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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7.3  통권 263호  필자 : 왕쩌산/린쳰헝  |  조회 : 1295   프린트   이메일 
[오늘의 중국교회]
홍콩, 변화의 물결 속에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한 복음
새로운 길 위 홍콩교회 성도들의 어려움, ‘내 가족’의 핍박


인터뷰
: 왕쩌산(
王澤山)
정리: 린쳰헝(林倩恆)


【시대논단 통신】 지난 몇 년간 홍콩은 사회운동, 코로나19 팬데믹, 이민 물결 등으로 충격을 받았다. 국제 사회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격변의 시대 속에서 성도들은 성경에서 길을 찾기 원하면서도 한편 복음으로 위기를 해결하지 못할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홍콩 복음주의신학원(Evangel Seminary, 播道神學院) 성서학과 부교수 천웨이자(陳偉迦) 박사는, 지난 4월 19일 세계성서공회(The Worldwide Bible Society, 環球聖經公會)의 한 강좌에서 누가가 쓴 사도행전을 통해 복음이 널리 전파될수록 그리스도인들은 더 많은 박해를 받았지만, 하나님 말씀의 능력은 큰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오히려 성도들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복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성도들이 복음주의 문화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을 때 가장 큰 핍박은 때때로 ‘자기 가족’이라며, 특히 기성세대 성도들에게 “직접 관여하지 않더라도 간섭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세계성서공회의 “성경적 관점으로 본 대변혁 시대의 전환에 대한 대처 방법: 사도행전적 재고(역사 편)” 강좌에서 천웨이자 교수는 누가의 해석학적 틀(Hermeneutical Framework)은 구약성경에 기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도행전 1장 6절에서 제자들이 언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이사야 49장 6절과 대응된다며, 이는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하는 데 사용된 중요한 틀이라고 했다. 

여기서 회복을 위한 두 단계를 언급하였는데 첫 번째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돌아오는 것과 두 번째는 이방의 빛으로 삼아 땅 끝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행전 1장부터 5장까지는 예루살렘에서 3천 명과 5천 명이 주를 믿게 되었고, 6~12장에서는 사마리아인과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주를 믿게 되었으며, 13~28장은 이방인들이 주를 믿는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이는 이사야서의 기록과 딱 들어맞는다.


부흥 이후 핍박받는 문제에 집중하는 사도행전

그러나 천웨이자 교수는 사도행전 1~5장은 대부분 3000~5000명의 사람이 주를 믿게 된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천하 만민이 감동을 받아 방언을 말하고, 날마다 떡을 떼고,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하는 등 아름다운 광경에 대한 묘사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했다. 오히려 누가가 서술한 내용의 대부분은 제자들이 체포되고, 매를 맞고, 옥에 갇히고,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처음 다섯 장에서는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는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은 지금까지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심해졌다. 이사야서 40~55장을 살펴보면 실제로 많은 핍박과 공격과 상처받은 부분들을 또한 발견할 수 있다.

또 그는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의 부흥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여러 지파의 부흥에 그치지 않고 부흥이 일어난 뒤 포위되고 공격받고, 핍박을 받은 문제에 대해 다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어려움과 대변혁의 시대 속에서도 사도행전은 세대의 변화에도 복음은 영향을 받았음을 증명한다 “복음의 본질과 능력은 세상의 많은 핍박과 혼란한 까닭으로 인해 ‘훼손되지 않았습니다.’ (…) 복음, 하나님 말씀의 능력은 결코 변함이 없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과 4장은 성도들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고, 오로지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하고,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천웨이자 교수는 오늘날 성도들에게 이와 같은 모델의 신앙을 계승하라고 권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뒤 복음이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냈다고 강조했다.

그는 “새로운 시대, 큰 변화 속에서 복음은 제자의 시대에 새롭게 해석되어야 하는데 마치 사도행전처럼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야 하고, 사람들이 사모하고, 갈망하며, 기꺼이 낮은 곳에 머물려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큰 변화의 때는 복음 문화의 환경이 변하는 때”이라고 덧붙였다. 


큰 변화 속 복음문화도 변해야 할 때

사도행전의 또 다른 종교적 돌파와 관련된 서술은 사도행전 3장 6절에서 베드로가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켜 걷게 하는 장면이다. 천웨이자 교수는 과거 하나님의 기적은 성전 근처에서 일어났지만 이 구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으로 하나님의 기적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이는 당시의 성전 문화를 바꾸었다고 말했다.

천웨이자 교수는 홍콩교회의 상황을 언급하며 교회가 ‘정상을 회복하는 것’, 즉 교회가 평소와 같은 방식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했으며, 교회가 과거에 했던 일을 되풀이하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이 시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또 그는 지난 몇 년간 홍콩교회의 많은 사람이 다양한 출구를 찾으려고 했다고 말하는 한편 그들을 격려하며, 연장자 세대 성도들에게 “직접 관여하지 않더라도 간섭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다음세대를 응원하고, 이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이어 그는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며 스데반이 구약의 역사만 거듭 이야기했을 뿐인데 왜 죽임을 당했는지 질문을 던졌다. 그는 스데반이 말하려던 것은 하나님은 지금까지 예루살렘에만 계시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구약에서 일어난 모든 위대한 일, 즉 하나님의 일은 결코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그는 예루살렘만이 하나님이 구원하시려는 유일한 장소가 아닐 수도 있음을 분명히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파되는 것을 매우 거부했으며, 유대 문헌들도 유대인의 회복만을 다루고 있다. 스데반은 유대인의 일관된 신앙 해석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스데반 죽음의 교훈, 발전하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해서는 안 되는 다음세대

“대변혁의 시대 속에서 변해야 할 것은 복음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다. 사도행전 7장은 바로 이 점을 정확히 설명하는데 복음이 꼭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거나, 더 이상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스데반은 우리에게 발전없이 제자리걸음을 해서는 안 되며, 또 낡은 것을 안고 놓지 않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고 천웨이자 교수는 강조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따라가야 성취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는 또 성도들이 홍콩의 이 큰 변화의 시대 속에서 주의 말씀을 따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1고 덧붙였다.

또 시대의 변화가 복음의 본질을 더욱 견고하게 했으며, 여전히 변화하는 이 시대 속에서 흥왕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럼에도 복음문화의 개혁에 직면해 자신의 가족이 이를 따라 갈 수 없다면, 주의 말씀을(주님을) 핍박하는 집단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도 바울의 경험이 최적의 증거이며, 바울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은 오직 ‘자기 백성(유대인)’뿐이라고 지적했다. 천웨이자는 오늘날 성도들이 교회 문화를 바꾸고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길을 찾으려 할 때 가장 큰 저항은 성도들을 핍박하는 사람들 또는 이런 대변혁 시대의 변화가 아니라 자기 가족이라고 했다.

자기 가족의 핍박에 대해 오늘의 홍콩교회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천웨이자는 “젊은 세대가 여전히 교회에 대한 소망을 갖고, 교회 안에서 계속 걸어갈 수 있을지 우려가 된다”며 성도들이 함께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이어서 복음의 바통을 넘겨주고, 이어받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데 이는 오늘날 홍콩교회가 힘쓰며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했다. 그는 또한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은 점점 더 빛나고,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 출처 | <시대논단(時代論壇訊)>(2024/5/8)
▩ 번역 | 장요한·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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