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차오(Jonathan Chao, 趙天恩).” 이 이름은 항상 중국선교와 등식이 되는 명사가 되어왔다. 2004년 1월 24일 이 날은 그의 육신이 조그마한 땅 안의 공간으로 묻히는 날이었다.
차오 목사의 육신이 담겨져 있는 영구차는 이 날 오전 8시 반에 안식예배를 드리는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미드(Rosemead)의 센게브리얼배리 제일복음교회(First Evangelical Church- San Gabriel Valley)의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8시 반 이후 교회의 안과 밖에 있는 예배 준비자들의 걸음은 점점 더 빠르게 움직여졌다. 9시 경 그 걸음들은 예배당 앞에서 정지하였고 통성기도를 마치자 또 바삐 움직여 뎄다. 10시 전 예배당 강대상 주변에는 사절통지에도 불구하고 보내온 화환들이 흘러 넘쳤고, 마이크와 라이트 등 예배당 안의 모든 시설설치 작업이 완료됐다는 신호가 보내졌고, 안내요원들의 따라 자리에 착석한 조문객들의 엄숙하면서도 반가운 인사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 가장 앞자리에 놓인 차오 목사의 육신이 담겨져 있는 관목은 불빛의 반사를 통해 모든 이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10시 정각 안식예배의 집례자인 제일복음교회 연합회의 회장 왕쯔쉐 목사는 영어와 중국어로 안식예배의 시작을 선포하였다. 모든 참석자들은 일어서서「예수를 위해 살자」라는 찬양으로 첫 찬양을 함께 올렸다. “몸과 마음은 다하여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의 기쁨을 추구하며, 기쁨으로 순종하면서 주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진다.” 라는 찬양을 하면서 차오 목사가 가사처럼 삶을 살아왔음을 모두 공감하였다. 로걸스교회의 짠홍 목사의 영어기도는 차오 목사의 비전과 사역에 감사하는 기도였으며, 남아있는 자들도 함께 차오 목사처럼 헌신된 삶을 살겠다는 믿음의 기도였다. 고린도전서 15장 50-58절의 말씀은 로스앤젤레스 중국인교회 연합회 총무인 치우마우쏭 목사가 시종 확신과 믿음으로 회중을 대표해서 봉독하였다. 중국복음선교회 총회의 총무인 리찐론 박사는 차오 목사가 중국신학교육의 선구자, 중국대륙연구의 공헌자, 그리고 중국교회신앙의 지킴이라고 평가하면서 약력을 보고하였다. 그 후 차오 목사의 삶과 사역을 볼 수 있는 영상과 음성이 방영될 때 좌석에서 때로는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하고, 또 환희의 모습들도 볼 수 있었다. 성가대의 찬양이 있은 후 차오 목사의 절친한 친구요, 동역자이면서 중국교회의 빌리 그레험이라고 하는 탕충룽(唐崇荣) 목사의 설교가 이어졌다.
탕 목사는 시편 90편 강해하면서 오늘날 세상과 중국교회의 부정적 모습을 지적하였고, 비전에 따라 순종한 차오 목사의 삶을 긍정하면서 모든 이에게 차오 목사의 비전과 사역을 계승하자는 도전을 주었다. 설교후의 기도에서 그는 회중들을 향해 결단과 헌신의 요청을 하였다. 이곳저곳, 앞과 뒤, 연장자와 청년을 가릴 것 없이 헌신의 손들이 올려졌다. 순간 안식예배가 헌신예배가 되었고, 비통과 방황의 심경이 희망과 확신의 마음으로 변화되는 장이 되었다. 성령께서 차오 목사의 안식예배를 단순한 안식예배로 치르게 하지 않으시고 이를 통해 우리와 함께 하고 있으며 또 사역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네 명의 형제자매가 나와 차오 목사에 대한 간증과 회고를 하였다. 특히 차오 목사의 형님인 차오더언은 비범한 동생을 둔 형의 부담감을 어떻게 신앙적으로 극복하였는지를 말하면서 그의 남은 생애를 통해 동생의 사역에 여러 모양으로 참여하길 원한다고 고백하였다. 그 후 차오 목사의 모 교회 미국인 목사, 중국 가정교회의 원로, 홍콩 중국선교신학원의 부원장, 대만 중국복음선교회의 총회의 대표, 웨스터민스터신학원의 조문대표, 북미 중국인 학자협의회 회장의 간증들은 차오 목사의 개인적, 교회적, 지역적, 세계적 영향을 증언해주었다. 「주님이 관리하는 삶」이라는 제목의 찬양을 힘찬 목소리로 부르고 난 후 파운톤 배리의 제일중국인침례교회의 림쏭치 목사의 축도로 두 시간의 안식예배가 끝났다. 예배가 끝난 후 간단한 안내를 뒤이어 차오 목사의 모습을 보는 순서를 갖았다. 차오 목사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흐느끼는 조문객들은 차오 사모와 가족들을 위로하면서 예배당을 조용히 걸어 나왔다. 가족만 남은 예배당에서 예배 집례자인 왕 목사의 기도가 마친 후 덮개가 열린 차오 목사의 관목은 서서히 닫쳐졌고, 영구는 가족들에 의해 서서히 예배당을 벗어나 마당을 통과하였다. 영구가 마당을 지나 갈 때 스낵과 차를 들고 있던 조문객들은 근엄하게 영구차에 이송될 때까지 지켜보았다.
마당에 있었던 조문객들은 시종 차오 목사에 대한 회고와 감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서양을 건너온 영국의 조문객, 태평양을 건너온 홍콩, 대만, 인도네시아, 그리고 중국대륙에서 온 손님, 북미대륙을 넘어온 캐나다의 대표, 그리고 미국 각지에서 온 귀한 분들로 마당이 물 샐 틈이 없었다. 약속된 집회와 회의의 스케줄을 임시로 취소한 사람, 구정기간이라 항공권을 어렵게 구입해 온 중국대륙과 대만에서 온 사람들, 가족모임과 여행계획을 뒤로 미룬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의 출현을 통해 차오 목사의 삶과 사역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잘 나타내주었다.
차오 목사의 육신이 있는 영구차가 예배당을 떠나 월넛그루브 길을 벗어나 10번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장지인 코비나 힐의 퍼래스트 론으로 질주할 때 그의 차가 시야에서 점점 멀어졌지만, 모든 이의 마음속에 남겨있는 차오 목사의 삶과 영향은 점차 커나가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왕쓰웨/ 미국 풀러신학원 교회사 박사과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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