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사회의 변화를 비추는 거울이다. 특히 신조어는 새로운 기술이나 생활 방식, 가치관이 등장할 때 만들어지기 때문에 한 사회의 변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최근 중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신조어는 ‘数字游民(디지털 유목민)’으로, 중국의 사회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단어이다. ‘数字游民’은 중국어로 ‘수쯔유민(shùzì yóumín)’이라고 하며, 중국의 유명 언어문화 잡지인 〈야오원자오쯔(咬文嚼字)〉 편집부가 선정한 ‘2025년 10대 유행어’에 포함되어 있다.
‘数字游民’은 영어 ‘디지털(Digital) 노마드(Nomad, 유목민)’를 중국어로 번역한 말이다. ‘数字(shùzì)’는 본래 ‘숫자’를 의미하지만 여기에서는 ‘디지털’을 의미한다. ‘游民(yóumín)’은 일정한 장소에 정착하지 않고 이동하면서 생활하는 ‘유목민’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두 단어를 결합한 ‘数字游民(수쯔유민)’은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원격으로 일하면서 일정한 사무실이나 근무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생활하고 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노트북, 스마트폰, 인터넷 같은 디지털 도구를 이용하여 어디서든 자유롭게 일하고, 일과 생활의 균형을 추구한다. 전통적인 유목민이 가축과 생존 환경을 따라 장소를 이동했다면, 현대의 디지털 유목민은 인터넷 연결이 가능한 곳을 찾아 이동하면서 자신의 노동과 생활을 이어간다. 이 점에서 수쯔유민 은 오래된 ‘유목’이라는 개념과 현대의 ‘디지털 기술’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흥미로운 신조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라는 개념은 1997년 일본의 기술 전문가 마키모토 쓰기오(牧本次雄)와 영국의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매너스(David Manners)가 공동으로 《Digital Nomad》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들은 이 책에서 미래에는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여 사람들이 일정한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일하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당시에는 이러한 전망이 상당히 미래적인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러나 오늘날 노트북과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고 초고속 인터넷, 와이파이, 클라우드 그리고 화상회의 등이 발전하면서 그들의 예측은 현실이 되었다. 특히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세계적으로 원격근무가 빠르게 확산하였고,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일을 할 수 있다”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실제로 경험하게 되었다.
여러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디지털 노마드는 2022년 약 3,500만 명으로 추산되었으며, 이후에도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인다. 다만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정의와 집계 기준이 통일되어 있지 않아 정확한 규모를 산출하기는 어렵다. 한편, 원격근무와 디지털 노마드 생활 방식의 대표적인 인물인 노마드 리스트(Nomad List)의 창립자 피터 레벨스(Pieter Levels)는 원격근무와 프리랜서의 확대 등을 근거로 2035년에는 디지털 노마드가 최대 10억 명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또한 2024년 말 기준으로 전 세계 45개 이상의 국가와 관할권이 디지털 노마드 또는 원격 근무자를 위한 비자·체류허가 제도를 운영했다. 한국은 2024년 1월, 일본은 2024년 4월 관련 제도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수쯔유민 가운데는 청년층이 가장 많으며 전체의 약 58%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들은 외국 회사와 온라인으로 협력하여 일하거나, 프리랜서로 일을 받아서 하거나, 유튜브나 SNS 같은 1인 미디어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일한다. 세계적으로는 발리, 치앙마이, 베를린, 바르셀로나 등이 유명한 디지털 노마드 지역이다. 중국에서도 수쯔유민은 2020년대에 들어와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중국 지방정부들도 디지털 노마드들을 유치하기 위한 정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윈난(云南)성 다리(大理), 안후이(安徽)성 황산(黄山)시, 저장(浙江)성 리수이(丽水)시, 저장성 안지(安吉)현 등 자연환경이 좋고 대도시보다 생활비가 비교적 저렴한 지역에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커뮤니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공간에는 공유 오피스, 공동 숙소, 공유 주방, 교류 공간 등이 마련되어 있다. 최근 산둥(山东)성 린이(临沂)시도 성급 ‘디지털 노마드 창업 집적지(集積地) 건설 시범사업’ 지역으로 승인되어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에서 수쯔유민이 확산한 사회적 배경은 무엇인가? 첫째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다. 고속 인터넷, 5G, 클라우드 서비스, 스마트폰과 노트북의 발전으로 많은 업무가 장소의 제약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프로그래밍, 디자인, 번역, 교육, 컨설팅, 영상제작, 전자상거래, 온라인 마케팅 그리고 콘텐츠 제작 등의 업무는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다면 반드시 회사 사무실에 있을 필요가 없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까지 더해지면서 이러한 변화가 더 가속되고 있다.
둘째는 코로나19 이후 원격근무 경험의 확산이다. 코로나19 시기에 많은 기업과 근로자가 어쩔 수 없이 온라인으로 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일하는 장소와 업무의 성과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경험했다.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도 회의하고 협업하고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경험은 이후 수쯔유민이 확산하는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
셋째는 중국 청년들의 직장 생활에 대한 피로감이다. 중국 청년들의 삶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신조어 가운데 하나가 ‘네이쥔(内卷, 과도한 내부 경쟁)’이다. 이것은 취업, 승진, 주택, 교육 등 여러 영역에서 경쟁이 심화하면서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만 그에 비례하여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지 않는 현실을 표현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996근무제도(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근무하는 노동 문화)도 비판받았다. 최근 유행한 ‘반웨이(班味)’는 직장 생활의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눈빛이 피곤하고 얼굴이 초췌해지는 직장인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수쯔유민은 이러한 직장문화와 대조된다. 직장 상사의 통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자신의 시간과 장소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는 젊은 세대의 성공관과 행복관의 변화이다. 과거에는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하여 승진하고 집을 마련하는 것이 성공적인 인생의 대표적인 모델이었다. 물론 이러한 가치관은 지금도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일부 젊은 세대에게는 높은 연봉이나 직장의 명성 못지않게 자유, 자아실현, 개인의 취향, 삶의 질, 일과 생활의 균형이 중요해지고 있다. 수쯔유민은 바로 이러한 가치관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수쯔유민이 중국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무엇인가? 첫째, 직업 선택의 다양성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취업이 주로 “어느 회사에 들어갈 것인가”의 문제였다면, 디지털 시대에는 “나는 어떤 능력을 갖추고 어떤 방식으로 일할 것인가”가 중요해지고 있다.
둘째, 개인의 자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수쯔유민은 자신의 업무 시간과 장소를 비교적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이러한 자유는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셋째, 창의성과 새로운 공동체의 형성이다. 서로 다른 직업과 지역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 수쯔유민 공동체에서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새로운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
넷째, 지역경제와 농촌 발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제와 인재는 베이징, 상하이, 선전 그리고 광저우 등 대도시에 집중되어 왔다. 그러나 원격근무가 가능해지면 반드시 대도시에 거주할 필요가 없어졌다.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지역사회와 연결하면 농촌의 문화와 관광 그리고 창업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수쯔유민을 무조건 자유롭고 이상적인 생활 방식으로 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 삶에는 다음과 같은 부정적 측면과 한계가 있다. 첫째, 소득이 불안정할 수 있다. 정규직은 비교적 일정한 급여를 받지만, 프리랜서나 프로젝트 중심의 노동자는 일감에 따라 수입이 크게 달라진다.
둘째,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 중국의 사회보장제도는 전통적으로 특정 기업에 소속된 근로자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따라서 고용관계가 불분명하거나 여러 업체와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는 의료보험, 연금 그리고 산재보장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셋째, 고립감과 소속감의 부족을 경험할 수 있다. 자유로운 이동은 매력적이지만, 한곳에 오래 머물기 어렵기 때문에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힘들다.
넷째, 일과 휴식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 디지털 노마드에게는 노트북이 있는 곳이 곧 직장이 된다. 해변 카페에서 일하는 모습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행 중에도 고객의 메시지와 이메일을 계속 확인하면서 일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중국에서 수쯔유민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국 청년들의 직업관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의 직업관을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 안정적으로 오래 일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점차 다음과 같은 질문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어디에서 일하고 싶은가?” “일이 내 삶 전체를 지배해야 하는가?” “돈과 자유 중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
이처럼 직업의 의미는 소속 중심에서 능력 중심으로, 안정성 중심에서 자율성 중심으로, 조직 중심에서 개인의 삶 중심으로 점차 다양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탕핑(躺平: 경쟁과 압박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태도), 네이쥔(内卷: 실질적인 발전 없이 경쟁만 과열되는 현상), 반웨이(班味: 직장 생활에 지쳐 피로가 배어 있는 상태) 그리고 정서적 가치(情绪价值: 타인에게 위로와 안정감, 즐거움 등 긍정적인 정서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와 같은 최근 중국의 신조어들과도 연결된다.
이 용어들은 서로 다른 현상을 가리키지만, 공통으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중국 청년들의 고민을 담고 있다. 따라서 수쯔유민은 단순히 노트북을 들고 여행하는 젊은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중국 청년들의 노동관·성공관·행복관이 변화하고 있는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수쯔유민은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 낸 새로운 직업 형태인 동시에, 오늘날 중국 사회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신조어이다. 1997년 처음 제시된 ‘디지털 노마드’라는 미래 개념은 인터넷, 스마트폰, 노트북, 5G, 클라우드 그리고 인공지능의 발전을 거치며 현실적인 생활 방식으로 발전했다.
중국에서도 여러 지역에서 디지털 노마드 커뮤니티가 형성되면서 새로운 청년문화와 지역경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노마드를 단순히 “회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여행하며 돈을 버는 삶”으로 낭만화해서는 안 된다. 그 이면에는 소득 불안정, 사회보장 부족, 노동법의 사각지대, 인간관계의 단절 그리고 자기 관리의 어려움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핵심은 디지털 노마드가 “어디에서 일하는가”가 아니라, “일이 인간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젊은 세대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산업사회가 “좋은 조직에 들어가 안정적으로 일하라”고 요구했다면, 오늘날의 청년들은 “내 능력을 활용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가?”라고 묻기 시작했다.
중국 사회는 이러한 변화를 단순히 개인주의나 안정된 직장에 대한 거부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세대가 추구하는 자율성과 삶의 질을 존중하는 동시에, 불안정한 노동으로부터 이들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결국 수쯔유민이 던지는 질문은 “어디에서 일할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일을 하면서 어떻게 즐겁게 의미 있는 삶을 살 것인가?”이다.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이 질문은 중국 청년뿐 아니라 모든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 ♣
*이 글은 챗GPT와 퍼플렉시티, 바이두(百度)의 자료를 참고하고 종합하여 작성하였다.
♣석은혜 | 본웹진 전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