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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6  통권 288호  필자 : 김영철  |  조회 : 1387   프린트   이메일 
[중국 영화]
《안개 낀 시절(大濛:A Foggy Tale)》_비정(悲情)의 계절, 따뜻한 기억

천위쉰(陳玉勳, 1962∼)이 각색과 연출을 맡은 이 영화는 2025년 11월 대만에서 상영됐다. 2025년 제62회 대만 진마장(金馬獎)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 각본상, 미술상, 의상상, 관객이 뽑은 최고 영화 관객상 등을 수상하며 가장 주목받았다. 천위쉰은 2020년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消失的情人節)》으로 제57회 진마장 시상식에서 5개 부문을 석권했었다. 천위쉰이 연출한 장편영화는 10편도 되지 않지만, 이 영화로 5년 만에 다시 진마장 최다 수상작이 되는 영예를 안았다.

《안개 낀 시절》은 대만의 백색테러 시대를 다룬 영화이다. 일본군이 퇴각한 뒤 대만을 통치한 국민당 군대가 1947년 차별 대우에 반발한 대만인들을 유혈 진압한 2·28 사건으로 백색테러 시대는 시작됐다. 1949년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정권의 계엄령은 1987년에서야 해제되었다. 대만의 백색테러 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표적인 작품은 2·28 사건을 처음 다룬 1989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한 영화 허우샤오셴(侯孝賢)의 《비정성시(悲情城市))》이다. 그리고 쉬한창(徐漢强) 감독이 2019년 내놓은 공포 영화 《디텐션(Detention, 返校)》은 1960년 대만의 한 시골 학교에서 선생님이 독서 모임을 주도했다고 군경에 체포돼 반란죄로 총살형을 당한 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대만의 백색테러 시대를 다룬 영화의 작품 수는 적은 편인데 공포와 음울, 엄숙한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 이런 점에 착안한 천위쉰은 자신만의 역사 쓰기 영화를 제작했다. 

민국(民國) 42년(1953년) 자이(嘉義)현 농촌 마을에 열세 살 아웨(阿月(黃秋月) 역, 方郁婷 분)는 여러 달 사탕수수밭에 숨어있는 오빠 위윈(黃育雲, 曾敬驊 분)을 돌봐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들이 들이닥쳐 오빠를 타이베이로 압송하였는데, 1년 후 총살형을 당한다. 대만성 보안사령군법처(臺灣省 保安司令軍法處)로부터 극락빈의관(極樂殯儀館, 장례식장)에서 위윈의 시신을 인도하라는 통지를 받는다. 부모는 돌아가시고 숙부의 가족은 아웨 집에 와서 함께 산다. 숙부는 시신 인도 비용이 타이비(台币) 육백 원에서 일천 원 정도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포기하려고 한다. 타이비 육백 원은 온 가족의 일 년 생활비가 되는 거액이었다. 

아웨는 통지서, 약간의 돈 그리고 오빠의 손목시계를 보따리에 넣고 무작정 타이베이로 가는 기차를 탄다. 타이베이에 도착해서 인신매매범에게 끌려갔다가 인력거꾼 자오공다오(趙公道, 柯煒林 분)의 도움으로 구출된다. 어려서 민며느리로 타이베이에 살고 있는 친언니 슈샤(邱秀霞, 9m88 분)의 도움으로 해부 실험을 위해 국방의대에 안치된 위윈의 시신을 화장해서 고향으로 데려온다.

핍박과 궁핍 사이
아웨는 타이베이에 도착하자, 극락빈의관에(장례식장) 데려다주고 시신 인도에 필요한 돈도 마련해 주겠다는 인신매매범의 유혹에 이끌려가서 감금된다. 인력거꾼 자오공다오는 아웨를 인신매매범에게 감금되었던 곳에서 구출해 주고, 오빠 위윈의 손목시계를 90원에 중고상에게 팔게 도와주었지만, 시신 인도 비용으론 턱없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주사위 도박장에 데려갔다가 본전마저 잃게 된다. 자오공다오는 양심의 가책으로 거리에서 소매치기도 시도하지만 주저하다가 실패한다.

자오공다오는 아웨를 인력거에 태워서 하루 종일 아웨의 언니 슈샤가 사는 곳을 찾아다녔다. 슈샤는 남동생 위윈의 시신을 인도하는 데 드는 비용 천 원을 빌리러 가무단 단장에게 갔으나 단장은 단원들에게 줄 월급도 없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단장은 그가 가진 138원을 모두 건넸고 슈샤는 38원은 돌려주었다. 다른 단원들도 슈샤에게 10원씩 건네주었다. 아웨는 언니 슈샤가 다리를 노출한 짧은 옷을 입고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슈샤는 함께 자란 오빠 아즈(阿智, 謝章穎 분)와 결혼하라는 의부의 말을 거절하고 집을 나와 경제적으로 독립하려고 했다. 처장(處長, 王傳一)은 슈샤의 궁핍한 사정을 알고 도우면서 슈샤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처장의 아내와 자식이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이주한 사실을 알고 나서 헤어진다. 

집이 가난해서 어려서 민며느리가 되어 타이베이로 보내진 슈샤는 황(黃) 씨에서 추(邱) 씨로 자기의 성도 바꾸었다. 외지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슈샤의 사랑과 결혼 생활에 온갖 곡절이 많았다. 광둥 출신으로 제대군인인 자오공다오는 전역한 뒤 지하 반란 세력(공산당)과의 관계를 의심받아 직장에서도 쫓겨나고 인력거꾼이 되었다. 

특무 요원(비밀정보요원) 판춘(范春, 陳以文 분)은 반정부 조직원을 색출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판춘은 자오공다오를 고문하여 소대장 류다칭(劉大慶)의 은닉처를 실토하게 하고도 석 달이나 수감되었다. 류다칭은 심한 고문으로 죽었지만, 후에 총살형으로 가장되었다. 류다칭은 전장에서 여러 번 자오공다오의 목숨을 구해주고 전역 후에는 담배 공장에도 취직을 시켜줬다. 

판춘은 대대장 쉬바이한(許柏漢)이 잠적하자, 자오공다오에게 언제 대대장과 연락했었냐고 물었다. 판춘은 국가를 위해서 적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오공다오는 자신은 전쟁터에서 국가를 위해서 수없이 싸웠다고 대답했다. 

백색테러 시기에는 전장에서 여러 번 목숨을 구해주고, 전역 후에도 돌봐주었던 전우, 상관을 공산당이란 꼬리표를 달아 고발하게 하였다. 자오공다오는 거주하는 곳에 3명 전우의 손가락뼈를 담은 작은 깡통을 가지고 있었다. 전우가 죽으면 그의 손가락뼈를 고향에 묻어주기로 약속했다. 국민당 병사들은 자신을 피난자로 여기고 쥐안춘(眷村)에서 주로 독신으로 살면서 대만을 잠시 머물다 갈 곳으로 여겼다.

판춘은 직속 부하 리얼슝(李二雄, 蔡昌憲 분)의 어릴 때 친구이자 과거 좋아했던 의사 부인에게 접근하였다. 리얼슝은 판춘이 의사 부인과 재산을 탐낸다고 생각했다. 리얼슝은 돈이 필요한 자오공다오에게 거금을 쥐여주면서 소대장 류다칭의 원한과 자신의 원수를 갚아달라고 부탁했다. 자오공다오는 위윈의 시신 인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청부살인에 응한다. 아웨에게 노점상에서 유탸오(油條) 10개를 만들 시간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아웨는 불길한 조짐을 예감하고 유탸오를 5개씩 빨리 만들어달라는 말을 하다 말고 뒤쫓아 간다. 

자오공다오가 의사 부인의 집에 잠입해서 망설이다가 판춘에 발각되자, 리얼슝은 아래층에서 지켜보다가 칼로 판춘에게 상해를 입히지만, 판춘의 총에 맞아 죽게 되고 의사 부인은 옛 친구 리얼슝을 알아보고 비명을 지른다. 자오공다오는 특무 요원 판춘의 암살에 실패하고 아웨 앞에서 끌려간다. 

우화와 역사
“그것이 구름이든 안개든, 우리는 그날의 풍경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천위쉰)

백색테러 시대에 부조리와 부패가 만연했다. 극락빈의관(장례식장)은 유가족에게 거금의 시신 인도 비용을 요구했다. 심지어 정치범을 총살하고 총알값도 받아냈다. 극락빈의관에 많은 정치범 시신이 안치되었고, 유가족은 막대한 비용과 남들의 시선을 인식해서 시신 인도를 꺼리기도 하였다. 부정부패의 온상인 극락빈의관의 책임자는 뇌물을 받고서야 위윈의 시신이 국방의대에 안치된 사실을 알려주었다. 국방의대에는 포르말린 용액을 채운 커다란 수조에 여러 시신을 담가 놓았다. 아웨와 슈샤는 눈물을 흘리며 위윈의 시신을 식별해야 했다.

아웨는 남몰래 사탕수수밭에 3개월간 숨어있는 오빠 위윈에게 찾아가곤 했다. 하지만 위윈는 늘 엄마의 병세를 걱정한다. 위윈은 여동생 아웨에게 힘들면 시계의 시침을 빨리 돌리라고 말했다. 내일, 모레, 5년, 10년...이면 모든 게 지나갈 거고, 1970년에 아웨는 선생님이 될 거라고, 1980년에 위윈 자신은 화가가 되어 어린이 그림책을 그릴 거라고 말했다.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 자유와 평등을 누리고 박해나 학대가 없는 세상이 될 거라고, 그런 세상이 빨리 오기를 바랐다.

오빠 위윈이 여동생 아웨에게 미래에 대한 동경을 말하는 장면은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인생(活著)》(1994)에서도 볼 수 있다. 국공내전,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 온갖 역경을 겪고 가족도 잃은 주인공 푸궤이(福贵)가 손자에게 미래의 중국은 더 발전하고 풍요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아웨는 국방의대에 안치된 시신들 가운데서 오빠의 시신을 찾는 게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아웨는 오빠가 준 손목시계가 없어서, 머리와 입으로 시간을 셌다. 빠르게 1956년, 1958년 ……. 1993년까지 셌다. 오빠가 화가가 되길 소망했던 1980년까지 세어도 시신을 찾지 못하고, 대만이 계엄 해제가 되었던 1987년도 세었다. 

백색테러는 계엄령 해제 이후에도 ‘반란 처벌 조례’와 ‘중화민국 형법’에 근거해 계속 이어졌다. 1991년 5월 23일, 국회는 《계엄시기검숙비첩조례(戡亂時期檢肅匪諜條例)》의 폐지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대만에 언론 및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고 민주화가 본격화하면서 백색테러 시대도 막을 내렸다.

위윈은 투옥되기 전 아웨에게 자신의 그림책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강에는 아미(阿迷)와 아수이(阿水)라는 두 개의 물방울이 있었는데, 그들은 하늘의 세상을 구경하고 싶어서 구름이 되었고, 사막을 기름지게 하여 식물이 자랄 수 있도록 빗물이 되었다. 

위윈은 “사람은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두려워해 없애려 한다”라고 말했다. 위윈은 아웨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용기를 잃지 말라.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고 용기만이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권위주의 시대의 독재와 억압은 용기만이 종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위윈은 투옥된 후 출옥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편지를 누나 슈샤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편지에는 두 물방울에 관한 이야기가 새롭게 쓰여 있었다. 강에 있는 두 개의 물방울 중 하나 아수이는 하늘의 아름다운 구름이 되었다가, 다시 빗방울이 되어 태평양으로 떨어졌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했다. 다른 하나 물방울 아미는 수증기가 되어 올라가다 구름이 되지 못하고 안개가 되어 풍경 일부가 되었다. 이야기의 제목은 짙은 안개이며 영화의 제목 대몽(大濛)이다. 

위윈은 물방울 아미가 아름다운 구름이 되지도 못하고, 안개가 되어 흩어진 것같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수많은 물방울이 모여 사막을 옥토로 만들고자 했던 사명감과 결심, 이는 장렬한 희생을 통해 잠시 역사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수많은 무명의 사람들을 말한다.

영화의 엔딩크레디트 시작에 “그 시대의 구름과 안개에 바친다”라는 자막을 띄웠다. 천위쉰 감독은 영화 속에서 구름과 안개는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며, “그것이 구름이든 안개든 우리는 그날의 풍경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풍경이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비애 속 온기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이야기이다.” (천위쉰)

아웨는 1993년 타이베이 류장리(六張犁)에서 정치범 100명의 공동묘지가 발견됐다는 티브이 뉴스를 접하고, 딸 류녠윈(劉念雲, 宋芸樺 분)에게 희생자 명단을 부탁했지만, 자오공다오의 이름을 발견하지 못했다.

2004년 아웨는 딸과 손녀와 함께 타이베이 어느 병원에 검진하러 간다. 그때 우연히 간호사가 부른 환자의 이름, 자오공다오를 듣고 두 사람은 재회한다. 아웨는 검진받으러 들어가며 자오공다오에게 다섯 개 유탸오(油條)를 만드는 시간만 기다려달라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자오공다오는 간호사에게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위윈의 시계는 아니고 비슷한 시계라고 말한다. 자오공다오는 지팡이에 의지해서 홀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인력거를 끌 때 외치던 “출발(갑니다)” 한 마디를 외치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혹자는 두 사람의 재회에 불만을 토로했다. 아웨는 자오공다오가 자신을 위해서 총살을 당했다는 공포와 회한 속에 살다가 재회를 통해 한평생의 아픔을 덜 수 있었다. 위윈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자오공다오는 억울하게 25년간 옥고를 치렀다. 위윈이 말한 ‘용기’, 자오공다오의 ‘출발’ 고함은 비록 상처를 입었지만, 역사는 여전히 굳건하게 앞을 향해 미래로 전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천위쉰은 말했다. “이 영화는 내 생애 꼭 찍고 싶었던 영화이자,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이야기며, 사랑에 관한 영화다. 잔혹하고 비정한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빛나는 인간성의 고귀함을 볼 수 있고, 고난의 나날 속에서 인간을 계속 나아가게 하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 아픈 과거를 용기 있게 마주쳐야만 비로소 사랑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다.”

자오공다오는 어머니가 딸을 일곱 낳고 마지막에 아들을 낳자, 아버지가 하늘은 정의롭다라고 하여 공다오라고 이름을 지었다. 자오공다오(赵公道)의 이름은 ‘找公道’의 발음이 유사하다. 어지러운 세상에 약자를 위해서 정의를 실현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오공다오가 하늘의 정의를 실현하려는 행동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특무요원 판춘에 대한 복수, 아웨를 위한 시신 인도 비용 마련, 고문에 못 이겨 소대장의 은거지를 밀고 등등 하지만 자오공다오의 선량한 마음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자오공다오의 대범한 행동과 웃는 모습에 아웨도 이따금 따라서 미소 지었다. 자오공다오는 군대에서 각 지역 욕을 다 배웠다며 말할 때마다 욕지거리가 뛰쳐나온다. 하지만 아웨에게 자신을 배우지 말라고 타일렀다.

유탸오 노점상인이 자신은 산둥(山東) 출신이라 말하자, 아웨는 싼동(三東)이냐고 다시 물어본다. 대만의 민난(閩南) 방언에 권설음이 발달하지 못해 발생하는 언어적 오해를 코믹하게 연출했다.

천위쉰은 이 영화는 엄숙하거나 무거운 역사 영화가 아니라, 따뜻하고 인간성의 고귀한 빛을 이야기하는 영화라고 강조했다. 이 영화는 대만인들이 서로에게 서로의 풍경이 되어주며, 그 모진 고난의 시기를 함께 걸어온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영화에는 자오공다오같이 의롭고 선량한 인물이 여럿 등장한다. 가오진종(高金鐘, 劉冠廷 분, 1922∼)은 자신을 일제강점기 때 활약했던 의적 랴오톈딩(廖添丁, 1883∼1909) 2세라고 소개한다. 가오진종은 1950년대 여러 차례 절도와 탈옥했다. 가오진종은 훔친 돈을 아웨에게 주었지만, 경찰에 몰수당한다.

영화에는 좋은 사람과 악한 사람이 등장하지만, 절대적인 악인은 드물다. 환경과 시대가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아 악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경찰은 아웨를 신문하면서 가죽 허리띠로 어리고 가냘픈 소녀 아웨를 가혹하게 매질했다. 아웨는 경찰이 오빠 위윈을 데려가서 죽였다고 저항했다. 하지만 다른 경찰은 사오빙(燒餅)을 사다 주고 방면해 주었다. 아웨는 사오빙 절반을 남겨서 배고픈 자오공다오에게 주었다.

부정부패가 만연한 장례식장 극락빈의관과는 달리, 국방의대의 한 여성 직원은 상사에게 아웨의 오빠 시신을 찾는 것을 도와주라고 말하고, 상사는 화장한 후 유골을 담을 단지를 정성스레 찾아서 주었다.

영화는 세상의 끝에도 여전히 온기가 남아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격한 감정이나 슬픔과 비판을 절제한다. 치료와 위로를 주축으로 하고 해학과 유머에 따뜻함을 불어넣었다. 

밤안개 자욱한 어둠 속에서 아웨는 언니 슈샤를 찾고 있었다. 그때 등불을 든 네 명의 어린이가 아웨를 스쳐 뛰어갔다. 고난과 방황 속 아웨는 과거의 어린이며, 밝게 웃으면서 등불을 들고 달려가는 모습은 미래 어린이들의 희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오공다오는 소녀 아웨 나이에 군대를 뒤따라 피난하다가 소년병이 되었다. 아웨와 자오공다오는 어른으로 성장할 시간과 어린이가 누려야 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전쟁과 권위주의 시대가 낳은 비극이다.

천위쉰 감독은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은 모두 앞선 세대가 일구어 놓은 ‘풍경’이며, 우리 역시 후대를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남겨줄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하고, “우리가 지금 이렇게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상당 부분 그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다. 그분들께 감사함을 전하겠다는 거창한 의미라기보다는, 그저 그분들의 삶이 너무나 가슴 아프고 안타까워서 그리고 그분들을 마음 깊이 기억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판춘은 우(吳) 씨 성의 의사를 반국가 세력으로 총살당하게 하고 그 의사 부인(林雨宣 분)과 아들을 돌봐주었다. 과일과 분유, 레코드판(Lp)을 사 들고 방문하여, 의사의 어린 아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함께 침대에서 잠들곤 했다. 자오공다오는 판춘이 의사의 어린 아들과 함께 침대에서 잠든 모습을 보고 암살을 주저하다가 발각된다. 이 장면은 허우샤오셴(侯孝賢)의 영화 《자객 섭은낭(刺客聶隱娘)》(2015)에 대한 오마주다. 섭은낭은 사부의 명을 받아, 부패한 관리를 처단하러 갔다가 어린 아들을 안고 잠든 모습을 보고 측은지심을 느껴 암살을 포기한다. 
 
영화는 판춘이 1976년 특무 요원을 사임하고 조명 장식 수출업에 성공했다고 자막을 넣었다. 일부 관객과 영화평론가는 악인이 역사의 심판대에 서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역사에서 가해자의 성공담은 고금동서에 자주 회자한다.

《안개 낀 시절》은 월터 살레스가 연출한 2024년 정치 전기 드라마 영화 《아임 스틸 히어 (I'm Still Here)》와 닮았다고 한다. 브라질 군사 독재 시절 반체제 정치인의 실종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에는 달, 구름, 노을의 뜻이 있다. 그리고 영화의 중국어 제목은 짙은 안개이다. 영화의 마지막 엔딩크레디트에는 영화 촬영 과정에 동물을 상해하지 않았다고 자막을 달았다. 본 영화는 자연에 대한 예찬과 자연 친화적인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1964년 아웨가 교대를 졸업하고 라오쑹(老松) 초등학교에 부임했다고 자막을 달았는데, 이 학교는 감독 천위쉰이 다녔던 곳이다. 천위쉰은 역사의 목격자임을 자임했다.

대만은 중국 각지에서 모인 이주민이 거주하는 이민 사회와 같다. 대만에는 외성인(外省人)과 내성인(內省人)의 갈등뿐 아니라, 한족과 원주민, 일본인 사이의 모순도 존재한다. 영화에는 《사윈의 종(莎韻之鐘)》 노래가 나온다. 대만 총독부(台灣總督府)가 출자해서 1942년에 영화 《사윈의 종》을 제작하고 리샹란(李香蘭)이 주연을 맡고 영화 주제곡을 불렀다. 타이야(泰雅)족 소녀 사윈·하융(莎韻·哈勇)이 일본인 교사의 짐을 옮기다가 실족해서 익사한 이야기이다. 대만 총독은 이 영화를 황민화정책(皇民化政策) 선전에 동원했다. 원주민 소녀가 일본인 교사를 돕다가 희생한 일을 미화했다. 대만 원주민과 일본군 간에 불신과 반감을 불식하고 일본군의 통치와 전쟁에 협력을 이끌려는 조치의 일환이었다. 대만 일제강점기 때, 1930년 원주민이 일본군 통치에 반발하여 반일 무장 봉기한 우서 사건(霧社事件)이 발생했다. 《시디그 발레(賽德克·巴萊)》(2011)는 웨이더성(魏德聖) 감독이 이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다.

수많은 젊은 대만의 원주민이 일본군으로 전쟁에 동원되었다. 스니우오(Suniuo, 1919∼1979)는 대만 타이둥(臺東)현 아메이(阿美)족 원주민이며, 일본군으로 1944년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여, 인도네시아 정글에 숨어 약 30년 동안 잔류 일본군으로 지내다가 1974년에야 발견되었다. 《안개 낀 시절》은 외성인의 유입과 정치적 암흑기 외에 원주민의 슬픔도 주목한다. 

아웨는 오빠의 유골 단지를 들고 장례의 행렬을 뒤따랐다. “우리 집에 가는 거야”, “악대가 연주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오빠의 영혼에 대한 안식과 위로였다. 악대가 연주하는 곡은 찬송가 ‘죄 짐 맡은 우리 구주’이다. 우리가 힘들고 지칠 때 세상의 근심과 어려움을 주님께 내려놓으라는 위로의 노랫말이다.

영화 속 관악기의 울림이 퍼지는 화려한 장례 행렬은 빈한하고 외롭게 유골 단지를 든 어린 소녀 아웨와 강렬한 대조를 이룬다. 

중국인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 크리스천인 유명 인물이 적지 않다. 중화민국(대만의 국호)의 국부라 불리는 쑨원(孫文)은 1883년 세례받았으며, 기독교는 그의 생애 역경과 정치사상에 깊은 관계가 있다. 장제스 총통은 쑹메이링(宋美龄)과 혼인하며 크리스천이 되었다. 대만 전 부총통 롄잔(連戰)의 장녀는 화이언탕(懷恩堂)에서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대만 크리스천의 비율은 5% 정도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감소 추세라고 한다.

대만과 한국은 1992년 전까지 우방이면서 각 분야에서 서로 선의의 경쟁을 했다. 한국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다면 대만에는 TSMC가 있다. 일제 식민지, 좌우 진영 대립, 전쟁, 분단, 권위주의 독재, 민주화, 기적적인 경제발전 등 여러모로 닮아있다.

전 세계는 전쟁과 보호무역주의, 국내는 극심한 사회적 갈등이 팽배하다. 대만과 한국의 정치·사회 지도자는 섬김의 미덕과 경외(敬畏)심으로 위기를 극복하길 바란다. ♣







♣사진 출처 | (위) https://zh.wikipedia.org/zh-tw/%E5%A4%A7%E6%BF%9B[2026.8.4.접속함]
♣김영철 | 한양대 글로벌문화통상학부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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