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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3.3  통권 223호  필자 : 주핑  |  조회 : 4618   프린트   이메일 
[기획]
허드슨 테일러에게 오늘의 중국과 교회, 그리고 선교를 묻다

중국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못 살 것 같은 심정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아닌 다른 영이 세력을 차지한다면 그 어떤 규정으로도 선교회를 구할 수 없고 구할 가치도 없습니다. 중국내지선교회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살아 있는 몸이 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쓰임 받지 못할 것이고 지속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올해는 이 말을 남긴 이가 하나님의 품에 안긴 지 116년 되는 해이다. 제임스 허드슨 테일러(James Hudson Taylor·1832∼1905). 2021년은 그가 세운 중국내지선교회(China Inland Mission‧CIM, 현재 OMF) 설립 156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중국의 역사라는 씨줄과 중국의 복음화라는 날줄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님의 종, 선교사들의 행전은 기록됐다. 제1의 선교물결, 해안선교 시대의 기수였던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에 이어 제2의 선교물결,내륙선교 시대의 기수였던 허드슨 테일러의 삶과 유산은 하나님의 뜻을 좇은 열매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허드슨 테일러에 대한 저작물을 참고해서 그를 오늘 이 자리로 초대하여 가상 인터뷰를 시도했다. 허드슨 테일러에게 선교와 선교사란 무엇인지, 녹록지 않은 현재의 중국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지, 그가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난관을 돌파해나갈 것인지 등에 대해 상상해보며 답변을 들어보았다. 《허드슨 테일러의 생애》와 《허드슨 테일러》(생명의 말씀사), 《믿음의 사람, 허드슨 테일러(상)·(하)》(하늘씨앗 OMF), 《허드슨 테일러의 유산》과 《예수를 따르는 길》(로뎀북스 OMF) 등이 가상 인터뷰에 큰 도움을 주었다. 
    
제임스 허드슨 테일러, 그는 1853년에 중국으로 떠난 뒤 1865년에 중국내지선교회가 설립되고 1905년에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까지 병약한 몸, 신참 선교사들의 수많은 실패, 선교회 운영상의 복잡한 문제들, 끝없는 여행이 주는 부담, 가족과의 사별, 복음에 대한 반대, 폭동, 선교원칙에 대한 비판 등 수많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선교 열정과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1905년 CIM은 805명의 선교사, 467명의 중국인 협력자, 7개의 병원과 37개의 진료소, 101개의 아편 중독자 보호소, 교회와 연관된 300개의 통학 기숙학교, 연간 2500명의 세례자 배출 등의 열매를 맺으며 중국에서 활동하는 최대 선교단체가 됐다. A. J. 브룸홀(Broomhall), F. W. 볼러(Baller), R. H. 매튜스(Mathews) 등 CIM선교사 중에는 중국의 의학과 어학, 문학 연구 등에 학문적 공헌을 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허드슨 테일러가 세운 초등과 중등 과정의 학교들은 주로 기독인들의 자녀들을 위한 것이었다. 다른 선교단체들은 학생들이 기독교에 헌신하도록 기독교 과목을 가르치는 대학을 세웠다. 허드슨 테일러는 직접 전도를 통해 더 많은 선교적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는 데이비드 패튼의 책 《기독교 선교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교육받은 젊은이들 중 교회생활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기독교운동에 빠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서 기독교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기독교 공동체의 규율이나 삶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결국 효과적인 기독교인이 되지 못합니다.” 


≡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님이 중국복음화에 힘쓰게 된 것은 개인적인 관심도 있었지만 아버님의 기도 응답이었다던데요. 어머님과 누님의 영향도 만만치 않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터뷰에 앞서 긴 소개를 해줘 감사합니다. 저희 삶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자 선물이었죠.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드렸던 기도응답이었다는 걸 훗날 알고는 아버지께 감사했고, 하나님의 신묘막측에 놀라워했죠. 아버지는 바실 홀(Basil Hall) 선장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중국의 영적 상황에 대해 깊은 충격을 받으셨던 거 같아요. 자신의 상황으로 인해 직접 중국으로 건너갈 수 없으셨기 때문에 아들을 주시면 중국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가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문제는 제가 유약한 아이였기 때문에 부모님은 오랫동안 선교사로 키우겠다는 생각을 포기했었죠. 그러나 때가 이르매 하나님은 저에게 건강이라는 선물을 주셨고 건강한 사람들도 쉽사리 하지 못하는 고된 일도 능히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유년기부터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거듭 배우며 자랐어요. 부모님께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바쳐 섬기는 것이 인생에 있어 최선의 길이요 가장 지혜로운 선택임을 강조하셨습니다. 하지만 흔히 볼 수 있는 모태신앙인처럼 저 또한 이 같은 교훈과 실제적인 본보기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회의주의자들과도 어울렸죠. 그러면서도 만일 부모님의 말이 옳고 성경이 진실하다면 마지막 순간 회개해서 회개하지 않는 자들의 죽음의 운명으로부터 도망칠 수도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감사해하기도 했어요. 어머니와 누이가 저희 회심을 위해 늘 기도해왔습니다. 15살 무렵 어느 날 오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됐어요. 읽을 책이 없을까 해서 아버지 서재에 들어갔다가 무심코 책 한 권, 복음서 소책자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 책을 읽다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사역이라는 문구가 마음을 치고 들어왔죠. 이런저런 물음이 떠올랐죠. 자문자답을 연속하다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주님의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었는데, 성령께서 내 영혼에 밝은 빛을 비춰 주셔서 이제 내가 할 일이 없다는 것, 단지 무릎을 꿇고 구세주를 영접해 그가 이루신 구원을 받아들이며 영원토록 그를 찬양하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깨달았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시간 어머니는 제 회심을 바라면서 간절히 기도하다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셨어요. 2주 뒤 회심 사실을 어머니에게 말하려고 할 때 어머니의 말에 얼마나 놀랐던지.말하지 않아도 안단다. 내가 두 주 동안 지금 네가 말하려던 그 소식으로 인해 얼마나 기뻐했는지 아니?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경험을 했어요. 누이의 일기책을 우연히 펼쳐 보게 됐는데, 누이가 제 회심을 위해 매일 기도하겠노라고 쓴 글귀를 발견했습니다. 그 글을 쓴 지 꼭 한 달 만에 주님께서 저를 어둠에서 광명으로 옮겨 놓으셨습니다. 물론 회심의 첫 기쁨이 사라지고 갈등과 고통의 시간이 이어지기도 했죠. 하지만 하나님은 중국이라는 의식을 제 영혼 깊숙한 곳에 뿌리를 박아 주셨습니다. 당시 중국은 오늘날처럼 달리 개방되지 않은 미지의 장소였는데. 앞서 철저히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놀랄 뿐입니다.”  


≡ 하나님 다음으로 영감을 준 사람으로 칼 구츨라프(Karl Gutzlaff·1803∼1851) 선교사를 꼽으셨죠.

구츨라프 선교사님은 중국내지선교회의 조부라고 표현할 수 있어요. 제가 어렸을 때 읽은 그의 책은 제 가슴을 뜨겁게 했습니다. 중국복음화는 결국 중국인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귀츨라프 선교사님은 굳게 믿었습니다. 중국 내륙에 외국인이 거주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을 때부터 그는 복음 전할 방법을 계획했죠. 1849년만 해도 외국인들에게 광저우(广州), 아모이(阿莫伊, 현재 厦门), 닝보(宁波), 상하이(上海), 톈진(天津) 등 5개의 개방 항 외에는 금지된 지역이었습니다. 구츨라프는 중국인 스스로 18개 성 전역에 복음을 전하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성경을 가르치고 배포할 목적으로 중국기독교인연합회(Chinese Christian Union)를 조직했어요. 안타깝게도 구츨라프는 자신이 세운 단체 내 중국인전도자들에게 농락을 당했습니다. 이들은 하지도 않은 여행일기를 작성하고 세례를 주지 않은 회심자 명단을 만들었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던 구츨라프는 추문 때문에 비탄에 빠졌죠. 사역을 다시 구상했지만 새롭게 시작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 허드슨 테일러 하면 오직 기도를 통해 재정이 채워지는 ‘믿음선교(Faith Mission)’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우리의 회계 담당이신 하나님은 결코 실수가 없으시다는 관점입니다. 중국내지선교회의 이 같은 재정원칙이 더 성경적이라거나 더 낫다고 주장한 적도 없으셨어요. 오늘날 후배 선교사들에게도 믿음선교 원칙이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고 믿으시는지요.
 
제가 말씀을 전한 자리에서 즉석 헌금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이유가 있습니다. 헌금 이전에 성도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으면 했기 때문이죠. 저의 바람은 중국의 필요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집으로 돌아가서 중국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물으면 좋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많이 생각하고 기도해 본 뒤 하나님께 드려야겠다고 확신이 들면 중국을 위해 사역하는 어떤 단체라도 좋으니 후원하면 되는 거죠. 하나님은 헌금보다 선교를 위해 사람을 드리는 것을 더 원하십니다. 그분의 사역을 위해 은이나 금이나 소중한 아들과 딸을 포기하는 것을 원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그것으로 한 영혼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믿을 만한 것을 의지하는 것은 무모한 것도 아니고 모험도 아니죠. 명백하고 건전한 상식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잊으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는 하나님의 일에 공급이 부족했던 적이 없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미신이나 맹목, 또는 게으른 무위(无为)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아버지 되심에 근거한 것이고 분별 있는 행동이죠. 재정 때문에 사역을 못한 적은 없었습니다. 재정 때문에 선교회를 떠난 선교사도, 불만을 가진 채 남아 있던 선교사도 없었습니다. 중국내지선교회는 기도로 태어났고 기도로 자라났으며 기도의 응답으로 유지됐어요.


≡ 왜 중국옷을 입으셨나요. 중국인을 구원으로 이끌기 위해 죄가 되지 않은 부분에서 온전히 중국인이 되자는 뜻을 구현하려고 애쓰셨습니다. 당시 선교사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주셨을 텐데요.

중국 문화를 잘 알고 중국인을 온전히 존중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중국옷을 입는 서양인을 보면 처음에는 신기하게 여겼지만 익숙해지면 설교할 때 사람들의 관심은 옷보다 설교 내용에 더 쏠렸습니다. 중국옷은 세탁도 수월했고 옷에 문제가 생겨도 쉽게 수선할 수 있었죠. 중국인이 기독교를 반대하는 이유는 그들 눈에 기독교가 사회의 어떤 계층에 속해 있든지 개종자 모두를 외국식으로 바꾸려는 외래종교로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나 개종자들이 유럽식 옷을 입고 서양식 교회를 짓는 것이 대다수 중국인들에게 복음이 빨리 전해지지 않았던 주된 방해물이었죠. 중국 기독교에 서양 냄새가 나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사역은 자기 나라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믿는 중국인이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자기들이 쓰던 말로, 중국식 건축양식으로 지은 건물에서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죠. 중국인의 습관을 흉내 내자, 체질과 건강이 허락하는 한 중국인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살자. 중국식 집에서 살면서 될 수 있는 대로 건강이나 일의 효율을 위해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 내부만 변경하고 외형을 불필요하게 바꾸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조용하고 편안하게 살려는 사역자는 중국인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지 못해요. 언제든지 예수님, 중국, 영혼들을 그 무엇보다 최우선 순위에 놓는 사역자,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그 다음으로 놓을 수 있는 사역자를 우리는 원했습니다. 그러한 사역자라면 대환영이었죠.



≡ 선교란 무엇인가요.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있을 수 없지만, 만일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님이 현재 선교사들의 활동이 원천 봉쇄된 중국에서 사역하고 계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역 초기 저를 가장 괴롭힌 최대의 적은 모든 상황이 내게는 불리한 투성이야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같은 생각은 역경에 처할 때마다 듣곤 했죠. 그러나 이보다 더한 오판은 없을 겁니다. 춥고 배고프고 두려움에 떨며 주위를 살피느라 잠 못 이루던 날들, 철저한 고립과 외로움으로 고통스러웠던 날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상한 손길에 의해 지혜롭게 계획되고 준비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전진하기 위해 네게 꼭 필요한 시련이 있었어요. 주님께서 이를 통해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증명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길이 완전하다는 말씀에 놀라곤 했습니다. 오늘날의 선교사역은 19세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탄하지 않나요. 물론 각자 처한 환경이 녹록지 않죠. 선교사들은 비자발적 철수를 해야 하고, 모든 개인사가 모니터링 될 수 있는 힘든 상황이지만요. 제가 사역할 때 광둥 사람들은 우리를 이방 귀신’ ‘낯선 개’ ‘낯선 돼지라고 놀리기도 했어요. 당시 내지로의 여행은 협약에 어긋나는 것이었고 위험을 동반하기도 했습니다. 1854년 12월 16일부터 57년 6월 20일까지 상하이(上海)를 거점으로 장쑤(江苏)성과 저장(浙江)성 지역을 아울러 18차례 내륙 선교여행을 감행했어요. 하지만 사역 가능성이 아주 많이 열렸을 때 중국사역을 중지한 뒤 영국으로 돌아가야만 했었어요. 만일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중국내지선교회가 세워지지 않았을 겁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 치밀한 계획하심이었죠. 영국으로 돌아갈 때는 큰 재난이 저에게 닥친 것처럼 느꼈어요. 보살핌과 가르침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소수의 중국인 기독교인을 남겨 놓고 가는 것이 너무나도 슬펐습니다. 그런데 영국에 도착해 정밀검사를 해보니 몇 년 동안은 중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할 정도의 건강상태였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영국에 수년간 묶여 있으면서 저는 매일같이 서재에 걸려 있는 중국 전도지를 보곤 했어요. 닝보(宁波) 주변 지역뿐 아니라 중국 내지 전체에 대해 관심과 친근감이 생겼죠. 중국 내지선교를 위해서는 특별한 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었죠. 저는 동역자이자 친구인 고프 목사 부부와 매일 기도하면서 의논했습니다. 1865년 6월 25일 주일, 심각한 영적 고통을 느끼고 해변을 한없이 걸으면서 하나님께서 구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죽어가는 중국인들을 어떻게 하실 것인지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24명의 동역자를 주님께 요청했어요. 선교사가 없는 중국 내지의 11개의 성에 2명씩, 몽고에 2명 등 총 24명의 동역자를 필요로 한다는 글을 제가 지니고 있던 성경의 여백에 적어 넣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1866년 5월 26일 라메르무어(Lammermuir)호를 타고 다시 중국으로 향했는데요, 22명의 탑승객 중 16명이 선교사였습니다. 중국내지선교회의 시작은 이들과 더불어 이뤄졌습니다. 중국에 도착했을 때 내지로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믿음과 기도로 무장하면서 항저우(杭州)와 닝보를 거점으로 점차 해변지역인 저장지방으로, 남쪽지방으로 서서히 선교지역을 넓혀갔죠. 새로운 동역자들이 경험을 쌓은 후에는 장쑤, 안후이(安徽), 장시(江西)지방까지 선교지가 늘어났습니다. 이 일을 하기까지는 약 10년이 걸렸죠. 그동안 선교사들은 병에 걸리기도 하고, 죽음을 당하거나 무자비한 폭도들에게 핍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1900년 의화단의 난을 겪으면서 중국내지선교회는 엄청난 시련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56명의 선교사, 23명의 어린 아이들이 순교를 당하는 고통이었죠. 고귀한 희생과 역경은 복음 확산이라는 반전을 일으켰습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불타는 헌신과 불굴의 열정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아간 동료들의 희생은 수많은 중국인들이 기독교인이 되는 결실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선교라는 대서사시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모든 백성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 앞장서기를 고대하십니다. 기도의 능력은 거리를 초월합니다. 나이나 건강의 유무, 하루의 일과 등에 제한받지 않습니다. 정치적 변화나 제한 또한 기도의 능력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너희들이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이루리라고 하신 말씀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순종하는 기독교인의 삶 가운데 나타날 수 있는 기도의 능력은 스스로 기도의 능력을 무시할 때만이 그 능력을 상실할 뿐입니다. 중국 상황이 어렵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직접 사역하고 계십니다. 단지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저는 중국인사역자들이 전도와 교회개척에 점차 능숙해지는 것을 보면서 기뻤습니다. 중국교회의 미래는 중국인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었죠. 선교사들은 건물을 지을 때 세워 놓는 발판과 같습니다. 그 발판이 필요 없는 시기가 빨리 오면 올수록 더욱 좋습니다.”    


≡ 흔히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와 티모시 리처드 선교사(Timothy Richard·1845∼1919)와 대비되곤 합니다. 
  
티모시 리처드 선교사의 중국에 대한 인식을 전기와 후기로 나눠 설명할 수 있어요. 전기인 1870∼1884년에는 주로 교회 중심 전도활동과 구황(救荒)사업을 통해 얻은 초보적 단계에서 중국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 시기에는 그가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됐기 때문에 중국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후기인 1885년 이후에는 비(非)교회 중심적 활동, 즉 광학회(广学会)라는 기관 활동 등을 통해 접촉할 대상과 범위가 넓어지면서 중국에 대한 인식이 보다 포괄적이게 됐습니다. 그도 사역 초기에는 전도에 주력했어요. 특히 상층 인사 위주로 전도했습니다. 1876년에는 산둥에서, 1877년에는 산시(山西)에서 각각 구황활동을 전개했는데, 이를 통해 중국이 처한 현실과 중국 관리, 백성들의 처지를 깊이 인식하게 됐어요. 지식인 상대 전도에 힘쓰면서 교육개혁과 함께 서학(西学) 교육의 실시 문제에 관련해서 만국공보(万国公报)에 기고하기도 했어요. 기독교 대학 설치를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좌절을 맞보기도 했지만 결국 산사대학을 설립했습니다. 아울러 교육개혁과 제도개혁을 통해 중국 정부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면서 각종 방안을 제안했었죠. 그의 개혁론은 과거제도 개혁, 조세 개혁, 탐관오리 혁파 등 각종 정치·경제 개혁을 요구하는 변법자강운동(变法自強运動)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장즈둥(張之洞), 정관잉(郑观应), 캉유웨이(康有为), 량치차오(梁啓超), 탄시퉁(谭嗣同), 양선슈(楊深秀), 쑹보루(宋伯魯) 등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람의 마음속뿐 아니라 지상에도 세워져야 하고, 내세뿐 아니라 현세에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리처드는 강조했어요. 지상의 낙후된 모습, 악조건, 고통, 빈공 등의 제거가 하나님 나라를 지상에 세우는 일환으로 간주했던 거죠. 그가 상류층 인사 위주의 전도를 한 것은 많은 사람으로부터 인정받는 지도자들을 찾아 그들을 개종시킴으로써 영향권에 있는 사람들까지 개종시킬 수 있다는 일종의 집단개종 선교전략이었습니다. 저와는 다른 전도방식과 사회변혁을 꿈꾸었던 겁니다. 저와 같은 복음전도 중심 사역과 리처드와 같은 사회선교 중심 사역 모두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유용해요. 하나님이 허락하신 각자의 소명과 사명에 충실하면 하나님 나라의 선교 퍼즐은 완성됩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각자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합니다.”   


≡ 중국 정부는 중국 시민들과 외국인들 간의 종교적 소통 행위가 이뤄지지 못하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중국국가종교사무국이 지난해 11월 18일 종교활동 규제 범위를 외국인들에게까지 확대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는데요.
 
중화인민공화국 내의 외국인종교활동 규제를 위한 세부 규칙을 언급하는군요. 주요 내용을 보면중국 내에서 종교활동에 종사하는 외국인은 중국의 법률과 규제와 규정을 준수해야 하며, 중국 종교의 독립성 원칙과 자주적 관리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 법률에 따라 중국 정부의 감독 관리를 수용해야 하고, 종교를 이용해 중국의 국가이익과 사회공익과 시민의 정당한 권리와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되며, 중국의 공공질서와 좋은 관습을 훼손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외국인만 모이는 종교 집회도 중국 정부의 엄중한 감시를 받게 된 것이죠. 11조에 따르면 정부가 별도로 허용한 경우가 아니면 종교국 직원이 외국인의 종교 집회를 주재하도록 명시되어 있죠. 정부에서 허가해준 경우가 아니면 종교활동은 정부 승인을 받은 사원이나 교회에서 해야 합니다(7조). 종교활동 시간, 참가인원, 활동 형태를 신청서에 명시해야 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사항을 종교사무국에 보고해야 합니다(10조). 신청자가 자신이 믿는 종교에서 예로부터 사용되어 왔던 종교서적, 즉 기독교라면 성경을 제출하여 검열을 받아야 합니다(13조). 외국인 집회 주최자는 ‘중국 법률과 규정과 규칙을 준수해야 하고, 중국에 적대적인 말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 되며, 범죄 전력이 없어야 하며, 행동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고, 체류 허가 기간이 6개월 이상 남아 있어야 합니다(8조). 외국인은 종교적으로 극단적인 사상적 성향이 없어야 하고, 중국의 공익과 좋은 관습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그 어떤 것도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외국인 한 명이 개인적 용도로 종교서적을 소유할 수 있는 수량도 제한합니다. 이번 조치는 중국인들을 전도하고 양육하는 선교사들의 사역을 중단시키겠다는 다목적 카드로 볼 수 있습니다. 중국 시민과의 종교적 소통 행위에 대해 얼마나 원하지 않는지 외국인에 대한 벌금과 처벌 조항을 보면 더 잘 알 수 있죠. 중국에 있는 외국 기독교인도 중국의 형제자매들이 오랫동안 경함해온 고통과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진 거죠.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될 것은 기독교인은 자신이 속해 있는 나라의 시민권과 상관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는 겁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6절을 보면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라고 언급돼 있어요. 우리는 중국의 기독교인과 함께 고통을 받든지 아니면 그들과의 교제를 끊어 버리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도 있을 겁니다. 중국 기독교인과 교제를 끊는다는 말은 그리스도와의 교제까지도 단절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으니 선택불가죠. 따라서 고난 속에 있는 중국 기독교인들과 우리는 기꺼이 함께해야 합니다.
  

≡ 중국국가종교사무국이 오는 5월 1일부터 시행 예정인 ‘종교 성직자 관리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총 7장 52조로 이뤄진 방안에 따르면 국내 종교인은 외국 세력의 영향을 받거나 민족통합과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활동에 관여해서는 안 되고 불법적인 종교활동, 종교적 극단주의, 중국 침투를 목적으로 한 외국 세력의 종교활동에 저항해야 합니다. 이밖에 국가안보와 공공안전을 훼손하는 행위, 종교적 극단주의를 조장하거나 지원하는 행위, 국가 분열 행위, 외국 세력의 조종을 받거나 외국 종교단체의 지원을 받는 행위 등을 금지했습니다. 종교인은 중국공산당의 지도를 옹호하며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을 실천해야 한다는 조항도 포함했죠.

국가안보를 내세우며 종교인의 활동을 통제하는 방안을 내놓은 거죠. 사회 안정 유지, 자국에 대한 충성 강요 등의 포석으로 읽힙니다. 이번 방안과 관련해 중국학자들은 극단주의 종교이념의 영향을 받은 종교인들이 주도한 불법 집회 사례가 있었고, 그들이 가르치고 전파하는 것은 교리가 아니라 사회 안정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었다며 옹호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어요. 이번 방안은 지난해 외국인의 종교활동을 규정하는 규정을 시행하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단은 어렴풋이 보이는 난관을 가지고 미리 절망하게 하고 내일 일을 염려하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않으리라고 위로의 말씀을 전해주셨어요.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고 울퉁불퉁하던 장소를 평평하게 해주시는 분이 주님입니다. 난공불락의 어려움이 우리 앞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로 돌파하려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중국 정부가 여러 가지 법제화를 통해 종교를 통제하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겁니다. 그때마다 낙심할 필요 없습니다. 중국 정부가 최종적으로 꿈꾸는 세상은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께서 정리하고 다스리도록,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아뢰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환난의 쏘는 힘이 없어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게 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겁니다. 되돌아보면 닥쳐서 처리해 내지 못할 염려는 거의 없었습니다. 중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은 더욱 더 애국심을 갖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중국공산당의 최고 지도자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를 이끄는 리더십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요.
 

≡ ‘종교의 중국화’는 중국 정부가 공인하는 5대 종교 모두에 해당되죠. 예를 들어 티베트불교가 더 이상 티베트인들에게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중국 정부는 최근 티베트인을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와 티베트불교로부터 분리시키고, 그 자리에 시진핑(习近平) 국가주석의 지도와 중국공산당 사상으로 대체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959년 티베트 봉기 이후 가장 강력하게 시행되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는데요. 
   
티베트 봉기는 1959년 발생한 티베트인들의 반(反)중국 폭동을 중국 당국이 대규모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진압한 사건을 의미하죠. 이 일로 달라이라마가 인도 다람살라로 탈출해 망명 정부를 수립했죠. 지난 2008년 독립을 요구하는 티베트인들의 대규모 시위 이후에는 현지 주민들에 대한 보안 단속이 강화됐습니다. 외국인들에 의한 티베트 여행 제한도 대폭 강화됐습니다. 특히 취재를 목적으로 한 기자들의 입국은 철저히 통제되죠. 티베트지역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고유 정체성 약화 노력은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슬람 색채 지우기, 고유 문화 말살정책과 유사합니다. 티베트지역 학교에서 중국 중앙 정부와 공산당에 대한 애국 교육을 펼치고 있습니다. 학교 내 각 학급에서는 티베트어의 자리를 중국어(만다린)로 대체하죠. 티베트지역에서는 신장지역처럼 주민들이 일명 직업훈련소로 불리는 수용소로 강제로 들어가는 경우는 없지만 티베트와 신장지역에서의 중국화 공통점은 현지 종교에 대한 탄압을 통해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없앤다는 점일 겁니다. 티베트인들에게는 2012년 시 주석 집권 뒤 달라이라마의 종교적 가르침에 참석하기 위해 인도 다람살라로의 여행하는 것마저 금지됐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달라이라마와 관련된 게시물을 업로드하는 것만으로도 처벌되죠. 지난해 12월 한 티베트인은 달라이라마의 음력 새해 인사를 위챗에 올렸다는 이유로 국가를 분열시키려 한다는 혐의로 징역 1년이라는 실형을 선고받았죠. 시 주석은 지난해 8월 티베트정책 관련 관계들과의 회의에서 중국을 사랑하는 씨앗을 모든 10대들의 가슴 깊은 곳에 심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티베트 고유의 문화를 지우고 중국인으로 만드는 작업이 여러 세대에 걸쳐 진행되고 긴 싸움이 될 거라는 점을 알려 준 겁니다.” 
  

≡ 지난 2월 16일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하이난(海南)의 후이족(回族) 무슬림 1만 명도 종교탄압의 표적이 됐습니다. 하이난은 ‘중국의 하와이’로 불리는 곳으로 시 주석이 홍콩을 보완할 자유무역항으로 키우고 있습니다. 중국의 이슬람교 단속은 신장위구르자치구에 국한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소수민족의 중국화를 겨냥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하이난 내 후이족이 운영하는 상점 등에는 ‘알라후 아크바(신은 위대하다)’라는 표지를 밀어내고 중국의 민족주의 슬로건인 중국몽(中國夢)을 홍보하는 스티커가 자리를 차지했죠. 무슬림이 먹어도 되는 음식을 뜻하는 ‘할랄’의 중국어 간판인 칭전(清真)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일반인도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만 팔라는 뜻입니다. 이미 정부는 이 지역에서 두 개의 이슬람 학교를 폐쇄했고 여학생들이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등교하는 것도 금지했어요. 관련 보도를 보니 현지 종교 지도자들에 따르면 이곳 관리들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후이족의 종교적 전통을 지키는 데 적극적이었어요. 동남아와 중동 무슬림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어 시 주석이 명운을 걸고 추진하는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도움을 줄 것으로 봤기 때문이죠. 그런데 완전히 다른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겁니다. 2018년 중국 국무원이 종교가 일상생활과 국가 기능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침을 내리면서 상황이 반전됐다는 후문입니다. 중국 내 무슬림이 이슬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가까워지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어요.


≡ SNS도 국가안보와 사회안정이라는 미명 아래 단속이 더욱 강화될 듯합니다. 지난 2월 10일 중국 당 중앙 인터넷안전 및 정보화위원회 판공실에 따르면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전국 음란서적과 불법 출판물 소탕(掃黃打非) 공작소조판공실·공업정보화부·공안부·문화관광부·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국가방송TV총국 등 7개 규제 당국은 9일 밤 인터넷 실시간 방송진행자가 체제 위협적인 내용을 다루지 못 하게 하는 등 온라인 방송 규제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을 시행하고 온라인 생방송 산업을 건강하고 질서 있게 발전시키기 위한 조치라고 합니다. 
  
실시간 방송상의 내용 불량, 후원금과 마케팅 문제, 청소년 권익침해 등에 대응한 규범관리와 지도를 강화하겠다는 겁니다. 방송 진행자는 국가안보나 사회안정·질서를 해치는 내용, 음란정보 등 불법적인 내용을 내보내면 안 됩니다. 국가 전복과 종교적 극단주의, 민족 분열사상, 테러 관련 내용을 비롯해 음란 외설, 도박, 유언비어, 저작권과 개인정보 침해 등의 내용을 방송할 경우 엄하게 처벌하기로 했습니다. 저속한 내용과 봉건·미신, 법의 허점을 이용한 위법 행위 등을 전면적으로 정리할 것이라고 합니다. 실시간 방송의 등급을 나눠 일별 방송 횟수와 간격, 후원금 상한 등을 제한하고 이용자가 과도한 후원금을 낼 경우 주의를 환기하거나 후원을 지연시키는 방안도 도입했죠. 미성년자는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방송 시청을 위한 계정을 만들거나 후원금을 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중국은 앞서 2월 8일 밤부터 대만 독립 등 금기 이슈에 대한 토론이 이뤄지면서 이용자들이 급증한 미국의 음성 채팅 애플리케이션클럽하우스(Clubhouse)의 접속을 차단시켰습니다. 일부 이용자는 클럽하우스 앱을 열려고 하니 ‘SSL 오류가 발생해 서버에 안전하게 연결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떴다고 밝혔죠. 중국의 인터넷 검열을 모니터링하는 국제 민간단체인 그레이트파이어(Greatfire)가 클럽하우스의 차단을 확인해줬다고 CNN이 보도했습니다. 클럽하우스에서 대만 독립, 홍콩국가보안법, 신장위구르자치구 강제수용소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가 토론되다보니 중국 정부가 적극 대응한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도 중국 정부는 법규에 따라 인터넷을 더욱 정교하게 관리할 것입니다. 국가 주권과 안보 이익을 수호하고 외부 세력의 간섭을 막겠다는 정부의 입장은 확고부동합니다. 인터넷과 SNS 공간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복음대로 살아가는 이들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생생함, 그 자체가 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중국교회가 동영상 공유 서비스 줌(Zoom) 등을 통해 과거보다 더 적극 소통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이 땅의 나라 변혁과 개혁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의 확실함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면서 예수님을 바로 보여주는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있을지 모르는 박해가 두려워 도망가라는 명령을 들은 적이 없어요. 만일 주께서 우리가 쫓겨나는 고통을 당하게 하신다면 그때는 책임이 주님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거룩한 기쁨을 중국교회와 성도들이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기독교인의 거룩은 연발 권총보다 훨씬 탁월한 보호막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특정 나라의 이익이나 확장을 위해 사역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자 대사의 신분으로서 인터넷과 SNS를 활용해야 합니다. 그럴 경우 중국 정부가 어떠한 장벽을 설치한다 해도 관계없습니다. 오히려 복음은 장벽을 넘어 더욱 확장되는 것을 우리는 각자의 현장에서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증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 전하면 됩니다. 예수님 외에는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이 없음을 당당하게 증거해야 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린다는 게 무엇인가요.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배드린다는 것입니다. 그때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와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함을 전하는 데 인터넷과 SNS를 적극 활용하기를 바랍니다. 기독교 변증의 또 다른 터전인 인터넷과 SNS를 통해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널리 그리고 강력하게 전파될 것입니다. 


≡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중국 대륙은 물론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중국인들에게 복음전하기를 원하는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 들려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지요. 

 1857년 4월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가 생각납니다. 이렇게 써 내려갔죠. 지금 중국은 위기의 때입니다. 나라가 열릴 수도 있고 곧 닫힐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의 섭리로 우리가 잠시 일을 멈춰야 한다면 그분께서는 이미 심은 씨앗을 파종자의 도움이 없이도 싹이 나게 하실 것입니다. 그분의 전진(前进) 계획은, 이 시기 우리에게는 매우 상황에 역행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생각은 우리의 불완전한 머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에서 자라서 우리 주인이 쓰실 만한 그릇이 되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그러면 주께서는 곧 우리 구주 되신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에 들어가는 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중국의 영적 필요를 느껴 헌신한 선교사들로서 온전히 사역할 수 없다는 것, 어쩔 수 없이 중단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고국으로 돌아간 사역자들을 환영하고 조국의 교회와 기독인들이 사역자 이후를 기다려줄 것인지 알 수 없기에 더욱 난감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어도 하나님은 반드시 말씀하신 것을 언제나 이루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게 필요합니다. 그분을 바라보면 바람과 파도가 친다고 해도 물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때와 방법에 대해 걱정하지 말아야 하죠. 어떤 시련이나 어려움이 닥쳐도 그 안에서 위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중국인과 같이 되어 중국인을 얻으려고 진실한 마음으로 시도해 본 사람치고 자신의 그러한 노력을 후회했다는 이야기를 저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행동과 감정을 중국인과 다르게 하면서 중국옷을 입기만 하는 것으로는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빛의 천사로 오셨다면 틀림없이 사람들에게 더 큰 두려움과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더 많은 사람들을 당신의 사역자로 모집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분은 그저 사람처럼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이 되셨어요. 주님께서는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고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하나님께로 가는 사람임을 아시고 저녁 먹던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허리에 두르셨던 수건으로 닦아주셨던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중국과 중국인을 사랑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은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롭지만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됐습니다. 그 이유는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함입니다. 복음을 위함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습관과 관습이 우월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을 수 있습니다. 개종하면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지 두려움을 갖고 있을 수 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는 정권에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닌지 우려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그들이 중국인이 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를 믿는 백성이 되라는 것입니다. 저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중국인, 모든 면에서 뼛속까지 깊이 중국인인 기독교인을 보고 싶습니다. 중국인목사, 중국인사역자가 완전히 중국식 건축 양식으로 지은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중국교회를 보고 싶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소원하는 것이라면 가능한 한 바른 모범을 외국의 기독교인들, 특히 선교사들과 사역자들이 온전히 보이고 드러내는 것입니다. 죄가 되지 않은 한 모든 면에서 중국인이 됩시다. 조건부로 헌신하지 맙시다. 우리는 그분의 것이고, 이 일로 그분을 섬기기로 작정했으니 전적으로 온전히 자신을 드립시다. 한 명의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해 그것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짐입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본국에서든 해외에서든 사람을 낚는 어부의 일을 가장 성공적으로 하고 싶은 한국교회, 세계교회라면 부요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비우고 가난하게 되신 주님을 일거수일투족 본받으면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그분을 부인할지라도 그분은 신실하게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것이 복음 없이 살아가는 전 세계 중국인을 위한, 연약하지만 가장 확실한 선교방식입니다. 하나님의 악기’ ‘하나님의 편지로 쓰임 받는 기독교인들은 다양한 삶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모든 삶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의 메시지는 우리의 삶을 통해 설명되고 그 진정성이 증명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사진 | 戴德生生平与事工图片纪念集
주핑 | 중국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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