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 중국선교를 돌아보며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한국 교회의 중국선교는 지도자 육성보다는 교회건축과 프로젝트성 사역이 주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한중수교가 이루어진 지 이미 11주년을 지난 지금 우리는 한국 교회 중국선교의 성과에 대해 점검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례연구를 통한 구체적인 점검은 앞으로 중국선교를 감당할 때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줄 것이며, 더욱 효과적인 선교방법을 모색해 줄 것이다.
중국에 최초로 개신교 선교사가 들어간 해는 1807년으로, 중국은 분명히 한국보다 복음을 먼저 받아들인 나라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한국의 많은 선교사들이 중국에 가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이미 1913년부터 중국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중국 산동성 선교를 시작하였다. 이때 한국 교회가 중국선교를 하면서 사용한 선교방법은 네비우스 선교정책이었다.
그렇다면 초기 한국 교회가 미국 선교사들에게 배운 선교방법은 무엇이었나? 한국 교회는 토착교회 설립을 중요하게 여기고, 성경공부를 강조하는 네비우스 선교 방법을 배웠다. 한국 교회는 그 태동부터 성경 중심의 신학과 성경 중심의 선교방법으로 성장하여 왔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교회는 네비우스 선교방법으로 성장하였고, 중국 산동성 선교를 할 때 다시 이 선교방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필자는 본고에서 한국 교회의 바람직한 중국선교 방법은 다름 아닌 바로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통한 선교임을 주장하고자 한다. 교회건축이나 프로젝트성 선교사역이 아니라 성경공부를 통한 교회변혁과 진정한 의미의 자급, 자치, 자전이 이루어지는 선교사역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먼저 네비우스 선교정책이 소개된 배경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네비우스 선교방법의 핵심인 성경공부에 대해 살펴본 후에, 초기 산동성 선교에 대해서 회고해 보고자 한다. 그런 후에 마지막으로 바람직한 중국선교 방법으로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네비우스 선교정책이 소개된 배경
네비우스(John Livingston Nevius, 1829~1893)는 뉴욕 출신으로서 유니온 대학과 프리스톤 신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장로교 선교사로서 중국에서 40년 간(1953~1893) 사역을 했다. 그는 중국 영파(寧波)에서 선교사역을 시작하다가 후에 산동성(山東省) 지부로 옮겨서 사역을 하였다. 그는 선교이론가이면서 순회전도 설교자였고, 말씀사역뿐만 아니라 전도지 제작사역과 기아대책 사역까지 했다.
그는 1890년 6월에 주한 미장로교 선교사들(7명)의 선교사 수련회에 강사로 초청받아 한국에 오게 되었다. 그는 2주간 머물면서 자신의 책 “선교 교회의 설립과 발전”(The Planting and Developing of Missionary Churches)에 실린 선교방법에 대해 강의하고 토의하였다. 성경을 중심으로 하는 삼자선교방법(Three-self Mission Methods)은 효율적이고 건강한 선교방법으로서 비슷한 시기에 헨리 벤과 루퍼스 앤더슨 또한 “삼자”(Three-self) 정책을 시도한바 있으나 세 분이 서로 교감을 가졌는지에 대하여는 알려진바 없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한국교회가 네비우스 선교방법을 받아들여 열매를 맺어 효율적이고 건강한 선교방법으로 입증되었다는 사실이다.
네비우스가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토착교회 설립이었다. 그가 한국에 와서 신임선교사들에게 주지시킨 “토착교회 개발의 9개 원리”는 다음과 같다. ① 현지 조력자들을 대동한 개인전도와 순회전도의 강조. ② 3자 원리(자립, 자치, 자전)에 의한 교회 설립. ③ 개종자에게 조직적이고 철저한 성경공부. ④ 성경적 가르침으로 엄격한 교회의 권징. ⑤ 다른 선교사들과 다른 지역과의 협력. ⑥ 소송문제나 그러한 종류의 사건에 선교사가 관여하는 것 금지. ⑦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자를 도와줄 자세를 가짐. ⑧ 제자훈련 강조. ⑨ 소그룹(Cell group) 기도모임 운영.
초기 한국 교회에 적용한 네비우스 선교정책의 선교사역 원리는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선교는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계를 복음화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둘째, 복음선교 운동은 토착적이어야 한다. 셋째, 선교사는 복음의 성경적 토착화 성취를 위해 삼자원리(Three-self Principle: 자립, 자전, 자치)의 교회설립을 목표로 해야 한다. 넷째, 선교는 교육적인 면에서는 진보적이어야 한다. 다섯째, 선교하는 데 있어서 한국 사회가 뒷전으로 두었던 “한글”사용을 허용한다.
네비우스 선교방법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철저한 성경공부였다. 네비우스는 성경의 지식이 없이는 바른 선교 방법이 나올 수 없고, 성경을 통해서마니 진정한 자급, 자치, 자전의 토착교회가 설립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선교사들이 성경을 중심으로 기독교 청지기 직분론을 강력히 가르친 결과, 1927년에는 모든 세례교인들이 연간 수입의 15%를, 교회 출석자들은 5%를 헌금하였다. 그 결과 7년 말에 교회수입이 75% 증액되었다. 그리고 교회와 선교회와의 관계는 1954년 모든 한국장로교회대표들과 선교사들이 모인 수련회에서 잘 정립되었다. 1954년부터는 장로교단의 모든 사역을 한국장로교회가 완전 주관하였다. 주한 미국장로교선교회는 ① 선교부 자신의 법적 소유권을 가졌고, ② 미국선교사는 한국장로교회와 함께 계속하여 사역을 하는데 한국장로교회는 환영하였다. 미국선교사들은 교수사역, 자문 역할, 개척사역 등으로 사역의 활로를 찾았다.
네비우스의 선교방법을 적용한 한국 교회는 전도와 선교를 강력히 추진하였다. 한국장로교인들의 슬로건은 “모든 기독교인은 한 사람씩 가르쳐야한다”(Each Christian Teachers Another Person)이었다. 한국장로교회는 국내 전도는 물론 1907년부터 선교사 파송에도 열정적이었다. 또한 한국장로교회는 1907년부터 해마다 1~2회 부흥사경회를 개최하여 회개의 역사, 기도회 활성화, 가가호호 방문 전도 등에 열심을 내었고, 크게 부흥이 일어났다.
이와 같이 네비우스 선교방법의 핵심은 성경공부이며, 이 방법은 성경의 권위를 높였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성경 중심의 성경훈련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계시로 이루어진 성경을 믿고 순종하도록 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왔던 초창기의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은 한국성도들에게 성경 중심의 신앙을 철저하게 가르쳤다. 그들은 "신ㆍ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앙과 본분의 정확무오한 유일한 법칙이다."라고 믿었다.
둘째, 네비우스 선교방법의 실제적 핵심은 자립, 자치, 자전의 토착교회가 아니라, 오히려 성경공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성경공부가 이 삼자 방법을 성공시킨 열쇠였기 때문이다. 네비우스 방법은 단순히 사역자들이나 또는 보조자들이 사례비를 지급받지 않고 일하도록 하는 제도가 아니다. 그것의 실제적 핵심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연구하도록 고무하는 성경공부제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포삼열은 네비우스 방법의 두 가지의 위대한 원리를 "성경공부 제도와 자립"이라고 말했다. 네비우스 방법은 참으로 한국 교회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된 군대로 만들었다.
셋째, 네비우스 선교방법은 한국 교회에 주일성수, 성경 보수주의와 교리 고수, 자유주의 신학 배격, 기도, 성경연구, 예배참석, 헌금, 열정적으로 복음 전파하는 교회로 만드는 데 크게 공헌하였기 때문이다.
넷째, 네비우스 선교방법이 한국교회의 권징과 주일학교 프로그램에서 성경공부반으로 모여 남녀노소, 지식유무에 관계없이 교회에서 성경공부반을 통해 성경의 진리로 전 교인을 교육시키는 조직적인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다섯째, 네비우스 선교방법은 성경 중심의 신학훈련이기 때문이다. 초기의 주한 미국 장로교선교사들의 신학훈련은 순수 성경중심이었다. 초기 성경연구모임은 성경학교를 형성케 했고, 성경학교는 ① 교회의 평신도 지도자(집사, 장로, 조사)를 훈련시켰고, ② 목회의 길로 가는 신학교의 입문과정 역할을 하였다. 성경학교의 목적은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은 그들의 마음을 지도하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양시키는 데 있다. 방법은, 성경에 친숙하여 그것이 그들의 삶의 일부분이 되도록 성경을 각 구절별로, 장별로, 각 권별로 가르치는 것이었다.
성경을 책별로 가르치는 교과과정의 중심에 놓은 것은 성경학교뿐만 아니라 미션스쿨(Mission Schools)에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신학훈련과정도 성경과목이 중심을 이루면서 교회사, 성경신학, 실천신학과 일반학문에 대한 과목들이 추가되었다. 이와 같이 네비우스 선교방법은 성경 중심 훈련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첫째, 초기 한국 선교사들이 중국 산동성 선교에 성공 할 수 있었던 것은 한자 학습에 충분히 숙달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먼저 현지 언어를 익혔다.
둘째, 그들은 겸손한 동방의 예절을 지켜서 “동방예의지국” 출신의 선교사임을 인정받아 중국 관리들, 사회지도자들과 좋은 관계를 가짐으로서 선교사들의 신분 상승효과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셋째, 한국장로교회 선교사들이 네비우스 선교방법을 사용하라는 총회의 훈령에 적극 순종하였기 때문이다. 1913년에 파송된 세 명(박태로, 김영훈, 사병순)의 선교사들은 3년 간 언어를 배우면서 래양현 서문 내에 복음당교회를 설립하였는데, 1916년에 교인수가 4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1919년 11월에는 미북장로교회 선교부 관할에서 봉급을 받고 있던 20명의 중국전도인들이 안수를 받고 교회개척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필요한 선교비를 한국 총회에 청원한 바 있었지만 총회 선교부는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였다. 1920년 5월에 총회선교부 사무국장겸 부회계였던 윤산온 박사(Dr. George Shannon McCune)가 산동성 선교지를 방문하였다. 산동성을 방문하고 온 윤박사는 1921년부터 1935년까지는 지방보조비를 2,000~3,300원 보조하다가 1935년부터 1942년까지는 절반 이상 삭감하였다. 이것을 보면 네비우스 선교방법의 적용을 점진적으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후에도 네비우스 선교방법을 고수하도록 고국본부의 훈령과 방문이 여러 차례 있었다.
한편 한국 선교사들의 가르침을 받아온 중국인 성도들이 ①스스로 가가호호 방문하여 복음전도를 하였고 성탄절도 지켰다. ② 성경적 청지기 직분론을 강력히 가르친 바 1923년 당시 십일조 성도가 9명이 되었고, ③ 선교사들은 매주 4일 간씩 16개처 성경공부반을 운영했는데, 그 중 1개 처는 중국관리들을 위한 성경공부반이었다. ④ 정규 성경학교를 운영하여 한곳에서는 26명이 “예수 교리”를 따르기로 결정한 바 있었고 ⑤ 어떤 곳에서는 20명의 성도들이 자신들의 물질과 노동력을 들여 그들 자신의 힘으로 교회(예배당)를 세웠다.
넷째, 산동성 선교에는 목사뿐 아니라 독신여성선교사(김순호)를 1930년 제3회 여전도 전국대회 총회에서 후원 파송키로 결의하고 총회 선교사들과 산동성에 합류하여 특히 여성 사역에 전념하였다. 그가 순회하는 곳마다 중국인들을 사로잡았다. 또 성경공부 모임과 사경회에도 중국여성들이 열심히 참여하였다.
다섯째, 산동성 선교의 한국 선교팀은 자비량 의료사역자들(김윤석, 주현직, 안중호)과 협력하였다. 의료사역으로 자립하는 첫 번째 모델이 되었다.
여섯째, 중국교회 지도자 양성전략을 폈다. 한국선교사 4명(방효원, 홍승한, 방상순, 이대영)은 중국 래양에 교회사역자 양성을 위해 성경학교(3년제) 설립을 허락받아(1922년 제11회 총회) 실시하였고 매년 학생이 15명~28명 정도였다.
일곱째, 한국 교회는 중국선교에 자녀(M.K)교육을 위하여 1919년 1월 최초의 선교사 아동학교를 병설하여 교사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교장은 박상순 선교사, 교원은 박희복(의사 김윤식의 부인으로서 대구신명여학교 교사 경력)과 후에는 조소임(1922~1924), 그리고 리애영(1930~1934)이 파송되었다. 총회선교부는 선교사 자녀교육비로 매월 1인당 5원씩과 교사봉급의 절반(매월 10~12원)을 지원하였다.
여덟째, 한국선교사들의 중국선교에 지역분담(Comity) 정책을 사용함으로 중복투자와 다른 선교부들과의 관계 갈등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효율적인 선교를 마음껏 할 수 있었다.
한편, 중국은 단일국가로는 기독교인들이 세계에서 제일 많은 국가이다. 혹자는 중국에 기독교인이 8천만 명이라고 말하고, 혹자는 1억 명이 넘는다고 말한다.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기독교인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즉 교회 성장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편이다. 중국의 경제 성장은 중국 교회(삼자교회나 가정교회) 성장의 함수관계라고 본다.
앞으로 중국교회는 세계 제1의 선교대국이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2008년 베이징에서 올림픽을 개최하고 난 이후에 중국교회가 아시아에서 선교대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의 중국 선교사들은 중국 교회가선교하는 교회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할 것인가?
첫째, 선교사들은 한국 교회가 초기에 중국에서 실시했던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다시 중국에서 잘 접목시켜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중국 교회도 이 선교정책으로 세계선교를 감당 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어야 한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중국 교회의 삼자원리와 네비우스 선교원리와는 차이가 많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둘째. 선교사들은 성경공부에 가장 큰 비중을 두어야 하고, 성경의 권위를 높여야 한다. 한국 교회의 초기 선교정책에서 성경공부에 역점을 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말씀을 떠나 선교는 이미 선교가 아니며 사람을 변화 시키는 것은 말씀밖에 없기 때문이다.
셋째, 선교사들은 이주 선교방법과 자비량 선교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현재 많은 선교사들이 이 방법으로 중국선교를 감당하고 있고, 이미 중국 교회가 이것을 간헐적으로 시행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넷째, 선교사들은 성경적 지도자상의 개발과 그에 따른 지도자 육성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네비우스는 토착적인 교육 방법을 이용해서 지도자 훈련을 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중국인들에게 맞는 교수법을 찾아서 지도자 훈련에 힘써야 한다. 많은 지도자들을 선교 일군으로 길러내야 한다.
다섯째, 선교사들은 중국교회가 세계선교에 동참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각 교회에 선교교육을 실시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팀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선교사가 친히 팀 사역의 모범적인 모델을 그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