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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6  통권 288호  필자 : 원핑(文平)  |  조회 : 1471   프린트   이메일 
[기획]
〈천풍(天風)〉을 통해 살펴보는 중국교회 이슈들 (3) _2025년 7∼9월호를 중심으로


【필자 주】중국에서 공식적으로 발행되는 기독교 잡지 〈천풍(天風)〉의 2025년 1월호∼3월호를 중심으로 한 내용을 지난 4월호에서 처음으로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6월호에서는 4월호∼6월호의 내용을 다루었고, 이번 호에서는 7월호∼9월호 ‘특집 토론(衆議苑)’ 코너에 게재된 특집 주제와 그 토론 내용의 요약을 통해 중국 기독교의 최근 이슈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2025년 7월호 _系統推進基督敎中國化走深走實 (七): “虛己的基督”
2025년 7월호 _기독교 중국화, 체계적·심층적·실질적인 추진 (7): “자기를 비운 그리스도(虛己的基督)”

〈천풍〉 2025년 7월호의 토론 주제는 ‘기독교 중국화’를 더욱 체계적으로 깊게 그리고 내실 있게 추진하는 데에 있어 ‘자기를 비우신 그리스도(虛己的基督)’에 관한 것입니다. 이는 기독교 중국화라는 시각으로 중국교회 특색의 ‘기독론’을 정립하려는 편집자의 의도라고 밝힙니다. 그리하여 이번 호에서는 두 편의 글을 실어 ‘성육신이 문화를 온전하게 한다’라는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섬김의 정신을 체험하고 이에 따라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받아 겸손히 섬기며, 사회를 위해 열심히 공헌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합니다.

첫 번째 글은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 부비서장이고 쓰촨(四川)성기독교양회 부주석, 부회장 겸 총간사인 장졘(張健) 목사의 “성육신의 계시: 목숨을 버림과 섬김(道成肉身的啓示: 舍命與服待)”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훈련한 뒤 그들에게 병 고치고, 귀신 쫓는 권세를 주셨는데, 이는 곧 마음과 몸의 질고를 지닌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라는 부르심이었습니다. 저자는 이를 오늘날 흔히 말하는 ‘전인적 치유와 구원’의 구체적 실천으로 봅니다.

장졘 목사는 먼저 예수의 섬김이 사랑의 표현임을 논합니다. 완전한 신성을 지니신 그리스도께서 요한복음 1장 14, 18절이 증언하듯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셨으며, 이사야 53장에서 종의 형상 예언대로 완전한 인성을 취하여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람을 섬기고 구원하시려는 목적 때문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저자는 이를 세 단계로 나누어 풀이하는데, 첫째는 “도성육신—사람이 그분을 알게 하려 함”으로, 하나님은 본래 영이시나 인간 인식의 한계를 배려하여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낮아지심—사람이 그분께 가까이 가게 하려 함”으로, 예수님이 목수의 마구간에서 나시고 병자, 귀신 들린 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친히 다가가신 사실을 강조합니다. 

셋째는 “자기를 버리심—사람이 그분을 얻게 하려 함”으로, 요한복음 15장 13절의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욱 큰 사랑이 없다”라는 말씀을 인용하며, 예수의 섬김이 자발적이고 능동적이며 필요했으며, 큰 결실을 보았다고 설명합니다.

이어서 장졘 목사는 예수의 섬김이 강력한 증거였음을 논합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함”이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마가복음 전체가 예수께서 사회 최하층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실질적으로 섬기신 기록임을 지적합니다. 

저자는 섬김을 세 가지로 세분합니다. (1) 병자를 치유하심—당시 가난한 대중에게 가장 큰 생존 위협은 질병이었으며, 예수는 아무 조건 없이 병을 고치고 구원을 함께 베푸셨습니다. (2) 귀신을 쫓으심—귀신 들림은 정신적·육체적 이중고를 안겼는데, 예수는 이를 통해 사람의 필요를 채우고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눅 19:10). (3) 기도하심—제자와 청원자들을 위한 기도, 궁핍한 자에 대한 긍휼과 축복을 통해 예수의 겸손한 섬김이 드러났습니다.

결론적으로 장졘 목사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회봉사 사역을 중시하고, 자기희생적 사랑을 실천하며, ‘오병이어’와 같은 작은 헌신을 통해 건강하게 계승되는 중국교회를 세우는 데 힘써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두 번째 글은 헤이룽장성 기독교협회 총간사 사오산(邵珊) 목사의 “예수의 세 가지 직분으로 본 섬김의 세 차원(從耶蘇的三重身份看其服務世人的三個維度)”입니다. 사오산 목사는 그리스도론이 조직신학의 핵심이며 삼위일체론과 밀접히 연관됨을 전제하고, 예수의 선지자·제사장·왕이라는 세 직분을 축으로 삼아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회에 교회가 적응하고 중국화를 추진하는 데 참고할 통찰을 제시합니다. 

첫째, 선지자의 직분 _무리 속으로 들어가심(자기를 드러내신 그리스도), 불안한 자를 섬기심. 복음서에서 예수가 스스로 ‘선지자’라고 칭한 곳은 누가복음 13:33과 마가복음 6:4 두 곳뿐이나, 구약의 예언된 메시아로서 그 시대 사람들의 두 가지 불안—약 400년간 하나님의 말씀이 끊겼던 ‘신앙 계승의 위기’와 다윗·솔로몬 왕조의 영광을 회복하지 못하는 ‘민족 계승의 위기’—를 위로하셨습니다. 예수는 로마 제국의 정치적 압박, 성전 제사장·바리새인들의 완고한 율법 전통 그리고 유대인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 선포라는 세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며 활동하셨습니다.

둘째, 제사장의 직분 _고난을 향해 나아가심(자기를 버리신 그리스도), 소망 없는 자를 섬기심. 히브리서 4∼5장이 증언하듯 예수는 역사상 최고의 대제사장이자 유월절 어린양(고전 5:7)으로서 자기 피로 죄를 씻으셨습니다(롬 3:25). 저자는 당시 사람들의 ‘소망 없음’을 세 가지로 짚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완전한 중보자의 부재, 흠 없는 제물의 부재(성전 정결 사건, 요 2:13∼22 등 참조) 그리고 인간 스스로는 죄를 해결할 수 없다는 근본적 무력함(민 14:18 참조)입니다. 예수는 높은 지위를 스스로 낮추시고, 죄인을 대신해 죽기를 자원하셨으며(롬 5:7∼8), 완전한 인간으로서 연약한 자들과 온전히 공감하심으로 이 가망이 없는 자들을 섬기셨습니다.

셋째, 왕의 직분 _영광을 떠나심(자기를 비우신 그리스도), 비천한 자를 섬기심. 유대인들은 무력으로 이방의 통치를 물리칠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했으나, 예수는 대제사장과 첫 번째 글은 안후이(安徽)신학원 학생부 주임 왕레이(王雷)의 “육신과 성정으로 본 그리스도의 인성(從肉身和性情看基督的人性)”입니다. 이 글은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 두 본성을 완전하게 지니셨으며, 두 본성은 서로 혼동되거나 분리되지 않는다고 밝힙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신성은 중시하면서 인성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인식입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활동은 그 인성을 다방면으로 생생하게 드러냅니다.

그래서 왕레이 주임은 먼저 보통 사람과 같은 몸인 육체적 표현을 기술합니다. 예수님은 하루아침에 자라난 슈퍼맨이 아니라, 영아에서 점차 어른이 되셨습니다. “지혜와 키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 야곱의 우물가에서는 지쳐 앉으셨고, 십자가 위에서는 “목마르다”라고 하셨으며, 폭풍 속 배 안에서는 깊이 잠드셨고, 광야 사십일 금식 후에는 주리셨습니다. 이 모든 장면은 예수님이 우리와 동일한 육체적 필요를 지니셨음을 보여줍니다. 바로 그렇기에 그분은 민중의 굶주림과 고통에 깊이 공감하셨고, 오병이어의 기적과 수많은 치유로 그 자비를 실천하셨습니다.

결론에서 사오산 목사는 다섯 가지 통찰을 제시합니다. 기독교 신앙 가치관과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의 높은 상통(相通)성, 말보다 행동으로 보이는 신앙의 아름다움, 중화 전통문화 ‘화합을 귀히 여김’의 정신 계승, 성경의 가르침과 사회 현실의 결합 그리고 기독교 중국화가 이론이 아닌 실천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2025년 8월호 _系統推進基督敎中國化走深走實 (八): “虛己的基督”
2025년 8월호 _기독교 중국화, 체계적·심층적·실질적인 추진 (8): “자기를 비운 그리스도(虛己的基督)”

〈천풍〉 2025년 8월호의 토론 주제는 ‘기독교 중국화’를 더욱 체계적으로 깊게 그리고 내실 있게 추진하는 데에 있어 ‘자기를 비우신 그리스도(虛己的基督)’에 관한 것입니다. 이는 기독교 중국화라는 시각으로 중국교회 특색의 ‘기독론’을 정립하려는 편집자의 의도라고 밝힙니다. 그리하여 이번 호에서는 세 편의 글을 실어 성육신이 문화를 온전하게 한다는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섬김의 정신을 체험하고 이에 따라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받아 겸손히 섬기며 사회를 위하여 열심히 공헌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합니다.

첫 번째 글은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 부주석, 요닝성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 주석, 동북신학원 원장 스아이쥔(史愛軍)의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함’에서 ‘백성을 근본으로’까지, 기독교와 유가의 섬김관 대화(从“非以役人, 乃役于人”到“以民为本”, 基督教与儒家的服务观对话)”입니다. 스아이쥔은 마태복음 20장 28절(“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을 도성육신의 핵심으로 삼아, 바울이 고린도후서 8장 9절과 빌립보서 2장 6〜7절에서 이를 ‘종의 형체’로 심화시킨 신학을 소개합니다. 예수의 섬김관은 겸손한 자기 비움, 무사(無私)한 사랑, 그리고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보편성·초월성을 특징으로 합니다.

스아이쥔은 이를 유가 사상과 대조합니다. 공자는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세우고, 자기가 통달하고자 하면 남을 통달케 한다”(논어, 옹야)는 추기급인(推己及人)의 인(仁) 사상을 제시했고, 맹자는 이를 발전시켜 “백성이 귀하고 사직은 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맹자 진심하)는 민본주의를 확립했습니다. 맹자는 “백성의 즐거움을 즐거워하고 백성의 근심을 근심한다”(맹자 양혜왕하)는 이념 아래 ‘제민지산(制民之産)’ 등 구체적 민생 정책을 주장했습니다.

스아이쥔은 두 사상의 공통점과 차이를 비교합니다. 공통점은 (1) 사랑을 섬김의 토대로 삼는다는 점—그리스도의 박애와 유가의 인덕이 모두 그러하며, 테레사 수녀의 증언을 인용해 사랑이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이의 책임임을 강조합니다. 다만 그리스도 종의 형상이 겸손·희생·무차별적 돌봄을 강조한다면, 유가의 인정(仁政)은 책임과 질서를 중시하며 송대 사대부들의 “백성을 위해 목소리를 냄”으로 이어졌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2) 화합을 목표로 한다는 점—다만 유가는 현세의 질서 유지에, 기독교는 초월적이고 영원한 의미에 방점을 둡니다. (3) 실천을 중시한다는 점—그리스도의 섬김이 신앙에 뿌리를 둔다면, 유가는 인간 윤리에 뿌리를 둡니다.

이를 바탕으로 스아이쥔은 네 가지 기독교 중국화 방향을 제안합니다. 중화 전통문화의 언어로 기독교 섬김관을 더 풍성히 해석할 것, 〈중화인민공화국 자선법〉 등 정책 틀 안에서 사회봉사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종교색을 옅게 하여 시민의 자격으로 참여할 것, 유가와의 대화를 통해 가치 공명을 강화하고 중국 이야기에 기여할 것, 재난 시 긴급 대피소 제공이나 무상 헌혈 조직 등 협력적 혁신을 시도할 것입니다.

두 번째 글은 금릉신학원 교수 양천시(楊晨曦)의 “인자 예수(仁者耶稣)”입니다. 양천시 교수는 그리스도론이 신학의 핵심 주제이나 중화 문화의 범주 속에서 재해석되어야 진정으로 이해되고 수용될 수 있다고 전제합니다. 지금까지는 ‘도(道)’를 중심으로 한 ‘위로부터 내려오는’ 선재적 그리스도론이 주를 이루었으나, 저자는 유가 윤리의 핵심 개념인 ‘인(仁)’이 중국화한 그리스도론에 또 다른 중요한 자원을 제공한다고 봅니다.

공자의 ‘인’은 구세(救世)적 관심에서 비롯되었으며, 언어로 온전히 정의할 수 없는 ‘불가언설성’을 지닙니다. 양천시 교수는 천라이(陈来) 교수의 ‘인체론(仁体论)’을 소개하는데, 이는 ‘인’을 우주 만물의 근본 실재이자 관계성·생성·운동의 근원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만물이 하나로 연결된 유기체라는 ‘만물일체’ 사상과 “하늘의 마음은 만물을 낳는 것이요, 사람의 마음은 인애다”라는 북송 이래의 천인합일 사상이 그 배경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양천시 교수는 그리스도를 ‘초월적 인자(仁者)’로, 즉 만물을 낳고 인애를 실천하는 근원의 참여자로 이해할 것을 제안합니다. 도성육신은 신성한 ‘인’이 인륜 관계 속으로 들어와 ‘천인지제(天人之际)’에 새로운 소통 가능성을 여는 사건으로 해석됩니다. 나아가 저자는 ‘인자안인(仁者安仁)’(논어 이인)이라는 구절을 통해 ‘인’이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선함이라는 유가의 인성론을 소개하며, 쉬푸관(徐复观)과 쑹리린(宋立林) 등의 논의를 인용해 은성(恩性)적 성선설에 가깝다고 봅니다. 다만 저자는 유가가 성악의 가능성 앞에서 초월적 절대선의 보증자를 두지 못하지만, 기독교는 원죄와 구속 교리를 통해 이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마지막으로 양천시 교수는 인을 실천하는 가장 우선적 덕목인 ‘효(孝)’에 대한 역대 논의(한대의 인효 우선순위 논쟁, 송대 정주의 ‘이일분수’, 최근 탕원밍(唐文明)의 ‘인감효용론’)를 소개하고, 명말 마테오 리치가 하나님을 ‘대부모(大父母)’로 번역해 중국 사대부들에게 널리 수용된 사례를 언급하며, 인의 개념이 중국 그리스도론 구축에 창조론·인성론·실천론을 아우르는 통합적 자원이 될 수 있음을 결론짓습니다.

세 번째 글은 중앙민족대학교 종교연구원 원장 유빈(游斌)의 “‘모든 피조물’을 품으신 예수 그리스도(心怀“一切受造的”耶稣基督)”입니다. 유빈 교수는 마가복음이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으로 열리고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라는 부활 후 명령으로 닫히는 수미상관 구조에 주목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깊이’와 우주적 마음을 성찰합니다.

먼저 유빈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 폭”에서는, 예수의 인성은 나사렛에서 자란 유대인이지만 그 본체는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이라는 점에서 출발합니다. 요한복음 1장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구절대로 성자는 창조 이전부터 성부와 사귐 안에 계셨고, 그 말씀을 통해 세상이 창조되었습니다(골 1:15〜17, 시 33:6, 잠 8:22〜31 참조). 만물은 우연이 아니라 창조주의 지혜로운 계획 속에 있으며, 각 피조물은 그 존재로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을 드러내는 ‘말 없는 책’을 이룹니다. 타락 이후 하나님이 아담을 찾으신 것으로부터 시작해,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고 도덕적 법칙을 주셨습니다.

그다음으로 유빈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자기 비움(虚己)의 사랑”에서는, 그리스도의 넓은 마음이 케노시스(κένωσις, 虚己)의 법칙을 통해 세상에 실현된다고 설명합니다. 삼위일체 안에서 영원히 흐르는 사랑과 생명의 나눔이 성령이며, 이 자기 비움은 빌립보서 2장 6〜8절의 ‘케노시스의 노래’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도성육신을 성자의 ‘첫 번째 자기 비움’으로, 십자가의 죽음을 ‘두 번째 자기 비움’으로 구분하며, 이를 통해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죄와 의, 죽음과 영생이 맞바뀌는 ‘위대한 교환’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유빈 교수는 “그리스도 안의 ‘새로움’과 ‘넓음’”에서는, 참된 새로움은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이며, 각 민족·문화의 정신적 전통이 모두 그리스도의 넓은 사랑의 품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유빈 교수는 기독교가 걸어온 ‘세계화와 지역화(glocalization)’의 길이 지구 각지의 지역 문화를 수용하는 동시에 그 초월적 생명력으로 만민의 고유한 전통을 완성했다고 결론짓습니다.


2025년 9월호 _系統推進基督敎中國化走深走實 (九): “宇宙的基督”
2025년 9월호 _기독교 중국화, 체계적·심층적·실질적인 추진 (6): “우주적 그리스도(宇宙的基督)”

〈천풍〉 2025년 9월호의 토론 주제는 ‘기독교 중국화’를 더욱 체계적으로 깊게 그리고 내실 있게 추진하는 데에 있어 ‘기독론’에 관한 것입니다. 9월호는 두 편의 글을 실어 ‘우주적 그리스도’라는 주제에 대한 성찰을 통해 중국교회의 기독론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창조와 돌보심이 우주에 충만하고 만방에 미침을 드러낼 수 있을지 탐구하고, 그리스도의 넓은 시야와 포용적인 마음을 보여줌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이 시대를 딛고 서서 세계를 바라보며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첫 번째 글은 〈천풍〉 부주필이며 금릉신학원 교수인 옌시위(嚴錫禹)의 “우주적 그리스도 사상은 중화 문화 정신에 부합한다(“宇宙的基督”思想契合中华文化精神”)”입니다. 옌시위 교수는 중화 문화가 실천을 중시하는 전통 —유가의 경세치용, 묵가의 언행일치, 도가의 제물(齊物) 경지—을 지녔다고 전제하며, 이러한 실천 지향적 특징이 학문에서는 실학·사학·윤리학 중시로, 사고방식에서는 경학 중시·현학 경시 그리고 가까운 데서 먼 데로, 아래에서 위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합니다.

옌시위 교수는 딩광쉰(丁光训) 주교의 신학, 특히 그의 핵심 사상인 우주적 그리스도가 이러한 중화 문화의 실천적 정신과 깊이 부합한다고 논합니다. 딩광쉰은 1991년 영국 ‘중국교회의 벗들’ 환영회 연설에서 이 사상의 두 근원—역사와 성경—을 밝혔습니다. 역사적 근원은 신중국 성립 이후 아편·매춘 등 오랜 사회악이 짧은 시간에 일소되고, 헌신적인 공산당 간부들의 높은 도덕 수준을 목도한 그 세대 기독교인들의 체험입니다. 이 현실 앞에서 일부 성도는 교회를 떠나 공산당에 합류하려 했고, 일부는 반대로 모든 변화를 거부하며 신자와 대중 사이에 벽을 쌓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애국애교(愛國愛敎)적 성도들은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새로운 영적 길을 모색했으니, 이것이 두 번째 근원인 성경적 근거입니다.

딩광쉰은 요한복음·로마서·골로새서·히브리서 등을 고찰하며 두 가지 결론에 이릅니다. 그리스도의 주권과 돌보심과 사랑이 온 우주에 미친다는 것 그리고 그 우주적 주권의 본질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우주적 그리스도라는 용어는 떼이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1881~1955)과 과정신학에서 빌려온 것이나, 딩광쉰은 이를 자연 신학적으로가 아니라, 좁은 구속론적 그리스도 이해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주된 공적이 구속뿐 아니라 성부의 창조 전 과정에 참여하는 창조에 있으며, 구속은 그 창조 과정의 한 단계일 뿐이라고 보았습니다. 옌시위 교수는 딩광쉰이 로마서 5장 15, 17절을 인용해, 아담의 타락보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더욱 넘치게’ 크다는 점—즉 그리스도의 영향력이 소수의 신자에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음을 소개합니다.

결론에서 옌시위 교수는 딩광쉰이 밝힌 역사와 성경이라는 두 근원 외에, 중화 우수 전통문화와 그의 개인적 삶의 체험을 더 해 ‘네 근원’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제안하며, 이는 왕웨이판(汪维藩) 교수가 말한 ‘네 기둥’, 웨슬리가 말한 ‘신학의 사변형(Quadrilateral)’과 상통한다고 맺습니다.

두 번째 글은 금릉협화신학원 부교수 톈퉁신(田童心)의 “‘우주적 그리스도’와 ‘진리를 증거하는 그리스도’(“宇宙的基督”与“见证真理的基督”)"입니다. 톈퉁신 교수는 정광쉰의 ‘우주적 그리스도’론이 신자들의 마음을 크게 해방시켜 세상의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올바로 볼 수 있게 했음을 인정하면서도, 1990년대부터 성도들 사이에 제기되어 온 날카로운 질문—“인간의 양심이나 다른 종교·철학·문화에서도 하나님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이 교회 밖 사람들도 사랑하신다면, 왜 굳이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에 중국 신학이 답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에 대한 답으로 톈퉁신 교수는 요한복음 18장 37절, 즉 빌라도 앞에서 예수가 “내가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고 하신 말씀에 근거한 ‘진리 증거자로서의 그리스도론’을 제안합니다. 이 관점은 다섯 가지 의의를 지닌다고 설명합니다.

첫째, 예수의 생-사-부활이라는 생명 과정이 그리스도 신앙의 독특성과 필연성을 제공합니다—죄의 삯은 사망이며(사 55:11), 죄를 사할 자격은 오직 하나님과 온전히 함께하신 성자의 보혈뿐 이기 때문입니다(저자는 캉유웨이조차 기독교 신앙의 독특함을 ‘직접적’이라 느꼈다고 언급합니다). 

둘째, 이 ‘진리 증거론’은 창조론과 구속론을 통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과정 자체가 곧 구속의 과정이며, 예수의 생애는 이 과정을 압축해 보여주는 ‘전일적 요소(全息元)’로서, 이를 토대로 중국적 특색의 ‘전일신학(全息神学)'을 구축할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셋째, 일반계시와 특별계시의 관계를 균형 있게 다룰 수 있습니다—성부와 성자가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는 말씀대로, 도성육신 이전과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지역에도 일반계시의 진리가 작동해 왔다고 봅니다. 

넷째, “예수 신앙은 중화 문화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한다”라는 또 명제를 뒷받침합니다—중화 전통문화의 일반계시 진리를 거부한다면 산상수훈의 특별계시 가르침에도 동의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다섯째, 이 관점은 ’우주적 그리스도‘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시킵니다—예수를 믿지 않고는 하나님이 만민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선대하시는지(시 145:9) 온전히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톈퉁신 교수는 결론적으로 ‘우주적 그리스도’와 ’진리를 증거하는 그리스도는 두 관점이 결합될 때, 교회 밖의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도성육신하신 예수 생애의 소중함과 대체 불가능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고 맺습니다. ♣





〈천풍〉 2025년 7~9월호 이슈에 대한 토론 제목 

1. ‘섬김의 그리스도론’과 정치적·사회적 담론의 결합이 지닌 신학적 함의에 대하여
장졘 목사와 사오산 총간사는 예수의 “섬김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함”(막 10:45)이라는 케노시스적 정체성을 사회복지 사역의 신학적 근거로 제시하며, 이를 사회주의 핵심 가치 및 자선법 등 정책 틀과 적극적으로 연결합니다. 섬김의 그리스도론이 본래 지닌 십자가 중심성과 대속적 의미가 사회봉사라는 실천적 차원으로 강조점이 옮겨질 때 자칫 도덕적 실천 윤리로 축소될 위험은 없는지요? 섬김의 신학이 구속사적 깊이를 잃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실천력을 갖추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2. ‘인(仁)의 그리스도론’이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인간론에 던지는 질문에 대하여
양천시 교수는 유가의 ‘인체론(仁体论)’을 빌려 그리스도를 ‘초월적 인자(仁者)’로 재해석하며, 도성육신을 신성한 ‘인’이 인륜 관계 속에 진입한 사건으로 설명합니다. 이는 중국 지식인들에게 그리스도론의 문화적 접근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으나, 유가적 인성론이 전제하는 은성적 성선설과 기독교의 원죄·전적 타락 교리 사이의 근본적 긴장을 저자 스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인의 틀로 그리스도를 이해할 때, 십자가 대속의 필연성과 인간의 근원적 죄성이 희석되지 않도록 지킬 신학적 경계는 무엇일까요?

3. ‘우주적 그리스도’론의 목회적 유익과 배타성 상실의 위험 사이에서
옌시위 교수가 소개한 딩광쉰 주교의 ‘우주적 그리스도’ 사상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주권이 교회 밖 세상과 타 종교·문화에까지 미친다고 봄으로써 성도들의 마음을 넓히는 목회적 유익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상이 처음 등장한 1990년대부터 “그렇다면 왜 굳이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라는 신자들의 질문에 직면해 왔다는 사실 자체가 이 신학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우주적 그리스도론은 오늘 한국교회의 다원주의적 환경에서 어떤 형태로 적용하거나 경계해야 할까요?

4. ‘진리 증거자로서의 그리스도’론이 제시하는 답변의 설득력에 대하여
톈퉁신 교수는 우주적 그리스도론이 낳은 배타성 상실의 문제에 맞서, 요한복음 18장 37절에 근거한 ‘진리를 증거하는 그리스도’론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를 통합하려 시도합니다. 이 논증이 “예수의 생애가 진리 운행의 전일적 요소(全息元)”라는 다소 철학적인 개념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러한 통합 시도가 실제로 그리스도 신앙의 유일성과 필연성을 성경적으로 충분히 변증하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한국교회의 타종교 대화 및 전도 현장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요?

5. ‘케노시스(虚己)’와 ‘우주적 폭’—그리스도의 겸비와 위엄을 함께 담는 언어에 대하여
유빈 교수는 그리스도를 만물의 창조 원리인 로고스로서의 ‘우주적 폭’과, 스스로를 비우신 케노시스적 ‘자기 비움’이라는 두 축으로 함께 설명하며 이 둘의 결합에서 오는 신학적 풍성함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의 위엄과 겸비, 초월성과 자기 비움을 동시에 선포하는 이러한 균형 잡힌 그리스도론은, 오늘 강단에서 자칫 그리스도의 신성만을 강조하거나 반대로 그의 인성과 낮아지심만을 강조하는 편향된 설교를 교정하는 데 어떤 실천적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원핑(文平) | 미도중국선교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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