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기의 조선족 사회
중국의 조선족들은 1980년대 초기까지만 해도 약 200만의 인구 가운데 95%이상이 농어촌 지역에서 비옥한 만주벌과 벗하며 살아왔다. 이들의 문화는 순수하면서도 폐쇄적인 농경문화 그 자체였다. 그러나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조선족 사회는 미증유의 격변과 도전을 맞기 시작하였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나가기 시작하였고, 농지에서 땀 흘리는 처녀 총각들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후덕했던 인심도 날로 각박해졌고 정든 고향의 잊지 못할 배움의 요람들이 하나, 둘 폐교의 비운을 맞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농어촌 마을들은 노인들의 세계로 바뀌어갔다. 이처럼 과거의 단란했던 동의동식의 농경문화의 현장은 이제 꿈속의 추억으로 흘러가 버렸다.
이러한 조선족 사회의 격변의 원인은 대체로 두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중국이 80년대 이후로 추진해온 산업화에 기인한 것이다. 중국의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도시 근로자의 수입에 비해 농민들의 수입은 별로 증가되지 못했다. 이는 중공경농 또는 중상경농의 현상을 더욱 부추겼고, 내일을 염려하는 젊은이들은 앞 다투어 농어촌을 떠나버렸다. 이 같은 젊은 장정들의 이탈은 농어촌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두 번째, 같은 시기에 붐을 이루기 시작한 ‘코리언 드림’이 중요한 한몫을 담당하였다. 한국에서 벌어온 자본은 도시 진출의 발판을 제공해 주었고, 또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코리언 드림의 열기는 더욱 가열되어 갔던 것이다.
조선족 사회가 겪고 있는 이러한 격변에 대해 사회의 일각에서는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를 발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조선족의 미래적인 대안이 묘연하다는 사실에 있다.
문제의 초점
코리안 드림은 과거 전통적이고 폐쇄적인 농경문화 의식에 머물러 있던 조선족에게 드넓은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창구를 열어주었다. 이로 인한 조선족 사회의 가치관의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코리언드림이 조선족 사회에 가져온 결정적인 피해는 가정파괴와 함께 다음 세대의 교육에 대한 망각이다. 그 결과 많은 청소년들이 불안정한 가정배경에서 자라게 되었고, 도한 부모를 멀리 떠나보낸 학령기의 청소년들이 바른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현재 조선족 사회의 가장 우려되는 문제점은, 도덕의 타락과 가치관의 혼란 및 학령기의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의 퇴조현상이다. 과거 중국에서 예의 바른 민족으로 평가받던 조선족이 서글프게도 이제는 금전만능과 퇴폐풍조에 앞장서고 있다. 안정된 가정과 환경 속에서 받아야 할 정상적인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조선족 사회의 격변과 그 난제들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놓여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족 사회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해결해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책임 있는 행정기구나 단체들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필자는, 조선족 사회의 희망은 교회의 부흥과 발전에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교회만큼 자신의 민족을 위해 아파하고 헌신한 단체는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는 교회 자체의 발전뿐만 아니라 민족의 아픔에도 동참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족선교의 핵심문제
그동안 한국 교회의 조선족 선교는 다양하게 진행되어 왔다. 교회개척을 시작으로 교회당 건축, 정기적 또는 비정기적인 성경공부와 집회 등은 초기 선교의 주된 모습이었다. 체제의 특수성으로 인해 선교사의 비자와 공개적인 사역이 불간ㅇ하였기에 간접적인 선교방식이 많이 채택되었다. 고아원, 양로원, 목장, 기술훈련원 등 다양한 사역이 병행되었다. 이러한 사역의 열매로 중국 전역에서 조선족의 복음화 비율이 월등히 높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반면 기대하지 않았던 부작용들도 많이 나타났다. 예를 들면 조선족 교회에 만연한 물질주의와 한국 교회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 등이다. 이러한 현상의 내면에는 공통적인 한 가지 문제점이 있는데, 필자는 그것이 곧 일꾼 양성의 부재라고 믿는다. 이는 그동안 의 한국 교회의 중국선교에서 나타낸 한계점의 노출이기도 하다. 이제 조선족을 향한 한국 교회의 선교는 질적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양적인 것보다는 질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결과나 일보다는 과정과 사람에 더욱 중요성을 두어야 하며, 화려한 것보다는 소박한 것에, 그리고 많은 것보다는 몇 가지의 확실한 것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없이는 실추된 한국 선교사와 한국 교회의 위상을 되돌릴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일하는 선교사보다는 보여주는 선교사를, 실적보다는 영혼을 더욱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선교사를 보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사역의 핵심과제는 교회를 튼튼히 세우는 것이며, 그 관건은 준비된 일꾼을 양성하는 것이다. 조선족 교회를 위해 얼마나 효과적으로, 얼마나 많이 준비된 일꾼을 양육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장차 조선족선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평가기준이 될 것이다.
당면의 과제
한국 교회의 선교사역은 이제 좀더 미래지향적이고 이타적인 모습으로 전향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열정을 초월하여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하는 체계적이고도 미래지향적인 선교정책을 수립하고 관철해나가야 할 것이다. 선교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주관적인 자국 교회의 입장에서 평가할 것이 아니라, 선교대상국의 교회와 민족의 입장에서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곧 선교의 질과 성과를 향상시키는 데 결정적인 유익을 줄 것이다. 지금까지의 조선족선교에 대해서도 역시 조선족 사회의 입장에서 재평가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당면에 한국 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는 우선 코리안드림의 열풍을 보다 긍정적이고 생산저긴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조선족 사회는 지금도 코리안드림의 도가니 속에 들끓고 있다. 코리안드림의 열풍이 조선족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그야말로 엄창난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몇 년간의 고국체험을 하고 돌아간 조선족들이 대체적으로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더 많이 갖고 있는 점이다. 사실 이는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불법체류자라는 처지로 인해 항상 불안한 가운데서 지낼 수밖에 없는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있다. 안정된 직장, 정당한 보수나 대우, 법적인 보호 등은 전혀 기대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들은 한국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불공평과 차별 속에서 한국 사회를 바라보고 체험하게 된다.
더구나 마음대로 중국으로 왕래할 수 없기 때문에 고향에 두고 온 자녀들의 교육은 그들의 운명에 맡겨지게 된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 내의 중국인 불법체류자 수는 9만 명이 넘는데 그 중 다수가 조선족들이다. 물론 한국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이들은 불행과 고통을 자초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불법체류를 묵인하면서 자국민이 기피하는 3D직종에 그들을 내몰아 경제적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한국 정부의 정책 역시 인도적인 차원에서 지탄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 침묵하지 말아야 하며, 정부를 자극하여 정당하고 합법적인 외국인 취직루트를 법제화하여 불법체류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외국인 근로자들을 전도하고 돌보는 사역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만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불법체류자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조선족선교는 결코 탄력을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19세기 초 유럽과 미국 교회는 엄청난 인력과 재력을 투입하여 중국선교에 진력했다. 그러나 자국 정부의 이기적인 외교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아편전쟁’이라는 무력침략과 불평등조약을 통한 식민지적 약탈로 인해, 거대한 중국대륙에 반제(反帝).반식민지의 깃발을 내건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
지도자의 발굴 및 양성의 길
조선족선교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핵심적인 사역은 역시 교호의 지도자 양성을 위한 아낌없는 투자라고 생각된다. 중국 내에서 조선족 교회가 비록 타민족에 비해 양적으로는 상대적인 우위에 있을지 모르지만, 질적으로는 여전히 미숙한 처지에 놓여있다. 그 이유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준비된 일꾼과 지도자의 부재에 기인한 것이다. 이로 인해 조선족 교회의 성장은 이미 둔화되었고 영적으로 침체되고 있다.
지도자와 일꾼의 발굴은 중국 현지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의 몫일 것이다. 더군다나 학원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선교사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조선족 사회의 농경문화 탈피현상과 급격한 도시화는 이미 조선족선교의 중심이 농어촌에서 도시로 옮겨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농어촌을 탈피하여 금방 도시로 진출한 사람들은 지식과 기술이 없기 때문에 이들이 도시생활에 정착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지도자 양성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길은 학원 복음화를 통한 일꾼의 발견과 개발이다. 동북3성의 주요도시뿐만 아니라 관내(關內: 만리장성 이남 지역)의 대도시들에도 이미 조선족 대학생들이 없는 곳이 없다. 이들은 도시 생활에 가장 빨리 적응하고 있고, 또 도시에서의 거주권(호구)이 법적으로 확보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조선족 사회에서 도시의 삶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중국 사회의 미래를 탐구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지식인들인 것이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조선족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수 있는 일꾼들은 반드시 중국 사회의 현상과 발전에 대해서도 잘 알고 또 기여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화하여 대학생 시절부터 교회 봉사에 참여시킴으로써 복음사역에 헌신하도록 인도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의미 있는 사역이 된다. 그들은 성경을 통하여 민족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게 되고 중국 사회에서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들 가운데 복음사역과 하나님 나라 확장에 확실한 소명을 받고 자질을 갖춘 이들을 발굴하여 훈련시키는 것은, 조선족 교회와 조선족 사회의 미래 건설을 위한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지도자와 일꾼의 양성에 있어서 그 핵심적인 요소는 역시 준비된 목회자(신학교수를 포함한)의 양성이다. 중국을 무대로 한 조선족 사회라는 특정된 배경에서 뛰어난 지도력과 목회사역을 감당하려면, 확고한 소명과 아울러 훌륭한 성경교육과 신학훈련 및 국제적인 안목을 구비해야만 한다. 아쉽게도 현재 중국 내에서 이러한 교육과 훈련은 기대할 수 없다. 중국 신학교들의 수준 미달도 문제이거니와, 대학졸업자들이 신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이 막혀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가장 효과적인 양육방법은 소명 받은 인재들을 한국이나 제3국으로 보내어 훈련시키는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양육방법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과연 그들이 훈련을 마친 후 중국으로 돌아가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제대로 된 훈련을 받고 준비된다면 아무리 붙들어 두려고 해도 기필코 돌아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제 한국교회는 이러한 가장 의미 있고 장래성 있는 사역에 귀중한 것들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100개의 대형교회 건물을 지어주는 것보다 100명의 일꾼과 지도자를 양육하는 것이 훨씬 장래성이 있는 안전한 사역이라고 생각한다. 건물이나 시스템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은 건물과 사회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일꾼을 양육함에 있어서 몇 가지 유념해야 할 사항들을 말하고 싶다. 우선 충분한 시간을 두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일꾼은 결코 조급하게 서두른다고 키워지는 것이 아니다. 소명 받은 인재들의 유학생활에 있어서 신학수업이 전부라고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사회의 다양한 면과 다양한 문화에서의 인간의 삶을 통하여 인생을 더욱 깊이 깨닫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삶의 체험이 없는 신학은 공허하고 교조적인 지식으로 끝날 수 있다.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여유 있게 기다릴 줄 아는 자세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국에서 자란 그리스도인들은 주일학교의 경험이 전혀 없다. 따라서 이들은 청소년에 대한 신앙교육의 중요성은 알고 있을지라도 방법과 과정을 알지 못한다. 이들에게 주일학교의 다양한 현장들을 경험하도록 하는 일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중국은 아직 발달도상에 있는 나라이고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하다. 이는 중국 일꾼들에 대한 더욱 사려 깊은 배려와 존중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신뢰와 존중, 인정은 일꾼 양성에 있어서 가장 좋은 토양이 된다.
또 한 가지는 유학 중에 의도적으로 매년 한 차례 정도는 그들이 귀국 방문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훈련받고 있는 일꾼들이 중국의 현장감을 잃지 않도록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배우고 있는 지식이 중국의 실정과 너무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훈련된 지도자 양성만이 희망
물론 선교의 주된 목표가 사회정의의 구현이나 민족의 발전을 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교회가 든든히 서고 민족이 복음화될 때 그러한 것들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결과인 것이다. 조선족의 복음화와 그들의 내일은 훈련된 목회자와 지도자의 양성에 그 희망이 달려 있다. 이제 한국 교회의 조선족선교는 이러한 핵심문제를 놓고 기도하고 고민하며 마음과 정성을 모아야 할 것이다. 한 알의 밀이 썩어 수천, 수만의 열매를 맺게 되는 희망찬 사역에 과감하고도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할 줄로 믿는다.
서청/중국인 사역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