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구샤오강(顾晓刚 1988- ) 감독의 첫 장편영화로, 2019년 제13회 FIRST 중국 청년 영화제 감독상과 작품상의 영예를 안았다. 2019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아시아 영화의 창’ 공식 초청작이며, 제20회 도쿄필름엑스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고, 제72회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 섹션 폐막식 때 상영했는데, 폐막식 영화로 선정된 첫 중국어 영화이다.
감독 구샤오강은 저장이공대학(浙江理工大学)에서 패션디자인과 마케팅을 전공했다. 그는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2015년 장편 다큐 《종식인생(种植人生)》으로 주목을 받았다. 구샤오강은 본 영화의 배우들을 비전문 연기자로 뽑았는데, 대부분 그의 친척과 친구이다. 큰아들 역을 맡은 이는 감독의 이모부이고, 셋째 아들은 감독의 숙부이다. 감독은 자신의 특이한 이력을 십분 활용하여 제작비도 절감하였다.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 푸춘(富春)강에 있는 한 식당에서 노모 바이위란(顾母 白玉兰, 杜红军 분)은 칠순 고희연을 하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치매 진단을 받는다. 성씨가 다른 네 명의 아들은 어머니 부양 문제와 재산 문제로 형제간의 우애가 시험대에 오른다. 네 형제는 각자 다른 생활고를 겪고 있다. 큰아들 구유푸(顾有富, 钱有法 분)는 외동딸 구시(顾喜, 彭璐琦 분)의 결혼 문제로 갈등하고, 둘째 아들 위유루(余有路, 章仁良 분)는 어부로 생활하면서 외동아들의 신혼집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셋째 아들 위유진(余有金, 孙章建 분)는 빚에 시달리며 다운증후군 아들을 홀로 키우고, 막내아들 위유훙(余有宏, 孙章伟 분)은 철거 공사 인부로 노총각이다.
이 영화는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郎)의 《도쿄 이야기》(1953) 그리고 대만 뉴웨이브 영화 감독 양더창(杨德昌)의 《하나 그리고 둘》과 허우샤오셴(侯孝贤)의 《비정성시》에서 가족 유형의 주제와 촬영기법 등의 영향을 받았다.
사계절에 따라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푸춘강 자연풍광과 더불어 사람들의 삶의 모습도 그림처럼 펼쳐진다. 영화에서 계절은 여름 가을 겨울 봄으로 이어지며 3대 가족의 이야기와 푸춘의 풍물을 담았다.
감독의 고향 푸양(富阳)은 2016년 항저우에서 개최되는 G20 정상회담에 앞서 2015년에 시(市)에서 구(区)로 행정구역이 바뀌었고 고대 도시 푸양은 현대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제 2022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항저우시는 경기장을 건설하고 주변 도시는 철거와 건설이 진행 중이다.
감독은 고향 푸양에 관한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기울였다. 푸춘강은 저장성 중부 하류로 길이 68킬로미터, 너비 500-1000미터이며, 퉁루(桐庐)와 푸양 두 개의 지역을 지난다. 동한(东汉)시대 엄광(严光, BC39-41)은 광무제(光武帝) 유수(刘秀)와 동문수학했던 친구지만, 조정의 부름을 거부하고 푸춘산에서 은거하며 지냈다.
송원(宋元)시대 황공망(黄公望 1269—1354)은 80세 고령에 푸춘강에 기거하면서 사계절의 풍광을 화폭에 담았는데, ‘푸춘산거도(富春山居图)’는 황공망이 3년간(1347-1350년) 그린 수묵화로 중국 10대 명화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황공망은 사계절의 풍광을 구분하고 또 연관지었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고, 여름은 수목이 울창하며, 가을은 만물이 소슬하고, 겨울은 운무가 자욱하여 암담하다고 여겼다. 황공망 사후 600여 년이 지난 뒤 젊은 신예 감독 구샤오강은 영원과 순간이 담긴 화폭을 영상으로 옮기려고 하였다.
노모 바이위란은 두 번의 혼인을 겪으면서, 네 아들의 성씨가 다르다. 첫째는 구씨이고 나머지 세 형제는 위씨이다. 자식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어머니 부양을 회피하고 또한 어머니를 돌볼 때는 이익을 챙기려고 한다. 그러나 이들 형제의 태도는 사악함보다는 연민을 느끼게 한다.
큰아들 구유푸는 식당을 경영하고, 병원에서 어머니를 모셔 오지만 아내는 시어머니가 집을 막내에게 준다는 말에 감정이 상한다. 큰아들 부부는 딸과 교제하는 초등학교 교사 장이(江一, 庄一 분)의 직업은 안정적이지만 낮은 봉급이라 매년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 때문에 자기 집 장만은 요원할 거라며 집에 들어와 인사도 못하게 한다.
둘째 아들 위유루는 어부로 작은 배에서 생활하며 밤에 물고기를 잡아서 낮에 내다 팔았다. 큰형 식당에 여러 해 동안 물고기를 댔지만 돈을 받지 못하고 있다. 둘째 아들 부부가 소유한 도시에 있는 구옥은 철거되어 폐지 공장에 다니는 아들에게 신혼집을 마련해주려 전전긍긍한다.
셋째 아들 위유진은 도박에 빠지게 되고 빚쟁이는 그의 집 주위에 빚을 갚으라는 현수막을 걸어놓고, 큰형의 식당을 찾아가 빚을 갚으라며 기물을 부수기까지 하였다. 위유진은 양로원에 계신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와서 극진히 보살피지만, 빚을 갚기 위해 개설한 사설 도박장에 경찰이 들이닥쳐 결국 그는 붙잡혀가고 어머니는 가출하여 돌아가신다. 위유진이 다운증후군의 외아들과 치매 걸린 어머니를 애틋하게 대하는 모습은 도박에 빠진 그를 질타하기보다 연민이 들게 한다.
막내아들 위유훙은 노총각으로 순수한 사랑을 동경한다. 위유훙은 철거 인부로 도시의 주택을 철거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엽서를 읽으며 낯선 이의 사랑 이야기에 감동한다. 그는 성묘하고 내려오면서 어머니의 산소가 있는 산을 올려다본다. 비록 아프다 돌아가셨어도 자신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였다.
감독은 네 형제가 푸양의 다양한 면모를 말해준다고 여긴다. 큰아들이 운영하는 식당은 도시의 복잡한 생활을, 둘째 아들의 어부 형상은 요원한 곳과 과거를, 셋째 아들의 도박은 도시의 어두운 그림자를, 막내아들의 철거 노동은 현대 도시의 개발을 대변한다.
감독은 부모가 식당을 운영하고 주택이 철거되는 경험을 했다.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당대 중국인이 겪는 도시 개발과 철거, 자녀의 혼인, 부동산 폭등과 구매난, 금전만능, 부모부양 등 다양한 문제를 다루었다. 감독은 민족문화 속에 생성한 자신의 세계관을 영화언어로 잔잔하게 풀어냈다. 장(江) 선생이 교실에서 황공망의 푸춘산거도를 띄우고 중국의 산수화를 학생들에게 설명한 후 영화의 카메라 앵글은 이 그림을 스캔하듯 천천히 지나가고, 그림 속 고깃배는 장면이 전환 되어 현실 속 둘째 아들 위유루의 배로까지 이어진다.
푸춘강 위 산턱에 있는 수백 년 수령의 녹나무를 중심으로 남녀 두 커플을 클로즈업하는데 넷째 아들 위유훙과 맞선을 본 여성 그리고 장 선생과 구시가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분할되다 다시 겹쳐진다. 셋째 아들 위유진과 그의 아들 캉캉(康康)이 하얗게 눈 내린 수많은 나뭇가지 사이로 설산을 오르는 모습이 희미하고 자그맣게 화면에 들어온다.
두루마리의 화폭이 펼쳐지는 듯한 산수화의 전통 미학이 영상 미학으로 전해진다. 또한 영화는 푸양의 자연과 서민의 삶을 담은 민족지처럼 들려준다.
푸양의 어민(渔民)은 은사(隐士)의 상징으로 동한시대 엄광에서 시작되어 송원시대 화가 황공망으로 이어지고, 근현대 시기의 푸양은 문인 위다푸(郁达夫)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감독의 고향에 대한 사랑과 전통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영화 곳곳에 물씬 드러난다.
장 선생이 강에서 수영하는 장면은 12분간의 롱 테이크로 처리되고, 이어서 장 선생과 연인 구시가 제방을 거닐면서 나누는 담소 장면도 상당히 길다. 강물에서 육상으로 움직이는 인물을 묘사하여 강, 육지, 인물이 하나가 되어 유기적인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이는 산수화를 감상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끝자락에 ‘권1 완(결)’이라는 자막을 띄웠다. 감독은 지리, 역사, 인문이 서린 푸춘강이 쳰탕(钱塘)강을 거쳐서 동해로 들어간다고 보고 영화의 3부작을 계획하고 있다. 제1권은 춘강, 2권은 쳰탕강, 3권은 동해(东海)이다.
영화의 끝에 등장인물들이 푸춘강가에 다시 모이고 시간은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시간과 공간의 반복과 무한함이 푸양이라는 세계에서 펼쳐진다고 말하는 듯하다.
사진 | 바이두 김영철 | 한양대학교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