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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4.25  통권 107호  필자 : 이재환  |  조회 : 2350   프린트   이메일 
예수님만이 우리의 안전모

필자는 중국선교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다. 중국 땅을 몇 차례 밟고 중국의 지하교회 지도자를 만나 몇 번 대화를 나누며 정보를 들었다는 것과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세미나를 인도한 경험이 전부이다. 한 번은 이웃나라로 피신하여 마음 놓고 심포를 풀어 보았다는 것 외에는 중국 선교에 큰 기여를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런 만남들 속에서 중국은 여전히 어렵고, 힘들고, 두렵고, 핍박이 있고, 비자를 받기 힘들고, 추방당하기 쉽고, 안전하지 않은 곳이라는 공통된 표현을 듣게된다. 어렵고 힘들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 말은 아니다. 이 말은 아담이 창조되고 범죄를 한 이래 계속해서 나오는 말이다. 선교가 쉬운 나라는 한 곳도 없다. 쉬운 때도 없었다. 쉽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때는 주님오실 때까지 오지 않을 것이다.

 

구원의 역사는 순교로부터
'안전' 이란 어떻게 생각하면 복음 전하는 자들에게는 우상이다. 유혹이다. 성경을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제대로 죽은 사람이 거의 없다. 12명의 제자 중에 유다가 자살한 것 외에는 사도 요한만이 만수를 하고 죽었다고 한다. 프랭크 바이올라가 쓴 '알려지지 않은 신약 성경교회' 에 보면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었고 그의 형제 안드레는 그리스의 파트라스에서 X형 십자가에서 형을 당했다. 이때 누가도 안드레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요한 마가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밧줄에 묶여 끌려 다니다가 죽었다. 바돌로메는 아르메니아 알바노 볼리에서 매를 맞고 십자가형을 당하고, 바울은 로마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데살로니가의 아리스다고, 고린도의 에라스도, 에베소의 드로비모, 예루살렘의 바사바, 다메섹의 아나니아 및 여러 크리스찬들이 네로의 통치 기간 중에 순교 하였다. 터툴리안은 순교자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 되었다고 말했듯이,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 장차 교회의 큰 부흥과 대 환난의 날이 올 것이다. 계시록 6장에 보면 순교자의 숫자를 채운다는 말씀이 암시되고 있다. 여전히 교회는 순교의 피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농담으로 성도님들에게 묻곤 한다. "교통사고로 죽을 것인가 아니면 병으로 죽을 것인가?"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는 분명히 순교를 택할 것이다. 사실 순교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순교를 각오할만한 믿음이 없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성경에서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포효하며 먹을 것을 찾는다고 했다. 선교사들이 가장 먼저 사자의 먹이로 지목되어 있을 것이다. 고린도전서 4장 9절 이하를 보면 바울은 단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었다. 날마다 위험, 죽음 그리고 핍박이 옷입듯이 따랐다.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그리고 강도의 위험이 떠날 날이 없었다. 실제로 그때가 지금보다 100배는 더 위험한 시절이었다. 디모데 후서 4장 17절에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라고 고백했다. 그는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보이는 환경에서 허락하는 안전 보장에 매달리는 것은 참 믿음이 아니다. 바로 그리스도가 함께하심을 믿는 주님 안에 있음으로 얻는 안전에 소망을 두어야 한다. 

과테말라의 알모롱가에서 일어나는 부흥에 대한 내용을 담은 'Transformation' 이라는 기독교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리스도를 위해 죽기를 각오한 사람을 통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스토리의 주인공인 라키스체 목사는 그를 죽이려는 자가 권총을 그의 입 안에 넣고 6번의 방아쇠를 당겨도 죽지 않는 경험을 했다. 그 목사님은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을 행하며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일으킴으로 끼체 인디안의 93%를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로 회복시켰다. 선교는 하나님의 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초자연적인 역사다. 인간의 의지로는 단 한사람도 주님을 믿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현실이다. 지금 많은 선교현장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OIC(이슬람 회의기구) 57개국은 복음 전하기가 가장 어려운 이슬람 연합체이다. 이들에게도 여전히 기적은 일어나고 있다. 많은 선교사들이 생명의 위협을 날마다 느끼지만 하나님의 사역은 계속되고 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마태복음 28장 19절 이하의 말씀 중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는 언약은 주님 오시는 날까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가장 안전한 기도의 안전모
중국의 선생님들이여! 그리고 중보하는 무릎 선교사님들이여! 예수님을 우리의 안전모로 삼고 우리의 머리에 올려놓자. 현장에는 가지 못하더라도 골방에서 중국을 품고 기도하는 우리들이 우리의 기도에 의해 선교가 이루어지도록 현장 선교사님들에게 우리의 '기도 안전모자' 를 씌워 주자. 이런 안전은 혼자만의 기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미국의 플로리다 주에서 지난 2월 29일부터 며칠 동안 ‘Call to All’ 이라는 선교 전략모임이 있었다. 이곳에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단체와 중보기도로 선교사역을 돕는 선교단체들이 마지막 때의 미완성 과업을 이루기 위해 함께 모인 것이다. 그리고 이 모임을 통해 현장 선교사나 중보기도 사역자가 함께 사역해야 주님이 오신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 협력할 것을 다짐하는 전략기구를 만들었다.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사실상 이 두 가지 사역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함께 일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자동차와 연료와도 같다. 자동차는 연료 없이 갈 수 없다. 좋은 연료는 있지만 자동차가 없으면 이 연료는 전혀 쓸모가 없다. 함께 가야 하나님의 일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선교중국을 이루는 연합과 헌신
중국선교를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거듭 강조하지만 현장사역팀과 중보기도팀의 연합하는 헌신이 필요하다. 그리고 중국 영혼들을을 선교의 대상자로 생각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들을 선교하는 현지 사역자로 세워야 한다. 중국이 이미 선교사를 다른 나라로 파송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중국교회가 경제적인 면으로나 선교의 훈련차원에서 아직 미숙하지만 여전히 선교하는 국가로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즉 이제는 그들 스스로 영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상태에 온 것으로 인정하고 그들이 직접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중국은 곧 선교 대국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선교사를 파송하기에는 연약한 부분이 많다. 한국은 바로 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중국을 품은 선교사들은 안전모 대신 주님을 머리에 쓰고 약진해야한다. 주님이 절대적으로 안전모가 되어주실 것이며 안전모가 벗겨진다고해도 영광스러운 영광의 면류관과 생명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다. 선교사뿐만 아니라 중보기도 선교사들에게도 동일한 영광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다. 둘이 함께 갈 때에 안전하지 않은 나라 안에 우리의 비전이 안전하게 세워질 것을 확신한다.







 

이재환 선교사|Come Mission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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