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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3  통권 268호  필자 : 김영철  |  조회 : 1082   프린트   이메일 
[중국 영화]
《구-구 043(一家子兒咕咕叫, Coo-Coo 043)》_가장의 위기와 가정의 회복

이 영화는 대만 잔징린(詹京霖, Ching-Lin CHAN, 1980∼ ) 감독이 《천류지도(川流之島, The Island of River Flow)》 이후 5년 만에 연출한 두 번째 장편 영화이다. 2022년 제59회 대만 영화제 진마장(金馬獎)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신인 배우상을 받았다. 잔징린은 대만의 문화(文化)대학 신문방송학과 학사와 세신(世新)대학 영화예술창작 석사를 졸업했다. 잔징린은 혼자서 이 영화의 편집, 연출, 각색을 도맡았다. 

영화는 비둘기 경주(賽鴿, Pigeon racing)를 다룬다. 린궈친(林國欽, 遊安順 분)은 경주용 비둘기를 훈련하는 조련사이다. 그는 10년 전에는 비둘기경주대회에서 우승해서 큰돈을 벌었지만, 7년 전 비둘기 043이 돌아오지 않아 큰돈을 잃었다. 그때 아들도 학교로 가는 길에 실종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비둘기 043이 린궈친의 집으로 돌아왔다. 

영화는 7년 만에 비둘기 043이 옥상 비둘기 사육장으로 돌아온 것을 발견한 린궈친이 차로 비둘기 043을 멀리 갖다 버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비둘기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딸 루루(露露 [林夢露], 李夢苡樺 분)가 방에서 비둘기를 키우게 된다. 

아친스(阿欽師)로 불리는 비둘기 조련사인 린궈친은 613 번호의 비둘기로 우승한 경험이 있다. 그 뒤 043 번호의 비둘기를 날려 우승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아 경기에서 참패하고 돈도 많이 잃었다. 설상가상 2011년, 그해 열두 살의 아들 린유스(林佑實)가 학교 가는 길에 실종되자 전신주 등에 사람 찾는 전단지를 붙이러 다녔다. 

아들이 두 살 때 린궈친은 천웨민(陳月敏 [阿敏], 楊麗音 분)과 재혼했다. 천웨민은 딸 루루를 낳는다. 그리고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 생활을 하는 시아버지(彭海 분)를 돌보고, 바나나 농장에서도 일하며, 장례식장에서 망자의 영혼을 인도하는 견망가(牽亡歌)를 부르며 춤을 추어 살림에 보탠다.

고아인 샤오후(小虎, 胡智強 분)는 또래 부랑자들과 함께 폭발음과 그물로 경주 비둘기를 잡아서 비둘기 주인을 협박해 돈을 받아내며 살았다. 그러다 그는 사람들의 추적을 피해 도망치다가 몰매를 맞았다. 루루는 샤오후를 집으로 데려와 간호했다.

샤오후는 린궈친에게서 비둘기 길들이는 법을 배웠다. 린궈친은 다시 비둘기 경주를 시작하려고 야외 공터에 비둘기 사육장을 새로 설치하려고 하였다. 돈과 공터를 빌려준 친구는 이미 부자들이 시장을 독식해서 돈을 벌지 못할 것이라고 그를 말렸다.

바나나 농장에서 일하면서 바나나 하나 사 먹기도 빠듯한 살림에 허덕이는 천웨민은 비둘기 경주에 몰두하는 남편 대신 홀로 가계를 책임진다. 남편에게 더 이상 도박에 손을 대지 말라고 부탁한다. 우리 집이 비둘기들에 먹혀서 무너지고 있다고 말하자, 린궈친은 화가 나서 아내에게 찬물 한 동이를 끼얹는다.



사람들이 비둘기의 식욕을 억제해서 죽음의 시합에 나간다고 말하는 루루는 비둘기가 고압전선에 부딪혀 죽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땅에 묻어주었다. 

린궈친은 비둘기 사육장을 만들며 샤오후에게 도우라고 한다. 하지만 샤오후는 비둘기를 훈련해서 모두 죽으러 보내는데 뭐 하러 사육장을 만드냐고 투덜거리자, 린궈친은 화가 나서 손찌검하고 샤오후는 자신을 죽은 아들처럼 대하지 말라며 대들었다. 이는 딸이 아버지에게 핀잔을 듣고 자기에게 오빠처럼 공부하라고 하지 말라며 말대꾸하는 장면과 겹친다. 그는 고등학생인 딸이 머리에 염색하고, 담배를 입에 물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 불만이었다. 도박에 집착하는 린궈친은 가정을 해체하고 가장으로서 권위마저 추락시켰다.

루루는 오빠가 실종된 것이 아니라 집에서 도망친 것으로 생각했고, 노쇠하여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에게 “죽을 때까지 이곳에 갇혀 있는 것이 걱정되지 않으세요?” 물었다. 또 루루는 집은 귀신이 사는 곳이라고 불만을 터뜨리며 떠날 결심을 한다. 엄마는 딸에게 숙모에게 가서 기술을 배우라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딸을 떠나보냈다.

린궈친은 경주에서 돌아오지 않아 가산을 탕진하게 하여 원망했던 비둘기 043이 있는 딸의 방에 들어가 그에게 모이와 약을 주며 보살폈다. 루루와 천웨민, 샤오후는 그 모습을 창문으로 들여다보았다. 린궈친은 오래 기다렸던 아들이 돌아온 것처럼 비둘기를 품에 따뜻하게 안았다.

대만 ‘민법’에 실종자가 만 7년이 넘어도 돌아오지 않으면 가족이 사망신고 신청을 할 수 있다. 천웨민은 사망신고를 하고 사망보험금을 타서 어려운 살림에 보태려고 했다. 혼자 장례식장과 바나나 농장에서 돈을 벌어도 시아버지 약값, 비둘기 사룟값, 딸 등록금 내기도 빠듯했다. 남편은 사망신고는 아들에게 사형선고와 같다고 말하며, 아내가 계모라서 린유스를 친아들로 여기지 않고 외간 남자와 외도했다고 의심하며 욕하고 폭력을 행사했다. 



린궈친은 아버지에게 “나는 어떻게 이렇게 도박에서 계속 질 수가 있을까요? 모두 다 없어지고 시간이 오래되면 언젠가 내가 이기는 날에 행운의 수레바퀴가 돌아오겠죠?”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7년 만에 돌아온 비둘기 043을 데리고 도박장으로 갔다. 비둘기는 태풍의 영향으로 돌아오지 못하였다. 

린궈친은 아내 천웨민에게 중국 대륙으로 가서 비둘기를 훈련해 보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 말을 듣고 좌절해서 집을 떠난다.

린궈친은 이혼한 아내와 다시 만났다. 이미 재혼한 아내는 아들이 11, 12살 때 자신을 찾아와 아버지가 큰돈을 벌어서 다음 달에 이즈(伊豆)에 벚꽃을 보러 간다고 기뻐했다고 전했다. 이즈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일본의 세계 지질 공원이다. 린궈친은 딸과 아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 딸과 아들은 여전히 그곳을 꿈꾸고 동경했다. 

샤오후는 루루를 찾기 위해서 도시의 조폭 친구와 함께 야간업소 클럽에 간다. 무대 위에서 야한 춤을 추는 루루를 끌어내리려고 하다가 제지당했다. 샤오후는 조폭 친구들과 복수를 하기 위해 클럽의 조폭들을 습격하였다. 샤오후는 칼에 맞고 쓰러진다.



린궈친은 샤오후와 세웠던 야외 비둘기 사육장이 태풍에 쓰러진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 천웨민과 샤오후를 찾는다. 아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린궈친은 침대에 누워 꿈결인 듯 환상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샤오후 세 사람이 옥상 비둘기 집에 있다가 숲속 개울가로 가서 여유롭게 함께 있는 모습을 본다.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고, 아들은 물수제비를 만들고, 샤오후는 빨래한다. 린궈친 주변 인물들은 사라지거나 죽었다.

장진린 감독은 1980년대에 출생했다. 그는 대만 주식시장이 폭등과 폭락을 반복하며 돈 때문에 가정들이 해체되는 것을 목격하였다. 또한 당시 대만인은 중국 대륙의 시장을 노크하였다. 영화에서 중국 대륙 상인은 린궈친에게 대륙에서 비둘기 조련을 제안하였다.

영화에는 몸값이 신 타이완 달러(新台幣, NTD) 수천만 위안에 달하는 벨기에 대회 우승 비둘기도 등장한다. 비둘기 경주는 사료, 비둘기 혈통, 비둘기 포획 협박, 비둘기 국제 거래 등 여러 문제와 맞닿아 있다. 잔징린 감독은 비둘기 경주도 세상의 금융권, 학술계, 영화계처럼 계급의 맛이 농후하다고 설명한다. 큰 사업가는 투자를 많이 해서 비둘기 경주에서 30, 50, 100번이든 모두 우승해서 우승한 돈으로 다시 투자한다. 마치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처럼 돈 많은 자가 큰 영화공장을 짓는 것과 같다.

대만의 비둘기 조련사는 새벽 4시에 기상해서 저녁 6, 7시까지 고된 일과를 보낸다. 비둘기 경주는 대만의 복권 류허차이(六合彩, Mark Six)처럼 대만의 독특한 문화현상 중 하나이다. 류허차이는 홍콩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인 복권의 일종이기도 하다. 린궈친의 비둘기 043은 대만어 발음으로 당신은 누구냐는 뜻이다. 비둘기는 돌아왔지만,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은 그 상처 입은 비둘기를 다시 경주에 내보냈다. 린궈친의 아들은 돌아와도 다시 떠났을 것이다. 딸 루루처럼…….



중국 명대 초기부터 경주용 비둘기를 길렀다는 기록이 있다. 비둘기는 온유한 동물로 평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말이나 닭처럼 경주나 도박의 도구로도 이용되었다. 대만에서 일 년 동안 비둘기 경주에 거는 도박 금액이 신 타이완 달러 200억 위안에 달하고 시합에 나가는 비둘기 수는 6만여 마리나 되고, 200여 킬로미터를 비행한다고 한다. 경주에 참여하는 비둘기는 모두 다리에 번호표를 부착하는데, 도박사가 번호를 보고 도박금을 건다. 새장에 가둬 둔 비둘기들을 해상의 배에서 일시에 날리면서 대회가 시작되는데 무리를 지어 나는 비둘기들은 한동안 방향을 잡지 못한다. 상당수는 죽거나 돌아오지 못한다. 영화의 오프닝 크레디트에 “비둘기 경주는 비둘기의 귀소본능을 이용해서 누가 먼저 돌아오느냐에 도박을 거는 게임이다. 길이 멀고 험준하여 귀가하는 것이 절대 쉽지 않다”라는 자막을 띄웠다.

인간은 탐욕으로 생명체를 도박이나 오락으로 유린하고 자신의 가정마저 파괴하는 것에 무감각하다. 영화는 그릇된 가장에 대해 통렬한 비판과 자성을 촉구한다. 가장의 추락은 권위의 추락이며, 가정의 해체로 이어진다. 가장은 일시의 탐욕에 젖어서 자녀와 작은 약속을 저버리고, 이에 따라 걷잡을 수 없는 위기가 닥치고 귀한 생명마저 잃게 하는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와 가정을 위해서 무던히 애쓰는 수많은 가장에게 위로와 격려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사진 출처 | (위) 바이두>사진 캡처 (아래 모두) IMDb>사진 캡처[https://www.imdb.com/title/tt22335454/?ref_=tt_mv_close] (2024.12.3. 접속함)
▩ 김영철 | 한양대학교 중국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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