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동역자 여러분, 평안하신지요? 이곳은 6월부터 건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연일 뜨거운 햇볕 아래 지내고 있습니다. 낮에는 밖에 나가기 어려울 만큼 햇살이 강렬한데, 현지인들은 그 속에서도 걷고 일하는 모습을 보며 새삼 놀랍니다. 저희에게는 아직 좀처럼 적응하기 힘든 날씨입니다. 다행히 늦은 오후나 밤에 한차례 비가 내리면 더위가 한결 누그러집니다. 그러나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면 어김없이 정전이 찾아옵니다. 지난번 낙뢰로 송전탑이 무너져 24시간 이상 전기가 끊기는 일이 있었고, 완전히 복구되기까지 몇 주가 걸렸습니다.
그동안 이틀 간격으로 2~3시간씩 정전이 반복되었고, 주변 산간 지역에는 물 공급마저 몇 주째 중단되었습니다. 저희는 물탱크 덕분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인근 동네는 3~4일간 단수가 이어져 생활에 많은 불편이 있었습니다. 6월 중순이 지나서야 전기가 완전히 복구되었으나 여전히 공급이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감당할 시험만 허락하시고 피할 길을 내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루하루를 버텨 나가고 있습니다.
6월 10일, 막내 찬유의 유치원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찬유는 7월 말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한국이라면 내년에 입학할 나이지만, 4월생이라 이곳 학제상 이번에 초등학교 1학년이 됩니다. 처음 유치원에 입학했을 때는 두 달 내내 울며 가기 싫어했는데, 이제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선생님께서도 “초등학교 입학이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졸업식에서 상까지 받아 저와 아내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찬유뿐만 아니라, 매일 학교 가기 싫어하던 온유(첫째, 중2)와 지유(둘째, 초6)도 이제는 완전히 적응하여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우리 자녀들을 지키시고 인도하시며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다시 한번 깊이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6월 11일부터 14일까지 3박 4일간, 브라스타기 만나힐(Berastagi, Mana Hill)에서 제5회 화인연회(인도네시아 감리교)가 열렸습니다. 연회 장소는 인도네시아 감리교단 소속 세미나 시설로, 숙식과 집회를 함께 할 수 있는 리조트입니다. 메단에서 차로 약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브라스타기(해발 약 1,300m)는 산 중턱에 자리해 일 년 내내 봄 같은 날씨를 자랑합니다.
3박 4일 지내면서 여기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날씨와 공기가 정말 좋습니다. 화인연회는 화인교회의 목회자와 마젤리스(평신도 지도자)가 1년에 한 번 모여 각 지방(5개 지방)과 부서의 사역을 보고하고, 교단과 교회의 현안을 함께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마지막 날에는 주일예배를 함께 드리고, 전도사 진급과 목사 안수식이 진행됩니다. 저는 이번이 두 번째 참석이었는데, 지난번에는 선교사 자격으로 참석했던 반면 이번에는 화인교회 소속 목사로 함께하게 되어 의미가 남달랐습니다.
3박 4일 동안 저와 비슷한 연배의 평신도 지도자와 방을 함께 사용하게 되었는데, 금방 친해졌습니다. 셋째 날 오후 자유 시간에는 룸메이트와 몇몇 평신도 지도자들과 시내에 나가 시장도 구경하고, 현지 음식도 대접받으며, 카페에서 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사역하는 교회는 나이 드신 분들과 자매님들이 많아 30~40대 형제들과 교제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이번에 40대 형제들과 깊이 이야기하며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서로 다른 지방에서 사역하기에 자주 만나기는 어렵지만, 계속해서 연락을 이어 가기로 했습니다. 한 교회 울타리 안에만 머물렀던 저에게 이번 연회는 화인 선교사역의 시야를 넓혀 준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순서가 있었습니다. 둘째 날과 셋째 날 오전에는 외부 강사를 모시고 강의를 들었는데, 셋째 날 아침 예배에서 강사 목사님이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형식으로 1시간 동안 찬양과 기도, 묵상의 시간을 이끄셨습니다. 화인연회에서는 생소한 방식이었지만, 저에게는 하나님께 더 깊이 나아갈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에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목회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더 크게 소리 내어 기도하는 시간이 이어졌다면 더욱 뜨거운 기도의 불이 붙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이 시간을 통해 화인연회 목회자들에게서 영적 갈급함을 보았습니다.
사실 화인연회에서 목회자들 대상으로 세미나가 많이 있어 지식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은 되지만 영성을 회복하게 할 만한 집회는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성은 사라지고, 타성과 영적 무감각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복음보다 형식과 제도를 더 중시하는 풍토 속에서 목회가 단순한 직업이 된 이들에게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하는 시간이 여전히 낯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인연회 목회자들 가운데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찬양과 기도의 모임이 시작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연회 마지막 날, 주일 예배(폐회예배) 뒤에는 감독님께서 나오셔서 앞으로 1년간 각 교회에서 사역할 목회자 명단을 발표하셨습니다. 감독의 권한으로 결정되는 일이기에 모든 목회자가 숨을 죽이고 자기 이름이 불릴 때를 기다립니다. 저와 우리 교회 목회자들은 변함없이 1년 더 함께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화인감리교회에서 1년을 사역하면서, 제도와 형식을 우선시하고 복음을 모른 채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 교회, 영적 무감각에 빠진 공동체를 바라보며 제 안에 조급함이 밀려왔습니다. ‘언제 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제자로 훈련하여 선교하는 성도와 교회로 세울 수 있을까?’ 제가 직접 성경 공부나 기도회를 이끌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더욱 답답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사탄이 속삭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서 사역하는 것은 재정 낭비, 시간 낭비야. 복음이 더 필요한 곳이 얼마든지 있는데, 내가 왜 여기 있어…’
그러던 6월 초,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고린도전서 9장 22절이 마음에 강하게 꽂혔습니다.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이 말씀을 계속 묵상하는 가운데 ‘아, 바로 이것이구나!’ 낙심과 의심에 빠져 있던 제게 하나님이 이곳에서의 선교적 답을 주신 것입니다. 돌이켜보니, 내 안에는 빨리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고, 많은 사람을 변화시키겠다는 조급함과 욕심과 교만이 가득했습니다. 선교는 선교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하십니다. 저는 그저 그분의 손에 붙들린 작은 도구일 뿐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의 고백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내가 인도네시아 메단의 화인들과 같이 된 것은 화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라”
이 깨달음으로 인해 내 안의 모든 조급함이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이 땅의 화인들을 더 깊이 알아 가고, 진정으로 그들과 하나가 되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아 헤매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이 땅에서 잘 버티며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는 데 힘쓰는 저희 가정이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
♣사진 설명 | (위) 화인연회 목사안수식 (가운데) 찬유 유치원 졸업식 (아래) 제5회 화인연회
♣이일형 | MDC 화교감리교회 협력목사, 인도네시아 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