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서는 지난호에 이어서 한국어 성어와 중국어 성어가 ‘형태는 동일하지만 의미가 다른 사자성어(同形异义)’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낙화유수(落花流水): 낙화유수는 세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첫째,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이라는 뜻으로, 가는 늦봄의 경치를 이르는 말이다. 둘째, 살림이나 세력이 약해져 아주 보잘것없이 쇠퇴해 간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셋째, 떨어진 꽃은 물이 흐르는 대로 흘러가기를 바라고 물은 떨어진 꽃을 싣고 흐르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남녀 간에 서로 그리워하는 애틋한 정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당(唐)나라의 시인 이군옥(李群玉)이 진련사(秦炼师)라는 은사가 잠공산(岑公山)으로 돌아가는 것을 송별하면서 쓴 시의 마지막 구절에 나온 말이다.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이 떠나가는 게 원망스럽구나(落花流水怨離襟).” 또한 당나라 시인 고변(高骈)의 시 〈방은자불우(訪隱者不遇)〉에도 나온다. “떨어진 꽃이 물 위로 흘러가면서 넓은 세상을 알게 되는구나(落花流水認天台).” 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落花流水’ [luò huā liú shuǐ]이다. 원래는 늦봄의 풍경을 형용하는 말로 쓰였는데, 지금은 그 뜻이 변하여 전투나 경기에서 적에게 완전히 참패를 당한 것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어 성어는 늦봄의 경치나 힘과 세력이 쇠퇴해 간다는 뜻, 혹은 남녀 사이의 정을 의미하는 데 반해, 중국어 성어는 경기에서 패배했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이 한중 성어의 형태는 동일하지만 의미는 다르다.
2. 백면서생(白面書生): ‘오로지 글만 읽고 세상일에는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송서(宋書)》<심경지전(沈慶之傳)>에 나오는 말이다. 남북조 시대에 남조 송나라 효무제(孝武帝)는 변경 수비군의 총사령관 건무장군(建武將軍) 심경지(沈慶之)를 배석한 자리에 문신들을 불러 놓고 자신들의 숙적인 북위(北魏)를 치기 위한 출병을 논의했다. 그때 심경지는 전에 북벌(北伐)에서 실패한 전례를 말하면서 무리한 공격은 좋지 않다고 반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밭갈이는 농부에게 맡기고, 바느질은 아낙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어찌 적국과 싸우는 일을 ‘백면서생’과 논의합니까?(耕當問奴, 織當問婢, 陛下今欲伐國, 而與白面書生謀之, 事何由濟).” 그러나 효무제는 심경지의 의견을 듣지 않고 문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출병했다가 크게 패하고 말았다. 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白面书生’ [bái miàn shū shēng]이다. 이 말은 얼굴이 새하얀 용모가 좋은 젊은 선비(학생)를 뜻한다. 한국어 성어는 ‘글만 읽고 경험은 전혀 없는 사람’을 뜻하는 데 반해, 중국어 성어는 ‘용모가 좋은 젊은 선비’를 가리킨다. 이 한중 성어가 형태는 동일하지만 의미는 다르다.
3. 설니홍조(雪泥鴻爪): ‘눈 위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이 눈이 녹으면 없어진다’는 뜻으로, 인생의 자취가 눈 녹듯이 사라져 무상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송(宋)나라 시인 소식(蘇軾)이 <자유가 민지(渑池)에서 옛일을 회상한 것에 화답하다(和子由渑池怀旧)>라는 시에 나오는 말이다. 자유(子由)는 소식의 아우 소철(蘇轍)의 자(字)이며, 소식이 아우 소철에게 화답한 시의 전문은 이렇다. “인생길 이르는 곳은 무엇과 비슷한가. 기러기가 눈밭을 밟는 것과 흡사하네. 진흙 위에 우연히 발자국이 남더라도, 날아가면 어이 다시 동서를 헤아리랴(人生到處知何似, 應似飛鴻蹈雪泥. 泥上偶然留指爪, 鴻飛那復計東西).” 이 시의 뜻은 사람의 한 생은 눈이 녹으면 눈 위에 남긴 기러기의 발자국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이 무상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雪泥鸿爪’ [xuě ní hóng zhǎo]이다. 기러기가 눈밭에 발자취를 남기듯이 지난일이나 인생이 남긴 흔적이 남아 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한국어 성어는 인생의 자취가 흔적도 없이 사라짐을 이르는 말인 데 반해, 중국어 성어는 인생이 남긴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이 한중 성어가 형태는 동일하지만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4. 일도양단(一刀兩斷): ‘한 칼로 쳐서 두 도막을 낸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머뭇거리지 않고 선뜻 결정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송나라 석보제(释普濟)가 쓴 《오등회원(五燈會元)》12권에 나오는 말이다. “비록 깔끔하게 한 칼로 쳐서 두 동강을 내었지만, ‘종사(宗师)’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一刀两段,未称宗师).” 또한 이 성어는 여정덕(黎靖德)이 편찬한《주자어류(朱子語類)》에도 나오는 말이다. “극기자가 칼로 쳐서 뿌리부터 두 동강을 내어 잘라버렸으니, 싹이 트지 않을 것을 알 수 있다(观此可见克己者是从根源上一刀两断,便斩绝了,更不复萌).” 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一刀两断’ [yī dāo liǎng duàn]이다. 이 말의 뜻은 어떤 일로 감정이 틀어지면 단호하게 그 사람과 관계를 끊어버린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한국어 성어는 ‘어떤 일을 머뭇거리지 않고 선뜻 결정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인 데 반해, 중국어 성어는 ‘단호하게 사람과 관계를 단절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 한중 성어가 형태는 동일하지만 의미는 다르다. 5. 계명구도(鷄鳴狗盜): ‘닭의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의 흉내를 잘 내는 좀도둑’이라는 뜻으로, 아무리 하잘것없는 재주라도 때로는 요긴하게 쓸 곳이 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사마천의《사기(史記)》<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이 진(秦)나라 소왕(昭王)에게 죽게 되었을 때, 식객(食客) 가운데 개 흉내로 남의 물건을 잘 훔치는 사람과 닭의 울음소리를 잘 흉내 내는 사람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데서 유래한다.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鸡鸣狗盗’ [jī míng gǒu dào]이다. 이 말의 뜻은 하찮은 재능을 가지고 있거나 몰래 도둑질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한국어 성어는 ‘하찮은 재주를 가진 사람도 때로는 쓸모가 있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데 반해, 중국어 성어는 ‘천한 재능으로 남몰래 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한중 성어가 형태는 동일하지만 의미는 다르다.
6. 양질호피(羊質虎皮): ‘속은 양이고 거죽은 호랑이’라는 뜻으로, 본바탕은 아름답지 않으면서 겉모양만 꾸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중국 한(漢)나라의 양웅(揚雄)이 지은 《법언(法言)》오자(吾子)편〉에 나오는 말이다. “혹자가 묻기를 ‘어떤 사람이 공자의 문하에 들어가 공자의 책상에 앉고 공자의 옷을 입는다면 그 사람은 공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하니, ‘그 무늬는 그렇지만 그 본질은 아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혹자가 다시 ‘본질이란 무엇을 말하는지요’라고 물으니, ‘양은 그 몸에 호랑이 가죽을 씌어 놓아도 풀을 보면 좋아하면서 뜯어먹고, 늑대를 만나면 두려워 떨며, 자신이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 사실을 잊어버린다(羊質而虎皮, 見草而說, 見豺而戰, 忘其皮之虎矣)’라고 대답하였다.” 양이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써서 겉으로는 호랑이처럼 보일지라도 호랑이의 본질까지 갖추지는 못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羊质虎皮’ [yáng zhì hǔ pí]이다.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겁이 많은 것을 비유한 것이다. 한국어 성어는 ‘본질은 바뀌지 않고 겉치레로 겉모양만 화려하게 꾸미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어 성어는 ‘강한 척하지만 사실은 겁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한중 성어가 형태는 동일하지만 의미는 다르다.
7. 백척간두(百尺竿頭):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뜻으로, 몹시 어렵고 위태로운 지경을 가리키는 말이다. 백척간두를 줄여서 ‘간두(竿頭)’라고도 한다. 이 성어는 송나라의 석도원(释道原)이 저술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10권에 나오는 말이다. “백척간두에서 움직이지 않는 사람아, 비록 도를 얻은 듯하여도 아직 참된 도는 아니라네!(百尺竿頭不动人, 雖然得入未爲眞)”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이 말은 자신의 나태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위태로운 상태에 올려놓고 정신의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뜻이다. 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百尺竿头’ [bǎi chǐ gān tóu]이다. 이 말은 아주 높은 관직이나 공명을 얻은 경우나 또는 학문이나 사업에 높은 성취를 이루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한국어 성어는 ‘몹시 어렵고 막다른 위험에 빠진 것’을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인데 반해, 중국어 성어는 ‘이미 높은 경지에 이르러 관직을 얻었거나 큰 성공을 얻었음’을 이르는 말이다. 이 한중 사자성어는 형태는 동일하나 의미는 서로 다르다.
사진출처 | 바이두 석은혜 | 본웹진 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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