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점점 추워져 가는 요즈음이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분주한 일상의 삶 가운데 코 끝을 스치는 찬 공기를 느낄 때마다 생각 나는 사람들이 있다. 바쁜 일상을 잠시 떠나 생각에 빠지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추운 겨울인데 잘 지내고 있을까? 그곳은 여기보다 훨씬 더 추울텐데 건강하게 지내고 있을까 나를 잊은 것은 아니겠지? 어렴풋한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다시 떠올려 본다. 얼굴과 이름은 정확하게 연결되지 않지만 그래도 잊지 않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 본다. 그들은 다름 아닌 볼이 불그스름한 짱족의 소녀들과 귀여운 조선족의 아이들이다. 그들과 함께 했던 뜨거웠던 2002년의 여름!
기도하는 9명의 자매들
3년 전인 99년 여름이었다. 청년의 피 끓는 열정으로, 중국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처음 중국 땅을 밟았다. 찜통 같은 더위를 느끼며 중국의 낙후한 시골마을에 살고 있는 잊혀진 소수민족을 리서치하고 있었다. 수 많은 사람들, 지저분한 거리, 후덥지근한 날씨가 중국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그러나 중국에 있었던 그 3주간의 시간동안 내가 알 수 있었던 단 한 가지의 사실은 하나님이 이 중국을 참 사랑하신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중국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그 마음을 나에게도 나누어 주셨고, 나도 모르게 내 마음 속에도 중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싹트고 있었다. 3년후인 2002년 여름, 다시 한 번 중국 땅을 밟게 되었다. 특히 이번 방문에는 한동대학내에 여러 선교모임 중 영어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모임인MNE(Mission aNd English)가 있는데 그 중 하나님이 주신 마음으로 중국을 사랑하는 청년들과 함께 동행 하였다. 4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중국 서북부의 깐쑤성에 있는 소수민족 학생들과 동북부의 연변에 있는 조선족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하나님 한분만 의지하며 용감한 9명의 자매들이 중국에 갔다. 누군가는 말했다. “기도하는 9명의 자매들, 중국가다! 라고...”
여름에 중국에 가기로 하나님께 고백하고 나서도 함께 나갈 팀이 조직되지 않아 중국에 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구하며 고민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예배 시간에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서 가야한다고 말씀해주셨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시기에, 우리들도 하나님과의 약속에 신실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그 순간 방학기간을 드리겠다고 고백했던 것이 생각나서 지금까지의 고민을 접고 중국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벌써부터 중국에 갈 준비를 하고 있던 MNE 자매들을 만나 함께 중국에 가게 된 것이다.
D현 개발구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우리 팀은 먼저 시안(西安)에 도착한 이후 기차로 이동하여 깐수성(甘肅省)의 성도인 란쩌우(蘭州) 도착했다. 99년 리서치팀으로 란쩌우를 밟은 이후, 3년 만에 다시 밟은 란쩌우는 많이 변해 있었다. 서부대개발의 여파로 여기저기 공사판이 벌어져 있었지만, 도시는 많이 발달해 있었다. 공기도 많이 깨긋해진 듯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도 영적인 공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꽉 막힌 듯한 답답함이 느껴지던 그 땅이었는데, 이젠 황하 강변에서 찬양을 해도 별다른 긴장감이나 경계를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우리를 인도하시던 선교사님의 말씀으로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땅을 밟으며 기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긴 이동거리와 빡빡한 일정 가운데에서도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깐수성에 도착한 우리 팀은 다시 2개의 조로 나뉘어서 한조는 짱족 학생들을 가르치고 다른 한조는 여러 소수민족이 섞여서 사는 현(縣)의 중학교로 가게 되었다. 나는 짱족 마을로 가게 되었는데, 그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란쩌우(蘭州)에서 린샤(臨夏)를 거쳐서 가야 했다. 그 길에 3년 전에 리서치를 하던 마을을 지나가게 된 것이었다. D족의 중심가인 D현은 3년 동안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원래는 외국인 금지 지역이었는데, 이제는 개방되어서 외국인들이 들어갈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D현을 지날 때 우리를 맞은 것은 “D현 개발구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라는 간판이었다. 3년 전에 그 마을에 들어갔다가 외국인 라서 쫓겨났었다. 다시 그 마을에 들어갈 때는 D족으로 변장하고 발각 될까봐 긴장하며 그 길을 걸어갔었는데, 그 곳이 개방된 것이다. D현을 지나 우리의 목적지로 향하던 중, 리서치를 하러 들어갔던 G춘(村)을 지나게 되었다. 비를 피하기 위해 서 있었던 처마 밑, 우리를 재워줬던 집, 리서치 기간 동안 매일 걸어 다녔던 그 마을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그 때의 감격을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눈물은 흐르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벌써부터 울고 있었다. 란쩌우에 계신 선교사님께 들은 말로는 D언어로 성경이 번역되고 있다고 한다. 3년 전, 리서치를 하다가 공안에게 발각되어 그 마을에서 쫓겨 날 때에 장대 같은 소나기가 내렸었다. 나는 그 비가 하나님이 흘리시는 눈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한다(딤후2:9). 그 때 쏟아지는 비를 보며 우리는 매임을 받아 이 마을에서 쫓겨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매이지 않기를 구했었다. D현과 G촌을 다시 지나칠 때, 하나님은 3년간의 과정을 묵상케 하시면서 말씀해주셨다. 기어이 이루어 내시는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 땅을 잊었을지언정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셨다고 ...그리고 우리의 작은 기도도 잊지 않고 기어이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라고...
짱족의 에스더
큰 감격을 지니고 X현에 도착했다. D족 마을을 지나면서 하나님은 말씀해 주셨다. 우리가 결코 영어를 가르치러 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우리가 만나게 될 짱족을 위한 중보자로 가게 하신 것임을 알게 해 주셨다. D족을 기억하셨듯이 이번에 만나게 될 짱족을 기억나게 하는 사람들로 보내는 것이라고 말이다. 4명의 짱족 소녀들과 1명의 한족 소녀를 가르치게 되었다. 중학생이지만 이들의 영어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열의만은 정말로 대단했다. 오전과 오후에 3시간씩 영어를 가르쳤다. 준비해간 자료들이 있었지만 실력에 맞지 않는 것이라서 많은 자료들을 활용하지 못하고, 하루하루의 주어진 상황에 맞게 가르쳐야 했다. 우리의 학생들은 너무나 순수했다. 언어는 잘 통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눈빛과 행동을 통해서 우리에게 마음이 열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음으로 친구가 되어가는 일주일이었다. 오후에는 주로 아이들과 소풍을 가거나, 주변에 있는 라마 사원이나 짱족 문화를 소개 받으며 보냈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초원에 소풍가기 위해 새벽 일찍 숙소 앞에서 기다리던 열정 있는 소녀들이었다.
그들 중 제일 나이가 많았던 로렌(Larrene)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활달한 성격과 열정으로 열심히 영어를 배우던 아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란쩌우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고 싶다고 했다. 법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기도하던 중에 우리들은 로렌이 짱족의 에스더가 데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되었다. 자기 민족을 너무나 사랑해서 민족의 위기 앞에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고백을 하며 금식했던 에스더. 우리는 로렌의 모습에서 에스더의 모습을 본 것이다. 로렌이 짱족의 에스더가 되기를 간절히 축복하며, 짱족의 복음화를 위해서 죽으면 죽으리라고 고백하며 복음을 전할 에스더가 되기를 기도하며 헤어지기 전 날 에스더라는 이름을 선물했다. 우리의 설명을 들을 로렌은 6년 넘게 쓰던 로렌이라는 영어이름을 버리고 이제는 에스더라는 이름을 쓰겠다고 울면서 고백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이 열리고 사랑을 나누고 꿈을 나눌 수 있었기에 에스더의 눈물을 보고 우리도 울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연락은 끊겼지만 우리는 오늘도 짱족의 에스더를 위해 기도한다. 오늘도 볼이 빨간 에스더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
깐수성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조선족 아이들을 기대하면서 연변으로 이동했다. 연변에서는 우리와 함께 사역할 다른 팀을 만나 모두 8개의 소학교로 흩어졌다. 각각의 학교에서 영어와 컴퓨터, 체육, 미술, 음악 등을 가르치며 열흘간 사역하기로 되어 있었다. 오전과 오후에 시간표에 따라 수업을 하고, 저녁에는 숙소로 찾아 온 아이들과 해 질 때까지 놀았다. 육체적으로는 많이 피곤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열흘의 사역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아이들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면서 더욱 아이들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아이들과 개별 상담을 할 때였다. 질문을 하며 아이들의 상황과 고민을 듣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님과 떨어져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의 부모들은 할머니나 친척들에게 아이들을 맡교 놓고 한국이나 러시아, 아니면 중국의 다른 도시로 돈을 벌러 떠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참으로 사랑에 갈급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의 사랑에 갈급하고, 더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갈급한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들에게는 “하나님이 너를 많이 사랑하신다.” 라고 말 할 수가 없었다. 언어가 통했기에 짱족을 만났을 때보다는 의사를 전달하기에는 더 수월했지만, 절대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는 말 할 수가 없는 너무나도 답답한 상황이었다. 어쩌면 이 아이들에게는 영어 인사를 하나 배우는 것보다도 더 필요한 말일텐데 말이다. 말로 할 수 없었기에 우리의 손짓과 표정으로, 하나님을 대신해서 안아주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다. 후에 아이들이 보낸 쪽지에서 사랑, 기도라는 표현을 발견했을 때, 언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졌음을 알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졸업식을 끝으로 열흘간의 사역을 마치고 아이들과 헤어지는 시간은 정말로 울음 바다였다. 눈물 흘리며 우리가 탄 차를 쫓아오며 손을 흔드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우리도 눈물을 흘리며 떠나왔다.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더 이상의 싸구려 여행은 안된다 라는 결심을 했다. 아무리 헤어질 때 눈물을 뿌리며 헤어져도, 아무리 돈을 많이 내고 갔더라도 그것뿐이라면 싸구려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여행에 예수의 보혈이 흘러야 값진 여행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곧 지속적인 중보에 대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이들을 만나고 온 지도 벌써 4달이 넘었다. 과연 중국에서 했던 그 결심들과 고백대로 한국에서의 삶이 이어지는가를 생각해 보았을 때, 부끄럽기만 하다. 어쩌면 이렇게 그들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것은 그들을 다시 기억하고 중보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일지도 모르겠다. 짱족 소녀들을 만나기 이전에, 조선족 아이들을 만나기 이전에D족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D족을 통해서 한번의 지나치는 경험이나 인연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중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작은 수고와 미약한 기도를 결코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심을 D족을 통해 알게 하셨다. 이제 하나님은 동일한 음성으로 귀하게 만나게 하신 짱족 소녀들과 조선족 아이들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내 마음을 어찌 그리 잘 표현하였는지! 중국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 기도하며 계속 선포했던 찬양으로 부족한 고백을 글 맺는다.
“오늘 우리 눈물로 한 알의 씨앗을 심는다. 꿈꿀 수 없어 무너진 가슴에 저들의 푸른 꿈 다시 돋아 나도록 오늘 우리 눈물로 소망의 길을 만든다. 내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던 저들 노래하며 달려갈 그 길, 그날에 우린 보리라. 새벽이슬 같은 저들 일어나 뜨거운 가슴 사랑의 손으로 이 땅 치유하며 행진할 길, 오래 황페 하였던 이 땅 어디서나 순결한 꽃들 피어나고 푸른 의의나무가 가득한 세상을 우리가 함께 보리라. ”
사 강 | 한동대학교 국제어문학부 4학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