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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4.30  통권 113호  필자 : 편집부  |  조회 : 2563   프린트   이메일 
[중국의 관문도시]
타이위엔(太原), 푸저우(福州)

타이위엔(太原)
산시성(山西省)의 성도(省都)인 타이위엔은 2,4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옛 도시로 황허 문명 발원지이며 불교의 주요한 명승지이기도 하다. 펀허장(汾江) 상류의 동쪽과 서쪽이 타이항(太行)산맥, 뤼량(呂梁)산맥에 둘러싸인 분지에 위치한다.

 

행정구역 및 인구
샤오디엔(小店), 잉쩌(迎泽), 씽화링(杏花嶺), 지엔차오핑(尖草坪), 팡바이린(万柏林), 진웬(晋源)구(区)와 구쟈오(古交)시(市), 칭쉬(清徐), 양취(阳曲), 로우판(娄烦)현(县)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면적은 6,988㎢, 인구는 342만 8천5백 명(2005년)이다.

 

역사
산시성은 원래 북방 이민족인 선비족의 땅이었다가 점차 한족과 동화된 지역이다. 타이위엔에 사람이 정착하게 된 것은 2,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시의 발달은 펀허강 서쪽 연안에서부터 시작하였으며 춘추시대(春秋時代)의 진양(晉陽)에 해당한다. 진(秦)나라 때에는 현(縣)으로서 타이위엔군(太原郡)을 두었고 전?후한(前後漢) 때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 후 북위(北魏) 말에는 이주영(爾朱榮)이 이곳을 본거지로 독립하였고, 북제(北齊)가 업으로 도읍을 옮긴 뒤에는 배도(陪都:國都외에 설치한 도시)가 되었다. 당(唐)나라 때에는 타이위엔부(太原府)를 설치, 하동절도사(河東節度使)를 주재시켜 돌궐(突厥)의 침입에 대비하였으며, 오대(五代) 때에는 후당(後唐).후진(後晉).후한(後漢) 등이 이곳에서 일어났다. 

현재의 타이위엔시 중심부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982년 송(宋)나라의 태종(太宗)이 양취현(陽曲縣)을 이곳으로 옮겨 빙저우(幷州)라고 한 뒤 하동로전운사(河東路轉運使)의 치소(治所)를 둔 데서 비롯한다. 또한 명(明)나라 때는 다시 타이위엔부로 고쳤으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주위 12㎞의 성벽은 이 때 축조된 것이다. 마르코폴로는 13세기경의 타이위엔을 무역과 산업이 번창한 도시로 언급하였다.

진(晋)이 이곳에 도읍을 정한 이래 3천 년 간 북방에 대한 군사요충지로서 황폐와 재건을 무수히 반복해온 역사 깊은 도시이다. 예로부터 흉노족, 몽골족, 여진족 등의 침입이 잦았던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 한때는 ‘전쟁의 신’을 섬기는 사원이 27개나 있었다. 타이위엔은 명청(明淸)시대 이후 산시성의 성도가 되었고, 1927년 시제(市制)가 실시되었다. 19세기 후반 급속한 산업화로 변해가면서 1889-1910년 사이에 대학과 군사학원뿐만 아니라 허베이성으로 연결되는 열차와 전기, 전화도 생겼다. 오늘날의 타이위엔은 현대화의 모습으로 보이지만 다른 성도에 비하면 낙후된 편이다.


기후 및 교통
타이위엔은 온난 대륙성 기후로, 겨울은 춥지 않고 여름에도 덥지 않다. 연평균 강수량은 456㎜, 연평균 기온은 9.5℃이다.   타이위엔은 베이징에서 514㎞ 떨어져 있지만 고속도로가 있어 버스로 약 5시간 정도 소요된다.

 

산업 및 경제
타이위엔은 규모가 큰 도시이나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다. 경제적 낙후는 곧 생활수준이 낮은 것을 의미하고 지리적 여건의 열악함이 사람들의 사고의 부수성을 낳고 있다. 아직 마오쩌둥을 신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은데 물밀 듯이 밀려오는 자본의 물결 가운데 지금까지 받아온 교육과 생활의 이질감 속에서 이전의 사고방식들이 많이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산시지역은 윈난성 다음으로 중국에서 마약이 성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주민들이 경제적으로 적은 수입에 비해 소비지출은 많은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 지역이 석탄 공업단지이기 때문에 대기오염의 발생이 심각하여 많은 사람들이 호흡기 질환을 앓고 겨울에는 난방시설로 인해 대기가 맑은 날이 드물다.

 

종교 및 기독교 현황
이 땅의 기독교 역사는 초기의 강한 복음의 불길과 그 후 뒤따른 순교의 아픔으로 점철되어 왔다. 특히 1900년 초기 의화단 사건으로 성안에 갇힌 130여 명의 외국인 선교사들과 3천 명 이상의 성도들이 순교를 당하기도 했다. 1902년 영국 선교사에 의해 산시대학이 세워져 많은 학생들을 교육했다. 과거 이러한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땅에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현실이다. 시내에는 현재 1개의 삼자교회와 2개의 천주교 성당이 있다. 타이위엔 주변에는 50여 개 이상의 가정교회가 있는데 한 주 동안에 신자들의 작은 모임을 통해 기도, 성경공부, 예배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가정교회에 참석하는 신자들은 가능한 한 삼자교회 주일예배에도 참석하고 있다. 이 밖에 제칠 안식교와 같은 이단들이 합법성을 가지고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오래된 이슬람 사원도 있다. 또한 산시성 안에는 중국 불교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우타이산이 있다.

산시성 전체적으로 볼 때 남부지역은 중국에서 가장 복음의 전파력이 큰 허난성과 접해 있어 그 영향을 받아 가정교회 중심으로 복음이 급속히 전파되고 있으나 북쪽지역의 복음화율은 여전히 극히 낮은 상태이다.

 

기도제목
1. 선교의 피가 묻어 있는 타이위엔에서 선교에 헌신하는 이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하자.
2. 복음의 진리를 명확히 이해하고 가르칠 수 있는 지도자들이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하자.
3.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기쁨이 확산되어 가도록 기도하자.

 

푸저우(福州)
푸저우는 푸젠성(福建省)의 성도(省都)로 푸젠성 정치, 경제, 문화 중심지이며 교통의 요지이다. 또한 유명한 상업무역 도시로, 서기 1세기에 이미 동남아 국가와 무역 왕래를 시작하였으며, 19세기 이후에는 중국 동남연해의 대규모 수출입 화물 집산지로 발전하였다. 타이완(臺灣)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도시로서 1996년 국무원으로부터 양안 직항 노선(선박) 개통의 첫 번째 시범 항구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행정구역 및 인구
구로우(鼓樓), 타이장(臺江), 창산(倉山), 진안(晋安), 마미(馬尾)구(區)와 창러(長樂), 푸칭(福淸)시(市) 그리고 민허우(闽候), 리옌장(連江), 뤄위엔(羅源), 용타이(永泰), 핑탕(平潭), 민칭(闽淸)현(縣)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면적은 1.2만㎢, 인구는 666만 명(2006년)이며, 그 중 도시인구는 약 145만 명으로 유동인구가 200만 명에 이른다.
 
역사
909-944년의 짧은 기간 존속했던 독립왕국 민(闽)의 도읍지였으며, 이후 줄곧 푸젠성의 성도였다. 송(宋)대(960-1279)에는 해외무역의 대부분이 푸저우로 집중되었다. 또한 푸저우는 전국적으로 중요한 문화 중심지가 되었으며, 16-19세기에 번영을 누렸다. 1839-1942년 중국과 영국 사이에 일어난 아편전쟁의 결과에 따라 조약항(條約港)으로 개방된 후 푸저우의 번영은 절정에 달했다. 뒤이어 푸저우는 차 무역의 으뜸가는 항구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광저우(廣州)보다 차 생산지가 훨씬 가까이 있고 또 광저우로는 육로로 차를 수송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태평천국운동(1850-1964)으로 육로가 차단되자 광저우의 차 무역은 퇴조했다. 차 무역의 쇠퇴로 인해 푸저우의 수출무역도 반으로 줄었다. 목재, 종이, 식료품 등의 수출도 늘어나 점차 차와 경쟁하기 시작했다. 1867년 푸저우 선정국(船政國)이 세워지면서 이 항구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서양 기술을 시험하는 주요장소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조선소와 병기창이 프랑스의 지도하에 설립되었고, 해군학교인 선정학당(船政學堂)도 문을 열었다. 해군사관학교도 조선소 자리에 들어섰는데, 이곳은 서양의 언어와 과학기술을 배우는 중심지가 되었다. 이 학교에서는 영어, 프랑스어, 엔지니어링, 항해술을 가르쳤다. 학자 출신의 개혁가로 이름 높은 옌푸(嚴復:1854-1921)를 비롯해 서양식 교육을 받은 관료 세대가 이 학교에서 배출되었다. 제2차 아편전쟁(1856-1960)으로 알려진 무역 충돌에서 중국이 처참하게 패배하자, 국력을 강화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조선소가 세워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재능 있는 학생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유교교육을 좇았으며, 운영자금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뿐 아니라 중요성도 감소되었기 때문에 18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중국정부도 조선소에 흥미를 잃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푸저우는 기본적으로 상업 중심지와 항구로서의 기능을 유지했으나, 산업화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1940-1945년에는 일본에 점령되었다.

 

기후 및 교통
아열대 해양성 기후에 속하며 연평균 기온 19.6℃, 강우량은 1,342.5㎜로 연중 온화하고 강수량이 많은 편이다. 

최근 들어 푸저우는 연 관광객 출입이 650만 명에 달하는 창러(長樂)국제공항을 건설하였고, 푸저우와 샤먼(夏門) 간 고속도로 전 노선이 개통되었다. 또한 해외에서 푸저우에 이르는 철도의 전기화 공정이 실시 중에 있어 기본적으로 고속도로와 철도, 수로, 항공이 모두 정비되어 있다. 새로이 건설되거나 확충 건설되고 있는 30여 개의 주 간선도로와 백여 개가 넘는 간선도로가 있다. 푸저우를 관통하며 흐르는 민장(闽江)에는 10여 개의 대교가 있다.

 

산업 및 경제
비교적 풍부한 자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푸저우는 1949년 이래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했다. 민장이 중형 선박을 이용해 난핑(南平)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게 정비됨에 따라 교통 사정이 크게 개선되었다. 푸저우에서 푸젠성 내지와 중국의 주요철도망을 연결하는 철로가 개통되었으며, 항만시설 역시 개선되었다. 푸저우에는 원양항해용 선박으로는 더 이상 접근할 수 없게 되었으나 대신에 동중국해안, 관터우(琯頭)에 있는 또 다른 외항(外港)과 뤄싱타(罗星塔)의 정박소가 근대화되고 개선되었다. 수출 품목은 목재, 과일, 종이, 식료품 등이다. 공장들은 북서쪽 산지에 있는 구투안(古團) 수력발전소로부터 전력을 공급받는다. 화학공업의 중심지이며, 식품가공, 목재, 엔지니어링, 제지, 인쇄, 직물 공장도 있다. 1958년에 소규모 철강공장이 들어섰다. 수공예품은 여전히 중요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칠기와 임산물도 유명하다.

 

종교 및 기독교 현황
일반적으로 이 지역은 도교와 불교, 민간신앙이 결합된 전통 종교가 보편적이다. 절이나 도교사원에 정기적으로 가서 종교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다. 서구문화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 중에 기독교와 천주교에 호기심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마주 여신 등 이 지역의 우상을 숭배하는 타이완 신도들이 푸저우에 많은 돈을 투자하여 사원, 사당 등을 건축하였다.

 

기도제목
1. 하나님께서 푸저우시를 더욱 축복하셔서 복음의 통로 역할을 감당하는 관문도시가 되도록 기도하자.
2. 푸저우 젊은이들의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구체적인 믿음으로 발전하도록 기도하자.
3. 푸저우에 하나님을 위해 헌신된 일꾼들이 많이 일어나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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