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영화사를 이야기할 때 일반적으로 영화감독이 속한 세대에 의해 그 시기를 구분하곤 한다. 198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한, 우리에게 친숙한 장이모우(張藝謀), 천카이꺼(陳凱歌), 황지엔신(黃建新) 같은 감독은 제5세대 감독으로 지칭된다. 1990년 이후에 활동을 시작한 감독들은 제6세대와 제7세대로 구분하는데, 제6세대는 1960년대에 출생한 감독, 제7세대는 1970년대에 출생한 감독을 말한다. 그러나 이렇게 세분하지 않고 이들을 그냥 '신세대'로 통칭하기도 한다.
<洗澡>는 바로 이 신세대 감독에 속하는 장양(張楊)에 의해 1999년에 제작되었다. 장양은 1997년에 <애정마라탕(愛情麻辣燙)>을 감독한 바 있다. <洗澡>는 제24회 캐나다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영화 대상을 받았고, 제43회 스페인 성세바스찬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받기도 하였다. 이 영화는 전세계 56개국에서 상연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이 영화가 개봉되지 않았다. 다만 작년 6월에 한중수교 1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거행된 제1회 중국영화제에서 잠시 소개되었을 뿐이다.
이 영화에는 북경인민예술극원의 원로배우인 주쉬(朱旭), 대중의 우상이며 에이즈퇴치에 앞장서서 감동을 자아내는 푸촌신(濮存昕), 영화 <인생>을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지앙우(姜武)가 출연한다.
<洗澡>는 목욕탕 주인인 늙은 아버지와 두 아들 사이에 일어난 일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아버지는 뻬이징(北京)에서 저능아인 작은 아들 얼밍(二明)을 데리고 오랫동안 목욕탕을 운영해왔다. 이 목욕탕은 전형적인 재래식 목욕탕으로 시설도 노후되고, 비가 오면 지붕도 샌다. 그러나 여기엔 좋은 시설을 자랑하는 현대식 목욕탕에서는 얻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주인과 손님, 손님과 손님간에 정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선쩐(深圳)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큰 아들 따밍(大明)은 동생이 보낸 엽서를 받고 뻬이징으로 급히 달려온다. 엽서에는 아버지가 침대에 누워 있고 그 옆에 동생이 앉아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형은 이 엽서를 보고 아버지에게 위급한 상황이 생긴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형은 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안심한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며칠 지낸 뒤에 다시 선쩐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런데 비행기표를 사러 시내로 나가는 길에 동생이 따라나섰다가 그만 길을 잃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크게 상심한 아버지는 큰 아들을 원망하는데, 다행히도 다음 날 동생이 집으로 돌아온다.
형이 선쩐으로 돌아가기로 한 이틀 전, 뜻밖에 아버지가 목욕탕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형은 동생을 자신이 맡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동생을 임시로 복지병원에 맡기고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하던 형은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동생에게로 돌아온다.
이사짐을 나르는 날 동생은 소리를 지르며 짐꾼과 형을 내쫓고 목욕탕 문을 잠궈버린다. 형이 지붕을 통해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 동생을 설득한다. 마침내 형은 이웃 사람들과 함께 목욕탕 입구에 걸렸던 액자를 떼어내고, 동생은 텅빈 욕조 위에 서서 큰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이상의 줄거리 속에서 우리는 두 개의 대조되는 세계를 발견한다. 먼저는 아버지와 큰 아들이 살고 있는 각기 다른 두 개의 세계이다. 아버지가 살고 있는 세계는 오래도록 이어져온 전통을 고수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따뜻한 정을 중시하는 세계이다. 전통을 상징하는 뻬이징이 아버지의 배경이 되고 있다. 이에 비해 큰 아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숨가쁘게 변화하는 가운데 이익을 추구하는 냉혹한 세계이다. 경제발전을 상징하는 선쩐이 바로 그의 배경이다.
또 하나는 최신식 자동샤워부스와 전통적인 대중목욕탕의 대비이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첫 화면에 비치는 것은 번화한 거리 한 편에 설치된 자동샤워부스이다. 여기에 손님이 한 사람씩 들어가 목욕을 한다. 발판이 돌아가고 머리 위에서 기계가 내려와 머리를 감기고 사방에서 물을 뿜어댄다. 스폰지에 있는 비누거품이 온몸을 비벼 닦고, 깨끗이 헹구고 나중엔 건조까지 시킨다. 이 자동샤워부스를 이용하면 짧은 시간에 힘들이지 않고 목욕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 대해 신경쓸 일이 전혀 없다.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점점 더 개인적이 되어가고, 점점 더 분주해지는 현대인에게 잘 어울리는 문명기기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비해 재래식 대중목욕탕, 특히 베이징의 전통적인 대중목욕탕은 많은 사람들의 쉼터와 같은 역할을 한다. 때를 밀고 안마를 하고 면도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극을 테이프에 담아 듣기도 하고 장기도 두고 귀뚜라미 두 마리에게 싸움을 붙여 내기를 하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또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한담을 나누기도 한다. 서민들의 훌륭한 사교의 장이기도 한 이 목욕탕 곳곳에는 사람 사는 맛과 여유와 인정이 피어난다.
그런데 이 대중목욕탕은 아버지가 죽은 아내를 회상하는 장면들을 통해 오래전 중국인의 목욕문화와 오버랩되면서 그 의미를 더해간다. 아버지는 죽은 아내를 회상한다. 아내의 고향인 산시성(陝西省) 북쪽엔 물이 귀해서 한 평생 겨우 한 번 결혼하는 날에만 목욕을 할 수 있었다. 장인어른은 딸의 혼례를 위해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인가를 찾아다니며 곡식으로 물을 바꾸어 겨우 목욕물을 준비한다. 그토록 물이 귀했던 지난날에 비해 아버지는 지금 원없이 물을 쓸 수 있는 자신의 목욕탕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에게 있어 이 목욕탕은 남다른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영화는 또 아버지와 작은 아들, 그리고 큰 아들의 행동을 대비시킴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중요한 가치를 발견하게 한다. 아버지는 가정불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의 부부를 도와서 결국 부부간의 관계를 회복시켜준다. 이 일은 개혁개방 이후 가정이 파괴되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버린 중국사회를 향해 던지는, 가정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하나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는 또 빚을 지고 쫓겨 다니는 큰 아들의 친구를 도와준다. 목욕탕까지 쫓아와 그를 끌고 가려는 험상궂은 빚쟁이들에게 “돈 문제는 당사자간에 해결할 일이지만, 일단 목욕탕에 들어온 사람은 내 손님이기 때문에 보호하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가로막는다. 이 장면을 지켜본 큰 아들이 빚을 갚을 수 있도록 2만원을 친구에게 선뜻 내놓는다. 오늘날 황금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중국인들에게 이 장면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작은 아들은 저능아이지만, 자신을 사랑해주는 아버지와 함께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는 매일 정해진 일과에 따라 아버지와 함께 움직인다. 이른 새벽에 목욕탕 문을 열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영업이 끝난 뒤에는 아버지를 도와 욕조를 청소하고, 또 아버지와 함께 공원까지 달리기를 한다. 아버지의 성품을 닮은 그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배려할 줄 아는 사려 깊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목욕탕을 찾는 고객 중에는 샤워를 하면서 이태리 가곡을 부르는 청년이 있었다. 이 청년은 공원에서 열린 주민의 밤 행사에 참가하였지만 대중공포증이 있어 입을 떼지 못한다. 작은 아들이 호스로 물을 뿌려주자, 이 청년은 노래를 끝까지 열창한다. 작은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오히려 큰 아들보다도 강하다. 그에게 있어서 목욕탕은 곧 아버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그는 결코 목욕탕을 포기하지 못한다.
이러한 작은 아들에 비해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큰 아들은 마치 손님 같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다른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아버지와 동생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목욕탕 일을 거들기도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동생을 책임지려고 한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점점 각박해져가는 세태 속에서 큰 아들의 이런 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중국에서 공산주의 사상은 그 영향력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중국인들은 이러한 때에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지 고민하고 있다. 절대적인 가치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대비함으로써 우리네 인생에서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아버지와 작은 아들 얼밍을 통해 돈이나 기계문명이 아닌 인간의 소중함을 호소력있게 일깨워주었다. 이 영화가 중국인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가치기준을 제시하려고 애를 썼기 때문일 것이다.
이홍자 | 문학박사, 중국선교훈련원 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