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땅으로의 부르심
6년 전 봄, 고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곳, 중국 S성을 향한 비행기에 다섯 식구는 몸을 실었다. 최대한으로 짐을 줄인다고 했지만, 아이 셋 딸린 짐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초과 요금을 지불해야 할까봐 염려 했지만, 함께 탑승하게 된 분들의 도움으로 무난하게 그 많은 짐들을 가지고 갈 수 있었다. 현지 공항을 빠져나왔을 때, 마중 나오신 몇 분의 선배 선교사님들 외에 뜻밖의 많은 인파가 나와 우리를 열렬히 환영했다. 알고 보니 한중교류를 위해 한국에서 온 교류단을 환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입성을 환영해주시는구나!’ 싶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려는 평화의 사절로 보내셨다는 것을 생각하니 여행의 피곤함은 어느새 사라졌다.
현지에서의 정착기
아내가 중국어를 부지런히 준비해두었기에, 집을 구하고 현지에 적응하는데 있어 부담은 상대적으로 덜 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다. 말은 할 줄 알지만 현지생활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새로 배운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조금씩 적응해갔다. 정부의 정책상 자녀를 하나 밖에 가질 수 없는 그들에게 세 명의 자녀를 가진 우리는 호기심과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러한 관심이 지금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지만 처음에는 참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우리가 문 밖에만 나가면 사람들은 “이 아이들이 모두 당신이 낳은 아이들이냐”고 서슴없이 물어왔다. 현지 사회에 익숙지 않던 우리로서는 그것이 매우 싫었다. 생활의 곳곳에서 특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긴장을 느끼며 살았다. 그래서 해만 넘어가면 누가 보지 않는데도 창문의 커튼을 치는 것이 중요한 하루의 일과 중의 하나였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미 습관이 되어 버렸는지 이곳 생활이 고국보다 편안해진 지금도 커튼 치는 행동은 계속되고 있다. 나 외에도 커튼을 치는 선교사들이 꽤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세 자녀의 현지 교육 적응기
이곳에 정착을 하고 나서 아이들의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영어국제학교도 있었지만, 중국선교사의 자녀로서 현지의 말을 할 줄 알고, 문화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중국 유치원을 선택했다. 사전에 유치원에 사상적인 교육은 빼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예외가 없었다. 공산소년단이 매는 빨간마후라를 매일 매야 했다. 큰 아이가 입학을 하고 오래지 않아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오른손을 번쩍 들고 벽을 향하여 서더니 매우 진지하게 중국 국가를 부르는 것이었다. 처음에 뭔 행동인가 하며 바라보던 우리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고, 그날 밤, 큰 아이는 엄마에게 밤새도록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해서 교육을 받았다. 옆에서 형이 겪었던 일들을 잘 지켜보았기에 둘째는 특별교육 없이 잘 넘어갔다. 그런데 셋째가 입학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중국 사람입니다” 하는 교육을 받고 집에 왔다. 그리고는 그것을 우리 앞에서 열심히 하다가 그날 밤, 울면서 사상교육을 다시 받아야 했다. 이러한 특별교육으로 인해 아이들이 신앙 및 사상 면에 있어서는 절대 선을 넘지 않는다.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이방인 가운데서도 우뚝 서는 연습을 매일하며, 이제는 세 아이 모두 현지 중국 아이들과 어깨를 당당히 겨루며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할렐루야!
사역의 걸음마
사역에 있어서는 필자가 속한 단체의 선배가 출국 전에 “백지를 가지고 가십시오!”라고 말씀해 주셨다. 막연한 땅을 위해 기도하며 나름대로 세웠던 계획들을 모두 내려놓았다. 그랬더니 마음에 차지하고 있는 많은 부담들이 덜어졌다. 주님께서 나에게 어떤 그림을 보여주실까 기대하는 마음이 더 깊어졌다. 어눌한 언어로 만나는 친구들과 기본 관계를 형성한 후 조심스럽게 복음을 전하였다. 그 땅은 무신론, 유물론의 사상이 70여 년 동안 장악을 한 땅이다. 중고등학교 윤리시간에 “종교는 아편이다”라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지금도 가르치고 배운다. 대학생 이상의 젊은이들은 그 말에 동의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어려서부터 받아온 교육의 영향으로 복음에 대한 반응은 소귀에 경을 읽는 것만 같았다. 당원이고 매우 똑똑하며, 남을 배려하는 자세가 되어있는(당의 입장에서) 한 친구가 복음에 나름대로 관심을 갖고 공부도 함께 했다. 그러나 우리는 4년 동안 교제했던 관계가 일순간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다. 가나안 열두 정탐꾼 중 10명이 고백했던 “그 땅은 모든 것을 삼키고 내뱉지 않는 거칠고, 희망이 없는 땅이다”라는 동일한 고백을 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러한 실망 가운데 주님은 “그러기에 내가 너를 보냈고, 나는 여전히 이 땅을 사랑한단다.” 라는 음성을 들려주셨다. 계속해서 젊은 대학생, 대학원생들을 만나며 교제하고 복음을 전하는데, 여전히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조금씩 복음의 열매를 맺게 해주셨다. 한 명, 두 명, 세 명, 네 명……. 우리에게 붙여주신 그 젊은이들이 이제는 주안에서 형제자매가 되었다. 그리고 주일예배를 함께 드리기 시작했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어 성장하고 있다.
소수민족 교회가 세워지다
필자가 살고 있는 S성은 많은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백지상태로 그 지역에 갔기 때문에 더 쉽게 소수민족에 관심을 갖고 그들을 끌어 안을 수 있었다. S성에는 여러 소수민족이 있지만 그중에 Y족과 Z족이 가장 많은 인구비율을 차지한다. 그런데 많은 선교사님들이 Z족을 대상으로 사역들을 하셨고, 인구가 더 많은 Y족에는 상대적으로 사역자들이 적었다. 그래서 주님께 “다른 사람들이 적게 가는 쪽으로 가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대학원생의 신분으로 학교에서 그 민족을 연구하며 그 민족지역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시골 지역에서는 복음의 ‘복’자도 꺼내기 어려웠고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상상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시골 지역의 엘리트 젊은이들이 학업을 위해 우리가 사는 도시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이들을 대상으로 전도를 하여 성경공부를 하고 세례를 주었다. 장차 일꾼을 파송하고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필요하기에 현재 소수민족과 한족이 함께 예배를 드리며 Y족과 중국, 세계를 가슴에 품는 교회로 자라가고 있다.
경험을 통한 배움
사역초기에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가슴앓이를 했던 부분들이 참 많았다. 사역에 있어 기본인 언어 준비를 미처 하지 못해서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모국어로 하기에도 결코 쉽지는 않은 설교와 성경공부를 다른 언어로 시도하면서 그들에게 감동을 주고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니!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비록 서툰 언어이지만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서 변화와 회심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언어를 미리, 꾸준히 준비해 준다면 더욱 효과적이며 효율적인 사역을 할 수 있기에 사역지 언어 준비는 필수라는 것을 현장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초기에 부족하기 짝이 없는 언어로 설교를 할 때, 어눌하기만 하고 문법적으로 어디 하나 맞는 곳 없는 엉성한 메시지를 힘써 들어주었던 형제자매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 감사드린다.
또한 선교사가 평소에 주님과 나누는 교제, 말씀에 대한 이해 수준이 선교사의 사역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장에서 매일의 삶은 사람들을 만나고 교제하는 시간들로 채워진다. 묵상과 기도의 경건생활이 매일 반복되어 때로는 건성으로 하게 될 때도 있다. 하지만 무신론, 유물론 사상으로 우리와 또 다른 사상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내 자신이 그 사상 속에 희석되어져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말씀을 전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글과 설교를 모방해서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성령 안에서 말씀과 기도로 깨어있지 않으면 허공에 울리는 꽹과리와 같은 소리를 낼 때가 얼마나 허다한지 ……. 이러한 경험을 통해 하나 하나 배워 가고 있다.
중국교회의 미래
중국교회는 정부의 엄격한 통제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성장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중국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독교인 수를 가진 나라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최다 비기독교 인구를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많은 전문가들이 길게 내다본다고 해도 20년 내에 중국에서 선교사들이 떠날 때가 올 것이고, 중국선교가 필요하지 않은 때가 올 것이라고 예견한다. 진심으로 그러한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아직도 복음이 전해진 곳보다는 그렇지 못한 지역이 훨씬 더 많다. 전문가나 선교사들도 각자 본인이 사역하는 영역에 따라 중국선교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름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아직 사역 경험이 많지 않지만 소수민족을 섬기며, 또한 도시에서 개척교회를 하는 입장에서 볼 때, 이 땅은 아직도 더 많은 일꾼들이 필요하다. 주여, 더 많은 일꾼들을 보내주소서!
이성도 | 중국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