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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4.20  통권 81호  필자 : 강성광  |  조회 : 1905   프린트   이메일 
아름답고 행복한 선교사

- 선교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일이다 -

 몇 년 전 서울에 갔을 때 「목회와 신학」기자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중국선교에 관한 어떤 효과적인 전략이나 의견을 말해 달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대답하기를 “중국뿐만 아니라 모든 선교지에서 하나님의 선교가 가장 효과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내가 선교사나 혹은 사역자이기 이전에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계속 세워져 나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것은 어떤 중요한 선교전략보다 더 중요한 선교적 과제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기자가 금방 이해를 못해 긴 시간 설명하여 이해시킬 수 있었다.
 몇 시간 혹은 며칠이든 설교하고 가르치는 강의를 진행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온전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곧 주님의 사람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본이 되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여기서 말하는 선교는 단기가 아니고 장기적 선교를 말한다). 그래서 선교지에서 선교사는 최소한 5년, 10년 후의 중국인 사역자들과 교회의 모습과 생명을 생각해야 한다. 그 때문에 선교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선교적 전략을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가르치는 내용보다 삶과 생명으로 그들에게 본이 되는 것, 즉 올바른 하나님의 사람의 본이 되는 것이 가장 성공적인 선교인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나타나신 주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으로 나타나 영향을 미치는 것이 우리의 최고의 본이 되시는 주님을 따르는 것이고, 우리의 최고의 선교전략이 아니겠는가? 사실 나 역시 이렇게 호소할 만한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동역자의 본이  될 만한 선교사의 삶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이렇게 말함은 내 맘 깊이 이런 목표를 향해 갈망함이 있기 때문이다. 선교사들끼리 잘 안 되는 부분과 잘 되는 부분을 보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선교사들끼리 잘 안 되는 부분과 잘 되는 부분을 보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선교사들끼리 선교사역을 서로 나누는 것은 자연스럽고 쉽지만 삶을 나누는 것은 왠지 부자연스럽고 쉽지 않다. 이것은 선교사 자신의 삶과 사역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의 계속적인 실패나 약점을 동역자와 같이 나누고 같이 기도할 수 있다면 성공적인 선교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교사역을 위해 부르신 것이 아니라 주님을 따라 사는 선교사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 부르셨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사명을 감당하는 일꾼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믿음의 삶으로 말미암아 복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지시할 그 땅에서 해야 할 ‘사역’을 위해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갈바를 알지 못하나 주님과 함께 ‘동행하여 살기’위하여 부름 받은 것이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라는 책에서 “믿음의 삶을 산다는 것은 어디로 이끌려 가는지 모르지만 당신을 이끄시는 하나님을 알고 그 분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라고 했다.

 오래 전 선교지에 파송 되어 나오기 전의 부끄러운 개인적인 고백이 있다. 당시 나를 위한 여러 권면들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형제가 나이가 적지 않지만 장기적인 측면으로 보아서 몇 년의 시간을 내어 더 공부하고 준비하고 나가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다. 그때 내 마음 가운데 감동된 고백과 대답은, “제가 큰 그릇이 못되어 선교지에 가서 큰 선교사역을 감당 못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의 소원과 목표는 하나님께서 선교지에서 주시는 그곳의 형제자매들과 같이 주님을 계속 더 깊이 알아 나아가고 배워 가는 것입니다.” 라고 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며 이 목표를 가지고 얼마나 매진하고 주님을 계속 깊이 알아가는 성숙을 이루었나 물어본다면, 솔직히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여전히 있다. 그러나 그 목표와 소원이, 즉 그 선교적 삶이 내 선교사역을 최소한 지치지 않게 진행시켜온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선교사에게 있어서 삶과 사역의 관계를 말한다면, 사역을 위한 삶이 아니라, 주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추구하며 가정과 가족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 가운데 세워지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서 사역이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역이 삶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의 사역이란 그 삶의 아름다운 연속과 진행의 자연스런 열매라고 할 것이다.

 회상하기 부끄러운 내 초창기 「선교사의 삶」을 생각하면 내가 지쳐있고 힘들어 안식년 시간이 될 때까지 겨우 턱걸이로 버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싱글이 아닌 가족을 가진 선교사에게 있어서는 가족과 더불어 온전히 세워지는 삶이 바로 온전한 주님과의 관계와 선교 사역을 결정 짓는 중요한 원천이다. 초창기 때는 사역을 위해 가족이 희생되어지고 그 사역을 위한 일과 만남들에게 미루어져야 했다. 아내와의 감정과 관계가 힘들어도 선교사로써 사역을 진행시키기 위해 무시하거나 참고 극복해야 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아이들도 사람들과 사역적 만남과 교제가 있을 때 방해(?), 즉 아이들이 사역적 만남과 교제 시에 어른거리거나 말을 걸면 혼내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것을 내가 가족을 중시하지 않거나 결혼 생활이나 가족에 대한 비전이나 애착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숙치 못한 그리스도인의 삶과 사역 중심적인 선교사의 삶이 빚어낸 잘못된 그림들이었다.
 나는 선교사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자기중심적인 성취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속성은 모든 사람들에게 정도의 차이에 따라 있지만 사역자에게는 본인도 모르게 혹은 쉽게 인식하지도 못하는 깊은 내면에 감추어져 자라고 있는 암적 요소 중의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지적한 잘못된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물론 내 안에 선교사의 삶의 모법답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함께 생각하고 추구하는 아름다운 선교사의 삶을 세우는 본질들을 논해보자.

 첫째, 하나님 중심적인 영성 추구와 자기 관리이다.
 매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엎드리고 기다리는 가운데 자신을 드리기를 소원할 때 그 분의 생명과 뜻이 우리 안에 계시됨을 따라 그 분을 더욱 깊이 알아 나아갈 수 있다. 그 분을 아는 만큼만 나를 알고 고쳐 나아가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닮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영적 삶이 준비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자신이 깊이 알지 못하고 외형적 헌신과 열심의 옷들만 계속 입혀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생명과 말씀이 성령으로 계시되고 전달되는 만큼 주님을 알고 그 주님의 생명을 사모하여 순종하는 만큼 그 분을 따라 살 수 있는 삶이 준비된다. 이런 기초가 준비되어 나아갈 때 즉 이런 영성의 받침이 있을 때만이 효과적인 자기 관리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선교사로써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선교사 생활과 사역을 하는데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입니까?’ 그러면 나는 대체적으로 동일한 대답을 한다. ‘바로 저 자신입니다. 저 자신이 제일 큰 어려움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렇다.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은 누구에게 감독을 받거나 체크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에 대한 관리와 통제가 되어진다. 그래서 효과적인 시간 관리가 안 될 때는 게으름과 나태함에 빠졌다는 자책감에 눌리기고, 또 믿음과 성령으로 사는 삶이 되지 못할 때는 죄성과 죄책감으로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바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과 세움이 하나님과의 관계, 가족관계 사역에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관건인 것이다. 그래서 율법적인 자기관리의 삶으로 자신의 삶을 누르거나, 혹은 믿음과 성령으로 살아 하나님의 부흥을 누리며 사는 삶 즉, 삶의 눌림과 누림의 사이를 왕래하며 사는 것 같다.
 나 역시 요즘에서야 개인적으로 믿음과 성령으로 사는 복음적 삶을 묵상하며 기쁨과 감사의 삶의 영역이 넓혀져 가는 것을 조금씩 체험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하나님의 부흥을 생각하며 기도할 때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신 그 하나님의 부흥의 정의가 있다. 그것은 내 안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의 회복! 즉 아버지의 마음이 깊이 받아들여지고 예수님의 생명이 내 안에 계시되어 그 생명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을 향하여 반응하고 나아갈 때 성령님의 능력을 계속해서 경험하는 것이 하나님의 참 부흥이라는 것이다. 우리 안에 이런 영적 추구와 그리고 영적인 안식과 자유함을 참으로 누릴 수 있을 때 정서적 건강과 육체적 건강의 바탕도 마련된다고 생각한다.

 둘째, 성공적인 가정 생활이다.
 가정에서 인정과 사랑을 그리고 존경을 받는 아빠와 남편이 되는 것이 가장 성공적인 사역자가 되는 것을 모르거나 부인하는 사역자는 없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가정에서 인정받는 사역자로서의 출발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지금 늦게나마 기도하며 노력하지만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얼마 전 목사님과 권사님 그리고 나 세 사람이 선교지를 같이 방문한 적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현지 사역자들과 교제하며 기도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 할 때 나와 목사님은 주로 가르치는 식으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들의 반응이 아주 만족스럽지 않았다. 마침 그 때 같이 온 한 개인 사업을 하시는 남자 권사님이 자연스럽게 가정생활과 자녀 교육 가정예배에 대하여 간증을 하셨는데, 오히려 그들은 크게 감동을 받았고 너무 좋은 분위기로 기도하는 시간까지 연결되었다. 나도 그때 그분의 간증을 들으며 사역자로서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성공적인 아빠와 남편으로서의 간증이 얼마나 나에게 중요한 과제인 것을 생각했다. 가정 안에서의 기쁨과 행복의 샘이 넘쳐흐르는 것만이 지치는 사역자가 아니라 감사와 역동의 선교사의 삶을 유지시켜 선교지를 주님의 아름다운 목장으로 가꾸어 나가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셋째, 선교지의 동역자 및 사역자(현지 그리스도인들)들과의 관계이다.
 이 관계도 사역적인 관계보다는 그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된 공동체로써의 삶과 생활의 관계를 말한다. 적지 않은 사역자들이 선교지 사람과 관계에 있어서 어려움으로 많은 상처를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한다. 물론 전혀 이런 어려움이 없을 수는 없으나 성공적인 선교사역 보다 아름다운 선교사의 삶이 더 비중으로 두어지고 추구되었다면 서로 관계로 받는 상처는 거의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셔서 세우신 것은 우선 당신과 함께 있게(생활, 삶의 나눔)하기 위해서 이셨다(막3:14). 그리고 그들에게 친구라고도 하셨다.(요15:15). 주님께서 먼저 당신의 삶을 나누어주시는 그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생명의 생활이 있으셨기 때문에 당신의 생명을 주시는 완전하고 성공적인 십자가의 사역을 이루실 수가 있었다. 많은 선교사들이 생명을 주는 사역을 꿈꾸지만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그들과 친구로서 삶을 나누고, 깊이 하나되는 사랑을 나누고 확이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리어 상처들만 많이 남기게 된다. 많은 사역자들이 선생과 지도자로써의 사역을 잘 하지만 그들과 친구되는 삶과 생명의 전달에서 많은 한계에 부딪친다.
 나에게는 나의 확실한(나의 고유 영역의) 사역지나 나의 확실한 제자(나와 관계만 연결된)들은 없지만 나를 그들의 친구로 불러주고 기억해 주는 동역자들이 여러 지역이 적지 않게 있다. 이것은 부족한 나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고 있다. 다시 한 번 확인해야 될 것은 아름다운 선교사의 삶만이 선교지에서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는 선교사역의 흔적을 남길 수 있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선교사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자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그들에게 삶의 본을 보이고 그들의 친구로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삶)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라는 약속을 믿고 우리 안에 온전히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이 실현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강성광/중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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