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을 내리고 있는 따종쓰(大鐘寺) 시장-
1986년, 북경 시내의 서북쪽 싼환(三環) 옆에 농산물 시장이 하나 생겼다. 그 시장의 맞은편에 있는 따종쓰(大鐘寺)라는 절의 이름을 따서 따종쓰(大鐘寺) 시장이라고 불렸다. 처음에는 단지 채소만 파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시장이었지만,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채소 이외에도 각종 과일, 수산물, 곡류, 건어물 등의 직매장이 함께 들어서, 북경의 유일한 대형 농수산물 유통시장으로 성장하였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북경시민들이 먹는 채소의 절반 이상을 따종쓰에서 공급했다고 하니 따종쓰는 농민들의 피땀 어린 농산물들을 싱싱하고 싼 가격으로 베이징(北京) 시민들의 시장바구니로 옮겨주는 소중한 징검다리 역할을 해온 셈이다.
그러나 주먹구구식 시장경영방식과 무절제한 시장의 확충으로 인한 점포의 난립과 지저분한 시장환경 그리고 제반 시설의 낙후와 노화, 주변 교통의 혼잡 등의 문제는 수년 전부터 따종쓰 시장의 철폐와 이전을 고려하게 하였고 결국 따종쓰는 공식적으로 지난 2월 28일부로 문을 닫게 되었다.
철거와 점포정리 그리고 점포이전 등을 고려한 최대 4일간의 유예기간을 고려하더라도 3박 4일 이후에는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베이징 시민의 가슴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따종쓰의 마지막 날, 이미 이전을 마친 채소와 육류 점포들의 자리엔 빈 철망과 그 안의 쓰레기들만 나뒹굴고 있었다.
성이 장(張)이고 안훼이(安徽)성에서 왔다는 건어물상점의 주인은 한창 점포를 철거하느라 바빴다. 돈 좀 많이 벌었냐고 묻자 초창기에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사장이 되어서 나갔다고 소개하고, 자신은 처음에 채소가게 점원으로 일하다가 그래도 점포 하나 차리고 아들 둘 공부시키고 했으니 돈 번 것 아니냐면서 웃는다.
어디 갈 곳은 정했냐고 하자 거의 대부분의 점포들이 위취엔루(玉泉路)나 진시우따띠(錦綉大地)로 이전하는데, 자신은 위취엔루(玉泉路)로 옮겨가서 계속 건어물 장사를 할 것이라고 한다.
수년 전부터 철거가 예고되어 왔던 터라 상인들은 올 것이 왔다는 담담한 반응이었다. 현대화와 국가 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주인들이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다가올 새로운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도 엿볼 수 있었다.
후난(湖南)성에서 왔다는 리우(劉)씨 성의 아주머니는 처음 입주할 때 보증금 5만원(우리 돈 750만원 정도)을 내고 또 매달 3천원의 임대료를 냈지만 그래도 한 달에 순수익이 또 3천원은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장사를 한 지난달 28일에는 그 동안 자기를 찾아오던 단골손님들에게 채소들을 모두 무료로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늘 사람들로 붐비면서 중국 특유의 원시적 생명력과 활력으로 넘쳐나던 따종쓰(大鐘寺) 시장! 손님들을 끌기 위해 거나한 목소리로 물건값을 외치던 시장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떠나고 철골 구조물만 앙상하게 남아 스산한 분위기만 자아낸다.
베이징 서민들의 밑바닥 삶을 지탱해내며 17년 간의 영화를 누렸던 따종쓰 시장은 그렇게 조금씩 철거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엔 16만 평 규모의 대형 현대화 물류센터가 들어선다고 한다.
2008년 베이징(北京)올림픽까지 또 얼마나 많은 재래시장들이 사라져 갈까? 현대화에 자리를 내주고 점점 변두리로 밀려나는 오래되고 낡은 것들! 중국의 현대화가 전통과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루길 바라고 또 서민적인 인간미와 훈훈한 사랑은 영원히 철거되지 않길 바래본다.
출처 | chinap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