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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20  통권 85호  필자 : 왕 평  |  조회 : 2940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중국선교연합과 협력 어떻게 할 것인가?
효과적인 선교를 위한 협력사역

 나 같은 밴뎅이 속아지가 대륙선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


우리 부부가 1989년 대만에 처음 훈련차 갔을 때 나보다 한참 어린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를 소개할 때 친구라는 뜻의 "펑여우(朋友)"라고 소개하였다. 그후 중국내륙에서도 내가 목사 선교사인줄 뻔히 알고 있는데 그리고 목사(牧師무쓰)라는 호칭을 안쓰더라도 교회에서 같은 격의 호칭으로 쓰이는 "라오스(老師)"라는 호칭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중국 신도들이 자기끼리 대화할 때 "왕평" 어쩌구저쩌구 하는 말을 들었다. 기분이 불쾌하고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내가 저들에게 무시당할 만한 삶과 사역을 살았는가? 왜 한참 어린 녀석들이 그리고 평신도 주제에 버릇없이 나를 "펑여우"라고 하는가? 

우리는 친구의 개념이 나이에 집중되어 연배가 비슷한 또래집단에 기조(基調)를 두고 시작하지만 중국인들에게 있어 평여우라는 말은 나이와 신분을 초월하여 친밀에 기조를 둔, 예수님이 우리를 친구라 부르신 것과 같은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You are my friends, if ye do whatsoever I command you.若遵行我所吩付的, 就是我的朋友了.(요15:14) 개념인 것을 후에 알고 '내가 얼마나 밴뎅이 속아지인가?' 를 세삼 발견하고 깊은 잠으로 문득 깨어난 어린애처럼 스스로 당황해 했다.

 

밴뎅이 속아지를 만드는 한국문화

문
화란 성령충만한 사람의 가치관까지 깊이 영향을 미친다. 베드로는 오순절 날 성령 충만을 받았다. 능력이 충만하여 사자와 같이 용맹하게 주의 말씀을 증거할 때 오천 명씩 회개하는 역사를 일으킨 능력의 사도였다. 그러나 이방인을 개처럼 취급하고 부정하게 대해 온 유대인 의 오래 계승되어 온 선민과 특권의식은(행10:14) 베드로가 유전받고 전염된 문화였다. 이처럼 문화란 교육과 영성과도 상관없이 우리 의식 속에 그리고 생활 속에 깊이 잠재되어 있다. 
지리적으로 남한은 중국의 100분지 일도 못되는 좁은 땅덩어리에서 살면서 남북갈등과 남남갈등은 세계적으로 부끄러운 대립의 문화이다. 그리고 교회 안에도 교단간의 신학 강조점 차이로 교회나 교단분열은 세상 사람들에게 비웃음 당하는데까지 갔고 단일민족, 획일적이고 수직적인 군사 문화, 친구 개념이 없어 숨막히는 딱딱한 인간관계, 한국사회처럼 지연, 학연, 혈연, 나이로 숨막히는 수직문화를 가진 사회도 드물다. 우리는 천형(天刑)처럼 태어나서부터 밴뎅이 속아지를 만드는 '연(緣)의 족쇄'에 묶여 산다. 세계교회에서 두 세번째로 많은 한국 선교사들이 전 세계에 파송되어 선교하지만 왜 한국 선교사간, 단체간, 현지인 지도자와 협력 사역을 제일 못하는가? 우리는 밴뎅이 속아지이고 소속된 단체나 교단들이 교세확장에 그리고 단체의 연의 족쇄를 체워 일하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의 '신화 창조'의 주인공 히딩크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선수들이 식당에서 선배와 후배로 나뉘어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나무랐다고 한다. 그는 그런 행위가 상호 소통을 방해한다고 믿었다. 그는 선후배 사이에도 서로 이름을 부르게 했다. 후배가 고참에게 말도 잘 붙이지 못하고 식탁이나 숙소까지 나이대로 배정하는 관행을 깨뜨렸다.  '연의 족쇄'를 먼저 깨뜨리는 그의 개혁이 한국축구를 세계 4강으로 올리는 기초가 된 것이다. 칭기스탄은 자기를 부를 때 칭기스탄이라 하지말고 이름, 즉 테무친이라고 부르라 했다. '각하',  '님'식으로 부르지 못하게 한 이유는 리더와 구성원 관계에서도 공평을 추구했고 칭기스칸은 자신부터 검소하게 살았고 부하들과 똑같이 입고 먹었으며 자기 것을 부하들과 공유했다. 

협력사역의 필요성과 이점 

1. 협력사역은 성경적인 하나님의 뜻이다 :
성경은 그리스도 제자들이 연합하여 함께 일하길 요구한다.(시133:1,요17:20-23,골2:19) 요 13:35, 요 17:11, 고전 12:4-27, 엡 4:1-16, 빌 1:27의 모든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되어야 할 측면들을 말씀해주고 있다. 사역자인들은 일반적으로 연합사역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소속 조직의 지나친 자부심, 헤게모니 (hegemony), 재정, 서로 다른 목적들이 자신의 단체나 기관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역하는 것을 막는다. 또한 성경적 기초가 없는 연합의 틀은 구성원들을 시험에 빠지게 하고 헤게모니로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요 17:20-23에서 예수님은 4개의 구절에서 2번이나 그의 제자들이 하나가 되어 세상이 믿고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 대위임령을 제외하고 연합은 예수께서 사역지침 가운데 가장 강조하여 말씀하신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선교 메시지의 신뢰성을 그분 안에 우리가 하나되는데 두셨다. 그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세상을 향해서 "저들이 서로 연합하지 않으면 저들이 내 제자인 것을 믿지 말라"(요13:35)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2. 협력사역은 세기불변의 가장 효과적인 선교전략이다 : 협력은 중복투자를 줄이고 하나님 자원의 비용과 낭비를 감소시킨다. 인력과 영향력 그리고 메시지의 신뢰성을 극대화해 준다. 집을 건축하는 비유로 말한다면, 이것은 집 한 채를 짓기 위해 통합된 자재들을 사용하는 것이다. 나무가 집은 아니다. 유리, 시멘트, 돌 역시 마찬가지다. 사역자들은 이러한 재료들을 가지고 어떻게 집을 지어야 하는가를 안다. 따라서 이들이 각자의 역할을 통해 동역함으로 새로운 집을 짓는다는 목적을 이루어낸다. 선교사역이 통합된 협력 속에서 이루어질 때, 더 많은 사람을, 더 짧은 시간 안에, 더 적은 비용을 들여 복음화 할 수 있으며, 그 결과는 보다 강력하고 연합된 현지교회라 할 수 있다. 서로를 의식하는 기관들은 정보를 나누기 위해 네트웍을 갖게 된다. 협력은 네트웍킹을 넘어서 활동적인 단계이다. 네트웍의 주요 초점은 정보를 나누는 것이다. 협력의 초점은 연합된 행동을 하는 것이다. 협력자들은 함께 사역하기 위해 자기 기구의 정체성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 선교사역에 있어서 협력사역은 각 부분이 함께 움직이는 몸과 같아 보인다. 

3. 21세기 세계적인 상황이 협력사역을 요청한다 : 세계적 상황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아날로그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변해가면서 속도전을 하고 있다. 그리고 광속도의 인터넷은 국경과 정착문화를 부수고 지구촌을 가깝게 만들었다. 다국적 기업들은 세계경영을 앞세워 무한경쟁의 국제시대가 했다. 교회 밖 세계가 이렇게 급변했다. 가장 위대한 선교의 기회가 우리를 부르고 있다.21세기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군을 형성해야 한다.21세기 사회는 정보화, 전문화, 개성화, 세계화 사회로 특징 지울 수 있다.이 세대가 이렇게 변하고 있고 성경의 예언대로 사탄과 이 세상도 주님 오실 날이 임박할수록 더 악해지고 최후발악을 할 것이다.마귀와 이 세상이 조직적이고 총력으로 대항하는데 하나님의 군사인 선교사들도 소속은 있되 교단이 아닌 이상 교파와 선교단체의 벽과 울타리를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선교의 삼겹줄이 되어야 한다. 

협력 선교하는 실제적 실천 

1.넓은 마음 : 12-13세기, 칭기스탄의 삶은 유라시아의 광할한 초원에서 시작됐다. 그가 속한 부족은 나무도 없는 황무지를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이었다. 일자무식(一字無識) 칭기스탄이 정복한 땅은 777만 평방킬로미터에 이른다. 알렉산더 대왕(348만 평방킬로미터)과 나폴레옹(115만)과 히틀러(219만), 세 정복자가 차지한 땅을 합친 것보다 넓다. 작은 몽골보다 100-200배나 덩치 큰 나라들을 아우르며 12세기 후반부터 14세기 중반까지 무려 150년이나 지속했다. 

성공비결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꿈'이다. 비전의 공유를 칭기스칸은 공유하는 리더쉽을  발휘했다. 비전을 공유한다는 것은 함께 꿈을 꾸고, 함께 꿈을 실현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협력사역의 키워드이다. 기업에서도 스톡옵션은 꿈을 공유해야 한다는 뜻이 숨겨 있다.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열린 사고가 앞서야 비로소 꿈을 공유할 수 있다. 열린 사고와 수평적인 대화가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실패의 원인이다. 바벨탑을 쌓을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내리신 벌이 대화가 통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역으로 보자면 내가 속한 단체 안에 열린 사고와 수평적인 대화 그리고 공유하는 비전으로 사역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벌을 받고 있는 셈이다. 필자는 협력사역의 관건은 사역이나 정관, 공문서보다 사역자들의 내면세계가 준비되고 공유하는 비전속에 가능하다고 본다. 나는 한국 선교사출신이지만 세계에 영향을 주는 앞으로의 세계 선교는 중국교회와 중국인 출신 선교사들이 감당할 것으로 전망한다. 단지 작금의 한국 선교사와 한국교회는 뜨거운 중국교회를 뇌관 터뜨리듯 핵분열시켜 그들을 세계 복음화의 주역으로 나가게 하는데 쓰임 받으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만치 우리는 밴뎅이 속아지 문화 한계를 극복하기는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오늘 우리가 선교현장에서 선교사간, 현지 지도자와 선교사간, 선교단체와 단체 간, 교단과  교단 간 협력선교의 중요성은 잘 알고 말은 잘하지만 정작 협력은 왜 못하는가? 선교도 협력도 모두가 사람이 하는 일인데 우리같은 밴뎅이 속아지를 만드는 '연의 족쇄'를 끊지 못하고는 진정한 의미의 협력사역은 요원하기만 하다. 협력사역을 위해서는 많은 이론이나 지식보다 󰡐연의 족쇄󰡑을 먼저 끊는 내적혁명이 나로부터 일어나야 하고 넓은 마음을 소유해야 한다. 이것은 교육이나 훈련으로 말미암지 않다. 주께서 솔로몬에게 주시듯 기도로 받아야 한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왕상4:29) 

2.선교지 내에서 연합사역 구조와 팀 구축 : 파송단체는 다를지라도 선교지에서 선교사들은 서로 협력 선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사한 사역을 하는 경우 함께 정보와 자료를 공유하며 필요에 따라서 부분적으로 함께 사역할 수도 있을 것이며 또한 상이한 방향의 선교사역자들도 협력을 통해 사로를 보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시니어(senior)선교사들이 한국교회 정서와 후원관계 때문에 둥지를 떠나 새로 독립 선교회를 만들어 활동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소속 교단과 단체들이 두 번째 텀 이상을 한 선교사들에게는 초교파적인 팀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이중 소속을 인정해 주고 권장하는 것이 지혜롭고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 열린 사고와 비전의 공유를 위해 스포츠나 등산 ,취미활동 그리고 식사 등을 통해 사역보다 교제를 친밀히 해가며 향후 동역자 될 사역자들과 먼저 친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3. 협력사역의 분야 : 하나의 협력관계를 요청하는 분야들, 방송선교, 연합중보기도 운동, 인터넷선교, 학원사역, 신학교사역, 복지사업 등 연합선교의 선격이 강한 것부터 연합 선교하는 전략을 가져야 하고 열린 사고로 대화하고 회의하여 팀 사역을 하여야 한다. 이러한 협력사역을 통해 강조된 연합은 성경적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협력기구의 성공 요인은 부분적으로 각 참여기관이 갖고 있는 개별성과 독자성을 강화시켜온 데서 찾을 수 있다. 

맺는 말


사도바울의 주변에는 그와 동역한 많은 인물들이 있었는데 로마서16장에 여러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 바울이 그들에게 쓴 칭호를 들어보면 "나의 보호자", "나의 동역자", "내 친척", "권속", "내 어머니" 그 외에도 "자매", "같이 갇힌 자" 등 수많은 칭호와 수식어를 동원하여 그의 동역자들을 표현하고 있다. 디도서와 디모데전후서에는 "내 아들", "참아들"로 영적 아버지와 아들 관계로 칭하였으며 사도바울과 현지의 동역자들이 얼마나 가깝고 친한가를 느끼게 해준다. 바울 사역의 특징은 누가 전도하고 세례를 주었든지 문제 삼지 않고 누가 교회를 세웠든 상관이 없다. 그는 사도로서 하나님 나라(우주적인 교회)의 확장과 성장만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갔다. 사도 바울이 효과적인 팀 사역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동역자들을 소중히 여겼고 심지어 그들을 위해 목숨까지 내줄 수 있는 사랑의 선교(살전2:8)를 하였기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헤게모니에 억매인 다툼 없이 지역교회를 위임하고 떠나야 할때 떠나 주었으며 그들을 극진히 존중하고 사랑한 결과로서 그의 사역은 계속하여 퍼져 나갈 수 있었다.
 바울은 심는 자에 불과했다. 물을 주는 자는 따로 키웠으며 그들과는 방문, 편지, 신뢰하는 자의 추천 및 파송, 기도 등으로써 동역의 관계를 튼튼히 하였다. 이것이 선교사와 현지인 관계이며 효과적인 선교의 열매를 위한 세기불변의 선교전략이다. 



왕 평 / 중국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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