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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6  통권 288호  필자 : 변성래  |  조회 : 1391   프린트   이메일 
[책 속의 중국]
《근현대 중국의 중화민족과 그 사상》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총서 149
_손장훈 외 / 동북아역사재단

2017년 4월 12일,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는 중국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정상회담 후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시진핑 주석이, 한국은 실제로 중국의 일부였다더라”라고 발언하였습니다. 참으로 황당하지만, 어떻게 이런 말이 나왔을까요? 동북공정(東北工程)의 부활입니다. 중국은 고구려와 발해와 같이 동북 지방에서 한반도 북부에 걸쳐 있던 고대국가들을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간주한 것입니다. 중국은 그들의 국토 안에 존재했던 모든 왕조와 그 역사의 독립성을 부정하고 자국사의 일부로 편입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전근대의 유기적 ‘천하’ 세계관 속에서 맺어진 조공-책봉은 근현대적 의미의 종주국-속국 관계와는 엄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 개념을 억지로 적용한 것입니다.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라는 주장은 참으로 자존심 상하는 발언이자 망언(妄言)입니다. 전근대 동북아시아의 중화(中華) 세계를 근현대의 민족국가(nation-state)로 해석하며 저지른 왜곡입니다. 그리고 이 왜곡은 아편전쟁 이후 현대까지 두 세기가 넘는 시간의 결과물이며 놀랍게도 중국이 강대국이 아닌 몰락한 피식민지 국가로서 분투한 결과물입니다.

근현대의 중화민족 이념
‘중화’라는 개념 자체는 전근대 왕조 시절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중원만이 유일한 문명이고 주변부는 모두 야만의 상태라는 ‘화이관(華夷觀)’은 중화의 원형입니다. 전통 시대의 중화는 문명과 야만의 구분을 넘어 하나의 우주관이자 세계관이었습니다. 이 중화에 다소 협소한 민족(nation)이라는 개념이 덧씌워지며 주권이 발효되는 국토의 개념이 결부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입니다. 중화민족의 근현대적인 기원은 청말 량치차오(梁啓超)의 사상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는 중국사를 한족(漢族)이 주변 종족을 동화시켜 온 역사로 파악했습니다. 한족을 중심으로 각 종족이 갈등, 경쟁하며 융합을 통해 탄생시킨 유기체를 중화민족으로 정의했습니다. 량치차오는 단일민족보다는 복수의 인종이 경쟁을 통해 성립된 다민족국가가 더 강력하고 선진적인 국가라고 봤습니다. 그리고 한족을 중심으로 여타 민족이 융화된 중화민족은 당연히 그런 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심지어 조선, 일본, 베트남, 미얀마처럼 전근대 중화 세계관에 속해있던 민족과 그들의 국가까지 모두 근대국가 중국의 영토와 역사 속으로 통합시키려 했습니다. 이후 쑨원(孫文)은 중화민국을 수립할 때 량치차오의 사상을 기반으로 해서 한족, 만주족, 몽골족, 후이(回)족, 짱(藏, 티베트)족이 결합한 ‘오족공화(五族共和)’를 청사진으로 내세웠습니다.

중국공산당의 중화민족 수용
중화민족(中華民族)을 이야기할 때 마오쩌둥(毛澤東)과 그의 중국공산당[이하 ‘중공(中共)’]은 미묘한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신중국의 집권자로서 중국인들을 ’일어서게(站起來)‘ 만들어야 했으며 이는 통일 중국을 이룩하고 중화민족을 부활시킬 것임을 의미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데올로기를 신봉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국(帝國) 중국의 부활을 시사하는 중화민족이라는 명제를 중공은 공개적으로 승인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마오쩌둥과 중공의 중화민족에 대한 태도는 변화해 왔습니다. 이는 때로 일관성이 결여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때그때 다른 태도를 보였다는 이야기입니다. 

혁명을 시작하던 무렵 마오쩌둥은 중화민족 대신 중국 내 소수민족의 자결을 외쳤습니다. 그는 중국의 문제는 대국주의에 있으며 자결에 근거해 중국을 27개의 국가로 나누자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정당인 중공 역시 연방제를 중국의 미래로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중공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한 시점은 1938년의 6기 6중 전회였습니다. 이때 마오쩌둥의 언사에서는 ‘통일된 중국’이 ‘연방제’를 대체하게 됩니다. 소수민족의 정치적 독립 가능성은 완전히 부정됩니다. 변화의 명분은 통일전선과 모순론입니다. 중국이 일본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 속에서 중국의 모든 인민은 연합하여 일본에 맞서기 위한 ‘통일전선’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하나의 중국 이외 다른 문제들은 부차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소수민족의 독립은 일본 제국주의가 중국의 분열을 책동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으로 매도됩니다.

국공내전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둔 이후 마오쩌둥과 중공은 본격적으로 연방제에 대한 약속을 철회하기 시작합니다. 신장(新疆)위구르와 티베트가 1949년과 1951년 차례로 중화인민공화국에 병합됩니다. 두 곳은 자치구역이 되었지만 해당 지역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의 정치적 권리는 극도로 축소됩니다. 이 조치는 소수민족의 의사와는 아무 관계 없이 행해진 병합이었습니다. 티베트와 신장위구르를 병합하면서 중공은 신중국이 건국되었으니, 소수민족들은 마땅히 대가족(大家庭)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이 대가족을 ‘중화민족’으로 해석할 때 이는 중공이 중화민족이라는 명제를 내재화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시진핑 체제의 ‘중화민족공동체’와 ‘중화적 종주권의식’
시진핑 정부는 ‘인류운명공동체’(2012년), ‘아시아운명공동체’(2015년), ‘중화민족공동체’(2017년)를 차례로 제시합니다. 이로써 미국과 개발도상국을 겨냥한 글로벌 차원, 주변 국가를 포함한 아시아 차원, 중국 내부의 한족과 소수민족의 통합을 위한 민족, 국가 차원 등 세 층위에 대한 시진핑 정부의 대체적 구상이 드러난 셈입니다. 중화민족공동체는 시진핑 주석이 2017년 19대 당대회에서 “중화민족공동체 의식을 공고히 한다”를 보고한 뒤 ‘중국공산당 당장(黨章)’에 포함되어 새로운 민족 이론으로 확정됩니다. 중화민족공동체는 유기적인 운명 공동체를 목표로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사실상 이 구상의 실제 목표는 소수민족, 홍콩, 대만을 포함한 중국 내부의 국민적, 민족적 통합을 의미합니다. 즉, 한족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민족(또는 종족)이 유기적 실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공동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은 유기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소수민족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특수성보다는 ‘동일성의 제국’을 지향한다는 의미로 읽어야겠습니다. 시진핑 정부가 등장하면서 내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슬로건에서 이미 시진핑은 ‘중화민족의 아버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화민족’이라는 단어는 의인화되고 있습니다. 

한국,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책의 필자들은 결론을 대신하여 “한국,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내놓습니다. 시진핑 체제에서 역사, 문화, 언어, 종교에서 말살 정책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소수민족의 고유성과 다원성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약화하는 현실입니다. 우선 ‘중화민족공동체’를 강조하는 것은 한족을 중심으로 한 인종적, 문화적 동화주의가 이전보다 강화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필자들은 중화민족공동체를 결국 ‘동일성의 제국’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중국 내부에서 발행하는 논문과 다른 미디어의 기류를 종합해 볼 때 조공체제의 기억과 전혀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중국의 위정자와 지식인들은 소수민족과 홍콩, 대만뿐만이 아니라 천하로서의 ‘중국’을 구성했던 전통 시대에 ‘사이(四夷)’라고 불렀던 지역에 대한 인식이 중세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중화적 종주권 관념이 아직도 중국의 정치와 시대를 ‘배회’하고 있다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중국인이 심리적으로 이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웃 국가들과 역사 해석상의 갈등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인이 한국의 역사만이 아니라 중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필자들이 책 뒷부분에 남긴 내용을 옮기면서 글을 마무리합니다.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제까지 통용되어 온 ‘중국인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서방의 중국인식과도 차별화되는 한국의 ‘새로운 중국인식 패러다임’ 재구성 작업에 몰입해야 한다. 이 작업의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앞으로 여러 형태의 고민과 설계가 나와야 한다. 우선은 각 분야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인문학자들은 팩트에 근거하여 객관적으로 연구하고 비판해야 하고, 외교와 정치의 책임자들은 중국의 세계 지배 전략을 아는 바탕 위에서 현안에 따라 실리적, 포용적, 창조적 외교를 해야 한다.”  ♣








♣변성래 | 중국을 알고 싶은 의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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