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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6  통권 288호  필자 : 쑨빈  |  조회 : 1424   프린트   이메일 
[선교나침반]
샤오민(小敏) 자매를 보고 싶다


창작 기간은 1990년부터 2026년 현재까지, 누적 곡 수는 2,238곡. 정식 편곡은 2002년 황안룬(黄安倫)에 의해 오선보화(五線譜化). 확산 범위는 중국 본토 농촌·도시교회 및 북미·호주·대만 등 화인(華人) 디아스포라교회. 대표곡은 〈이 길을 우리 함께 가요(这條路上我們一起走)〉, 〈중국의 새벽 다섯 시(中國的早晨五點鐘)〉, 〈주님, 저는 당신을 찬양합니다(主啊我赞美你)〉, 〈가장 마음을 아는 친구(最知心的朋友)〉, 〈천상의 노래를 부르리(唱一首天上的歌)〉, 〈중국이여 일어나라(中國要起来)〉, 〈선교중국(宣教的中國)〉 등. 주인공은 《가나안 시가(迦南詩歌)》로 널리 알려진 뤼샤오민(吕小敏), 중국교회에서는 샤오민(小敏) 자매로 불린다. 〈천상의 노래를 부르리〉는 〈생명의 강(生命的河)〉이라는 제목으로 펑샤오강(馮小剛) 감독의 영화 《一九四二》의 주제가로 채택돼 편곡을 거쳐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1970년, 허난(河南)성 팡청(方城)현의 한 후이족(回族) 농민 가정에서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기독교와는 무관한 집안이었다. 태어난 지 열흘 만에 다른 집으로 보내질 뻔했지만, 하필 그날 큰 홍수가 발생해 계획이 무산됐다. 그녀의 어머니는 훗날 위안즈밍(遠志明) 목사의 ‘神州傳播協會(China Soul)’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十字架-耶稣在中国(The Cross)》(2003) 4부에서 이를 “하나님이 가정에 주신 축복”이라 회고했다. 중학교 시절 만성 축농증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농사를 짓게 된 소녀는, 이모의 권유로 교회 문을 두드렸다. 열아홉 살이 되던 날 밤, 그녀는 예수를 영접했다.

이듬해 그녀는 중국 최대 가정교회 네트워크 중 하나인 ‘팡청연합’에 합류해 평신도 전도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어느 밤 농촌 부흥집회에서 강렬한 영적 체험을 한 뒤 잠들지 못하던 그녀에게, 한밤중 갑자기 멜로디와 가사가 동시에 떠올랐다. 정규 음악교육을 받은 적 없고 악보조차 읽을 줄 몰랐던 그녀였지만, 그 순간 터져 나온 자발적 찬양이 첫 곡 〈너의 기쁨을 가져오라(帶着你的歡笑)〉이다. 이후 그녀는 2∼3일에 1곡꼴로 노래를 쏟아냈고, 지금까지 2,238곡에 달한다. 곡이 떠오르면 노래로 부르거나 녹음기에 담고, 주변 성도가 이를 받아 적는 방식으로 채보가 이루어졌다. 〈중국의 새벽 다섯 시〉는 부흥기 농촌 성도들의 기도하는 풍경을 담아낸 초기 대표곡이며, 지금도 그녀의 자기 삶의 리듬을 그대로 설명하는 노래로 남아 있다. 〈너의 기쁨을 가져오라〉라는 짐을 내려놓고 복음을 함께 살아내자는 권면을 담고 있다. 〈가장 마음을 아는 친구〉는 외롭고 지친 이들을 위로하는 곡으로 그녀 자신이 자주 부른 노래로 꼽힌다.

1990년대는 중국 개신교의 폭발적 부흥기였다. 그녀의 고향 마을 작은 집과 마당에는 전국에서 몰려온 수백 명의 성도가 모여 함께 예배했고, 모임이 끝나면 사람들은 카세트테이프에 담긴 노래를 각자의 공동체로 가져갔다. 재정 지원도 없이 윈난(雲南)과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등지를 떠돌던 순회 전도자들은 서로 만날 때마다 그녀의 곡 〈주여, 우리 손을 잡아주소서(主啊願你拉着我們的手)〉를 부르며 눈물로 힘을 구했다고 전해진다. 

2002년, 캐나다 화교 작곡가 황안룬이 그녀의 곡들을 정식 오선보로 편곡하면서 〈迦南詩歌〉는 본토를 넘어 세계 화인 교회로 퍼져 나갔다. 2003년 다큐멘터리 《十字架-耶稣在中国(The Cross)》 4부 〈가나가성(迦南歌聲)〉이 그녀를 전국적으로 알린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녀의 활동 반경은 중국 본토에 머물지 않았다. 2013년 말부터 2014년 초 사이 뉴욕 플러싱의 한 화교 사역기관에서 송구영신 음악전도집회를 인도했고, 워싱턴 D.C.의 화교교회에서도 간증 집회를 열었다. 대만을 방문했을 때는 그 땅을 위한 헌정곡 〈대만, 축복해(臺灣, 祝福你!)〉를 새로 지어 발표했다. 이러한 해외 순회는 〈迦南詩歌〉가 더 이상 중국 농촌만의 노래가 아니라, 전 세계 화인디아스포라를 잇는 신앙 언어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호주의 한 화인교회 담임목사는 이 노래들이 본토 형제자매들의 실제 삶과 맞닿아 있어 이민 1세대는 물론 2세대 신자들에게도 깊은 공감을 준다고 말했다. 특히 이민과 이산의 경험을 가진 디아스포라 공동체에 〈迦南詩歌〉 특유의 소박하고 애절한 선율은 고향의 신앙 공동체와 이어지는 정서적 다리 역할을 한다는 평가가 있다. 

〈迦南詩歌〉는 중국교회 안에서 폭넓은 사랑을 받는 동시에 적잖은 논쟁의 대상이기도 하다. 일부 신학자들은 가사의 신학적 정교함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삼자교회(三自敎會) 계열에서는 곡의 토속적 색채와 은사주의적 경향을 비판해 왔다. “중국이 가장 아름답다”라는 식의 강한 국가주의적 색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비판에 담담하다. 중국이 복음뿐 아니라 이 땅에서 피 흘린 선교사들에게도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이 그녀의 오랜 신념이다. 곡의 소박함에 대해서도 그녀는 완성도보다 회개·중보·전도의 통로로서의 기능을 더 중시한다는 태도를 밝혀왔다. 곡풍이 위쥐(豫劇, 예극) 등 허난 지역 전통 민속극의 선율에 영향받았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는데, 이는 그녀의 노래가 서구 찬송가 전통이 아니라 중국 토착 정서에서 자라났음을 보여주는 근거로 재해석되기도 한다. 2022년 학술지에 실린 한 논문은 그녀의 찬송을 ‘풀뿌리 선교신학’이라는 틀로 분석하며, 정규 신학교육을 받지 못한 농촌 여성이 만들어낸 노래가 어떻게 중국 토착교회의 신학과 선교 정체성을 형성했는지를 조명했다. 이 연구는 그녀의 생애 자체를 신학의 한 형태로 읽어내는 ‘생애사로서의 신학’ 방법론을 취하며, 그녀의 찬송이 선교 신학자들의 논의와도 대화할 수 있는 자료임을 시사했다. 문맹에 가까웠던 한 개인의 노래가 학술 담론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迦南詩歌〉가 단순한 찬송 모음을 넘어선 문화적 사건임을 보여준다.

명성이 커질수록 그녀를 둘러싼 근거 없는 소문과 압박도 늘어났다. 해외 사역을 다녀올 때마다 자녀의 친부가 외국인이라는 험담이 돌았고, 신앙 활동을 줄이라는 압력에 시달리기도 했다. 활동 초기에는 몇 차례 구금을 겪기도 했다. 그녀는 사역에 대한 기대치로 남편을 지치게 했음을 스스로 돌아보며 감사와 겸손을 사역의 태도로 삼기로 했다. 남편은 오랜 세월 그녀의 사역을 인내로 지지해 온 동반자로 소개된다. 명성을 얻은 종교 지도자, 특히 여성 지도자가 흔히 마주하는 근거 없는 도덕적 의혹과 가정 내 긴장은 그녀의 사례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이런 개인사를 스스로 공개적으로 성찰해 온 점은 그녀의 사역 이해에서 중요한 축을 이룬다.

최근 몇 년간 그녀의 창작은 눈에 띄게 예언적·종말론적 색채를 띠어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중국 전역을 휩쓸던 시기 그녀는 〈우한, 우한,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武漢! 武漢! 你不孤單!〉를 써 도시를 위로했고, 〈당신은 대홍수 속의 방주입니다(你是大洪水中的方舟)〉에서는 하나님을 재난 속 피난처요 빛이요 돌아온 탕자의 집으로 노래했다. 세계적 위기 속에서 종말론적 긴박함을 촉구하는 이런 곡들은, 부흥기의 낭만적 애원에서 성숙기의 확신으로, 다시 위기 시대의 경계와 소망으로 옮겨온 그녀의 신앙 여정을 그대로 반영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는 온라인 예배와 소셜미디어를 통한 확산도 두드러져, 지리적 경계를 넘어선 예배 언어로서의 성격이 한층 강화되었다.

〈迦南詩歌〉를 둘러싼 이야기는 그녀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 사역하는 적지 않은 사역자들은 어린 시절부터 〈迦南詩歌〉를 들으며 자랐고, 지금도 흔들림 없는 믿음을 붙잡는 데 이 노래들이 힘이 된다고 말한다. 그가 개척한 여러 공동체는 지금도 그녀가 초기에 쓴 곡들을 정기적으로 함께 부른다. 한편 젊은 세대의 재해석 흐름을 이끄는 워십팀 멤버들은 세대와 무관하게 영혼 깊숙이 와닿는 선율의 힘을 이야기하며, 고립과 우울에 시달리는 디지털 시대 청년들에게 이 노래가 새로운 언어로 가닿기를 바란다고 밝힌다. 이처럼 〈迦南詩歌〉는 한 작곡가의 개인사를 넘어, 세대를 잇는 공동의 신앙 자산으로 계속 확장되고 있다. 다른 많은 부흥기의 노래들이 시간이 지나며 잊혀간 것과 달리, 〈迦南詩歌〉는 지금도 여전히 예배 현장에서 불린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시각은 여러 갈래다. 우선 언어적 접근성이다. 화려한 수사나 신학 용어 대신 농촌 성도들의 일상어로 쓰인 가사는 세대와 학력을 넘어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다. 다음으로 정서적 진정성이다. 박해와 가난 속에서 태어난 노래 특유의 절박함과 눈물이 오늘날에도 위기와 상실을 겪는 이들의 마음을 건드린다는 평가다. 마지막으로 공동체적 기능이다. 〈迦南詩歌〉는 개인의 감상을 위한 노래라기보다, 함께 모여 부르며 서로의 신앙을 확인하는 공동체적 의식으로 기능해 왔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겹치면서, 〈迦南詩歌〉는 단순한 유행가가 아니라 중국 토착교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문화적 언어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여러 연구자와 목회자들의 공통된 평가다.

무학(無學)에 가까웠던 한 농촌 여성이 시작한 노래는 어느새 서른다섯 해를 넘겼다. 정규 음악교육도, 신학교 졸업장도 없이 오직 성령의 감동을 받아썼다는 2,238곡은 중국 가정교회의 부흥, 박해, 그리고 오늘의 디지털 시대까지 관통하는 신앙 기록으로 남아 있다. 도시화와 세대교체가 가속하는 중국교회 안에서, 농촌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이 찬송이 다음 세대에도 지금과 같은 위상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젊은 워십 팀들의 재해석 시도가 그 답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전혀 새로운 형태의 토착 찬양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迦南詩歌〉가 오랫동안 증명해 온 방식 - 신학교 졸업장이나 정규 음악교육 없이도 성령의 감동과 공동체의 필요에 응답하는 노래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 - 은 앞으로도 중국 토착 찬양운동에 계속해서 영감을 줄 것이라는 점이다. 〈迦南詩歌〉의 다음 페이지는 아직 쓰이는 중이다. ♣








♣사진 설명 및 출처 | (위) 샤오민(小敏) 자매 https://baijiahao.baidu.com/s?id=1828310350516074864&wfr=spider& 2026.8.3.접속함]
♣쑨빈 | 중국인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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