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에 관한 도서 소개를 여러 번 올려드렸습니다만, 최근 출간된 신간 도서가 있어서 선정했습니다. 중국 역사를 담은 도서가 아무리 새롭게 나온들, 역사적 사건이나 사실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간혹 사실 뒤의 뒷이야기가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근본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책이 나올 때마다 시선이 가는 이유는 글쓴이에 따라 그 결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같은 사실도 어떤 시선과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빛깔이 달라진다고 할까요? 그러나 필자는 책 제목에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하룻밤에 읽는~” 부류의 책들은 별로 달갑지 않습니다. 책의 무게가 갑자기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이 책이 눈에 띈 이유는 책 내용과 구성이 읽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실망은 안 시켰네요.
책의 부제로는 “진시황의 ‘천하’에서 시진핑의 ‘신시대’까지, 3500년을 단 한 권에 꿰는 가장 선명한 통찰”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좀 거창하기는 합니다. 이 책의 지은이 린다 제이빈은 미국 코네티컷주 출생의 호주 작가이자 번역가, 수필가입니다. 대학에서 아시아학을 전공했고, 이후 대만과 홍콩 그리고 베이징에서 거주하며 독학으로 중국어를 익혔다고 합니다. 회고록, 도시 평전 그리고 소설 등을 출간했습니다. 천카이거, 장이머우 등 중국 감독들의 영화 자막 번역가로도 활동했다고 합니다.
반역자와 침입자 중국의 기원 즉 문명의 탄생, 주, 진, 한, 당, 송, 원의 시대를 건너뛰고 중국의 근현대사를 들여다봅니다. 1853년에 미국의 침례교 선교사인 로버츠(I. J. Roberts, 중국명 나효전, 羅孝全) 목사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습니다.
“1846년인가 그 이듬해였나, 중국 신사 두 명이 광둥으로 나를 찾아와서 기독교에 대해서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둘 중 한 명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갔지만, 나머지 한 명은 두 달가량 우리와 함께 생활하면서 성서를 공부했고 교육을 받았고 바른 행실을 유지했다.”
이 사람이 바로 1847년에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동생이라고 칭하며 만주족에게 반대하는 태평천국(太平天國)을 설립한 홍수전(洪秀全)입니다. 제자를 기른 것이 아니었네요. ‘바른 행실을 유지했다’라는 부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칼을 감추고 있었네요. 제자를 가장한 괴물이었습니다. 급기야 태평천국 세력은 1853년에 남경(난징)을 점령합니다. 이를 수도로 삼아 ‘천경(天京)이라 칭합니다.
1860년에 홍수전은 로버츠 목사를 난징으로 초청합니다. 한때 스승이었던 로버츠 목사는 홍수전이 기독교를 ‘미치광이 식’으로 해석한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또한 살육과 약탈을 바탕으로 ‘이 모든 사태’를 벌인 것에 충격받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방화, 살인, 파괴를 일삼는다.”(로버츠 목사) 1864년에 청나라는 영국군과 미국군의 지원으로 태평천국의 난을 평정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동학혁명 때 겪어봐서 알지만, 외세가 치고 들어오는 빌미를 제공합니다.
양안 대화와 째깍째깍 흐르는 시간 한국전쟁이 중공의 대만 침공 계획을 늦추거나 좌절시킨 결정적 계기였다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제7함대를 대만해협에 보내 대만 방어와 해협 중립화를 추진했고, 이 개입이 중공의 대만 공략을 직접 저지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중공의 대만 공략은 갑자기 떠오른 선택지가 아니라, 대륙 내전 이후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물러난 흐름 속에서 계속 고려된 목표였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면, 중공이 1949년 마지막 날을 앞두고 1950년에 대만 공략을 주요 과제로 삼았습니다. 대만 무력 침공이 건국 전부터 중공의 기본 방침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만 일부 연구자는 중공이 한국전쟁 전에 이미 대만 공격 준비를 늦췄기 때문에, 한국전쟁만이 대만의 침공 위기를 막았다고 단순화하기는 어렵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중국공산당과 대만과의 현재 상태는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 책에 기록된 과거 이야기를 정리해 봅니다. 1981년 9월. 중국공산당은 대만에 ‘평화통일’ 9개 조 방안을 제안합니다. 여기에는 우편, 통신 왕래 및 인적 왕래 등 기존에 제시했던 사항이 다시 담겨 있었고, ‘일국양제(一國兩制)’ 아래에서 대만이 군대를 보유하고 자본주의 생활 방식을 유지할 수 있다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만일 대만이 통일을 거부한다면 중국은 무력 사용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만에 하나 대만이 독립을 선언한다면 이는 선전포고를 의미했습니다. 오로지 하나의 중국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제안에 대해 장징궈 총통은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접촉하지 않는다(不接觸), 대화하지 않는다(不談判), 타협하지 않는다(不妥協)” 이를 삼불(三不)정책이라고도 합니다. 장징궈(蔣經國)는 여전히 ‘본토 수복’을 계획 중이며 공산당의 예속에서 중국 시민들을 해방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대만은 계엄령과 억압적 정치, 치유되지 않는 역사적 상처에도 불구하고 홍콩, 싱가포르 그리고 한국과 더불어 아시아에서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룩한 ‘네 마리 용(tiger economies)’ 중 하나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1981년에 중국 본토의 연간 1인당 GDP는 미화 197달러였는데 대만의 경우에는 무려 미화 2,692달러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국민당의 전제 정치에 분개했지만, 대안을 택하려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당시의 만화를 살펴보면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제원조 제안에 대한 일반 국민의 반응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허름한 인민복 차림에 낡은 자전거를 탄 남자가 중국 위안화를 손에 쥐고 흔들고 있는데, 옷을 잘 차려입고 고급 승용차를 탄 남자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째깍째깍 흐르는 시간은 홍콩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중국과 영국은 1984년 12월 19일에 홍콩 반환 협정을 체결했고 여기에는 ‘일국양제’ 원칙이 반영됩니다. 이로써 홍콩은 임차 기간이 만료되는 1997년부터 최소 50년간 나름의 생활 방식과 법률제도,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보장받습니다. 반환 이후 홍콩의 새로운 헌법에 해당하는 기본법에는 보통선거를 통해 행정장관과 입법회를 선출한다는 사항이 명시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에 대한 시일은 적혀있지 않았습니다.
늑대 전사들 2017년에 개봉한 람보 스타일의 액션 영화 《특수부대 전랑2 (戰狼2)》은 중국의 특수부대 대원이 아프리카에서 사악한 미국 용병들을 쳐부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영화의 홍보 문구는 “우리 중국을 모욕하는 자는 멀리 있더라도 반드시 응징한다”인데, 이는 서한 시대의 장군이 남긴 말(강력한 한나라를 침범하는 자는 멀리 있더라도 반드시 응징한다)에서 따온 것입니다.
개혁개방 시기에 민족주의적 분노가 폭발한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했습니다. 그중 몇 건은 중국에 대한 침략을 은폐하려고 했던 일본에 분노를 터뜨린 사례였습니다. 1999년에는 코소보 분쟁 당시 유고슬라비아의 만행을 저지하기 위해서 나토(NATO, 북대서양 조약 기구)가 공습을 시행하던 중 베오그라드의 중국 대사관을 폭격하여 중국인 3명이 사망했습니다(나토는 고의가 아닌 오폭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반미 감정이 분출해 시위 참가자들이 베이징의 미국 대사관을 에워쌌고, 청두(成都)와 광저우에서는 미국 영사들을 공격했습니다. 나흘 후에 관영 매체를 통해서 클린턴 대통령의 사과가 보도되었고, 경찰은 시위를 중지시켰습니다. 일반적으로 중국공산당은 애국주의 성향의 시위자들이 자기주장을 할 시간을 충분히 준 다음에 통제력을 행사합니다.
외교사에 정통한 학자이자 중국사회과학원 명예위원인 쯔중윈(資中筠, 1930년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실질적인 진전을 전혀 이루지 못했습니다. 서태후는 여전히 베이징에 있는 조정의 실권을 잡고 있고, 그 아래에는 의화단의 애국주의 폭력 세력이 들끓고 있습니다. 양심과 이성을 지닌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계 검열당하고 침묵을 강요당하며 가로막히고 있습니다.” ♣
♣변성래 | 중국을 알고 싶은 의료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