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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3  통권 195호  필자 : 쑨빈  |  조회 : 3219   프린트   이메일 
[기획]
중국을 다시 생각한다


중국교회의 어려움 앞에 뜻을 모아 공동성명 발표를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통렬하게 밝힌 중국목회자들

대대적인 십자가 철거, 전국적인 교회 내 감시카메라(CCTV) 설치, 교회에서의 오성홍기 게양, 수많은 교회 폐쇄와 재산 몰수, 특정 교회에 대한 폭파, 일부 기독교들에 대한 개종 강요와 해고, 대규모의 선교사 추방 또는 입국 불허, ‘인터넷 종교정보서비스관리법’ 시행 예고 등 각종 법적 장애 조치 증대…. 수년째 계속되는 중국교회의 어려움에 일련의 목회자들이 뜻을 모아 공동성명 발표를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통렬하게 밝혔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문화대혁명 이후 사라졌던 난폭한 행동이 벌어지고 있다.”, “교회에 국기게양 등을 강요하고 미성년자의 믿음을 금지하고 있다.”,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쓰촨(四川), 광동(广东), 허난(河南) 등의 가정교회들이 올 들어 아무런 이유 없이 탄압을 받고 있다. 헌법이 정한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 “중국교회는 십자가의 길을 사모하고 신앙을 위해 고통을 당했던 선배 성도들을 본받으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화를 추구하겠다.”, “교회가 세속적인 악법을 거부하는 것은 정치적 목적이나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중국 사회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정부에서 세속권력으로 성경말씀을 판단하지 않고 신앙에 간섭하지 않는다면 기독교인들은 정권을 존중하는 것은 물론 정권과 중국 사회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라면 반드시 정교분립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다른 사회단체처럼 정부 부처와 법의 관리를 받되, 어떤 경우에도 관치 종교조직에 가입하거나 관리부서에 등록하지 않겠다.”, “복음을 위해서는 어떠한 손해도 감수하며 자유와 생명을 잃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겠다.”
 

쓰나미가 밀려오는 듯 착각이 들 정도로 ‘리얼(real)’하고 급격한 변화를 놓고 중국교회는 물론 세계교회가 크게 우려하고 있다. ‘냉동고 속 중국기독교’라 할 수 있는 상황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 언제까지 지속될지 속이 타들어간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중국교회나 세계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묻는 이들도 많다. 현황 파악과 함께 향후 선교적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해외교계의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정교(政敎)관계=국가의 종교지배형이라는 기초 위에 이뤄지는

중국에서의 종교자유와 종교활동의 자유


필자는 수년 전부터 작금의 사태를 예측하고 여러 경로를 통해 솔루션까지 나눈 바 있다. 중국교회와 기독교인 사이에 ‘한랭전선’이 폭넓게 걸쳐질 수밖에 없는 근거로 2가지를 들 수 있다. 그것은 2011월 9월 국가종교사무국이 개최한 ‘기독교계 애국인사’ 훈련반에서 국가종교사무국, 공안부, 민정부가 연명해 하달한 비밀문건과 2016년 4월 전국종교공작회의 이후 중국 정부가 기독교사설집회처(가정교회)에 대해 제시한 4가지 방안이다.
 

비밀문건에 따르면 1단계는 2012년 1월부터 6월까지 전국 각지의 가정교회를 낱낱이 파악해 처리 방안을 강구한다. 2단계는 2∼3년 동안 앞서 검토된 가정교회를 집중 정리한다. 3단계는 10년에 걸쳐 가정교회를 완전히 뿌리 뽑는다.
 

또 4가지 방안에 따르면 첫째, 정부 관리와 기독교양회의 지도를 모두 받기를 원하는 교회는 등기를 허락한다. 둘째, 정부 관리는 받아들이지만 기독교양회의 지도를 원하지 않는 교회는 임시등록을 해준다. 셋째, 정부 관리와 기독교양회의 지도를 모두 받기 원하지 않는 교회는 전환시켜 나간다. 넷째, 해외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정부 관리와 기독교양회의 지도를 받기 원하지 않는 교회는 척결한다.
 

이 모두 중국에서의 종교자유와 종교활동의 자유는 ‘정교(政敎)관계=국가의 종교지배형’이라는 기초 위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종교는 중국공산당(정부)의 정치적 권위를 인정하고 중국공산당(정부)의 영도와 정책을 받아들인다는 전제하에 중국공산당(정부)의 승인을 받을 수 있고 중국공산당(정부)과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0년대 본격화가 되고 있는 ‘기독교의 중국화’나 지난 2월부터 시행 중인 신(新)종교사무조례 등과 같은 종교관련 법 제정도 이 같은 흐름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중국 내 외국인 종교활동 사전신고와 참가자 신상정보를 제출하게 하는 것도 이에서 기인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 이 같은 통제는 기독교뿐 아니라 가톨릭, 불교, 이슬람교, 도교 등 5대 종교에도 공히 적용된다는 것이다.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에서는 사상 재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수용소에 구속되어 있는 무슬림에게 이슬람교에서 금기시 된 돼지고기와 술을 섭취하도록 강요했다. 새롭게 짓는 모스크는 물론 기존 건축물에도 이슬람 양식을 상징하는 초승달 장식이나 양파 모양의 돔을 철거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무슬림을 드러내는 흰 모자도 쓸 수 없다.
 

지난 8월 27일과 28일 중국의 대표적 고찰인 허난성 소림사(少林寺)와 윈난(雲南)성 원통사(圓通寺)에서 예전과 다른 행사가 열렸다. 국기게양식이 거행된 것이다. 오성홍기 게양은 지난 7월 31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전국종교기관 연속회의에서 “종교활동장소에 국기를 게양함으로써 국가의식과 공민의식을 고취해야 한다”라는 제안에 따른 것이다. 국기게양이 중화민족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당의 명운이 국가의 명운, 자신의 명운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논리이다. 이날 회의에서 헌법과 국기법은 물론 국기에 대한 기본의식과 게양의식에 대해 학습해야 하며 국기에 담긴 혁명선열들의 사적과 애국, 분투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도광양회정책을 버리고 중국의 꿈실현을 위해

야심찬일대일로 프로젝트를 강력 추진하면서 미국과 무역전쟁 중인 중국
 

종교를 둘러싼 이런 초강수와 더불어 현재 중국을 생각할 때 고려해야 할 주요 변수로 대내외적으로 직면한 새로운 도전을 들 수 있다. “빛을 감추어 밖에 비치지 않도록 한 뒤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라는 의미의 도광양회(韬光养晦)정책을 버리고 ‘중국의 꿈(中国梦)’ 실현을 위해 야심찬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강력 추진하면서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 등 예상하지 못한 끝 모를 저항에 직면해 있다. 중·미 무역전쟁의 충격으로 올해 중국의 3분기 경제성장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1분기 6.4% 이후 최저치인 6.5%를 기록했다. 특히 지방 정부를 중심으로 투자 부진에 빠져 3분기까지 고정자산투자 증가율은 5.4%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9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위안화가 심리적 저지선인 달러당 7위안에 바짝 다가서며 중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도 고조되고 있다. 위안화는 중·미 무역전쟁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3월 이후 달러 대비 가치가 10%까지 빠지면서 7개월째 하락세이다. 2008년 5월 20일 이후 최저치이다.
 

한편 인민일보 11월 1일자에 따르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은 시진핑(习近平) 국가주석 주재로 10월 31일 회의를 통해 “현재 경제 운영이 안정적인 가운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면서 “경제 하방 압력이 커지고 있고 일부 기업들의 경영 어려움이 크다”라고 토로했다. 또 “장기적으로 쌓인 리스크가 드러나고 있다”라며 “이를 매우 중시하고 예측성을 강화해 적기에 대책을 택할 것”이라고 했다. 중앙정치국은 “현재 중국의 경제 상황은 장기와 단기, 내부와 외부 등의 요인이 함께 작용한 결과”라며 “경제가 고속성장 단계에서 고품질 발전 단계로 전환하고, 외부 환경 역시 심각하게 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경기 둔화 우려를 중국 지도부가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제정책 조정 가능성이 가시화가 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과의 통상 분쟁과 불확실성 확대로 2019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6.2%,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은 내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6.3%에 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중국 경제성장률은 2014년 7.3%를 기록한 이래 7%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역사상 첫 국제수입박람회도 서구 주요국가 정상들이 참석하지 않는 반쪽 이벤트로 전락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올해를 시작으로 매년 박람회를 개최하겠다고 공헌하고 중국을 상대로 무역적자를 많이 보는 국가인 미국을 겨냥한 수입 확대 표방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11월 5일 개막식에 2명의 대통령과 16명의 총리 등 18명의 해외정상과 130개국, 2800여 개의 기업이 참여하는 데 그칠 것 같다. 중국 외교부가 공개한 18개 정상 명단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라오스, 쿠바, 리투아니아, 케냐 등이며, 세계 무역의 75%를 점유하는 G20(주요 20개국)에서는 드미트리 메드베네프 러시아 총리만 참여한다. 미국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 180개 기업만이 참여할 뿐 정부 대표단은 전혀 없다. 중국의 무역정책과 개방의지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중국의 계산과는 매우 다른 결과로 이어지는 듯하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 외교부 화춘잉(华春莹) 대변인은 지난 10월 25일 브리핑에서 “중국에 시장을 개방하라고 그렇게 요구하면서 우리가 문호를 열어 초청하는 행사에는 정작 아무도 오지 않는다”라며 “말과 행동이 다르다”라고 비난했다.
 

시진핑 체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중국 내부의 지식인들
대세라고는 할 수 없지만 민심이라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다는 게 사실
 

“1978년 덩샤오핑 동지를 수뇌로 하는 전(前) 세대는 개혁개방의 과정을 시작했다. 위대한 혁명과 사상해방, 실사구시로 질곡을 벗어나 울타리를 뛰어넘었다. 우리는 반드시 이런 실사구시의 태도를 취해야 하고 분명한 사고 능력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분수를 알아야 한다(知道自己的份量). 함부로 잘난 체하면(妄自尊大) 안 된다. 함부로 자신을 낮춰서도(妄自菲薄) 안 된다.” 덩샤오핑(邓小平)의 장남으로 지난 10월 16일 제7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중국장애인연맹 명예주석에 재선된 덩푸팡(邓朴方)의 연설 내용의 일부이다. 이번 연설은 보도 통제 대상이 되어 어떤 중국 매체에도 보도되지 않다가 뒤늦게 알려졌다.
 

올해 들어 중국 내부 지식인 가운데 시진핑 체제에 대한 비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대세라고는 할 수 없지만 민심이라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다는 게 사실이다.
 

쉬장룬(许章润) 칭화(淸华)대학 교수는 지난 7월 22일 ‘현재 우리의 두려움과 기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개인숭배를 없애라”, “국가주석 임기제를 복원해야 한다”, “톈안먼(天安门) 사태를 재평가해야 한다” 등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쑨원광(孫文广) 전 산동(山东)대학 교수는 시 국가주석이 중동과 아프리카 5개국을 순방한 7월 20일 인터넷에 “중국엔 빈곤층이 여전히 많은데 해외 독재자들을 위해 펑펑 쓸 돈이 어디 있느냐”라며 일대일로정책을 강하게 성토했다. 그는 지난 8월초 자택에서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 인터뷰를 하다가 공안에 끌려가면서 “나에겐 표현의 자유가 있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8월 2일에는 칭화대학 동문(1981학번) 27명이 추용(邱勇) 칭화대학 총장에게 “후안강(胡鞍钢)의 국정연구원 원장직과 교수직을 모두 박탈하라”라는 실명 공개서신을 보내기도 했다. 후 교수가 누구인가. “중국의 집단지도 체제가 미국의 대통령제보다 훨씬 훌륭하다.”, “중국이 경제, 과학, 종합국력에서 이미 미국을 따라잡았다.”라고 한 그는 ‘슈퍼차이나론’을 적극 설파해온 중국 굴기의 대표되는 이론가이다.
 

장밍(张鸣) 중국런민(人民)대학 교수도 이날 ‘지록위마(指鹿为马) 하는 대(大)학자’라는 글에서 후 교수를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칭화대 동문들의 검증에 따르면 중국이 미국을 추월했다는 한 대학자의 계산은 초등생 수준의 산수였고 그마저도 틀렸다는 게 확인되었다”라고 일갈했다. “사슴을 말이라고 한다. 즉 흑백을 전도한다”라는 뜻의 지록위마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비난 수위가 꽤 높다고 할 수 있다.
 

저명한 학자인 장웨이잉(张维迎) 베이징대학 교수도 최근 강연에서 “강력한 일당 통치, 막강한 국유 기업 등을 통해 중국이 급속히 발전했다는 ‘중국모델론’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고 중국의 미래 발전에도 해롭다”라고 지적했다. 
 

현 사태에 대한 선교적 해법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필자는 우선 ‘두려움’이라는 단어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 문화가 외래 문화를 동화시킬 수는 있지만 외래 문화가 중국 문화를 변화시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 “기독교는 중국의 전통사상과 맞지 않는다.”, “아편전쟁 이후 체결된 불평등조약들, 즉 난징(南京)조약을 제외하고는 모든 조약이 기독교 집회와 선교의 자유를 주요 항목으로 포함시켜 중국인들에게 치욕을 주었다.”, “선교사들은 아편상들의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무관심한 대신 선교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아편전쟁이라는 있을 수 없는 부정한 수단에 동조했다, 중국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선교사들이 영국군의 작전까지 도왔다.”, “19세기 치욕의 시절, 중국인이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중국 정부의 통치를 받지 않고 외국인처럼 치외법권의 지위를 누렸다. 서양의 도움을 받아 교회는 재정이 넘쳐났다. 이는 중국인의 것을 빼앗아 기독교인들의 배를 채운 셈이다.” 중국공산당의 기독교에 대한 인상을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해도 근현대 중국인들이 기독교라고 하면 가지고 있는 인상이다. 
 

그렇다면 현 사태에 대한 선교적 해법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필자는 먼저 ‘두려움’이라는 단어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공산당 통치에 있어 종교는 아직까지는 강력하게 처리해야 할 단계에는 도달하지 않았지만 위협요소로 등장할 개연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등 서구에서 중국을 자극하고 도시가정교회를 비롯해 정통 가정교회가 종교사무조례를 적극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니 메스를 들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즉 뿌리가 더 깊이 내려 완전히 도려내야 하는 형국에 도달하기 전에 잔뿌리부터 쳐내야 한다는 의식이다.
 

기독교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시장경제, 더 나아가 중국의 꿈이 실현되는 데 도움이 될 때는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지만 체제에 크게 위협이 된다면 용납하기 어렵다는 게 중국공산당의 전통적인 입장이다. 중국이 인정하고 있는 5대 종교 가운데 이슬람교와 더불어 가장 선교적인 종교가 기독교라는 점에서 체제 밖 교회는 더 이상 허용하기 어려운 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 지도부 내 공감대로 자리 잡은 게 아닐까. 체제 내 교회도 중국의 종교정책 밖에 있을 때는 언제든지 치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중국공산당의 입장에 잠시 서 보면 지금의 환난의 과정을 일정부분 이해할 수 있다. 오히려 중국공산당에 대해 긍휼의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아울러 중국 지도부가 고난과 탄압이 증대되어도 종교는 결코 사라질 수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잊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비본질적인 것은 과감히 포기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매몰차다 할 수 있지만 십자가의 철거, 교회 내 감시카메라(CCTV) 설치, 교회에서의 오성홍기 게양 등은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십자가가 없고 감시카메라가 있고 오성홍기가 펄럭인다고 기독교 신앙이 흔들릴 수 있는가. 십자가가 없어도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감시카메라가 있다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기고 찬양하는 모습은 달라지지 않는다. 복음적인 설교 내용도 변질되지 않는다. 오성홍기가 게양되어 있다고 해서 교회가 아닌 것은 아니다. 기독교인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다. 그 사랑은 자국에만 머물지 않고 모든 민족, 모든 열방에까지 미친다는 게 다르다. 특정교회에 꼭 많은 사람이 모여야만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사람이 많을수록 목회와 양육, 제자훈련과 소그룹 모임 등이 여의치 않을 수 있다는 걸 중국교회는 물론 세계교회가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는가. 교회는 크기와는 상관관계가 없다. 주님의 부르심을 믿는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얼마든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갈 수 있다.
 

문제는 어떤 교회인가, 어떤 기독교인인가가 관건이다. 중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은 본질에 더더욱 치중할 때이다. 주변의 변화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묵상하면서 작은 가정 공동체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 속에서 기독교인답게 사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현란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실생활에서 적용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지고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좋아지는 기독교인의 삶을 살아갈 때 비기독교인들도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과연 어떤 분인지 궁금해 하지 않을까. 그때 우리 주변의 거룩한 변화는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이 세상에서 완전한 가정과 공동체, 완벽한 사회와 국가는 꿈꿀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환영받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고 중국교회가 분발하기를 바란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교회도 복음의 정수를 중국에 전해줄 수 있게 노력하고 중국교회가 필요로 하는 걸 채워주는 데만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 중국교회를 한국교회나 세계교회처럼 만들 수는 없다. 중국교회를 진정 섬겨야 할 주체는 중국기독교인이 아니겠는가. 중국을 다시 생각하는 시작은 원점에서부터이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공산당의 입장에 서 봐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더욱 분명해진다. 막히면 돌아가면 된다. 결국 그것이 지름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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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빈 | 중국인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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