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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5.3  통권 237호  필자 : 가오쓰민(高思悯)  |  조회 : 2669   프린트   이메일 
[오늘의 중국교회]
고향이 낯설면서도 집이 그리운 홍콩의 남은 자들
관뤼원(关瑞文): 천국 백성으로서 정체성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본토 홍콩 사람들

【시사논단 통신】 최근 1-2년 사이 홍콩 사람들의 이민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홍콩교회와 사회는 떠나거나 남은 사람에 관한 이미 어느 정도 굳어진 견해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최근 한 포럼에서 홍콩중문대학교 숭기대학신학원(崇基学院神学院) 부원장(교무)인 관뤼원(关瑞文) 교수는 떠나는 사람이나 남아 있는 사람 모두 집으로 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같다고 했다. ‘집[家]’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 상상했던 것과 다를 때 그들 또한 디아스포라와 같은 감정(심정)으로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별도의 회의에서 홍콩 사람들은 하나의 국적과 지역을 초월하여 본토와 천국 백성으로서 정체성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고 언급했다.

관뤼원 교수는 최근의 이민 붐에 대해 사람들이 떠나는 사람과 남은 사람들을 너무나 쉽게 둘로 나누지만 사람마다 원인이 매우 다양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학자 아브타 브라(Avtar Brah)를 인용해 흔히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고향에 대한 갈망(desire for homeland)’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많은 연구를 통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귀향에 대한 갈망(desire for homing)’이 있다고 지적했다. 관뤼원 교수는 이러한 관점에서 “남은 사람들이 ‘귀향(집)에 대한 갈망’이 있을 수 있고, 원인은 어떤 장소가 변해서 집 혹은 원래 상상하던 집과 같지 않을 때 더욱 집과 같은 느낌을 찾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디아스포라나 남아 있는 사람이나 같은 감정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건도신학원(建道神学院) 신학과 부교수 천웨이안(陈韦安) 박사는 관뤼원 교수의 주장에 동의한다고 했다. 그는 앞에서 언급한 두 부류의 사람들은 집(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같지만 사람들이 ‘집’에 대해 안 좋은 것을 보면 다른 반응을 보인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타지에서 ‘집’을 찾거나 만들기를 동경하며 해외 이민을 선택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집이 좋고 나쁨을 떠나 다른 지역들과 연계를 중시하고, 남는 것을 선택하고 ‘집을 잘 꾸민다’고 했다.

집의 개념에 대해서는 10여년 전 말레이시아에서 홍콩에 온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학교 조직신학 박사인 황허우지(黄厚基) 사역자가 홈리스(homeless) 개념을 제안했다. 자신은 말레이시아와 홍콩 모두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으며, 홍콩에서 오랫동안 살았음에도 여전히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여긴다고 했다. 

이에 대해 그는 “만약 홍콩 사람들이 다른 곳에 가서도 외부인 취급을 받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새로운 집을 만들 수 있을까”라고 물으면서, 상대방의 배경과 상관없이 진정한 앎과 수용과 사랑이 있을 때 어디서든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심리적 언어를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손님 환대(hospitality)가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관뤼원 교수는 거주지와 국적이 다른 사람들이 갖는 홈리스 감정은 이해하지만, 자신은 홍콩 토박이라 집에 대해 낯설게 느끼는 것은 아주 이상하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이런 느낌을 받을 때 두 가지 경향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첫째, 원래의 집을 찾아서 회복하고 싶고, 어떤 일을 하면 원래의 집으로 복원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둘째, 새로운 집을 만들면 진정한 집이라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홍콩 사람들은 이 둘 사이에 서 있고, 두 성향은 서로 다른 어려움이기 때문에 중간에 끼어 끊임없이 헤매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국적과 지역을 초월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
그럼 성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관뤼원 교수는 홍콩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들은 “나는 여기에 속해 있지 않기도 하고 속해 있기도 하다”는 정체성의 무게를 견뎌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뿌리내린 세계시민주의(rooted cosmopolitanism, 本土世界主义)와 탈식민주의 학자 호미 바바(Homi K. Bhabha)의 지방적 세계시민주의(vernacular cosmopolitanism, 通俗世界主义)로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 시민이면서 또한 세상에 돌아갈 곳이 있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홍콩 성도와 교회는 이 둘 사이에 끼어 있는 정체성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황허우지 박사는 앞에서 언급한 두 정체성이 공존하지 않으면 성도들은 역으로 땅에서 떠나야 하는 것인데 “사랑은 땅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구체적으로 행해야 하는 것이고, 본토를 사랑하되 본토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관뤼원 교수는 여기에 응답하면서, 지방적 세계시민주의는 장소와 국가를 초월한 정체성을 가리키며, 세계에서 귀결점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호미 바바의 견해처럼, 타자에게 속해서 ‘자기타자화(自我他者化)’의 정체성을 선택해야 하고 그리고 타자의 공동체에 속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계속해서 홍콩에 남은 사람들이 어느 때는 자신들이 홍콩 사람인지, 중국 사람인지, 중국 사람이 아니라고 과하게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오히려 홍콩 사람들이 하나의 국적이나 문화적 정체성을 초월해 타인과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을 수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천웨이안 박사도 중국인교회의 잘못된 집에 대한 개념, 즉 집을 교회당 안에서 예를 들어 교회 혹은 교파명 뒤에 ‘집’자를 붙여 교회에 대한 소속감을 강조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그는 교회의 집 개념은 당연히 교회와 국적과 본토를 초월해야 한다면서 “천국이 나의 집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면 세계와 사회에 뛰어들 수 있다. 이 개념은 뿔뿔이 흩어져 사는 사람이나 본토에 머무는 사람, 마찬가지로 해외에서 살아가지만 홈리스 감정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에 적용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가 나의 집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 역시 어떤 이데올로기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의 시대적 사명은 남은 사람이 집을 재건할 수 있게 돕는 것
교회는 사람들이 집을 짓게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첸웨이안 박사는 최근 해외교회가 어떻게 외지 홍콩 사람들의 집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는데, 예를 들어 해외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전통적인 활동을 함께하게 하는 것이 주효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비교적 적은 수의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집을 다시 지을 것인지에 대해 언급한다고 생각하는데, “홍콩이 점점 더 낯선 집이 되어 간다고 가정하면 교회는 더욱 중대한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남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집이 되도록 도와야 한다”며, 그 집은 단순히 홍콩의 향수나 의식 형태가 아니라 집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어 사람들에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게 하는 것, 이는 남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고 했다.

황허우지 박사는 예수님을 비유로 들어 그가 자신의 땅에 왔을 때 낯선 사람 취급을 받았으나, 자신을 낯선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여러 지역과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시며 이웃들(他者, neighbours)을 만나셨다. “아무리 초점이 바뀌어도 집을 재건하든 사람들을 재건하든 목적은 이웃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를 위해 노력할 수 있다. 그는 교회의 위치에 대해 질문을 받았는데 교회는 응집력이 있는 공동체(하나님의 집)이고, 또한 동시에 세상을 섬겨야 한다(타인/이웃을 섬기라고 부르심을 받았다). 황허우지 박사는 계시록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은 사람이 볼 수 없는 곳에 지어지고 있는데, 교회의 모든 일은 집을 재건하고 남은 사람도 재건해야 하는 것이며, 또한 새예루살렘에서 새롭게 창조될 일을 생각해야 한다, “만약 천국이 이미 이곳이라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또한 새 예루살렘의 한 부분이다”라고 했다.






출처 | 〈시대논단〉 (2021/12/31)
번역 | 阿桥·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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