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업계의 발전은 현대사회 발전과정에서 가장 주목을 받아온 영역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특히 중국이 국제무대로 진출하여 국제 미디어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으면서, 중국의 미디어는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2003년, 중국 지도계층의 신구 세대교체, 사스(SARS;非典), 션저우5호(神州五號)유인우주선 발사성공 등 일련 중대사건들로 인해 세계의 이목은 더욱 중국을 주목하게 되었으며, 제2차 걸프전이라고 불리는 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정치, 군사적인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국제 정세는 더 많은 중국인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사회 정보전달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미디어는 자연히 이런 중대 사건의 진행과정과 함께할 수밖에 없고, 중국의 미디어업계 역시 이러한 추세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현재 중국의 미디어는 국가의 거시적 관리, 사회수요, 업계간 경쟁 및 외부 영향 등 여러 요소의 종합적인 작용 하에 새로운 발전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방송 : 전문화된 채널 구축과 공공 정보 전달 역할에 충실해야
TV는 대중매체 중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전파수단이다. 2003년 4월 5월까지, 이로부터 몇 개월 전 중국 남부에서 시작된 전염병이 중국을 휩쓸었다. 그러나 매체는 제때에 이 전염병의 발생과 확산 소식을 전하지 못했고, 결국 이로 인해 야기된 위기는 4월 중순 전면적으로 폭발했다. 전국의 수많은 대학교들이 휴강, 심지어는 임시 휴교를 하는 사태에 이르렀고, 지방으로부터 상경한 노동자들은 대다수가 귀향길에 올랐으며, 상점들은 줄줄이 휴업을 하는 등 베이징은 사스라는 위기에 직면해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정부와 언론매체에 대한 사회의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신임도가 최저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중국의 국가 이미지도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위기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대중매체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특히 미디어가 지니고 있는 사회감시, 알 권리 보장, 사회 공공정보 공유의 역할이 증시되었다. 사회적으로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003년 5월 1일 아침 6시부터 오랜 준비작업을 거친 CCTV 뉴스 전문채널이 정식으로 방송을 시작했다. 이로써 중국은 세계에서 몇 안돼는 24시간 연속 뉴스 방송을 하는 국가가 되었다. 정시뉴스, 궁퉁관주(共同關注), 둥방스쿵(東方時空), 신원후이커팅(新聞會客廳), CCTV룬탄(央視論壇)등 프로그램에서 보도의 초점은 당시의 ‘사스와의 전쟁’에 맞춰져 있었고, 어느 프로그램이든 가장 먼저 전하는 소식은 이 ‘특별한 전쟁’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사스는 중국에서 있어서는 하나의 시험대와 같은 것이었고, 이런 중대한 시점에 뉴스 전문채널의 방송 시작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CCTV 뉴스채널은 국가 정책 발표, 보건상식에 대한 소개, 전문가 인터뷰, 시청자들의 직접 참여 등의 방식으로 TV시청자들에게 다양하고 전면적으로 사스 관련 소식을 전달했다. CCTV는 비교적 완벽한 뉴스 전파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대중이 사스 관련 소식을 전달 받을 수 있도록 하였고, 민중의 알 권리를 보호하는데 힘썼다. 또한 민심을 수습하고 대중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각종 근거 없는 유언비어들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CCTV의 노력을 통해 뉴스 프로그램의 강력한 사회기능이 발휘되었다. 이와 동시에 사스 관련 보도를 하면서, CCTV는 갑작스런 중대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대처 능력을 습득하게 되었고, 사스를 계기로 여러 뉴스 프로그램 형태를 경험할 수 있었다. 사스 관련 보도를 하는 과정에서 정부 역시 TV뉴스보도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 CCTV와 베이징 TV는 베이징 시당국이 매주 한번씩 발표하는 뉴스브리핑을 보도하였고, 이로써 정확한 루트를 거친 정보들이 잘 전파될 수 있도록 하는 반면, 확인되지 않은 부정확한 소식들의 무분별한 확산을 방지하도록 했다. 또한 이를 통해 대중의 알 권리를 보호하고, 정부가 대외보고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사스 관련 보도와 24시간 쉬지 않고 생방송되었던 이라크전쟁 관련 보도를 거치면서, 중대사건의 생중계가 뉴스 보도 방식의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 잡았다. 이는 9.11사건 발생 직후, CCTV가 단신으로 이를 보도했던 것과는 분명한 대조를 보인다. 이러한 사건들의 보도를 거치면서, 중국의 모든 TV뉴스 보도는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 다시 말해, 중국의 TV매체들이 점차 국제사회의 선진적인 뉴스 이념에 근접하기 시작했고, 각 지방 TV방송국도 이와 함께 바뀌기 시작했다. 광둥위성방송(廣東衛視), 후난위성방송(湖南衛視), 장시위성방송(江西衛視), 베이징위성방송(北京衛視), 상하이위성방송(上海衛視), 둥방위성방송(東方衛視) 등이 모두 이후 션저우 5호의 발사 성공, 원쟈바오(溫家寶)총리 방미를 이런 새로운 뉴스방송의 트랜드에 따라 보도를 했다.
뉴스채널의 개설은 CCTV에 전문화의 길을 열어주었다. 뉴스채널의 개설 이후 CCTV는 각 CCTV 채널에 대한 정리 작업을 진행했다. 먼저 CCTV-2를 전면적으로 개편했다. 이전의 ‘경제, 생활, 종합’의 성격에서 탈피하여 전문적인 경제채널로 다시 태어났다. 이와 동시에 연속극이나 각 채널의 종합 오락 프로그램들을 모두 CCTV-1로 통합하였다. 이밖에 작년 12월 28일에는 CCTV 채널 전문화의 마지막 작업인 ‘어린이 전문 채널’이 방송을 시작했다. 이로써 CCTV는 전문화된 14개의 채널로 구성되게 되었다. CCTV의 개혁과 더불어 일부 여건이 되는 성(省), 시(市)의 TV방송국들도 채널 전문화 대열에 합류하였고, 방송채널의 통합, 정비가 이루어졌다.
라디오 방송국 역시 전문화 바람을 피할 수는 없었다. 2003년은 중국 방송 총국(國家廣電總局)이 정한 ‘라디오 방송 발전의 해’였다. 일년 동안 전국에 28개의 전문 주파수가 신설되었다. 9개 도시 및 지역에서 새로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었고, 15개의 디지털, 위성, 케이블 등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이 방송을 시작했다.
CNR(中國人民廣播電台)도 일련의 전문화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경제의 소리(經濟之聲)’, ‘도시의 소리(都市之聲)’, ‘음악의 소리(音樂之聲)’등의 전문 채널을 통합, 개편하였고, 각 라디오 방송국들은 기본적으로 주파수 전문화 개혁을 마친 상태다.
이뿐 아니라 기존의 전문채널들도 현재 더욱 심층적인 개혁을 진행 중이다. 정식직원이 30명밖에 되지 않는 베이징 교통방송은 2003년 무려 1억5천 위엔의 수익을 올렸다. 현재 베이징 이동인구의 베이징 교통방송 청취율은 84.7%에 이르고 있다. 이는 장기간 불황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라디오 방송업계에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베이징 교통방송은 베이징 시민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항상 이동하는 시민들과 함께 한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으며, 베이징 교통관리국 교통지휘센터에 교통상황실을 설치하고 언제든지 프로그램 중에 중요한 도로상황, 교통사고 및 처리상황 등을 바로바로 전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제때에 정확한 교통정보를 전달하여 교통 체증을 완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베이징 교통방송은 처음으로 프로그램 중 휴대폰 연결 서비스를 실시하고 청취자가 문자메시지로 도로 상황을 알리거나, 베이징의 교통에 대한 건의를 하거나 혹은 이동 중에 목격한 사건을 알릴 수 있도록 하였고, 문자서비스를 통해 길을 묻거나 자동차 수리를 의뢰하거나 분실물 신고 및 습득을 알리는 각종 서비스도 가능하게 하였다.
경영 및 관리에 있어서 베이징 교통방송 직원 공개채용, 프로그램 외주 입찰, 광고 대리 등의 제도를 시행하는 등 효과적인 관리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관련업계 인사들은 베이징 교통방송의 발전도 이제 거의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고, 앞으로 어떻게 새로운 성장공간을 만들어 낼 것인지, 어떻게 프로그램의 수준을 높일 것인지가 베이징 교통방송이 직면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신문 및 간행물 : 시장경쟁체제로의 새로운 여정
중국 간행물 시장에 있어 2003년은 결코 순탄치 않은 한 해였다. 국가 집권층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졌고 새로운 정부가 정식으로 취임을 하면서, 간행물 시장에 대한 개혁이 단행되었다. 간행물의 시장경쟁체제로의 진입이 시작된 것이다. 2003년 3월10일 중국선전부(中宣部)와 신문출판총서(新聞出版總暑)는 공동으로 각 성, 시의 당위원회 선전부와 신문출판국 그리고 중앙 각 부처 간행물 관리 기관에 중국 판공실 제7호 문건을 하달하고, ‘간행물 할당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문 연구 작업’을 실시했다. 6월은 일반적으로 간행물 구독모집의 황금시기이다. 그러나 중국선전부, 신문출판총서와 국가우편총국(國家郵政總局)은 바로 이 시기에 연합 통지를 발표하고, 과학 기술 관련 기간지 이외의 기타 신문 및 기간지의 출판 담당기관은 2003년 9월말까지 2004년도 구독자 모집을 일체 잠정중단토록 하였다. 이는 오랜 기간동안 현존의 시스템에서 공비 구독자를 할당받아 생존해 왔던 2100여 개의 간행물과 현지에서 고정적으로 구독자를 할당 받아온 현(縣)급의 신문사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것이었고, 장기간 무거운 부담에 허덕이던 말단의 지방들은 이로써 무거운 짐을 벗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 7월 중, 하순에 연속적으로 채택된 ‘당과 정부 부처의 간행물 난립과 직권을 남용하여 발행하는 행위를 단속하여 기층민들과 농민의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한 통지’와 ‘실시세칙’은 간행물 시장에 대한 단속 및 정돈의 강도를 한층 더 높였다. 2003년 중국 간행물 업계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구조조정을 맞게 되었다. 출판총서의 리우빈지에 부서장의 말처럼, ‘생존경쟁체제’가 중국 간행물업계에 도입되고 이러한 위로부터의 변혁을 통해 중국 간행물업계의 시장경쟁체제로의 전환이 이미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
다수의 신문이 발행 중단과 전면적 개혁이라는 위기에 봉착했지만, 이와 동시에 이미 시장에서 인정을 받은 일부 신문들은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2003년 11월 11일 광밍르빠오(光明日報)사와 난방르빠오(南方日報)사가 공동으로 출자하여 발행하는 ‘신징빠오(新京報)’가 정식으로 창간되었다. 이 신문은 중국에서 처음으로 국가 관련기관의 정식 승인을 받아 지역을 초월해 창간된 신문일 뿐 아니라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두 곳의 당 산하 신문사가 연합으로 발행하는 대형 일간지였다. 이는 새로운 당 지도층의 중국 문화산업에 대한 하나의 방향제시이자 시범케이스였다. 성(省)단위에서 발행되던 신문이 지역적인 틀을 벗어나 지역을 초월한 협력체계를 구축한 것은 간행물 시장에 대한 새로운 관리방식을 모색하고 시험하는데 있어서 분명 유리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은 물론, 중국의 선두를 달리는 양대 매체의 협력은 중국 간행물 업계가 한계를 극복하고 시장경쟁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하면서 해외매체의 진입에 대처하는데 있어서 참고할만한 모범적 사례를 제시해 주었다. 동시에 성(省)을 초월한 매체가 정치적, 사회적인 투명성을 제고하고 정치개혁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시장경쟁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잡지사들은 브랜드 경영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브랜드 잡지의 성장은 잡지 시장이 나날이 성숙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잡지 매체산업과 관련된 산업들 역시 전면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발행루트는 잡지의 수익확대의 걸림돌이었다. 따라서 일부 잡지사들은 주동적으로 자신들의 발행 망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또한 어떻게 광고주를 설득하여 광고를 유치할 것이지, 어떻게 광고효과에 대해 효과적인 평가를 할 것인지에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쏟게 되었고, 독자층과 산업라인이 확대됨에 따라서 잡지는 자신의 컨텐츠 개발과 확충을 더욱 중시하게 되었다. 뉴스기획은 잡지 보도방식의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 중 ‘차이징(財經)’지의 SARS시리즈 조사와 산리엔(三聯) 생활주간의 2003년을 빛낸 인물 시상 들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이다. 잡지 시장은 중국 미디어 시장 발전 및 개방 그리고 세계 시장과의 접목에 있어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영역이며, 자본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는 영역이다. 중국 잡지시장 및 관련 산업들은 무한한 상업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인터넷 : ‘신화’의 배후에 감춰진 문제점
1994년 4월 중국에서 인터넷이 정식으로 개통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중국에서 인터넷은 급속도로 발전하였고, 그 발전 속도는 기타 미디어를 월등히 압도하였다. SARS의 갑작스러운 출현은 집 안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수많은 네티즌을 양산하였고 이는 인터넷에게 더 많은 발전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사람들의 자유로운 실외활동이 제한을 받게 되고 옥외광고를 접하는 사람의 수도 자연히 감소하게 되었다. 보는 사람이 없는 옥외광고의 광고효과도 이에 따라 떨어지게 되고 결국 광고 예산을 쥐고 있는 각 회사의 광고책임자들은 신흥 미디어인 인터넷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iresearch의 통계에 따르면, 2003년 중국 인터넷 광고 시장 규모는 10억 8천만 위엔에 달했고, 2002년의 4억 9천만 위엔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이었다. 또한 2003년 중국 인터넷 게임시장의 규모는 이미 25억 5천만 위엔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이후 3년 동안 중국의 인터넷게임산업은 연평균 115%의 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 인터넷 협회의 후치헝이사장은 “2003년 12월 말까지 중국 인터넷 사이트 총수는 50만 개를 넘어섰고, CN 도메인은 40만 개에 이르며, 인터넷 접속 가능한 컴퓨터는 이후 3000만 대에 달할 전망이다. 또한 인터넷 가입자는 약 7800만 명으로 세계에서 2위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중국 인터넷 사업은 2000년도 이전의 ‘가입자의 폭발적 증가’ 단계와 2000년에서 2002년의 인터넷 거품시기를 거쳐, 2003년부터 문자메시지, 인터넷 게임 그리고 메신저를 앞세워 중국 3대 포털 사이트(搜狐, 新浪, 岡易)를 선두로 하여 자본과 시장의 새로운 귀족으로 다시금 자리매김하였다.
‘2003년 포브스가 선정한 중국 부호 순위’에서 왕이(岡易)의 창시자인 딩레이(丁磊)는 왕이꿍스(岡易公司)의 58.5%의 주식(현 시가 약 76억 위엔)으로 중국 최고 부호의 자리에 올랐다. 인터넷의 신화가 다시 한번 재현된 것이다. 2003년 중국의 인터넷 컨텐츠 및 서비스 제공업체와 이동통신사는 문자메시지, IP전화 등 인터넷 서비스 협력 방면에서 더욱 적극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전 세계 3000만 개 메시지 당 9000만 개는 중국인이 보낸 것이라고 한다. 컨텐츠의 유로서비스를 대표로 하는 인터넷 서비스 영역은 현재 활발히 발전하고 있고, 인터넷 부가서비스 경영 모델이 효과적인 진전을 거두기 시작하였으며, 새로운 초고속 인터넷망의 건설과 응용 역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은 활발히 발전하는 동시에 여러 가지 새로운 문제점을 야기하였다. 첫 번째 문제는 인터넷의 사회적 책임과 발전방향이다. 인터넷은 2003년에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돈맛을 보게 되면서 차츰 변색해갔다.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면 누구나 TOM의 칭취샤오화(情趣笑話), 소후(搜狐)의 마파바오베이(魔法寶見), 왕이의 페이창난뉘(非常男女), 신랑(新浪)의 페이창난뉘(飛常男女) 등의 코너를 접하게 된다. 이런 코너의 내용은 거의 대부분이 인터넷 음란물에 속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사이트의 문자메시지 서비스를 중심으로 하여 이미 수많은 중소사이트가 문자메시지 시장에 뛰어들면서 하나의 산업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효과적인 통제와 관리가 이루어지지 못해 그중 수많은 내용들의 음란 수위가 나날이 심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각종 음란한 내용의 문자메시지들이 당당하게 경영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더욱이 이들 사이트들은 나날이 대담해져 이런 내용과 관련된 광고창의 크기 제한을 무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를 입는 것은 인터넷을 주로 접하는 청소년일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중국의 인터넷 발전의 지역적 불균형으로 지역간 디지털디바이스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동부의 옌하이 지역은 인터넷 보급에 있어서 서부지역을 훨씬 앞서고 있다. 구체적인 예를 보면, 서부지역의 10개 성 혹은 직할시의 인터넷 보급정도는 전국의 평균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 인터넷 확산 정도가 높은 지역의 거의 대부분이 몇 개의 직할시와 동부 예하이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직할시와 동부 예하이의 발전지역(저장(浙江), 장쑤(江蘇), 광둥(廣東)등)들은 전국 네티즌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비중은 이 지역들의 인구비례를 훨씬 웃도는 속도로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에 비해 서부지역은 확실히 낙후되어 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2003년 이후부터 서부와 북부지역의 인터넷 발전이 점차 가속화되기 시작했으며, 국가의 전반적인 발전수준에 미치는 영향력도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의 인터넷이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 할 수 있는 동력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은 두 가지의 문제점 이외에, 인터넷은 또한 인터넷 광고 문제, 인터넷의 감독 및 안전, 전자상거래의 개발 등 일련에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모두 한층 더 정비되고 제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미디어는 사회에서 가장 활발한 구성요소로서, 미디어의 발전은 사회의 경제, 정치, 문화의 발전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2003년 중국의 미디어 시장이 한 차례의 시험단계를 거친 이후 미디어의 공공정보의 제공자, 여론의 지도자, 정부와 대중의 중재자로서의 기능이 한층 더 완비되었고, 이는 중국 미디어가 발전하기 위해 갖추어야 되는 필연적인 요소들이다. 오랜 시간의 계획 경제의 족쇄가 서서히 풀리고 중국 시장이 세계와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중국의 미디어는 나날이 더욱 성숙해질 것이고, 이성적이고 대중과 가까운, 공정하고 효율적인, 그리고 시장화 된 모습으로 변해갈 것이다.
둥관펑(董關鵬)/ 칭화대학 신문방송 대학원 교수
출처 / 이글은 china21에서 발췌한 것으로 china21의 허락을 받은 것이다. - 편집자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