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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20  통권 80호  필자 : 편집부  |  조회 : 2912   프린트   이메일 
[중국 탐구]
차세대 리더십 분석


2002년은 중국에 있어서 또 하나의 거대한 역사적 전환기였다. 지난 11월에 있었던 제 16기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이하16대)가 그것이다. 후진타오(胡錦濤)를 중심으로 새로운 리더들이 세워졌다. 우선 외견상으로는 10명으로 늘어났으며, 나이가 현저히 젊어졌다. 이보다 더 눈여겨 볼 부분이 있는데 이들이 전원 공과대학 출신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왜 인물을 통해 중국을 알고자 하는가? 역사는 결국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져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계 미국 정치학자인 리청 교수는 저서인 『차이나스 리더스(China's Leaders)』에서, 중국의 리더들을 공산당 정권 수립 이후 마오 쩌뚱에서 후진타오까지 4세대로 나누어 그 특징과 성향을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은 그동안 공식적인 자료에서 잘 포착되지 않았던 인맥들, 소위 태자당(太子黨), 비서방(秘書邦), 상하이방(上海邦), 칭화방(淸華邦)으로 표현되는 중국 권력의 핵을 분석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또한 이번 16대에서 전면에 부상한 제4세대 지도자들을 ‘문화대혁명 세대’로 규정하고 있는데, 당시 이들이 홍위병이라는 특수한 체험을 통해 남다른 가치관과 결속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현재 제4세대 지도자들은 덩샤오핑 등장 이후 중국 지도층의 특징이 된 ‘홍(紅)과 전(專)의 겸비’, 즉 이념성과 기술 과학적 지식을 동시에 갖춘 지도층이기도 하다.

이세대의 대표적 엘리트 양성기구는 ‘중국의 MIT'로 불리는 칭화(淸華)대학이다.

「차이나스 리더스」는 이 학교출신 인맥의 명단과 경력을 이례적으로 상세히 소개하면서 이들이 제4세대 중국 정치에 미칠 영향력을 진단하고 있다. 또한 지도자들의 권력 이동 분석과 중국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에 대해서도 전망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그룹이 성장기 경험, 정치적 공고성, 이데올로기적 각성, 직업적 경력 면에서 이전의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보다 훨씬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 제4대 지도자들이 같은 세대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으므로 인민을 위한 정책을 잘 펼 것이고, 따라서 민주적인 발전에 좀 더 접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0명의 차세대 리더십 분석

후진타오(胡錦濤) :
21세기 중국의 새 지도자로 부상한 후진타오는 차(茶)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명문 청화대 출신 그룹으로 일컬어지는 칭화방 네트워크의 수혜자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82년 정치 선배인 쑹핑(宋平)의 천거로 40세에 최연소 중앙위원이 되었다. 그가 최고지도부의 관심을 끌게 된 계기는 티베트 독립운동 진압과정에서였다. 1989년 3월 5일 1만명의 승려들과 티베트인들이 수도 라싸 거리를 점거하는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자 그는 철모를 쓰고 진압을 진두 지휘했다. 후는 철저한 외유내강형의 지도자로서, 1998년 이후 국가부주석, 군사위원회 부주석까지 올랐다. 그리고 장쩌민(江澤民)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내일을 기다리는 지도자임을 보여줬다. 중국의 새로운 국가 주석이 된 후 진타오는 보다 유연한 사고 속에서 기존의 개혁개방을 이끌면서 서서히 장쩌민(江澤民)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쩡칭훙(曾慶紅) ; ‘꾀주머니’, ‘장쩌민 국가주석의 손 귀머리’로 통하는 쩡칭훙은 후진타오를 견제할 수 있는 장 주석의 측근이다. 당 중앙 조직 부장이며 서열 22위의 정치국 후보위원이 였던 그가 일약 정치국 상무위원에 오르게 된 것은, 장 주석의 끊임없는 지원과 함께 태자당의 선두주자라는 후광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중국 정치의 핵심세력인 ‘상하이방’으로 발전 한  ‘화동방(華東邦)’의 태두격인 쩡산(曾山)의 아들로서, 현재 공산당 내 5개 파벌 중 태자당 세력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 쩡칭훙 역시 베이징 공업학원 자동제어공학과를 졸업한 테크노크라트이다. 하지만 참모역할에는 발군일지 모르지만 현장 실무 경험이 적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원자바오(溫家寶) ; 원자바오는 주룽지(朱鎔基)총리를 이어 중국의 경제를 이끌게 될 부총리이다. 1998년과 1999년 여름, 대홍수가 중국을 강타했을 때 창강(長江)수해 현장을 장화 차림으로 누비며 독려하던 그의 모습이 중국 인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42년 9월 톈진(天津)에서 출생한 원자바오는 베이징 지질학원 지질구조학과 석사과정을 마친 고급 테크노크라트이다. 원자바오는 1985~1993년 이후 후야오방(胡耀邦)-자오쯔양(趙紫陽)-장쩌민(江澤民)등 3명의 총서기를 연달아 보필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비서방’출신이다. 탁월한 업무 능력과 근면, 성실의 미덕 때문에 상관들이 부침을 겪어도 그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앞으로 후진타오 총서기, 쩡칭홍 정치국 상무위원과 ‘신(新)트로이카’ 시대를 이끌어갈 원자바오가 원만한 대인관계, 치밀한 업무추진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은 틀림없지만 주룽지 전 총리와 같은 강력한 리더쉽을 갖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우방궈(吳邦國) : 우방궈(61)는 ‘반(半) 상하이인’으로 불릴 정도로 상하이에서만 27년(1967~1994년)을 보낸 상하이방의 맏형 격이다. 동시에 칭화방의 일원이기도 한 그는 장쩌민 국가주석에 의해 중앙 정치무대에 등장하게 되었다. 서민풍이 물씬 풍기는 그는 소탈한 성격으로 다른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원만한 인품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국유기업 개혁과 이동통신 등 IT분야를 담당했기 때문에 한국 기업들과의 교류가 많아 한국 내 지인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칭린(賈慶林) ; 자칭린(62) 전 베이징(北京)시 서기는 상하이(上海)에 한없이 밀리던 베이징이 환경․ 경제 도시로 탈바꿈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그가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함과 동시에 서열 4위에 오른 것은 모두 장쩌민의 덕택이라고 한다. 1940년 허베이(河北)공학원 전력학과를 졸업한 테크노크라트이다. 환경론자로 분류되는 그는 장 주석의 신임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유치 성공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그를 보는 곱지 않은 시각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는 3월 리루이환(李瑞環)중화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주석으로부터 자리를 물려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황쥐(黃菊) ; 황쥐(64) 신임 정치국 상무위원은 상하이시 당서기 시절, 장쩌민 국가주석의 ‘3개 대표론’에 대해 지방 차원에서 가장 먼저 지지를 표시한 장 주석의 심복으로 상하이의 발전에 힘써왔다. 그는 우방궈, 쩡칭홍 등과 함께 상하이방의 대표주자이며 동시에 후진타오 국가주석, 주룽지 전 총리와 함께 칭화방에도 속한다. 칭화대 전기공정과를 졸업한 황쥐는 1963년부터 줄곧 상하이를 떠나지 않고 공업 및 경제 분야를 담당해 온 테크노크라트이다. 그러나 그는 능력 면에서는 전임자들에게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주 총리와 리루이환(李瑞環) 정협 주석 등과의 관계가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장 주석의 총애덕택에 그는 2003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상무부총리에 등용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관정(吳官正) ; 중국 최고지도자 권력 서열7위에 오른 우관정(64)은 리장춘과 함께 부패 척결에 앞장을 선 대표적인 인물로 ‘포청천, 청백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부패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로 임명된 현대판 ‘포청천’이기 때문이다. 그는 칭화방과 중국공산주의 청년단(공청단) 출신이지만, 정치색은 덜 풍기는 인물이다. 후진타오 당 총서기와 1959년 칭화대 입학 동기인 그는 대학원까지 수학한 고학력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는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내 이름을 팔아 이득 볼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당부했을 만큼 자신과 주변 관리에 철저했다. 쩡칭홍이 당 조직부장 시절, 우관정의 고향을 감찰할 때 80세 부친이 아직도 농사를 짓고 있는 것에 놀랐고, 장 주석에게 ‘보기 드물게 깨끗한 인물’이라고 보고한 이후부터 그는 출세가도를 달렸다. 

리장춘(李長春) : 리창춘(58)은 ‘최연소 기록 제조기’ 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우관정과 함께 부패척결에 앞장선 인물이다. 장 주석의 핵심 측근이며 태자당에도 속하는 그는 1997년 15대에서 최연소 정치국원으로 선출되었다. 특히 그는 지방색이 강한 광둥성을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뜻에 맞게 개조한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1944년 지린성 지린(吉林)시(본적은 랴오닝성 다롄)에서 태어난 그는 동북 최고 명문인 하얼빈(哈爾濱)공대 전기기계학과를 졸업했다. 68년 랴오닝성 선양(瀋陽)시에서 전기배선 기술자로 출발, 42세에 랴오닝성장에 올랐다. 98년 광둥성 서기로 임명되어 지방관리와 공안, 세관까지 개입된 밀수 및 각종 부정부패를 과감하게 척결하는데 앞장섰다. 

뤄간(羅幹) : 권력 서역 9위에 오른 뤄간(67)은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중 유일한 해외유학파 출신이다. 그는 전 국가 주석 장쩌민의 최대 라이벌인 리펑(李鵬) 전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비서실장 출신이기도 하다. 그는 허난성 부서장 및 서기(81~83년) 등을 거쳐 노동부 부장(88년)에 올랐다. 1988년 12월 당시 리펑 총리는 뤄간의 신중함과 충실한 직무 태도, 유학파 테크노크라트라는 점을 고려해 국무원 비서장에 임명했다. 이후 그는 1998년까지 최장수 비서장을 지냈다. 1997년 15대에서 정치국 위원이 된 그는 개혁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보수파의 '마지막 희망'으로 분류된다.

우이(吳儀) : 우이(64)는 여성으로 유일하게 정치국 위원에 임명된 경우이다. 그녀가 15대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에 진출하게 된 것은 주 총리의 추천에 의해서였다. 6억 이상의 중국 여성중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그녀는 탁월한 업무능력 외에도 춤과 노래, 테니스, 낚시 등에서 전문가 수준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혼인 그는 언제나 “독신주의자는 아니다. 내 삶에 끼여 들 사람이 없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올 초 중국 전국부녀연합회가 뽑은 ‘중국의 10대여성’에서 탁구 세계챔피언 덩야핑(鄧亞萍)을 제치고 1위에 뽑힐 만큼 인기도 높다. 1938년 후베이성 우한(武漢)에서 태어난 그녀는 62년 베이징 석유학원 석유 정제과를 졸업한 뒤 26년 동안 석유화학회사에 근무했다. 대외무역경제합작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칼라 힐스 미국무역대표부(USTR)대표 등을 상대로 호쾌한 무역협상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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