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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8.20  통권 87호  필자 : 이진숙  |  조회 : 3657   프린트   이메일 
[중국의 정치 해설]
중국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포기하면서까지 대만을 칠 수 있을까?

대만 독립론자인 천수이볜(陳水扁)총통이 취임한 뒤 중국과 대만이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각각 군사훈련 및 무력시위를 벌이는 등 양안(兩岸) 관계가 급속하게 냉각되고 있다. 대만 언론은 7월21일 대만 당국이 양안 전쟁 발발에 대비, 총통 대피계획까지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대만 해군 참모총장을 역임한 친민당(親民黨) 소속 구쑹롄(顧崇廉) 입법위원은 지난 6월 4일 양안(兩岸)간 전쟁이 오는 2006년 발발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으며 그럴 경우 미군이 대만에 공식 주둔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중국은 대만 침공을 위해 유럽을 자국 옹호 세력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며 "대만은 양안관계에서 주도적으로 대처할 능력을 상실하게 될 뿐 아니라 대미 의존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군이 유사시 대만의 어느 기지를 사용하는 것이 좋을지를 심각하게 연구중이라고 구 위원은 전했다.  홍콩의 동팡르바오(東方日報)는 6월 5일 구 위원을 발언을 소개하면서 미 국방부가 조만간 태평양 함대 사령부의 키티호크호를 대만 해협에 파견하기로 내부적 결정을 내린 것은 의미심장하다고 분석했다. 

무력에 의한 통일 시도 가능할까
 
중국은 대만해협에서 제공권을 장악하기 위해 육해공 3군 합동의 새로운 전술을 연마하고 있다. 해방군보는 중국군이 7월 들어 푸젠(福建)성 둥산다오(東山島)에서 실시 중인 육해공 합동훈련에서 미사일 부대, 잠수함 부대, 공군 등을 참여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난징(南京)군구의 미사일여단은 태풍 민들레의 북상에도 불구하고 수천km를 기동해 미사일 발사훈련을 했으며, 남해함대의 잠수함 부대는 적에게 탐지되지 않기 위해 무선통신을 끄고 고속으로 움직여 적함을 어뢰로 격파하는 훈련을 실시했다. 또 청두(成都)군구의 공군 전투기들은 구름이 지상 200m까지 낮게 깔린 시정(視程) 2km의 최악의 기상조건에도 불구하고 공중전 훈련을 했다. 

앞서 장쩌민(江澤民) 중앙군사위 주석은 둥산다오 훈련 직전 열린 군사위 확대회의에서 대만 통일 시한을 2020년으로 처음 제시하기도 했다. 장 중앙군사위 주석은 7월20일 거전펑(葛振峰) 부총참모장 등 15명의 인민해방군 중장을 군 최고 계급인 상장(上將.우리나라의 대장, 중국의 장군은 상장 중장. 소장임)으로 승진, 임명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이에 따라 장주석이 1993년 중앙군사위 주석을 맡은 이후 임명한 상장은 모두 79명으로 늘어났다. 

베이징의 군사 관측통들은 장주석이 올 가을 열리는 중국 공산당 16기 제4차 중앙위 전체회의(16기4중전회)를 앞두고 장군들을 무더기 승진시킨 것은 양안 관계 긴장 고조를 이유로 당분간 군부 최고 직위인 중앙군사위 주석을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에게 넘겨줄 계획이 없음을 대내외에 과시한 행동으로 풀이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 공산당 지도부 집무실인 중난하이(中南海)에서 열린 이날 상장 임명식에는 장쩌민 주석 경호 책임자인 여우시구이(由喜貴. 65) 총참모부 경위(경호국 국장 겸 중앙경위단 단장)로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여우시구이 신임 상장은 99년부터 중난하이 경비 책임을 도맡고 있으며 계급 정년(65세)을 앞두고 이번에 전격 승진한 것이다. 

반면 대만 지도부는 전쟁 발발시 중국이 '외과수술식' 미사일 공격을 가할 것에 대비, 총통을 중동부 화롄(花蓮) 근해에 진입할 미국 군함으로 피신시키는 계획을 마련했다고 한다. 둥썬(東森)TV는 7월21일 대만군의 연례 최대 군사훈련인 '한광(漢光) 20호' 연습에 총통 대피계획을 새로 포함시켰으며 공교롭게도 이날 일본 요코스카(橫須賀)를 모항으로 하는 미 항공모함 키티호크함이 대만 중동부해역에 접근했다고 밝혔다.

키티호크함은 7척의 항모가 동원되는 미군의 사상 최대 해상기동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대만 해역을 통과해 서태평양으로 항진 중이다. 대만군은 또 중국이 대만 공군기지들을 파괴할 것을 감안, 남부 타이난(臺南)의 고속도로 8km를 비상 활주로로 삼아 전투기가 긴급 이착륙하는 훈련을 1978년 이 후 26년 만에 실시했다. 훈련은 신주(新竹)기지를 이륙한 프랑스제 미라주2000 전투기 2대가 대만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타이난현의 중산(中山) 고속도로에 착륙해 급유 및 탄약 보급을 받은 뒤 재차 이륙하는 것이었다. 

최근들어 양안(兩岸)관계는 더욱더 심각해지고 있다. 중국이 준전시 준비 태세인 국방동원체제를 선포한데 이어 대만이 중국 본토 부근에 신형 미사일을 배치했다. 밍바오(明報) 등 홍콩의 주요 언론의 8월3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 인민해방군이 최근 지난(濟南), 난징(南京), 광저우(廣州) 군구와 북 동 남해 3개 해군 함대에 임전 태세 돌입 명령을 내린데 이어 대만과 인접한 장쑤(江蘇)성에 1단계 국방동원 배치를 완료했다.

이는 중국 군부가 국방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에서 대만해협이 위기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국가의 통일을 위해 국방동원 건설을 전면적으로 강화할 것을 지시한데에 따른 것이다. 국방동원은 국무원 총리가 위원장인 국방동원위원회의 지휘아래 진행된다. 군장비의 동원은 물론 일반인의 무장 동원,국민을 재산을 포함한 경제동원도 포함한다. 

이에 앞서 7월말 미 해군 EP 3정찰기가 인민해방군이 훈련중인 푸젠(福建)성 둥산도 부근 상공에서 정찰하다가 중국 공군의 섬(殲) 8 전투기의 요격을 받는 등 국과 중국간의 심리전도 치열하다. 

대만도 중국 푸젠성 연안의 둥인도에 레이더 기지를 건설,신형 미사일 배치를 완료했다. 대만을 중국 본토에서 불과 16km 떨어진 동인도에 중국의 중요 해국 공군기지를 요격할 수 있는 톈궁2 지대공 미사일과 슝펑2 대함미사일 배치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본토와 인접한 펑후 열도에도 미사일 기지를 건설했다.

다양한 외교를 통한 책임있는 국가로 등장 시도

중국은 이제 경제 대국일 뿐 아니라 국제 정치적으로도 명실상부한 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외교적인 측면에 있어 중국은 냉전 질서 붕괴 이후 지속적으로 국제질서의 다극화와 유엔 등 국제 기구의 역할 강화를 통한 공정한 국제사무 처리,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정치 경제 질서의 수립을 주창해 왔다. 이는 기본적으로 중국이 국제 사회의 중요한 한 축으로 기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인 동시에 중국의 부상에 대한 경계를 완화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1990년대 후반 이후 지속되고 있는 '전방위 외교'를 통해 국제사회로부터 더 많은 이해와 신뢰,존중과 지지를 확보해 국제적 지위와 영향력을 제고해 간다는 '책임 있는 대국(大國)론'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이 올해 들어 유럽 공동체(EU) 외교에 극진한 공을 들이고 있다. 올 1월부터 5월까지 후진타오(胡錦濤)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등 중국의 최고위 지도자 3인이 잇달아 유럽 지역을 방문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달 들어서도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지난 8일부터 18일까지 최근 EU 확대 개편으로 새로운 회원국이 된 헝가리, 루마니아 등을 순방하는 등 대유럽 외교 강화 행보를 지속했다. 중국의 최고위 지도자들이 이렇게 유럽 국가들을 순방하고 있는 것은 중국과 유럽 공동체와의 협력 강화라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장기적으로 대국 외교를 지향하는 중국의 구상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중국이 대유럽 외교를 강화하고 있는 이유는 크게 다음의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 경제적 차원에서 세계 3대 경제축의 하나인 유럽 지역과의 무역 및 투자 확대를 통해 중국의 고도 성장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유럽 공동체에 중국은 당연히 무한한 잠재력을 제공하는 거대 시장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도 특히 계속 문제가 되고 있는 대미 무역 흑자와 대미 무역 의존도 축소를 위해 세계 총 생산의 28%,전 세계 무역의 38%를 차지하는 유럽 지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외교 전략과 관련해 적극적 외교로의 전환을 통해 미국중심의 단일 극체제에 확실한 경계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은 현재는 당장 세계의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과의 직접적인 대결은 피하면서 긴밀한 경제적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미국의 독주 체제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걸고 견제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새롭게 탄생한 유럽 공동체는 중국의 대미 외교 전략에 선택의 폭을 넓혀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카드이며 세력이 될 수 있다. 

셋째로는 역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천명하고 대만 통일을 위한 국제 사회의 지지 기반을 확보하고 대만의 국제 활동 공간을 압박하려는 의도도 있다. 대만독립을 추구하고 있는 천수이볜 총통의 재선으로 중국의 부담이 더욱 커졌기 때문에 좀더 폭넓은 외교를 통해 대만의 공간을 제약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역시 당연히 양안 관계에 있어 모호한 전략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압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최근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력재편 움직임과 밀접한관계가 있다. 특히 최근 미국의 해외 병력 재배치와 관련, 일본의 역할 확대론이 거론되고 일본도 유사법제를 통과시키는 등 동북아에서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군사 대국화와 관련,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중국의 입장에서 유럽과의 협력 확대는 미.일 간 동맹 구조를 견제할 수 있는 좋은 카드가 될 수 있다. 

중국의 대유럽 외교 강화와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움직임은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항이다. 우리는 주변 국가들의 임의적인 재단에 의해 민족의 운명이 바뀐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주변 국가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적절한 대비책 수립에 골몰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대만문제는 최고 우선순위 
무엇보다 중국 외교정책의 최고 우선순위는 대만문제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는 국가주권 및 정권의 정당성과 얽혀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시기에 따라 대만문제를 바라보는 스펙트럼이 변화됐다. 

1950년대와 60년대 마오쩌둥(毛澤東) 아래에서 중국은 대만에 대해 단호했다. 아울러 대만해협에 주둔하던 미 제7함대를 중심으로 미국을 주요한 위협요소로, 미국과 동맹관계인 일본은 잠재적인 위협요소로 인식했다. 당시 중국은 서방세계로부터 고립돼있었으며 국제연합과 같은 주요 국제기구들에서 배제돼있었다. 따라서 중국은 대만을 중국의 한 성으로 인식, '대만 해방'의 구호를 견지했다. 

그러나 UN 상임이사국 진출,일본 미국과의 수교 등에 의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등장하면서 중국은 대만문제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됐다. '대만 해방'이라는 구호가 '평화적 통일' '일국양제(一國兩制, 1국가 2체제)'로 바뀌었다. 아울러 개혁 개방 정책은 다양한 이해관계 및 고려 사항을 감안,대만에 대해 '3통 4교류' 수단을 추진케 했다. 3통은 무역, 선박교류, 우편소통(通商,通航,通郵)을 의미하며 4교류는 가족과 친척의 관광교류, 학술단체의 교류,문화단체의 교류와 체육대표들간의 교류를 뜻한다. 

이에 대만도 장징궈(蔣經國) 리덩후이(李登輝) 아래에서 대(對) 대륙정책이 변화됐다. 1987년 10월 오랫동안 고수해온 본토와는 접촉하지 않고 협상하지 않으며 화해하지 않는다는 3불정책(不接觸, 不談判, 不妥協)에 대해 수정을 가했다. 중국과 대만간 전례없는 경제 문화 교류의 확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돌출변수가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즉 대만독립문제다. 이는 1995년 여름 과 1996년 봄 중국은 대만독립을 경고하려는 의도에서 중국이 미사일 시험과 군사훈련을 실시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민진당의 두차례의 대선에서 승리, 천수이볜 총통 체제가 확고해짐에 따라 대만독립을 우려하는 중국 당국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게다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천수이볜 총통이 2006년 독립헌법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2008년 5월 새헌법을 시행하는 대만독립시간표를 제시하면서 중국은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됐다. 

중국은 항상 평화적 해결과 함께 무력 사용 불배제 원칙을 고수,대만을 압박해왔다. 실제로 과거 덩샤오핑(鄧小平)은 1988년 장징궈 사후 대만독립의 가능성이 증대되는 것으로 판단했다. 따라서 그는 중국의 통일은 평화통일과 무력통일 의 두 가지 방법 중 후자의 가능성이 크고 중국은 이를 준비해야할 필요가 있으며 그 무력 통일의 시기는 대만이 독립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시점이라고 언급했다. 

베이징대학 시에칭쿠이(謝慶奎) 교수도 대만이 대내외적 역량을 동원,독립을 선언할 경우 중국은 베이징올림픽을 포기하면서도 무력 통일을 추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경제적 현대화를 추진하면서 무력통일의 가능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일부의 분석도 있지만 이는 경직성과 유연성이 혼합된 중국의 외교정책의 단면만 본 것이다. 

이와 관련,마오쩌둥이 대만문제를 국내정치에서 지도층의 내적 단합을 공고히 하도록 하는 외부압력으로 이용했음을 알아야한다. 마오쩌둥은 외부로부터의 압력이 사라지면 내부의 갈등이 불거져나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양안관계를 긴장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대만독립을 섣불리 추진시키지 못하게 하는 열결고리다. 

중국은 미국의 전략적 모호성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대만문제에서 '하나의 중국' 입장을 지지하면서도 대만에 무기판매 등 생존공간을 확보해주는 미국의 이중적 외교전술을 비분강개하고 있다.  이에 대만은 미국을 양안문제에 깊이 끼어들게 하고 중국부상에 따른 견제 심리 자극할 뿐아니라 독립을 선언할 경우 최소 방패막이 역할로 활용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실용주의'로 대표되는 현 중국의 제4세대 지도부가 양안문제를 단순하게 처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제3세대 지도부에 비해 좀더 폭넓게 바라볼 수 있다고 할지라도 미국 일극체제를 아직까지 막아내기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중국 지도부는 대만이 독립분위를 풍기면 풍길수록 대외실용주의 노선보다는 적극적인 개입주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는 군부의 입김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군부는 더 이상 내몰릴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대만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넘긴다면 총대를 멜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양안 모두 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원치 않고 있다. 

그렇다면 양안 지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어쩌면 단순한지도 모른다. 문제를 확대시키지 말고 적당한 긴장관계를 통해 체제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것이다. 독립 선언도, 전쟁도 양측 모두에게 힘이 부치게 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진숙 | 베이징대 정치학 박사학위 Ca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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