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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20  통권 68호  필자 : 인병국  |  조회 : 3526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조선족 사회의 미래를 생각한다
조선족, 그들도 우리 형제

다시 이어야 할 다리
조선족, 그들도 우리 형제다. 우리가 처음 조선족을 만났을 대 그렇게 반갑고 감격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조선족과 우리 사이에 이(異)민족보다 더한 깊은 골이 패여 있다. 요즈음 조선족을 기피하는 거시이 중국과 관련된 교계의 전반적인 정서다. 중국 관련 사업을 하는 기독 실업인들은 물론 선교사들조차도 조선족을 기피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마지못해 조선족과 연관을 맺어도 극히 부정적이고 소극적이다. 

조선족과 의 뜨악한 관계는 피차에 큰 해악을 끼치고 있다. 국가적인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도 중국과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고, 세계선교를 감당하기 위해서도 중국선교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조선족이 없었더라면 한 국 기업의 중국진출은 어려웠을 것이고, 한국 교회가 중국에 선교사를 파송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조선족이 중국에 진출하여 자리 잡는 데까지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우리가 중국에서 사업을 하거나 선교사역을 하는 데 기여하는 바가 클 것이다. 만약 조선족을 잃게 된다면 중국에서의 우리의 입지는 크게 축소될 것이다. 조선족 역시 중국 밖에 한국이라는 고국이 있었기에 오늘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었다. 부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조선족 사회에 대한 한국의 지원은 상당한 것이었다. 만약 조선족이 한국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조선족 공동체의 존립이 흔들리게 될 수도 있다. 조선족 공동체가 와해된다면 우리는 한민족 공동체의 한쪽을 잃게 될 것이며, 중국선교와 북한선교의 동역자를 잃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난 세월 갖게 된 감정의 앙금을 다 씻어 버리고 공생의 길을 모색해야 할 때가 되었다. 조선족과 우리의 관계가 무엇인지 다시금 확인하고, 와해의 위기에 처해 잇는 우리 형제 조선족 공동체를 이해하고, 조선족 공동체가 중국에 삶의 터전을 잡은 건강한 한민족 공동체로서 설 수 있도록 섬기는 일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조선족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조선족은 우리 동족이다. 비록 50년 가까이 왕래는 없었지만 우리는 형제였다. 그런데 한국인과 조선족이 처음 만났을 때 가졌던 감격은 사리지고 이제 어쩌다가 서로 경원하고 심지어 미워하게까지 되었나? 조선족과 우리의 관계가 소원해진 데는 외적인 원인과 내적인 원인이 있다. 외적인 원인은 중국 정부의 정책과 관련이 있다. 중국 정부는 한민족(韓民族)인 조선민족을 중화민족의 일원으로 동화흡수하기 위해 조선족이라는 명칭을 부여하였고, 소소민족을 우대한 것처럼 보이는 소수민족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였다. 조선족은 중국 정부의 깊은 의도를 모르고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에 적극적으로 순응한 결과 재외동포들 가운데 유일하게 중국을 조국으로 섬기게 되었다.

그래서 조선족과 교류하면서 우리가 이질감을 갖게 된 것이다. 또한 중국 정부는 다방면으로 한국과 교류하면서 조선족을 소외시키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현재 중국 정부는 한국과의 교류에서 조선족을 제외시키기 위해 한국어에 능통한 한족 요원의 배출에 힘쓰고 있다. 조선족을 진정한 중국인으로 간주한다면 이럴 수 는 없을 것이다. 우리 또한 조선족과 손잡고 중국에서 일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의 책략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끌려들어 조선족을 소외시키게 되었던 것이다.
 

내적인 원인은 피차의 갈등요인이 작용한 것이다. 조선족은 우리에게 동족으로서의 큰 기대를 갖고 접근했는데 현실적으로 그 기대가 충족되지 못하여 섭섭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는 이산가족 찾기를 통해 만나게 된 가난한 가족이나 친척이 부유하게 살고 있는 가족이나 친척들에게 실망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가 조선족을 처음 만났을 때는 반가운 마음이 앞섰지만, 중국에서 조선족과 같이 사업을 하거나 선교사역을 하면서 접하게 된 그들의 부정적인 면이 조선족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였고,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근로자로 고용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우리와 다른 면이 있고 부정적인 면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경원시하게 된 것이다. 

러나 아무리 서로 기피하고 경원한다 해도 우리는 같은 민족이다. 혈연은 이해관계에 따라 맺고 끊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조선족이 중국을 조국으로 섬기고 있다 해도 그들은 우리의 핏줄이다. 이해상관에 관계없이 조선족을 우리 형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조선족 교회는 중국에 있는 중국 국적을 가진 조선족의 교회이지만 우리 주님이 피로 값 주고 사신 주 안에서의 형제이다. 이로 보나 저로 보나 우리 믿는 사람들에겐 조선족은 형제인 것이다. 우애를 돈독히 하고 서로 어려울 때 도와주고 도움을 받을 형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선족을 이용 가치에 다라 평가하거나 접근하려 하지 말고, 형제라는 전제하에 교류하고 협력하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겐 조선족이 처한 환경을 이해해주고, 그들의 허물을 사랑으로 덮어주고, 그들과 상부상조하면서 민족공동체, 신앙공동체로서의 지체의식을 회복하는 것이 요청된다.

와해의 위기에 직면한 조선족 공동체
조선족 공동체는 지금 와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21세기에 조선족 공동체가 건재하리라고 자신하는 조선족은 많지 않다. 조선족 지도자들도 조선족 공동체의 존속과 번영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 조선족이 중국에서 민족공동체로서 건재하지 못하다면 조선족의 비극이고 우리 민족 전체의 치명적인 손실이 될 것이다. 조선족 공동체가 와해의 위기에 직면한 것은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첫째, 조선족 공동체의 거주형태가 와해되고 있다. 현재 조선족은 집거(集居:조선족이 집단으로 마을을 이루어 사는 것)와 잡거(雜居:조선족과 한족, 기타 소수민족이 같이 살되 조선족의 비율이 일정 수준에 있는 것)에서, 잡거와 산거(散居:한족과 기타 소수민족이 절대 다수를 이루고 조선족은 너무 소수여서 비율조차 낼 수 없는 수준의 거주)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다.

원래 조선족이 민족공동체를 이루고 민족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집거와 잡거 형태의 거주지에서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언어와 문화를 보존하고 민족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다. 집거와 잡거에서, 잡거와 산거에로의 전환은 민족공동체로서의 존립을 위협한다. 여기서 야기될 수 있는 문제는 민족언어, 민족교육, 민족정체성, 민족의 혈통 문제 등이다.

조선족이 공동체로서 발전하려면 집거나 잡거 형태로 거주해야 하는데, 잡거나 산거로 거주할 경우, 과거 중국에서 되어진 일들을 볼 때 만주족처럼 한족으로 동화될 가능성이 크다. 조선족이 형성되기 전에 중국에 거주했던 우리 민족은 한족에 동화되어 더 이상 우리 민족이 아니었다. 한족에 동화된 조선족은 진정한 의미에서 한(韓)민족일 수 없다.


둘째, 정체성의 혼돈이 조선족 공동체를 와해시킨다. 조선족 정체성에 큰 혼돈을 겪었다. 순수한 한민족인 줄 알고 있었는데, 한국과 교류하면서 한국인의 정서와 다른 자신을 발견하였다. 중국인으로 살아보려고 했으나 역시 순수한 한족으로서의 중국인도 아니었다. 그래서 조선족은 중국에서 살고 있는 중국 국적의 한민족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정체성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가변적인 것이다. 조선족의 정체성은 가변적이기에 교육과 주변환경의 영향을 받아 변할 수 있다. 한족 위주의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한족 위주의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한족 속에 소수로 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선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한족화할 개연성에 크게 노출되어 있는 것이 조선족 정체성의 현주소이다.

셋째, 언어문제도 조선족 공동체를 와해시킬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조선족이 집거할 때는 조선어를 사용해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었으나, 이제는 잡거나 산거로 살게되니 조선어보다 한어(중국어)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유익에 따라 움직인다. 한어를 사용하는 것이 살아가는 데 유익하다면 한어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조선족이 조선어를 못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설사 조선어를 사용한다 해도 유창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조선족이 정체성을 유지하고 민족문화를 보존, 창달하며 우리와 깊은 교류와 협력을 하려면 조선어(한국어)를 능통하게 해야 할 것이다. 

넷째, 한족과의 결혼도 조선족 공동체를 와해시키는 요소이다. 조선족 1,2세대는 한족과 결혼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3,4세대로 넘어오면서 한족과 결혼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농촌의 조선족 처녀들이 도시로 가거나 한국으로 오면서, 조선족 공동체에서 신부감을 구하기 어려워진 청년들이 한족에게서 신부를 찾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조선족이 한족과의 통혼으로 혼혈이 가속화된다면 처가의 영향력이 강한 점과 아이들이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을 감안할 때 조선족 공동체가 와해되는 것은 필연일 것이다. 

다섯째, 민족교육의 와해가 민족공동체의 와해를 촉진시킬 수 있다. 조선족 공동체의 버팀목은 민족교육에 의존하는 바가 컸다. 그런데 거주형태의 변화로 인해 조선족 교육기관들의 통폐합이 빈번해지면서 민족교육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조선족의 민족교육은 존폐의 기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여섯째, 청소년들의 방황은 조선족 공동체에 어두움을 드리운다. 지금 조선족 사회에는 부모들이 대도시 또는 한국이나 러시아 등에 취업차 나가 몇 년씩 떨어져 있다 보니 가정교육의 기회를 놓치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라야 할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인위적인 결손가정에서 성장하게 되니 청소년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조선족 청소년들은 사회적인 위치에서 불리함을 갖고 있다. 학업의 경우도 조선어를 배우면서 한어를 배우기 때문에 한족보다 대입경쟁에 불리하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고교에서 일어를 배웠기 때문에 영어를 요구하는 영역에서 크게 불리하다. 한족학교를 다녔다면 한어는 유창하게 할 수 있으나, 조선어가 서툴거나 유창하지 못하여 한국 기업에 취업하거나 한국을 상대로 사업을 하려할 때 불리하게 작용한다. 

일곱째, 민족경제의 파산이 민족공동체의 와해로 이어질 수 있다. 조선족의 경제형편은 조선족 공동체에 저력을 부여하였다. 그런데 근래 조선족의 경제 상황은 매우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다. 특히 한국으로 노무송출과 관련된 사기 피해가 조선족 경제를 파산으로 몰아가고 있으며, 너도 나도 성실히 일해서 돈을 벌기보다는 ‘코리언드림’에 들떠 생업에 소홀해진 것도 큰 문제이다. 설사 외국에서 돈을 벌어 왔다 해도 그 돈으로 살 기반을 삼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한국에서 벌 수 있는 돈만 생각해서 중국에서 버는 돈을 하찮게 여겨 열심히 일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여덟째, 조선족 교회가 정체 내지 쇠퇴하고 있다. 조선족들이 중국 전역에 흩어지면서 조선족 교회도 점차 힘을 잃고 있으며, 조선족 마을에 있던 교회들이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이대로 간다면 대부분이 농촌에 있는 조선족 교회들은 힘을 잃게 될 것이다.

조선족 공동체를 다시 세우려면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조선족 공동체를 어떻게 섬겨야 그들의 섭섭함이 사라지고, 조선족 공동체가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굳건히 설 수 있을 것인가? 

첫째, 조선족을 섬기는 가장 시급한 일은 관계회복이다. 모든 일은 신뢰의 구축으로부터 시작된다. 신뢰만 구축된다면 교제와 협력의 길은 얼마든지 있다. 조선족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면 그동안 우리가 그들이게 범한 잘못과 죄악을 회개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들보다 좀 잘 산다는 것을 내세워 그들을 무시했던 것을 깊이 뉘우치고, 조선족을 이용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을 돌이켜야 한다. 조선족선교도 조선족 교회를 중국선교와 북한선교를 위해 활용하기 위한 방편으로 접근했던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하는 것은 잘못이다. 

둘째, 조선족을 파트너와 동역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그동안 조선족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은 경우라면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그럴지라도 조선족을 형제로 받아들인다면 그들과 좋은 협력의 모델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무조건 조선족을 대우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장단점을 잘 간파하여 지혜롭게 행한다면 조선족 형제들의 중국에서의 사역과 사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조선족들도 그로 인해 중국에서 살아가는 데 유익할 것이다. 

셋째, 조선족 청소년 교육에의 기여를 도모해야 한다. 조선족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준비이다. 중국 사회에서 유능한 인재가 되려면 중국어는 물론 영어,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해야 한다. 한국어나 영어는 조선족 공동체의 힘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래서 조선족 교사들에게 현대 한국어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연수할 기회를 제공하고, 조선족 학교들에 한글 도서들을 기증하여 한국어와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직업교육, 예를 들어 컴퓨터 계통의 기술을 습득하도록 교육과 훈련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도 추진해야 한다. 서울장로회신학대학교 총동문회가 창춘과 옌지에 설립한 컴퓨터학원은 나름대로 조선족 청년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기술을 습득한 청년들을 한국 기업이 채용한다면 그들 자신은 물론 조선족 공동체에 큰 유익이 될 것이다. 

넷째, 중국 전역에 흩어진 조선족이 공동체를 이루도록 도와야 한다. 지금 조선족은 중국 전역에 산재해 있으며, 동북삼성 이외의 지역에도 조선족이 수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들이 증가하고 있다. 그들 중엔 조선족끼리 모이는 교회들도 나타나고 있다. 단지 조선족들이 교회를 세워 신앙생활을 하는데 그치지 말고, 그들이 선교의식을 고취하여 선교의 역군으로 헌신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며, 선교하는 교회로 성장하도록 하는 것도 중국선교를 위해 긴급히 필요한 일이다. 

다섯째, 조선족에게 한국 입구의 편의를 제공하도록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한국에 와서 2년 정도 돈을 벌어 갈 수 있다면 조선족의 경제적 위기는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여섯째, 캠퍼스 사역에서 조선족 학생을 배려해야 한다. 조선족의 미래는 새로이 지도자로 부상할 학생들에게 달려 있다. 선교사들이 캠퍼스 사역을 할 때 조선족 학생들을 신앙적으로 인도하고 육성할 뿐 아니라 조선족 공동체를 이끌어 갈 지도자가 되도록 지도하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그들이 학업을 잘 할 수 있도록 장학금 지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
곱째, 조선족 가정이 부모들의 장기 출타로 결손 가정이 된 경우가 많으므로 교회가 이 영역에서 일정 부분을 섬겨야 한다. 특히 중국에서는 불법이지만 은밀하고 지혜롭게 주일학교 사역을 하도록 교사들을 양성하고 주일학교의 필요를 공급해 주어야 한다.

한국 교회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조선족 공동체는 급변하는 생활환경에서도 도태되거나 한족에 흡수 내지 동화되지 않고 의연하게 설 수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조선족 자체의 피나는 자구 노력이 있어야 한다. 거기에 한국 교회의 도움과 섬김이 절실히 요청된다. 조선족 공동체가 21세기에도 중국에서 건재하며 그 역할을 감당할 대 한국 교회는 사사기에서 멸절의 위기에 처한 베냐민 지파로 기사회생한 이스라엘의 기쁨과 보람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인병국/ 중국선교연구원 대표, 한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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