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여성 감독 쏭신잉(宋欣颖)이 연출한 이 영화는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공식 초청작이며, 2018 도쿄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장편경쟁부문 애니메이션상 수상, 제55회 대만 진마장(金馬奬) 애니메이션 대상을 수상하여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았다.
쏭신잉 감독은 자전적 이야기를 실사 영화로 제작하려고 했는데 애니메이션에 더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영화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감성과 미국 디즈니의 몽환을 닮았다는 비평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대만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영화는 6살 린수치(林淑琪)가 부모와 함께 덜컹거리는 이삿짐차를 타고 남부지방인 가오슝(高雄)에서 북부 신좡(新莊) 행복로 168호로 이사 오면서 시작된다. 린수치는 부모의 기대 속에 대만의 명문학교 북일여고와 대만대학교에 진학한다. 졸업 후 그녀는 친척의 소개로 미국에 건너가서 직장을 다니다가 미국인과 연애하고 결혼하였지만 남편이 아이를 원치 않자 이혼한다. 그녀는 외할머니의 부고를 전해 듣고 대만으로 돌아와 부모와 살게 된다.
영화의 제목은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영화는 성인이 된 관객에게 어려서 꾸던 꿈을 이루었는지 묻는다. 어릴 때 그 많던 꿈을 왜 성인이 돼서는 하나도 이루지 못했는지를 묻는다. 이 애니메이션은 어린이 동화 기법을 사용하였지만 실은 어른 동화에 가깝다. 꿈과 현실을 오가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개인에서 사회, 국가로까지 확대된다. 그 안에는 대만의 종족과 계층의 갈등, 정치와 사회의 변화 등 다양한 양상을 내포하고 있다. 영화의 이야기는 주로 주인공 린수치의 환상과 기억을 통해 어린 시절과 성인의 현실 사이의 시공간을 오가며 전개된다.

어린 시절의 꿈과 현실의 곤혹 이 영화는 초능력과 판타지가 동심을 자극하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전환기 시대의 각박한 현실 속에 아픔을 고스란히 받고 성장한 세대를 조명한다. 지방에서 서울 근교 위성 도시로 이사 온 린수치의 가족이 사는 집 근처에 즐비한 공장들은 매연을 뿜어내고 있었다. 어린 린수치는 오염된 하늘을 계란노른자나 딸기 아이스크림으로 상상한다. 아버지는 공장 노동자로 취업하고, 어머니는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부품 조립 부업도 한다. 아버지는 공장에서 일하다 다리가 다쳤는데 겨우 대만 달러 1만 원을 받고 강제 퇴직을 당한다. 퇴직한 아버지는 아파트 야간 경비원을 하면서 욕먹는 것이 예삿일이다. 매주 복권을 사서 당첨될 날만을 고대하는 것이 아버지의 유일한 희망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노래 반주기에 맞추어 노래 부르기를 즐기는 활달하고 강한 성격이지만 딸의 학업을 위해서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린수치의 부모는 외동딸이 의사가 되어 집안 형편이 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린수치는 자신의 꿈을 좇아 대학 진학 때 문과에 지원한다. 그리고 노동자를 위해서 데모하는 모습이 어머니에게 발각되기도 한다. 린수치는 대학을 졸업한 뒤 신문사에 취직하지만 집안 살림에 큰 보탬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 방황도 한다.
린수치의 어머니는 푼돈이라도 벌기 위해 사람들이 버린 빈병을 주워 모은다. 한 번은 버려진 줄 알고 양파를 주웠다가 도둑으로 몰려서 경찰서에 잡혀간다. 어머니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딸에게 수도와 전기요금 등 생활비를 독촉한다. 린수치는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이 보탰던 생활비를 저축해서 몰래 넣어 둔 돈 봉투를 발견하고는 가슴이 먹먹하였다.
린수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쉬성언(许圣恩)과 좡베이디(庄贝蒂)와 친하게 지낸다. 린수치와 그녀의 친구들은 학교에 가둬둔 비둘기를 하늘로 날려 보내면서 지붕 위에서 각자의 꿈에 대해 말했다. 상상력이 풍부한 린수치는 커서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쉬성언은 돈을 많이 벌겠다고, 좡베이디는 미국에 가서 아버지를 만나겠다고 말했다.

어린 쉬성언은 사원 앞에서 신들린 채 복권번호를 예측하는 일로 집의 생계를 보탰고, 성인이 되어서는 오토바이 수리점을 운영하다가 1999년 9월 21일 규모 7.6에 이르는 대지진으로 건물이 붕괴되어 죽게 된다.
좡베이디는 노랑머리와 푸른 눈을 가진 소녀로 대만에 주둔하던 미군 병사와 대만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미국이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단교하고 미군은 대만에서 철수하여 어머니가 홀로 딸을 키워왔다. 좡베이디는 타이중(臺中)에서 어머니가 보내 온 초콜릿을 아버지가 미국에서 부쳐온 것이라고 믿었다. 좡베이디는 자신이 외국인이 아니라 대만인이라고 믿었지만, 사회에서 영어도 못하는 혼혈아로 취급받아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어머니처럼 술집에서 춤을 추고, 길에서 빈랑(檳榔)을 팔면서 아이 둘을 혼자 키운다. 베이디는 그녀의 딸이 다문화 친구가 놀림 받는 것에 화가 나서 싸운 것을 보고 가슴 아파했다.
70년대에 출생하여 성장한 세대는 21세기에 중장년이 되어도 형편이 그리 나아지지 않고 부모세대의 어려운 처지가 자신의 후대로 이어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한다.
사회의 변화와 요동치는 꿈 대만 사회는 원주민, 본성인(명대시기 한족 이주민), 외성인(1945년 전후 한족 이주민) 등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지고 사람들은 사회와 정치의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갈등을 겪어 대만의 역사는 상처와 치유의 반복이었다. 사회의 약자인 어린 세대와 원주민에 가해진 고통은 더욱 심하다.
1974년 출생인 감독 쏭신잉은 여주인공 린수치의 생일을 1975년 4월 5일로 설정했는데 이 날은 장제스(蔣介石) 총통이 서거한 날이다. 그리고 1년 뒤 1976년 9월 9일에는 마오쩌동(毛澤東)이 죽는다. 중국 근현대사의 두 거인이 1년 사이로 죽으면서 중국은 문화대혁명의 종식과 개혁개방의 문호가 열리고, 대만은 1987년 계엄해제와 더불어 민주화의 전기가 마련된다. 영화는 1975년 이후의 대만의 주요 사건들을 파노라마방식으로 영화 속에 삽입하였다. 장제스 총통의 계엄시대와 계엄해제 이후 장징궈(蔣經國) 서거(1988), 민진당 소속 천수이볜(陈水扁)의 총통 당선을 클로즈업하면서 린수치의 어머니는 마잉주(馬英九) 총통과 찍은 사진을 자랑스러워한다. 영화는 대만의 정권 교체를 유머러스하게 처리하였다.
원주민은 제서우로(介壽路, 장제스 탄신 기념)에서 카이다거란대도(凱達格蘭大道, 원주민 카이다거란족을 기념)로 개명한 총통부 앞의 길에서 자신들이 산지(山地) 동포가 아니라 원주민이라고 기득권 세력인 한족에게 외쳤다. 화롄(花蓮)에 사는 린수치의 외할머니는 아미(阿美)족 원주민으로 빈랑을 씹고 담배를 피워서 린수치의 학교와 동네 아이들은 외할머니를 야만인이라고 놀렸다. 한족인 외성인은 빈랑을 씹는 원주민의 습속을 비하하였다.
린수치의 사촌오빠 아원(阿文)은 계엄 시기 정치적인 금서를 읽다가 붙들려가서 고문을 받고 색맹이 되었고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떠났다. 린수치는 사촌오빠의 이야기를 교실에서 말 했다가 선생님에게 주의를 받았다. 린수치가 다니는 학교에는 장제스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교실 안에는 반공, 대륙 수복이라는 표어가 걸려 있다. 학생들은 표준어를 사용해야 하고 대만 방언을 쓰면 벌금을 내야 했다.

린수치와 쉬성언, 좡베이디 세 친구는 자유분방한 행동으로 인하여 교실 밖에서 벌을 서면서 교실 안을 훔쳐보니 마치 아이들은 선생님의 주문에라도 걸린 듯 병아리떼로 변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이러한 환상은 계엄 시기 획일화한 교육을 공포에 비유한 것이었다. 대만은 계엄이 해제되었지만 민주화의 구호는 사라지지 않았고, 고등학생 린수치는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서 거리로 나섰다. 원주민들은 한족(외성인·본성인)에게 불평등한 처우 개선을 요구하였다.
행복의 종착역 린수치가 곤히 잠들어 있을 때 그녀의 부모는 밤새 천장에서 새는 빗물을 바가지에 받아 냈다. 아버지는 딸이 멀리 미국으로 시집가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었다. 그리고 린수치의 부모는 임신한 딸이 미국인 남편과 헤어지는 모습을 지켜보고도 모른 체하면서 다시 함께 살게 되어 기쁘다며 ‘우리는 너를 지지한다, 이혼하면 뭐 어떠냐고’ 위로해 주었다.
먹을 밥만 있으면 행복한 것이라고 말하는 린수치의 외할머니, 돌아갈 집과 반겨줄 가족이 있으면 행복하다고 영화는 말한다. 하지만 쏭신잉 감독의 실생활은 부모는 늘 싸우셨고 할아버지는 무서웠다고 했다. 그는 현대 가정이 정을 붙여 살기 어려운 점을 인정하며 영화에서는 가족과 집을 다소 이상화하였음을 인터뷰에서 실토하였다.
부모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자식은 명문고와 명문대를 졸업하고서도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아메리칸드림을 좇아 미국에 갔지만 냉혹한 이국생활이 녹록지 않았다. 사회와 정치가 격변하여 진보(민진당)와 보수(국민당)가 돌아가면서 집권하였지만 서민의 삶의 무게는 가벼워지지 않아 개인이 고스란히 견뎌야만 했다.
밥을 먹게는 되었지만 행복하지 않고, 밥만으로 행복을 충족시킬 수 없다. 할머니가 바라던 먹는 문제가 해결되었는데 행복하지 않은 것은 지족(知足)이라는 덕성이 부족한 때문인가?

영화 속 인물들은 행복이란 목적지에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 제목을 행복으로 가는 도중이라 정했나 보다. 어린 시절 꿈을 꾸었지만 인생의 여정 속에서 꿈을 잃어버리거나 아님, 잊어버리고 산다. 어른이 되어 돈을 버는 기계나 소모품의 존재로 전락한 듯 현대인은 힘들고 지쳐있다. 영화는 미국이나 다른 것이 아닌 가족과 대만이라는 뿌리에서 희망을 찾고자 했다. 지치고 수고한 우리에게 삶의 여정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행복과 진정한 기쁨을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사진 | 네이버 영화 김영철 | 한양대학교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