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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8.3  통권 228호  필자 : 임채석  |  조회 : 2988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세계 속의 중국인선교 이야기 Ⅳ
대만 가오슝반석교회 사역

다음 사역지, 왜 대만이었는가
중국에서 비자발적으로 귀국한 이후에 어려운 시기를 보내면서 다음 사역지를 결정해야 해야 했고, 이전에 안식년으로 가보았던 대만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사실 하나님이 다음 사역지가 어디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확신이 서지 않았다. 솔직히 어디에서인가 불러 주기를 원했지만 아무도 불러 주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대만에 오게 되었다. 타이베이(台北)에서 사역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타이베이에는 이미 많은 한국선교사들이 사역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 한국선교사가 거의 없는 지역은 가오슝(高雄)이었다. 그래서 가오슝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가오슝 정착 시기의 어려움
가오슝에서 지내는 1년 동안 적응하는 데 시간을 보내는 중에 중국과 달라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는, 기존의 중국식 사고방식이 몸에 배어 있어서 시장에 가면 꼭 물건값을 깎아야 했다. 그래서 대만 분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다. 대만 시장에서 물건 값을 깎으면 아예 상대를 안 한다는 것을 알았다. 둘째는, 공안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서 힘들었다. 셋째는, 중국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힘들었다. 중국에서 사역하던 시절이 참 그리워서 어려웠다. 마지막으로는, 대만은 교회도 많고 신학교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만에 선교사가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 늘 있었다. 그래서 대만 현지인목사님께 대만에 선교사가 필요한지 여쭤봤다. 그랬더니 필요하긴 필요한데, 산지지역이나 오지에 필요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교회개척
1년 동안 참석했던 대만교회에서 청년부를 맡아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래서 고민을 해보았지만 현지교회와 동역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 5명이 모여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반석교회를 시작했다. 뜻밖에 개척예배에 100여 명이 참석했다. 지난 1년 동안은 대만 생활에 적응하는 시기였다면, 교회개척을 하면서 가오슝에서의 사역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초기 사역

노방전도, 사람 낚는 어부(마 4:19) 
교회개척 초기에 한국에서 오신 한 목사님이 전해주신 “선교사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에 도전을 받아 노방전도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할 수 없었던 노방전도를 매주 토요일에 아내와 함께 시작하였다. 이렇게 아내와 둘이서 시작한 노방전도는 이후에 소문이 나면서 대만 현지교회 성도들이 와서 배우면서 함께 도와주겠다며 노방전도에 동참하게 되었다. 참 감사한 일이었다. 그분들과 함께 매주 노방전도를 다녔다. 그리고 우리 교회 성도들과 함께 부활절에 부활절 계란을 가지고 나가서 노방전도를 하였다. 이후에도 성도들에게 전도훈련을 진행하였다. 

병원전도
교회 앞에 연합의원이라는 종합병원이 있었는데 처음 전도하려고 가보니 이미 대만교회의 전도하는 팀들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선교사로서 그들과 함께 매주 금요일 병원전도를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병원전도를 하다 보면 그 자리에서 세례를 받기 원하는 사람이 있어서 세례를 주기도 하였고, 갑자기 소천하였기 때문에 장례사를 찾지 못한 분이 있어서 장례를 치러 드리기도 했다. 쉬지 않고 병원전도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한국어 교실
대만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한국어 교실을 진행하였다. 아내가 한국어 교사 자격증이 있었기 때문에 지역의 학교에 들어가서 한국어를 가르쳤다. 가오슝상업고등학교(高商高中), 세종학당(世宗学堂), 치셴중학교(七贤国中), 중화예술고등학교(中华艺术学校)에서 한국어를 가르쳤고, 최근에는 가오슝사범대학(高雄师范大学)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복음을 전하는 기회를 얻기 위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 한국어 교사를 하고 있다.
 
김치 교실
우리 교회에서 김치 교실을 진행하게 되면서 다른 대만교회에서도 요청이 있어서 김치 교실을 진행했다. 심지어 대만의 회사에서도 김치 교실 요청이 있어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김치 교실을 진행하기도 했다.

미술반
대만의 좋은 점은 은퇴를 하고 나면 재능기부를 하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미술을 가르치면 좋겠다고 해서 우리 교회를 개방하여 미술반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매번 15∼20여 명 정도 참여하여 전시회도 하고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다. 미술반에는 주로 믿지 않는 사람들, 태극권을 하는 사람들, 사당에 다니는 사람들이 와서 미술을 배우고 있다.

탁구 교실, 프랑스어반, 손님 대접
초기에 탁구 교실도 열었고, 프랑스어가 가능한 지체가 있어서 프랑스어반도 개설해서 진행하였다. 그리고 불고기, 삼겹살 등 한국 음식을 준비하여 손님을 대접하는 사역도 많이 하였다.

단기 팀 사역
단기 팀이 대만에 많이 오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사역을 진행해야 했다. 우리 교회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팀은 다른 교회에 많이 연결해 주었다. 단기 팀이 거리 공연, 주일학교 사역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왔다. 매년 여름, 겨울에 단기 팀 사역을 하였다. 단기 팀이 오면 한국의 밤을 진행하였다. 한국 단기 팀이 준비해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한국 음식을 만들어 전도하였다. 2016년부터 미국에서 온 단기 팀은 한글과 영어캠프를 진행하였다. 첫해는 우리 교회에서 진행하고 그 다음 해부터는 너무 많이 모여서 주변의 초등학교를 빌려서 진행했다. 한국어, 영어 캠프를 진행하였다. 

그 외 세례와 혼례, 장례 그리고 절기모임인 부활절, 중추절, 성탄절 그리고 생일잔치, 야외예배, 1일 수련회 등을 준비하고 열었다.

탈진
이렇게 사역하다 보니 어느 순간 탈진이 되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대만 사람들이 낚이지 않는 물고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떡밥을 많이 깔아 놓았는데 그 떡밥만 먹고 낚이지는 않는다. 대만에서 사역한 지 7년이 되는데 교인 수가 처음과 비슷하다. 둘째는, 대만 사람들은 나에게 참 잘해주고 예의도 있는데 어느 순간 평행선을 달리는 기분이다. 더 이상 가까이 갈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는, 이들의 변하지 않는 신앙생활이다. 세월이 지났는데도 변하지 않는 신앙생활을 한다. 제자훈련도 받고 했지만 이들의 신앙생활은 변함이 없다. 마지막으로,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었다. 나는 그들 세계에 들어갈 수 없는 이방인 선교사라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다. 이렇게 탈진이 오니까 설교도 전도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대만이다
탈진의 시간을 보내면서 사실 대만을 떠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래도 대만인가?’라는 질문을 통해서 대만은 마치 모닥불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인이 줄어들고 있는데 유일하게 인도와 대만이 기독교의 부흥을 이끌어 가고 있다고 들었다. 3년 전부터 대만으로 한국선교사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타오르는 모닥불에 장작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선교사
3년 전부터 대만에 들어온 한국선교사님들이 나를 많이 도와주셨다. 장례가 나면 와서 함께 도움을 주었고, 교회에서 동네 분들을 모셔서 불고기를 해드리고는 하면 한국선교사님들이 오셔서 고기를 굽는 등 함께했다. 지금 함께하는 동료선교사들의 모임이 너무 좋다. 처음 우리 가정이 가오슝에 왔을 때는 한국선교사가 5가정 정도였는데, 현재 가오슝에는 30여 가정이 있다. 



스본스도 사역
새로운 사역이 개발되었는데 바로 스본스도(KSNS, Kim Sicherheit und Schutx Neven System, 안전보호 신경 시스템: 기압 또는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여 우리 몸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무의식 신경을 일깨우고 근육을 강화시켜 무너진 밸런스를 잡아서 몸이 스스로 치료하도록 하는 방법임_편집자 주) 사역이다. 병원 사역을 하면서 이분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많이 고민하였다. 그런데 스본스도 사역을 알게 되면서 이 사역에 몰두하였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임상실험을 하였다. 차로 한두 시간이 걸리는 먼 지역이라도 찾아가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었다. 한 할아버지는 의사가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했지만 스본스도 사역을 통해서 다리를 절단하지 않고도 회복이 되었다. 이 사역을 통해서 허리가 아픈 사람, 중풍환자가 낫기도 하였다. 이 사역은 최소 3개월 정도 걸리기 때문에 주 1회 만나서 계속 치료해 주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새로운 사역 개발을 통해 탈진 상태를 다소 극복하게 되었다. 

사단법인 사역
교회에서 사단법인이 허락이 되어 정부 지원을 받아서 교회 안에서 노인복지 사역을 하게 되었다. 또한 사단법인을 통해 선교사님들을 초청할 수도 있고, 학교에 들어갈 수도 있게 되었다. 교회 옆 중학교에 가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학생들을 전도하고 학생들과 같이 노방전도를 하기도 한다. 다음 학기에는 한국어반을 개설해 달라는 학교의 요청이 있었다.  


동료선교사 지원 사역
3년 전부터 동료선교사들이 대만에 많이 오면서 이분들이 개척을 하는 데 도움을 드릴 수 있었다. 선교센터를 개원하는 동료선교사님을 위해서는 학기마다 강의로 지원하고 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사역은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자가격리를 해야 할 때 선교사님들의 자가격리 장소로 사용하였다. 

앞으로의 대만 사역
한국인선교사들과 함께 연합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 캠프 사역: 작년부터 코로나19로 인해 단기 팀이 올 수 없어서 초등학생 대상의 한국어캠프 사역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한국선교사님들과 함께 캠프를 진행하였는데 오히려 더 풍성한 시간이 되었다.
* 주일학교 사역: 루카이(鲁剀)족 원주민 노회(19개 교회)와 협력하여 주일학교 사역과 캠프 사역, 여름성경학교 사역을 진행하려고 준비 단계에 있다.
* 어 성경이 읽어지네: 한국선교사님들과 이 과정을 협력하고 있다.
* 캘리그래피: 캘리그래피를 사역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 미션 타이완: 올해 10월에 미션 타이완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선교사들이 많아지면서 현지 목회자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갖고 있다. 전 세계 화교권을 향해 나아가는 미션 타이완을 준비하고 있다. 


▶▶기도제목▶▶
* 한국선교사들과 현지 목회자들 간의 협력을 통하여 대만이 선교의 국가로 나아갈 수 있도록
* 한국선교사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힘있게 사역들을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임채석 | 대만 가오슝반석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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