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감독 천위쉰(陈玉勋, 1962- )이 연출한 이 영화는 2020년 9월 18일에 대만에서 상영되었고, 제57회 대만 진마장(金马奖)영화제에서 11개 부문 후보에 올라 최우수 작품상·감독상·각본상·편집상·시각효과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로맨스 코미디 장르로는 근래 보기 드문 수상 경력이다.
이 영화는 로맨스 코미디에 판타지를 더하며 흥행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영화는 남보다 늘 한 템포가 빠른 여성 양샤오치(楊曉淇, 李霈瑜 분)와 반대로 남보다 반 박자 느린 남성 아타이(阿泰(吳桂泰), 劉冠廷 분)가 주인공이다. 아타이는 매일 샤오치가 근무하는 우체국에 와서 편지를 부친다. 샤오치는 발렌타인데이 3일 전에 만난 에어로빅 강사 류원썬(劉文森, 周群達 분)과 함께 타이베이(台北)에서 주최하는 발렌타인데이 찰떡궁합 연인 이벤트에 참가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자고 일어나보니 발렌타인데이는 지나버렸다.
상실의 일상 비 오는 날에 들고 나간 우산이나 교통편의 시설에 스마트폰 등을 종종 분실하는 일들을 겪게 된다. 물건을 잃어버린 뒤 간신히 되찾게 될 때 그것의 소중함을 새삼 알게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이런 일들은 반복된다.
모태솔로인 샤오치는 30년 만에 손꼽아 기다려왔던 발렌타인데이가 자고 나니 지나버렸다. 영화의 시작은 주인공 샤오치가 경찰서에 와서 발렌타인데이를 잃어버렸다고 신고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이상한 일을 겪고 나서 샤오치는 과거 잃어버렸던 일들을 하나씩 떠올려 본다. 아버지와 아타이가 떠올랐다. 고등학교 시절 샤오치는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주방 조리 도구를 들고 있는 아버지를 만나서 녹두 더우화(豆花, 두부 푸딩)를 사오라고 부탁했지만 그 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린 시절 유람차 사고로 부상을 입은 샤오치는 교통사고를 당해서 부모를 잃은 아타이와 같은 병실에 입원하게 된다. 밝고 명랑한 샤오치는 아타이가 어두운 그늘에서 벗어나 살아갈 수 있게 격려해주고 038 우편 사서함에 서로 편지를 주고받기로 약속을 했었다.
샤오치의 아버지는 답답한 심정을 풀 수 없어서 가출하고, 아타이는 샤오치를 짝사랑하지만 고백하지 못하고 편지로 대신한다. 감독이 과거에 고백할 용기가 없어서 편지로 대신했던 추억을 살렸다고 전한다. 소셜 미디어의 발전으로 사람들의 고독감이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고독의 문제가 해결되었거나 소통이 원활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시간만이 아니라 사람도 있다. 샤오치가 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것은 아버지와 아타이이다. 샤오치는 바쁜 우체국 업무 속에서 거의 매일 편지를 부치러 오는 아타이를 못 알아본다. 주변의 사람들은 무료하고 성가신 존재로 보인다. 샤오치는 행복과 연인을 다른 곳에서 기다린다. 매일 저녁 퇴근 뒤 비좁은 자취방에서 라디오방송을 들으면서 남들의 사랑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아타이는 우체국에서 몇 개의 번호표를 뽑아 들고 샤오치가 자신을 불러주기만을 기다린다. 샤오치가 퇴근할 때는 그녀가 자신의 버스에 타기를 기다린다. 아타이는 매일 편지를 부치지만 샤오치는 한 통도 받지 못한다. 두 사람이 들고 있는 잔은 반만 채워져 있는데, 잔을 비우거나 채워주는 데 익숙하지 않다.
우리가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 시간, 이야기, 관계 등 셀 수 없이 많다. 영화 도입부에 샤오치가 아타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푸념 섞긴 대사를 내뱉고 자막이 뜬다. “당신을 사랑하세요. 아무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샤오치가 아타이를 알아보고 재회하는 장면 뒤에 엔딩 크레디트이 올라갈 때 또 자막이 뜬다. “당신을 사랑하세요. 누군가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같은 사람이지만, 상황에 따라 사랑을 달리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조건에서도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변할 수 없다고 말한다.
기억의 선택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사소하거나 큰일을 마주하고 결정하는 것처럼 기억도 선택한다. 샤오치는 아타이에게 해주었던 선행을 잊고 살았다. 사소하고 짧은 시간의 일이었지만 아타이는 샤오치에 대한 고마움을 오랫동안 간직하였다. 아타이는 그녀의 주변을 맴돌았다. 하지만 용기가 없어 멀리서 그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타이는 성인이 되어서 버스 기사가 되어 그녀의 퇴근하는 발이 되고 싶었다.
아타이는 돈이나 힘이 없어도 소중한 이를 지켜 주고 싶었다. 아타이는 샤오치에게 접근한 에어로빅 강사 류원썬이 바람둥이고 여성의 돈을 편취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따지다가 류원썬에게 맞아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었다.
아타이는 발렌타인데이에 세상이 멈추자 샤오치를 찾아서 버스에 태우고 고향 자이(嘉義)현 둥스(東石) 해변으로 갔다. 아버지의 유물인 카메라로 코믹하고 아름다운 사진을 찍었다. 꿈에 그리던 발렌타인데이였지만 그녀의 기억에는 없다. 함께했지만 함께 웃고 놀 수 없었다.
아타이는 어두컴컴한 저녁에 샤오치를 데리고 타이베이로 상경하다가 길에서 한 남자를 버스에 태웠는데 샤오치의 아버지였다. 그는 샤오치에게 녹두 더우화를 사주라고 부탁하고 차에서 내렸다. 아타이는 샤오치를 집에 데려다주고, 다음 날 샤오치에게 그녀의 아버지가 부탁한 녹두 더우화를 전달해주려다가 우체국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한다.
샤오치는 우연히 길에서 해변에서 자신을 찍은 사진이 사진관에 진열된 것을 보고 놀랐다. 샤오치는 사진 속의 해변가를 찾아 나섰고,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지방 우체국을 전전하다가 자이현 둥스 우체국 038 사서함에서 아타이가 자신에게 보낸 편지 꾸러미를 확인했다. 샤오치는 사라진 발렌타인데이 동안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해변에서 예쁘게 찍은 사진들, 038 우편 사서함에 수북이 쌓인 편지만이 있을 뿐이다.
샤오치는 일일이 기억하지 못해도 감동과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알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해도 감사와 기쁨을 느끼곤 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돌봄, 나이 많은 자식을 걱정하는 치매 노인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느린 시간과 빠른 시간 시간은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누군가에겐 느리거나 빠르다고 느껴진다. 기념일이나 명절에 느끼는 감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발렌타인데이는 아타이에게 너무도 짧아서 샤오치를 집에 데려다주고 망설이며 아쉬움에 쉽사리 떠나지 못했다.
샤오치의 아버지는 자살을 시도하려는 순간 세상의 시간이 정지되어 귀가하지 않고 세상을 유랑하게 되었고, 시간이 멈춰서 아타이는 뜻밖에 하루를 선물 받았고, 샤오치는 꿈꾸었던 로맨틱한 발렌타인데이를 놓쳐버리게 되었다. 빠름의 상징인 샤오치와 같은 현대인은 느림의 혜택을 잘 누리지 못한다.
아타이가 타이베이 우체국에 나타나지 않은 지 1년 뒤 샤오치는 자이현 둥스 우체국으로 전근을 왔다. 그녀는 매일 우편 사서함의 편지를 확인했다. 어느 날 아타이는 목발을 짚고 샤오치의 아버지가 부탁한 녹두 더우화를 들어 보이고 웃으면서 퇴근 후에 이야기해 주겠다고 말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사랑과 삶의 이야기는 오래 기다렸지만 또 더 오래 이어진다.
영화에 샤오치가 잠시 업무 중지란 알림판을 자신의 우체국 창구 앞에 올리는 장면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휴식은 바쁜 우체국 직원 샤오치에게 뿐 아니라 관객인 현대인에게도 소중하다. 영화는 세계와 시간이 잠시 멈춘다는 상상을 하면서 정전이나 업무 중지 같은 현실도 연관 지었다.
감독은 이 영화는 진정한 사랑의 이야기라기보다 성장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사람은 성장 중에 있으며 한 사람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말했다. 일전에 오빠의 비보를 접하고 앞으로 누구를 의지해서 살아야 하냐며 울먹이는 82세의 노인을 보았다. 이제 노인이 된 여동생은 어릴 적 자신을 보호해주던 건장하고 멋있는 오빠의 모습을 평생 간직하고 살았다. 시간이 흘러서 청춘이 지나가도 간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사랑에 대한 기억이다. 우리의 인생이 힘이 들 때, 노쇠할 때 그 기억이 위로와 힘이 되기 때문이다.
“당신을 사랑하세요. 누군가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사진 | 바이두 김영철 | 한양대학교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