석 같은 아이들이 되지만, 몇몇의 아이들은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신의 어둠속에 갇히는 경우도 생긴다. 얼마 전에 한국에 놀러온 MK들을 보며 어느 성도님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
“너희들은 무슨 복을 받아서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살면서 영어를 그렇게 잘하게 되었니?”
한국 성도의 눈에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사는 것과 영어를 잘하게 된 것이 크나큰 부러움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한국 성도의 말 한마디에 담겨져 있는 그 본심이 바로 한국교회가 MK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떠한가는 보여 주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MK들은 과연 자신들이 외국에서 살고 영어도 잘하게 되어서 복 받은 아이들이라고 생각할까? 한 MK의 소지품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 수 년 만에 한국에 잠시 나온 MK에게 가까운 친척분이 그 당시 유행하던 mp3를 선물해 주었다.
그것을 본 어떤 성도가
“너는 우리 애들도 없는 mp3를 가졌구나?”
라고 한 그 말에 자신은 그런 물건도 가지면 안 되는구나 싶어서 서러웠다고 말한 MK도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그냥 살 수 있는 물건은 왜 저는 항상 기도로 얻어야 하지요? 기도하는 것에 너무 지쳐 버렸어요.”
“저는 신발 같아요, 필요할 때 신고 다니다가 필요 없으면 그냥 넣어 두는 그런 신발 같아요.”
“선교사는 자녀를 낳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전 바보가 아니에요, 영어가 서툰 것뿐이에요.”
선교사자녀들이 저마다 마음에 담은 말을 고백할 때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선교사자녀들은 놀라운 가능성과 강한 도전 사이에 있다. 잦은 이동과 해결되지 않는 슬픔, 그리고 충동성, 아끼던 물건에 대한 집착, 이별에 대한 상처로 인해 심리적 거부감을 가지는 경향이 있는 반면, 친구를 빨리 사귀어서 깊은 관계를 이루려고 서두르는 경향도 있다. 이런 것이 MK들에게는 이겨 내야할 도전이 된다.
한편, 넓은 세계관을 가졌다는 것, 언어의 은사와 타문화 이해의 탄력성과 수용성, 적응력이 좋다는 특징들은 MK들의 큰 축복이기도 하다. 그래서 선교사자녀들을 교육할 때 정체성은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분명한 정체성을 기반으로 할 때만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압력과 시련을 견뎌내고 탄소덩어리에서 빛나는 보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의 선교사자녀들이 2세대 세계선교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4영역의 정체성이 확고하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어느 쪽으로 편향되지 않도록 가족 구성원 안에서의 존재 정체성, 자신의 피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인식하는 민족 정체성, 그리고 세계시민으로서의 사명 정체성, 마지막으로 이 땅에 매이지 않는 하늘시민으로서의 신앙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다. MK를 돌봄과 교육하는 것이 4영역의 정체성을 잘 다져주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한국교회의 미래선교는 밝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말자 어느 개그프로의 유행어처럼 “선교사자녀 섬기는 것∼어렵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싶다. 우선 시급하게 필요한 MK 사역을 생각해 본다면 국내 재입국 MK들을 위한 기숙사 또는 숙소를 마련해 주는 사역이다. 그리고 시즌별 MK를 위한 캠프를 본국과 로컬에 개최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캠프에서 경험한 좋은 추억들은 힘든 시간마다 마음이 머물 수 있는 안식처 같은 역할을 해준다. 또한 MK 캠프는 아이들에게 영적고향이 되어 준다. 지금 바로 시행할 수 있는 MK 사역 중에서 가장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사역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본국 또는 현지 MK 캠프 교사로 참여하는 것과 장기적으로 국제 MK 학교 교사로서의 헌신, 개인적으로 개교회의 파송된 선교사와 그 자녀에게 관심을 가지고 표현하는 것도 중요한 MK 사역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선교사는 사명이고 선교사자녀는 숙명이다. 선교사자녀를 섬기겠다는 생각을 하고 필요한 훈련을 받으면서 어느 태국선교사에게 들은 말이다. 가슴에 슬프게 배어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대하며 기도하는 것은 부모선교사의 사명이 아이들에게 피하고 싶은 숙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어받고 싶은 본인의 사명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에 내가 조금이라도 쓰임받길 원한다. 두 번째 밀레니엄을 케냐에서 보내면서 나는 가난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았다. 굶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보았다. 그리고 사탕 하나를 받기 위해 몰려오는 아이들을 보았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내가 느낀 무력감이었다. 내가 가진 힘과 내 소유에 비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너무나 많고 많았다. 그래서 귀국하고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때 그 무력감에서 나를 건져준 글귀가 있다. “세상 모두를 사랑할 수 없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라는 테레사 수녀의 말이다. MK 사역에 있어 내가 큰일은 할 수 없을지라도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되지 말자는 것이 내 신앙의 토대 중에 하나가 되었다. 한 방울의 물이 바다의 수위를 변화 시킬 수는 없어도 한 방울만큼 변한 것은 분명하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한 방울의 물이 되기를 더불어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