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길의 시작
영국 한 단체의 초청을 받아 아내와 두 자녀를 데리고 고국을 떠나 영국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였다. 입국 수속 시 문화와 언어의 충격으로 순조롭게 공항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무려 2시간이상 대기해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느덧 선교사의 길을 걷게 된지 15년이 흘렀다. 그 당시를 다시 떠올려본다. 정장차림에 빨간 등산용 배낭을 짊어지고 두 손에는 큰 짐 가방을 든 나, 5살 된 딸과 4살 된 아들의 손을 잡고 뒤를 따라오던 아내. 선교사 훈련보다는 다른 목적으로 영국에 오는 것 같아 입국심사 수속이 더 까다롭고 힘겨웠던 게 아닌가 싶다.
하나님의 인도
우리는 남부 웨일즈의 조그마한 도시에서 선교사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우리를 초청한 단체는 제 3세계의 선교지원자들을 동원하여 훈련시켜 다른 선교지로 보내는 사역을 했다. 각 나라에서 온 훈련생들과 함께하는 공동생활과 문화적응 훈련, 그리고 중보기도사역을 통해 세계 선교 비전을 품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를 섬겨 주셨던 선교사님들은 15년차부터 20년차까지 풍부한 사역 경험들을 갖고 계셨다. 언어, 중보기도의 실제, 실천 선교학 등을 강의하셨지만, 내게 가장 깊은 감동을 준 것은 선교현장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그분들의 모습, 주님께 온전히 드려진 헌신으로부터 나오는 경건, 훈련생들을 위한 겸손한 섬김의 모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훈련의 연장으로 웨일즈 수도 카디프에서 9개 선교단체가 연합하여 지역을 순회하면서 선교동원을 통해 지역교회와 개인 및 유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대회를 개최했다. 우리 팀도 당연히 참석했다.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의 피가 열매를 맺어 한국교회가 다시 전 세계를 향한 선교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간증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터키 소개 부스도 담당하게 되었다. 대회 중반쯤 부스에 한 자매가 찾아와서 우리에게 보다 구체적으로 터키를 소개해 주었다. 이 자매는 터키 남부 아다나시에서 영국으로 유학을 왔다. 그 때 나는 그 자매에게 나는 한국 사람이며, 앞으로 터키에 복음을 증거 하기위해 훈련을 받고 있다고 소개한 후 곧바로 복음을 증거했다. 그녀는 10분 이상을 진지하게, 마음을 열고 복음을 들었다. 나는 이 자매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기를 원하는 준비된 구도자임을 확신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자매에게 자신이 죄인 됨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과 왕 되심으로 마음에 모시기를 초청하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자매는 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나누기 시작했다. 본인은 즉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기를 원하지만 지금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준비가 무엇인지 말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만일 지금 자신이 예수님을 영접해서 아다나시로 돌아가면 엄마와 이별을 해야 하며, 또한 오빠들이 자신을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어떤 어려움에 처할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마음
그 자매와 전화번호를 교환한 후 자매를 위해 매일 기도할 것을 약속하고 자매에게 영문성경을 소개했다. 나는 또한 자매에게 학교로 돌아간 후 성경을 매일 읽을 것을 권했다. 아쉬움과 안타까운 마음을 가득 안고 헤어졌다. 숙소의 정기 모임 시간에 훈련원들에게 이 상황을 나누고 함께 중보기도를 요청했다. 뿐만 아니라 나와 아내는 아침마다 자매를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갔다. 선교훈련의 핵심 중에 하나가 중보기도였다. 중보의 열쇠는 “하나님의 마음에 나의 마음이 일치되는 것이다”라고 배웠다. 그 자매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기 시작했다. “선교사가 중보기도의 사역을 모르면 사역의 현장에서 성령님의 세미한 인도하심을 놓칠 수 있다”라고 배웠다. 나는 이 두 가지를 근거로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첫째는 마태복음 17장 14-18절에 귀신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가 예수께 나아가 꿇어 엎드리며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라며 치유를 간구 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보았다. 나 역시 그 자매를 아버지의 심정으로 품고 예수님께 나아가 중보했다. 그리고 나는 터키를 위한 중보기도 책에 아다나시를 소개 하면서 기도했다. 정확한 년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1975년 이후 한 미국 선교사님이 선교사역 중 이슬람 원리주의자에 의해 총살당하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분의 장례는 한 미국기지에서 치러졌다. 많은 무슬림을 초청하여 그 자리에서 그들에게 공식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이슬람은 단순한 종교가 아닌 제도적으로 악한 종교요, 하나님 아버지를 공포와 두려움으로 왜곡시킨 사악한 종교이며,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을 속이는 종교이자 정치 체제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수많은 무슬림들은 이러한 이슬람의 악한 종교와 거짓 신에게 묶여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악한 영적세력에 묶여 있는 그 자매를 위해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기도했다. 그리고 그 자매가 거주하는 그 땅에 순교자의 피가 있음을 기억하며 그 영혼을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그 자매 이름을 부르며 아침마다 엎드리며 간청함으로 나아갔다. 기도를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거실로 내려와 전화를 받았다. 혹시 한 달 반 전 카티프에서 자신에게 복음을 들려 준 Mr. Kim이 아니냐며 자기가 바로 터키의 니미뜨 일드림 자매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일주일 전,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했다는 것이다. 한 무슬림 영혼이 주께로 돌아왔다는 소식으로 인해 마음 깊은 곳에 기쁨과 감격 그리고 아버지를 향한 감사가 넘쳐났다. 전화로는 자세한 상황을 나눌 수 없어 약속장소를 정하고 아내와 함께 그 주간에 카디프시에서 니미뜨 일드림 자매를 만났다. 카디프 선교대회 때 복음을 들은 이후 숙소로 돌아가 성경을 계속 읽으면서 그 마음에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확신하게 되어 믿음으로 영접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주부터 영국 지역교회에 출석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두 주 후 우편으로 나에게 터키어 사도행전과 요한복음 쪽복음을 보내주었다. 나의 터키 사역을 위해 함께 기도한다는 쪽지가 함께 들어 있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자매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자녀 삼아 주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이 열매로 인하여 나는 선교에 있어서 중보기도는 최고의 사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빚진 자의 마음
지금도 여전히 선교사의 길을 걷고 있는 중에 잊지 못할 이름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잊지 못할 이름은 니미뜨 일드림이다. 막 터키에 정착했을 때, 한 서양 선교사님이 니미뜨 일드림 자매가 나의 안부를 묻더라고 전해주셨다. 하지만 초기 정착시기였고 팀 사역을 정착 시키느라 연락을 못했다. 그저 그 자매를 위해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자매로 인해서 일까? 아직도 나의 마음 한구석에는 무슬림의 영혼에 대한 부담과 빚진 마음이 있다. 그때를 회고해 보면, 내 마음에 아직 부담감이 남아 있는 까닭은 그 자매가 첫 열매이기라서 보다는 나에게 전해준 쪽복음을 무슬림들에게 아직 전해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는 이 빚진 자의 마음을 나 혼자서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만나 본 중국교회 사역자들에게서 자신들이 받은 이 복음의 빚을 이제는 갚기를 원한다는 강렬한 열망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중국선교협의회(KCMA)는 Asia Harvest의 2010년 통계를 인용, 중국 크리스천(가톨릭 신자 포함)은 1억 347만 945명으로 인구(13억 5583만 7457명)의 7.63%에 달한다고 밝혔다. 중국 대륙이 공산화된 1949년 당시, 기독교·가톨릭 인구가 433만 8900명에 불과했는데, 61년 만에 23.84배나 증가 했다고 한다. 사도바울이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 1:14)”고 교회 앞에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늘 이방인에 대해 복음의 빚을 지고 있다는 심정이 그의 일생을 용광로와 같이 불타오르게 했다. 이와 같이 중국교회는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교회들이 한국의 여러 선교 단체과 협력하여 선교중국을 위한 전략회의와 각종 포럼을 열고 있다. 정말 고무적이고 흥분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21세기에 복음화율 10%를 눈앞에 둔 중국교회가 16억의 무슬림을 향한 선교의 동반자로서 헌신하고자 할 때, 중국교회가 어떤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한국선교사로서 사명과 헌신적 책임이 요구됨을 분명히 느낀다. 무엇보다 잊지 못할 이름인 니미뜨 일드림 자매를 생각할 때, 마음 가운데 새로운 결단과 헌신의 필요성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또 다른 잊지 못할 이름들을 찾기 위해 새로운 항구를 향하여 배를 띄우기로 결단한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면서, 나를 보내실 그 땅의 무슬림 한 영혼 영혼의 이름을 주님께 올려 드리며, 우리의 삶과 사역 가운데 잊지 못할 이름들이 풍성하게 될 것을 믿음으로 기대해 본다.
김아브라함 | 중국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