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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  통권 244호  필자 : 덩(邓)  |  조회 : 1715   프린트   이메일 
[특집] - 메콩강 지역의 선교중국(Ⅲ)
태국 본토인선교를 위한 타문화 선교사역

 

 나는 어려서부터 주님을 믿었고, 스무 살 때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런 나를 어머니는 교회로 보내 신학을 공부하게 했다. 어머니가 나를 더 이상 통제할 수가 없어서 교회에 나를 맡기셨다. 그래서 나는 교회에서 성경을 읽고, 성경을 공부하게 되었다. 2006년에 G신학원에서 설립한 톈진(天津)에 있는 신학교에 가서 공부를 했다. 이후에 이곳에서 하마터면 순교를 할 뻔했는데 하나님이 구해주신 것을 감사드린다.

2007년에 칭다오(青岛)로 갔고 2년 뒤에 S교회에서 설립한 신학교를 졸업했다. 그 뒤에 이 학교는 우리를 마지막 반으로 문을 닫았다. 모두 전국 각지로 흩어지게 되었고, 나는 쿤밍(昆明)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2010년 태국에서 타문화선교에 관한 공부를 소개받고 치앙마이(清迈) CMTC에서 3개월 과정의 단기선교 훈련을 받았다. 이를 통해 타문화선교에 대해 처음으로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신학교에는 선교학과가 없었고, 학교를 졸업한 서부의 동역자들을 위한 기도만 유일했다. 3개월 간의 타문화 훈련은 타문화선교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였고 처음으로 미국과 한국의 선교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때 훈련을 받으면서 선교의 씨앗을 뿌렸지만 졸업 뒤에는 목회를 위해 귀국했다.

2013년 선교의 부름을 받고 여자 친구와 함께 다시 태국 치앙마이로 왔는데 이 일 년 동안 아주 많은 선교사들을 알게 되었고, 수많은 이론을 학습하는 과정을 거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 처음에는 선교가 아주 간단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공부를 마친 뒤에는 선교를 한다는 것이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고 느꼈다. 그래서 심지어 선교사로 나가려고 하지 않자 원장님은 나를 제적 처리를 하려고 했다. 정말 나는 말을 잘 안 듣는 아이였다. 이전에 칭다오에 있는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이런 일로 인해 제적당할 뻔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순조롭게 졸업을 했다. 결혼을 한 뒤 태국 외에는 다른 나라를 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태국에 거주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복음화율이 낮다고 알려진 태국의 동북부로 가려고 했으나, 비자 문제로 인해 2015년부터 치앙마이에 거주하면서 선교사역을 시작했다. 우리의 섬김의 대상은 태국 본토인이며, 타문화선교를 하고 있고, 목표는 태국 본토인을 위한 교회를 세우고, 본토의 동역자를 양육하는 것이다.

▶태국어 공부부터 시작

우리의 사역은 모든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타문화선교를 하는 데 그 첫걸음은 바로 언어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는 한 언어학교에 등록을 했고 매일 4시간씩 태국어를 배웠다. 태국어를 공부하면서 그 많던 머리카락이 나중에는 거의 다 빠져 버렸다. 태국어를 배우기 위해서 아주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거의 8개월을 공부하는 동안 나처럼 공부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수업 시간은 바로 핍박을 받는 것과 같았다. 수업 시간이 지나면 금방 모든 것이 잊혔다. 나중에는 결국 태국어를 독학하기 시작했다. 영화와 TV를 보면서 공부하는 나 자신만의 방법을 생각했다. 매일매일 계속해서 영화와 TV를 보았고, 5편의 태국 영화를 보고 난 뒤에야 태국어 실력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태국어를 배우기 위해 아주 많은 태국 친구들을 사귀었다. 또 일 년 반 동안 매일 무예타이를 배우러 갔다. 원래 배우는 시간은 한 시간 반인데 가장 많을 때는 하루에 3시간의 훈련을 하면서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태국어를 습득하기 위한 나만의 학습법이었다.

▶아이들에게 중국어 가르치는 것부터 시작

태국어의 기초가 조금 다져진 뒤 우리는 바로 섬김 사역에 참여했다. 행복학교(Happy School)를 개설하여 아이들 사역부터 시작했다. 아내가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고, 지금은 20여 명의 아이들이 있다. 한국어도 가르치고 있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하고 있다.

▶아이들(청소년)부터 성경과 전도 시작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많은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다. 이런 아이들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주일에 어린이 성경과 예수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처음 시작할 때 내가 말하는 태국어를 아이들이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끝까지 매우 적극적으로 질문에 답을 했다. 이 모든 것은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재하신 역사라고 생각한다.

▶개척교회, 새로운 출발

태국 아이들을 섬기는 사역을 어느 정도 한 뒤에 곧바로 성인들을 위한 사역을 시작했다. 중간에 또 다른 한국교회 동역자와 함께 그들의 교회를 섬겼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성격이 맞지 않음을 발견하고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선교사들이 서로 맞춘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한국인 동역자와 거의 10여 년을 함께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문화를 더 알아야 하고 이해를 위한 이해가 더 필요했다. 특별히 더 힘들었던 것은 한국 사람은 세 명인 반면, 중국 사람은 나 혼자였다. 또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서툰 태국어로 소통을 하다 보니 결국 좋지 않은 일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모두의 평안을 위해서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물론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서로의 관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 각자가 교회를 개척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치앙마이 성경교회

우리 집에서 태국교회를 개척했다. 그리고 이름을 ‘치앙마이 성경교회(清迈圣经教会)’라고 지었다. 교회를 개척하고 나서 몇몇 아이들이 세례를 받았다. 그때 그 아이들과 중국 음식을 먹었는데 정말 맛있다고 좋아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이사를 했다. 그리고 새로 이사한 집에서 모임을 갖고 매주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사실 현재 사역자가 부족한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 되었다.

[기도제목]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진리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알게 하소서.

내년에 교회가 세를 얻어서 모임을 하려고 합니다. 중국교회들이 연합하여 교회 월세(월 1만 바트인)를 후원할 수 있도록, 각 교회가 매월 런민비 200위안을 후원해주면 충분합니다. 2,000위안은 1만 바트와 거의 같습니다.

중국어와 태국어에 능통하고 목양에 은사가 있는 동역자를 보내 주소서.

일용할 양식을 위해 믿음을 의지하며 살아왔습니다. 교회 후원도 없고, 기타 일정한 후원도 없습니다. 중국선교사라면 앞으로 반드시 가야할 길이기에, 재정상에서도 반드시 모든 것을 뛰어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나는 더욱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선교회와 교회가 하나의 체계로 세워지면, 선교사에 대한 후원도 더 좋아질 것입니다.

 

 

 

 

덩 목사 | 태국 사역자

번역 | 공유호·중국어문선교회 협력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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