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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  통권 245호  필자 : 강진구  |  조회 : 1601   프린트   이메일 
[중국 사회와 문화 이야기]
시진핑에게 충성하는 중국의 연예인

중국 스타의 조건
지금의 중국 영화계에는 1990년대 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넘나들었던 천카이거(陳凱歌) 감독의 <패왕별희>(覇王別姬, 1993)나 장이머우(張藝謨) 감독의 <귀주이야기>(秋菊打官司), 1992) 같은 명작들이 나오지 않는다. 하다못해 1980년대를 풍미하던 홍콩의 느와르 영화들도 자취를 감췄다. 홍콩의 재능있는 영화인들은 짐을 싸서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주했고, 중국 대륙의 대중예술가들은 중국의 경제발전에 따른 훈풍을 기대했지만, 창작의 자유보다 중요한 것은 당에 충성하는 것이란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마치 예술세계에서 창작은 자유 없이는 불가능함을 오늘날의 중국이 증명하고 있는 듯하다. 엄격한 검열이 시행되고 있고, 당과 시진핑의 눈 밖에라도 나면 연예계 밖으로 쫓겨나기 일쑤인 세상에서 예술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충성 경쟁밖에는 없지 않은가!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3연임을 확정한 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가 지난해 10월 22일 막을 내리자마자 월드 스타 장쯔이(章子怡)는 매일 중국 인구의 절반이 본다는 국영 CCTV에 나와 “향후 일을 할 때 시 주석의 지시를 따르고 중국의 문화적 태도를 준수할 것이며, 이 시대의 열정을 노래하고 중국의 이야기를 더 나은 방식으로 들려주겠다”고 다짐했다. 이 같은 충성 발언이 좀 약했다고 느꼈는지 장쯔이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문화예술 종사자로서 성실하게 총서기(시진핑)의 요구를 연구하고 이해했다”면서 시 주석이 제시한 사회주의 문화강국 건설에 적극 기여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평소에도 시진핑에 대한 충성 발언을 잘하는 장쯔이를 보아 온 사람들에게는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지만, 그녀가 여러 차례 스캔들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자신의 두 자녀를 미국에서 낳는 바람에 원정 출산의 시비가 인적도 있었다는 점은 다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진핑에게 충성을 맹세한 배우들은 양쯔이뿐만이 아니다. 2020년 실사영화로 <뮬란>(Mulan, 2020)이 개봉되었을 당시 주인공을 맡았던 류이페이(유역비, 刘亦菲)는 홍콩의 민주시위대를 강제진압하는 홍콩 경찰을 지지하는 발언으로 그가 당에 충성하는 모습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류이페이는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을 반대하는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자 SNS에 “나는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라는 글과 더불어 “홍콩은 부끄러운 줄 알라”라고 적힌 사진을 게재하기도 했다.

민주주의의 적인 된 청룽
중국공산당에 대한 충성을 얘기하자면 청룽(성룡·成龍)이 빠질 수 없다. 한국인의 청룽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취권>(醉拳, 1978)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한국에서 그는 할리우드의 그 어떤 스타들보다도 인기가 높았다. 특히 설이나 추석 특집으로 극장에 걸리는 영화들 가운데 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빠지는 법이 없어서 청룽의 영화는 곧 명절용 가족영화를 뜻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일 년에 영화 한 편을 보는 집안 어른도 명절이면 가족들 틈에 껴서 보는 유일한 영화가 성룡 영화였을까.

홍콩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청룽은 할리우드에 진출하며 월드 스타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탕지리(唐季礼) 감독의 <홍번구>(紅番區, Rumble in the Bronx, 1995)가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면서 그의 코믹하면서도 당찬 무술이 세계적으로도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뉴욕을 배경으로 악당들과 싸우는 그의 모습은 우리에게는 월드 스타답게 글로벌 사회의 의식을 갖춘 배우일 것으로 당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을 지지하는 발언이 보도되면서 그를 좋아하는 한국의 팬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세계적인 행보와 선한 이미지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2009년 홍콩의 민주화운동 초기에 그는 한 콘퍼런스에서 “자유를 갖는 것이 좋은 건지, 아닌 건지 잘 모르겠다”며 “갈수록 우리 중국인들은 통제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는 발언으로 인해 홍콩의 민주적 언론에 비난을 받은 일이 있었다. 중국 정부의 홍콩에 대한 비민주적인 정책에 시위하는 홍콩시민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청룽의 친중국을 넘어서 중국공산당에 충성하는 자세는 그 이후에 보다 분명해졌다. 2013년에는 중국 정부를 지지하는 태도의 결과로 중국 정부의 핵심부인 공산당 정치자문기구 ‘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전국정협)의 대표로도 선출됐다. 공산당에에서 역할이 부여된 이상 그의 시진핑과 중국 정부에 대한 충성심도 강렬해질 수밖에 없었다. 청룽은 2020년 중국이 홍콩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도입한 홍콩 국가보안법(홍콩 보안법)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앞장서 냈다. 청룽이 싸인한 집단 성명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들어 있었다.

우린 홍콩 국가보안법의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홍콩 국가보안법에 관한 전국인민대표대회의 결정을 지지합니다.

홍콩 보안법은 2014년 우산혁명과 같은 민주화 시위를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으로 홍콩의 중국에서 독립이나 분리를 주장하거나, 외국언론에 협력하는 것조차도 외국과의 공모행위로 간주하여 최고 무기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반민주주의 법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연예계 내부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청룽의 이와 같은 행보가 2015년에 있었던 아들 팡쭈밍(房祖名)의 대마초 흡입 사건과 관계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중국에서 마약류에 대한 단속과 처벌은 매우 엄한 편이다. 아편전쟁의 쓰디 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마약류가 한 인간뿐만 아니라 공산당의 집권 체제마저도 뒤흔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마약사범을 공개처형 시키기도 한다. 거기다 청룽은 2009년도에 ‘중국 마약 퇴치 홍보대사’로 위촉돼 마약 금지를 위해 앞장서 왔기 때문에 이번 사건에 더욱 충격과 더불어 중국 정부의 신임을 받을 만한 모종의 조치를 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아들 팡주밍은 대마 흡입 외에도 100g 이상의 대마 소지, 동료 배우들에게 여러 차례 대마 흡입 장소 제공 등의 가볍지 않은 혐의로 구속되었지만 1심에서 내린 징역 6개월에 벌금 2,000위안(약 35만 원)의 판결을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룽이 팡주밍의 변호사를 만나 아들의 형량 단축을 절대 시도하지 말라고 부탁한 것으로 전해진다.

청룽이 아들 때문에 중국공산당 정부에 볼모가 되었든, 아니면 중국 내 최고의 개런티를 받는 배우로서의 아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랬는지는 본인만이 알겠지만 중국공산당 정부와 청룽 사이가 서로에게 보탬이 되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중국 연예인의 생존법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10월에 있었던 제20차 공산당 당대회에서 중국이 사회주의 가치에 맞춰 혁명 문화를 촉진하고 양질의 전통문화를 내세워 문화강국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존경하고 모델로 삼은 마오쩌둥의 사상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겠다는 것일까? 마어쩌둥은 ‘문화혁명’을 통해 과거 중국의 전통문화를 봉건주의적이라 판단하고 중국 역사에 두 번째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일삼은 데다 심지어 홍위병들을 동원하여 공자의 묘까지도 파헤치지 않았던가!

그러나 형식만 다르지 시진핑의 문화정책은 철저히 당의 이념을 중심으로 한 통제정책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마오쩌둥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당과 이념 그리고 하나 더 있다면 중국몽(中國夢)과 같은 중국을 세계의 중심이라고 선전하고픈 욕망이 더해졌을 뿐이다. 시주석은 당대회에서 다음과 같은 말도 덧붙였다. “인민이 중심이 되는 문화를 만들고 인민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을 생산할 것을 격려한다. 그리고 도덕적·예술적으로 둘 다 재능이 있는 작가와 예술가를 대거 양성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축구굴기(蹴球崛起)를 선언한 중국이지만 지금의 중국 축구는 세계 수준과는 거리가 먼 현실을 시진핑은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술은 온전한 자유에서 시작됨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상상한 것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없다면 예술은 오직 당을 위한 선동의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사진 설명 및 출처 |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사흘 앞둔 2021년 6월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공산당 고위 관료들이 당에 충성을 맹세하는 모습이 대형 스크린에 보인다. 2021년 7월 28일 연예인 팬덤 규제 방안을 발표한 중국 당국은 2021년 9월 2일에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의 방송 활동과 고액 출연료를 금지했다. [베이징=AP 뉴시스·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강진구 | 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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