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추제’와 ‘궈칭제’ 그리고 ‘請3休13’
<중주> 가족 여러분, 유난히 더웠던 여름, 잘 보내셨습니까? 9월이 되었습니다. 9월의 넷째 주일에는 추석이 들어 있지요. 그다음 주일에는 중국의 큰 명절 가운데 하나인 국경절(건국기념기념일)이 들어 있답니다. 중국에서는 몇 달 전부터 ‘請3休13’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고 합니다. 請3休13은 9월 25일(금)부터 27일(일)까지는 중추제(仲秋節) 연휴, 10월 1일(목)부터 7일(수)까지는 궈칭제(國慶節) 연휴이기 때문에 중간의 3일을 휴가 신청하면 13일의 긴 기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뜻으로 생긴 말이라고 하는군요.
지금 중국에서는 9말10초(九末十初)를 이용해 국내, 또는 해외로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많아 항공권 예약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고 하네요. 한국을 방문하는 분들도 많을 텐데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없는지 찾고 싶습니다.
또 한국에는 많은 중국인 근로자와 유학생이 와 있는데 중추제를 맞아 이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제공하면서 복음을 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고려문 탐방의 추억 우리나라에서도 추석 연휴와 개천절 연휴를 이용해서 해외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조금 엉뚱한 질문일지 모르겠는데 만일 <중주> 가족 여러분께 중국 여러 곳을 여행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디를 가고 싶으신가요?
9년 전 여름의 일인데요, 한국교회의 역사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팀을 만들어 중국 동북지역을 한 바퀴 돈 일이 있습니다. 9년 전이면 2017년이지요. 그 해는 최초의 한글성경인 《예수셩교젼서》(통칭 ‘로스역’) 완간 13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래서 그 팀은 “《예수셩교젼서》 출판 130주년 기념 ‘존 로스의 행적을 따라 동북3성을 가다’”라는 긴 이름으로 중국의 선양(沈陽), 단둥(丹東), 지안(集安), 랴오닝(遼寧), 잉커우(營口) 등 여러 곳을 방문했습니다.
저도 그 팀의 멤버 가운데 한 사람이었는데 일행 중에는 한국교회 역사가들을 비롯하여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어서 가는 곳마다 있어서 다양한 의견 교환이 이뤄졌고 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단둥 부근에 고려문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조선인들을 중심으로 한 장이 서곤 하던 곳이었는데 주로 평안북도 의주 주민들이 강을 건너와서 장사를 했지요.
로스 선교사가 그곳에서 의주 주민들을 만나 전도지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전도지를 받고, 믿음을 갖게 되고, 세례받고, 로스역 성경번역에 동참하고, 전도인이 된 분들의 이름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분이 서상륜(徐相崙)이지요.
장이 서던 곳은 저희가 방문했을 때까지는 빈터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부근에 ‘일면산역(一面山驛)’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기차역이 있었는데 원래의 이름은 ‘고려문역’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역 자체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변문진(邊門鎭)’이라는 비석도 있었는데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들이 문화 유적들을 마구 파괴할 때 고려문과 주변 성곽도 파괴되었습니다. 문화대혁명은 1976년에 시작되었는데 그리고 보니까 올해가 문화대혁명 발생 50년의 해이네요. 그곳에 갔을 때 일행 중의 건축학 교수가 주택들의 돌담을 가리키면서 저 돌담들은 크기나 석질이나 모양을 볼 때 파괴된 고려문 성곽의 돌들을 가지고 쌓은 게 분명하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 돌담에 다가가서 쓰다듬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 교수님의 해설을 들으면서 저는 이 일대에 성곽이 서 있고, 성문이 있고 장터가 있고 로스 선교사가 의주의 주민들을 만나 전도지를 주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곳뿐만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비슷한 체험을 했습니다. 현장 방문은 이런 유익이 있답니다.
허드슨 테일러의 자취를 찾고 싶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는 허드슨 테일러(James Hudson Taylor 載德生, 1832〜1905) 선교사의 발자취를 찾아보는 현장 탐방하고 싶습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는 잘 아시는 대로 중국내지선교회(China Inland Mission)의 설립자로 중국선교에 아주 크게 기여를 한 분입니다. 저는 <중국을주께로> 2005년 봄호(그때는 <중국을주께로>가 계간지였고 종이 잡지였습니다) ‘발행인 통신’에 “발 대신 무릎으로: 허드슨 테일러 서거 100주년을 맞아”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일이 있습니다. “발 대신 무릎으로”는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중국 내지로 향하는 후배 선교사에게 준 말입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의 자취를 찾으려면 먼저 상하이(上海)에 가야 하겠지요. 1853년 9월 19일, 그러니까 173년 전의 이달에 영국 리버풀을 떠난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는 156일 간의 긴 항해 끝에 1854년 3월 1일 상하이 우쑹커우(吳淞口)에 도착해서 선교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중국인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중국옷을 입고 염색과 변발을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닝보를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는 1856년 10월부터 닝보로 옮겨 선교활동을 시작했으니까요. 이때 허드슨 테일러는 숙소의 대문 한쪽에는 ‘여호와이레(耶和華以拉: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다)’, 한쪽에는 ‘에벤에셀(以便以設耳: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라는 글을 걸어놓았는데 이 두 문구는 그의 중국선교의 표어가 되었습니다. 이후 닝보는 허드슨 테일러의 중국선교에 있어서 베이스캠프의 역할을 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의 자취가 스며있는 곳은 여러 곳입니다. 그 가운데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전장(鎭江)입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는 1905년 6월 3일 창사(長沙)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그는 아내와 자녀들이 묻혀있는 전장의 양쯔강변 니우피포(牛皮坡) 선교사 묘지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 부부의 묘비에는 많은 밀알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라는 말씀을 따라서 그렇게 한 것인데 이 말씀 그대로 허드슨 테일러는 많은 열매를 맺은 밀알이 되었습니다.
전장의 선교사 묘원은 중국이 겪은 많은 격변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중국의 많은 기독교 유적이 같은 운명을 겪었지요. 땅에 묻혀있던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의 묘비가 2013년에 기적적으로 발견되어 이듬해인 2014년에 쉬안더탕(宣德堂)으로 옮겨져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 비석 앞에 서서 허드슨 테일러의 헌신적인 삶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라고 하면 ‘아, 이분, 참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처음에 소속했던 선교회와 갈등도 있었고 기관지염과 간암 등 건강의 어려움도 그를 괴롭혔고, 노숙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기도 했었고, 가진 것 모두 강탈당하는 일도 있었고 첫 번째 부인과 두 아들, 두 딸을 모두 잃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돌이켜보면서 ‘지금 중국선교가 힘들다고 하지만 허드슨 테일러를 생각하면 그런 말을 꺼내지 못하겠구나!’ 하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냥 머릿속으로 탐방 여행을 막연하게 그려보는데도 이런 깨달음이 있는데 오랫동안 땅에 묻혀있다가 발견된 비석 앞에 서면 백배의 각성과 다짐이 솟아날 것 같습니다. 이것이 제가 전장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입니다.
이번 호에는 <중국을주께로> 요즘 민감한 문제로 떠올라 있는 “진밍르(김명일) 목사님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글을 “따끈따끈하다”라고 하지요.
<중주> 가족 여러분, 가을 잘 맞이하시고, 추석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
♣유관지 | 본 웹진 발행인, 중국어문선교회 고문, 용산감리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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