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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중국] 《탈주자들》- 주류의 삶 바깥으로 달아나 칩거를 택한 청년들
[신간도서] 석탄의 나라에서 녹색 패권으로 & 아브라함 카이퍼의 세 마리 작은 여우 외
2026.11.4  통권 291호  필자 : 변성래  |  조회 : 43   프린트   이메일 
[책 속의 중국]
《탈주자들》- 주류의 삶 바깥으로 달아나 칩거를 택한 청년들
_리잉디 지음, 김경숙 옮김 / 김영사(2026/9/29)/원제: 逃走的人
중국의 포털 사이트 바이두의 커뮤니티 ‘은거바(隐居吧)’라는 곳에 2005년에 첫 게시물이 떴습니다. 은사(隱士)‘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쓴 글이었습니다. 은거바에는 보통 남성이 많았습니다. 나이는 주로 20세에서 50세 정도까지입니다. 2021년 들어 상당히 활성화된 이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총 66만 명의 가입자와 700만 개의 게시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게시물을 통해 산과 들, 다리 아래 그리고 길거리 등 다양한 곳에서의 은거 생활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은거자들의 일상은 꽤나 낭만적인 분위기도 느껴집니다. 어떤 사람은 해변에서 적합한 은거지역을 찾기 위해 중국의 해류까지 연구한 끝에 최종적으로 산둥성 루산(乳山)시의 인탄(銀灘)에 집을 마련해 은거하기로 합니다. 

“내가 은거하는 곳은 루산이라 불리는 작은 도시이다. 모두 이곳을 유령도시라고 부른다. 2018년에 나는 330제곱미터(100평) 정도 되는 집을 구입했다. 1층에 정원이 딸린 중고 주택이었다. 한 친구는 나에게 ‘이xx야. 해류가 너랑 무슨 상관이냐? 어부도 아니면서’라고 말했다. (…) 대도시나 다롄(大連), 칭다오(青島), 웨이하이(威海)와 같은 좋은 해변지역은 고도로 개발되어 있다. 마치 이러한 도시는 쓸모없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고 해도…, 그래서 나는 결국 루산을 선택했다.”

이 책의 저자 리잉디(李颖迪)는 우한대학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GQ〉,〈에스콰이어〉에서 기자로 일했습니다. 논픽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2026년 스위스문화재단 프로 헬베티아(Pro Helvetia)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기자로 일하면서 중국 포털 사이트 바이두의 은거바 커뮤니티에 관심을 가지고 은거 생활자들을 취재했습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2년, 대도시 생활에 대한 회의감과 자기만의 집을 갖고 싶다는 충동을 계기로 탈주자들이 다수 머무는 ‘허강(鶴崗)’으로 이사해 그들과 함께 지내며 취재를 이어 나갔습니다. 그 3년간의 취재를 기반으로 이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허강에 살아보겠다고 간 것은 아닙니다. 막상 현지에 가서 취재를 시작해 보니, 상대방들이 도무지 입을 열지 않거나 아예 만나주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예 허강으로 이주하고 그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저자는 허강에 집을 구하기 전에 앞서 언급한 은거바를 주목하게 됩니다. 은거자, 도피자, ‘탕핑(躺平)족’, 도망친 사람 그리고 숨어버린 사람 등 그들을 한 가지 단어로 그들을 정의하려고 했지만 정확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2019년 혹은 그 이전에 은거바에는 몇몇 젊은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은거를 선택한 이유는 종교적인 신념이나 수행이 아닌 현실적인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을 주목합니다. 고향을 떠나 먼 도시로 가서 저렴한 집을 사고, 일하지 않은 채 집에 칩거하며 최저생활비로 살아가지만 도시나 마을의 편의시설, 예를 들면 수도와 전기, 인터넷, 난방 그리고 물류 등의 혜택은 그대로 누립니다. 그들은 대부분 “저는 허강으로 가서 3만 위안에서 4만 위안(한화로 약 650만 원에서 860만 원, 1위안당 216원의 환율 적용)으로 집 한 채를 사고 남은 돈으로 살아갈 계획”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허강이라는 도시가 가장 먼저 은거바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 역시 집값입니다. 2022년 중국 대도시의 집값은 제곱미터당 1만 위안(약 216만 원)을 오르내립니다. 베이징에서는 제곱미터당 4만 위안(심지어 하이뎬(海澱)구와 차오양(朝陽)구는 제곱미터당 9만 위안)에 달했습니다(아마 지금은 더 올랐겠지요). 상하이와 선전(深圳)도 막상막하라고 합니다. 직장인들이 대도시에서 집을 산다는 것은 수백만 위안에 달하는 거액의 대출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내 집 마련이 인생의 주도권을 넘겨주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남은 생애(대략 수십 년 동안)에 그들은 출근하고, 돈을 벌고, 주택 융자금을 갚는 마치 숫자 게임과 같은 과제를 완수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지요(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대도시에 살아갈 것을 작정했다면, 끝이 보이지 않는 무서운 궤도열차에 탑승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중간에 내리고 싶어도 마음대로 내리지 못하는 그 상황.

저자는 많은 은거 생활자를 만납니다. 처음에는 단지 젊은이들이 왜 일도 하지 않고, 사람도 사귀지 않으며, 연애도 하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어떤 삶을 선택하는가?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어떤 존재 방식을 선택하는가? 저자는 그 ‘선택’의 순간이 어떻게 찾아오는지 알고 싶었답니다. 그리고 선택한 뒤 그 사람들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저자는 그들의 입과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나름대로 노력합니다. 만나서 음식도 함께 먹고, 게임도 하고, 동네도 한 바퀴 돌아보곤 합니다. 필자 역시 궁금했습니다. (대도시에 비해서) 적은 돈으로 집을 마련했지만, 도대체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그곳에선 일자리가 있을까? 

은거자들은 대부분 대도시의 공장이나 회사에서 쉴 틈 없이 돌아가는 기계의 부속품과 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저자는 그들이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개인의 정신적인 측면에 더 중요했을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단조롭고 시끄러운 소리, 단일한 주류의 가치관 혹은 진부한 것에 대한 거부감이 우선인 듯합니다. 즉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성공하고, 집을 사고, 더 큰 집을 사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면서 본인은 점점 늙어가는 삶을 정식으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 대부분은 철저하게 과거의 생활을 감추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해서도 불투명하고,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에 스트레스받는 듯합니다. 아마도 대도시 생활에서 일도 일이지만,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인지 사람을 만나는 것을 힘들어하고 싫어합니다. 음식 배달 기사를 만나는 것조차 부담되어서 “벨도 누르지 말고, 문도 두드리지 말고, 전화도 하지 말고, 음식을 문 앞에 두고 가시오”라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합니다. 

필자가 궁금했던 점. 그들이 “통장에 얼마나 많은 돈을 담아놨는지 모르지만, 그 돈이 떨어지면 당장 먹고사는 일에도 지장이 올 텐데 어떻게들 살아갈까?” 했던 염려는 그들 일부는 나름대로 재택근무(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로 수입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더러 통장이 비어가면 대도시에 가서 임시직으로 일을 한 뒤, 돈이 어느 정도 모아지면 달팽이가 껍질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듯 다시 은거 생활이 시작됩니다. 

저자가 인류학자 위안창겅(袁長庚)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 중 삶에 대한 학자의 철학 이야기 중 옮겨볼 만한 대목이 있습니다. “과거 40년 동안의 급속한 발전은 부산물을 낳았습니다. 그것은 사회계층이나 배경과 관계없이 대부분의 사람이 공통된 삶의 논리를 공유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도시에 살든 농촌에 살든 자신의 미래에 대한 기대는 각기 다르지만 누구나 어떤 기대를 하고 살아갑니다. 바로 내가 열심히 일해서 후손들을 위해 일정한 재산을 남겨주거나, 후손들의 사회적 계층을 상승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노동의 가치와 젊은이들의 정서를 둘러싸고 부모 세대와 자녀세대 간의 심각한 갈등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이는 각자 자신의 감정과 역사적 경험에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세대 차이는 각자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인식과 경험의 부조화, 생활 경험의 차이,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









♣변성래 | 중국을 알고 싶은 중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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