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세계 선교의 전 지구적 지형 속에서 가장 도발적이면서도 필수적인 질문은 바로 ‘중국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이다. 오늘날의 중국은 단순히 인구가 많은 아시아의 한 국가라는 도식적 정의가 통하지 않는다. 중국은 글로벌 경제 공급망의 거대한 중추이자, 인공지능(AI)·반도체·양자 컴퓨팅·차세대 플랫폼 기술 경쟁에서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G2의 핵심 축이다. 동시에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역동적인 기독교 공동체가 숨 쉬고 있는, 세계 기독교(World Christianity)의 미래와 직결된 영적 전선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서구교회와 한국교회를 비롯한 세계교회가 중국을 바라본 시선에는 두 가지 치명적인 환원주의적 한계가 존재했다.
첫째는 중국을 단순한 ‘피선교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는 중국교회의 자립성과 영적 잠재력을 간과한 채, 외부의 자원과 인력만을 투입하면 된다는 식의 시혜적 공급주의 선교관이다.
둘째는 중국을 경직된 ‘정치 체제(종교 탄압국)’로만 치환하여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 관점은 지정학적 대립 구도에 매몰되어, 그 체제 아래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과 문화적 맥락을 경시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중국은 하나의 거대한 문명이자, 유기적인 사회이며, 중층적인 문화적 텍스트다. 그리고 삼엄한 통제의 틈바구니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는 단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낡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역사적 성찰과 기술 사회학적 분석, 선교학적 대안을 융합하여, 디지털 감시사회라는 장벽을 넘어 중국선교의 전방위적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중국을 향한 기독교의 발걸음은 결코 최근의 현상이 아니다. 대륙을 향한 복음의 여정은 7세기 당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기 635년, 사산제국(페르시아) 또는 시리아 출신으로 추정되는 동방 선교사 아로본(阿羅本, Alopen)은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에 도착하여 당 태종(太宗)의 환대를 받았다.
638년에는 황제의 공식 칙령으로 경교(景敎)가 보호받았으며, 장안에 최초의 경교 예배당이 건립되었다. 경교는 불교와 도교의 용어를 빌려와 기독교 사상을 토착화하려 시도하는 등 상황화의 면모를 보였다. 장안의 서안비(西安碑, 781년 건립)에는 약 150년에 걸친 경교의 역사가 한문과 시리아어로 새겨져 있는데, 이 비석의 꼭대기에는 불교적 연꽃 위에 십자가가 얹힌 독특한 도상이 새겨져 두 문화의 융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경교는 왕조의 흥망성쇠와 지나치게 결탁한 나머지 9세기 당나라의 쇠퇴와 함께 대륙에서 사실상 소멸하고 말았다. 이후 13세기 원나라 시대의 가톨릭 프란치스코회 선교, 16세기 명·청 교체기의 마테오 리치(Matteo Ricci)를 필두로 한 예수회(Jesuits)의 보유론적(補儒論的) 선교 등이 이어졌으나, 이 역시 황제의 칙령이나 전례 논쟁(Rites Controversy)이라는 정치적 격랑 속에 좌초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중국선교의 직접적인 모태는 19세기 서구 근대 선교운동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형성되었다. 1807년 런던선교회 파송으로 마카오와 광저우(廣州) 땅을 밟은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은, 중국 당국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도 동인도회사 통역관이라는 합법적 신분을 유지하며 선교 사역을 이어갔다.
그는 1813년 신약성경을 완역하고, 동료 윌리엄 밀른(William Milne)과 협력 끝에 1819년 구약 번역을 완성, 1823년 말라카 영화서원(英華書院)에서 완성된 중국어 성경 《신천성서(神天聖書)》를 출판하는 문명사적 업적을 남겼다. 또한 중영·영중 사전인 《화영자전(華英字典)》을 편찬함으로써 중서 언어 소통의 다리를 놓았다. 1865년,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1832∼1905)가 설립한 중국내지선교회(China Inland Mission, CIM)는 중국 선교 역사에 가히 혁명적인 전환점을 가져왔다.
그의 선교 철학은 당대 서구 중심적 우월주의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었다. 그는 선교사들에게 영국식 의복과 문화적 특권을 내려놓고, 중국인과 똑같이 변발(辮髮)을 하고 중국옷을 입으며 그들의 음식을 먹을 것을 요구했다. 이 때문에 CIM 선교사들은 서구 동료들로부터 조소 섞인 “피그테일 선교단(Pigtail Missionaries)”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는 복음이 특정 서구 문명의 옷을 벗고 현지 문화의 폐부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현대선교학의 핵심 개념, 즉 상황화(Contextualization)의 가장 위대한 선구적 모델이었다. CIM은 서구 세력이 미치지 않던 중국의 깊은 내륙까지 과감히 전진하여 민중의 삶 속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그러나 이 찬란한 헌신의 역사 이면에는 뼈아픈 구조적 한계와 어두운 유산이 공존했다. 19세기 서구선교는 대영제국의 포화가 동반된 아편전쟁(1840년, 1856년)과 그 결과로 맺어진 난징조약, 톈진조약 등 불평등조약의 보호막 속에서 전개되었다는 역사적 원죄를 안고 있었다.
중국인들의 눈에 기독교는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영토 강탈, 문화적 식민주의의 “종교적 첨병”으로 비추어지기 일쑤였다. 이러한 민중적 분노와 문화적 이질감은 결국 1900년 의화단운동(義和團運動, Boxer Rebellion)이라는 처절한 기독교인 학살 사건으로 폭발했다.
역사적 성찰의 교훈을 돌이켜볼 때, 중국 사회와 공산당 정부가 오늘날까지 기독교를 향해 품고 있는 깊은 불신—기독교를 외국 세력의 침투 수단으로 보는 “양교(洋敎)” 프레임과 국가 안보 차원의 통제 본능—은 바로 이 19세기 제국주의 시절의 역사적 외상(外傷)에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중국선교를 논할 때, 우리는 단순히 영혼 구원의 열정만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이 유구한 역사적 맥락과 문화적 상흔을 깊이 헤아리는 역사적 안목이 선행되어야 한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함께 모든 외국 선교사가 차례로 추방되고, 문화대혁명(1966∼1976)의 혹독한 종교 말살 정책을 거치면서 세계교회는 중국기독교가 종말을 고했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중국교회는 건물과 제도가 파괴된 자리에서 오직 성령의 역사와 가정교회(House Church)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폭발적으로 자생했다.
1970년대 말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조치 이후 지상으로 드러난 중국기독교의 규모는 수천만 명에 달했다. 국가의 통제 받는 관제 교회인 삼자애국운동(三自愛國運動, Three-Self Patriotic Movement)과 신앙의 순수성 및 독립성을 고수하는 가정교회라는 독특한 이중구조 속에서, 중국기독교는 마침내 세계선교의 새로운 주역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러한 양적·질적 성장의 정점에서 탄생한 거대한 선교학적 흐름이 바로 ‘선교중국운동(Mission China Movement)’이다. 2000년대 들어 본격화한 이 운동은 1940년대의 “백투예루살렘(Back to Jerusalem)” 비전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이 비전의 역사적 뿌리는 복잡하다. 1920년대 산둥(山東)성에서 발원한 예수가정(耶穌家庭, Jesus Family)이 처음으로 서쪽 이슬람권 전도 비전을 품었고, 이후 분리된 서북영공단(西北靈工團, Northwest Spiritual Movement)이 이를 계승했다.
1940년대에는 산시(陝西)성 펑샹(鳳翔)의 서북성경학원(Northwest Bible Institute) 마패선(馬培萱) 목사를 중심으로 1943년 부활절에 변전복음단(遍傳福音團, Back to Jerusalem Evangelistic Band)이 공식 결성되어, 실크로드를 따라 예루살렘까지 복음을 전하겠다는 비전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1949년 공산혁명의 격랑 속에 이 선구적 사역은 강제로 중단되었다.
2000년대 이후의 선교중국운동은 이 역사적 비전을 현대화·조직화하여, “중국교회가 더 이상 영적·재정적 원조받는 수혜국이 아니라 세계 선교를 주도하는 파송국이 되겠다”라는 담대한 선언으로 발전시켰다. 특히 2007년 한국중국선교협의회를 결성되면서 선교중국운동은 한국교회의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으로 제시됐다. 이어 중국 가정교회를 중심으로 ‘선교중국 2030의 비전(2030년까지 2만 명의 중국인 선교사를 열방으로 파송한다는 비전)’으로 구체화했다.
선교중국운동의 긍정적 공헌은 크게 3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중국교회의 선교적 정체성 및 주체성 확립이다. 수동성에 갇혀 있던 중국 그리스도인들에게 대사명(Great Commission)의 자각을 심어주었다. 이는 가정교회 지도자들을 양성하고 선교적 동원을 끌어내는 강력한 영적 동력이 되었다.
둘째, 문화적·지정학적 자산의 발견이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수천만 명의 화교(華僑) 네트워크와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은 서구 선교사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이슬람권,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소위 10/40 창 지역)에 창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강력한 플랫폼을 제공했다.
셋째,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선교의 신기원이다. 기독교의 인구학적 중심축이 서구 북반구에서 비서구 남반구로 이동하는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기 속에서, 중국교회는 막대한 인적 자원과 영적 역동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사우스 선교의 선봉장 역할을 자임했다.
하지만 선교중국운동의 한계와 과제도 적지 않다.
첫째, 낭만적 승리주의적 중국 이해의 위험이다. 초기 선교중국운동은 “중국인 선교사를 이슬람권으로 보내겠다”라는 식의 과도한 선전과 승리주의적 수사에 매몰되었다. 중국 내부의 극심한 지역 간 격차, 세대 간 갈등, 도시-농촌 가정교회의 신학적 괴리 등 복잡다단한 현실을 낭만화하는 한계를 보였다.
둘째, 인프라 및 선교 구조의 결여다. 선교적 열정에 비해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파송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했다. 전문적인 타문화권 언어 훈련, 문화인류학적 적응 교육, 국제 금융 규제를 우회할 선교 재정 송금 체계, 선교사자녀(MK) 교육 그리고 위기관리 시스템 등이 부재하여 현지 파송 선교사들의 대규모 탈진 등 시행착오를 겪었다.
셋째, 글로벌 선교 커뮤니티와의 고립성이다. 일부 운동은 세계교회와의 유기적인 협력이나 기존 선교단체들의 축적된 노하우를 학습하기보다, 중국교회 독자적으로 과업을 완수하겠다는 ‘영적 민족주의(Spiritual Nationalism)’ 양상을 띠어 고립을 자초하기도 했다.
2020년대 들어 중국선교 환경을 규정하는 가장 지배적인 변수는 정치적 이념을 넘어, 중국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권위주의(Digital Authoritarianism)’와 차세대 기술의 결합이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AI, 빅데이터, 안면인식, 블록체인 기술을 사회통제와 거버넌스에 가장 완벽하게 내재화한 국가다. 현재 중국의 디지털 통제 구조는 선교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중국인들의 일상은 위챗(WeChat, 微信)과 알리페이(Alipay, 支付寶)라는 슈퍼 앱(Super App)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다. 메신저, 결제, 금융, 교통, 행정 서비스가 하나로 통합된 이 생태계에서 국가사이버공간관리국은 고도화된 알고리즘 검열을 시행한다. 종교적 키워드는 실시간으로 필터링되며, 은어를 사용하더라도 콘텍스트 분석 AI를 통해 즉각적으로 감지되어 계정이 차단되거나 수사 대기명단에 오른다.
중국 정부는 사이버보안법(2017년), 데이터보안법(2021년), 개인정보보호법(2021년)의 삼각 편대를 통해 대륙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디지털 발자국을 국가의 통제 아래에 두었다. 모든 데이터는 반드시 중국 내 물리적 서버에 저장되어야 하며, 국가 안보를 이유로 정부가 언제든 기업의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있다.
2022년 3월 1일 시행된 ‘인터넷 종교정보 서비스 관리방법(互聯網宗教信息服務管理辦法)’은 온라인 종교 활동 규제에 있어 역사적 분수령이 되었다. 국가종교사무국, 국가사이버공간관리국, 공안부, 국가안전부 등이 공동 제정한 이 법안은, 정부 인가를 받지 않은 모든 온라인 종교 활동—줌(Zoom)을 통한 가상 예배, 소셜미디어를 통한 설교 영상 송출, 미성년자에 대한 종교 교육, 온라인 종교 헌금 등—을 전면 불법화하였다. 특히 외국 기관 및 개인은 허가 없이 중국 내에서 온라인 종교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원천 금지된다. 중국은 서구 생성형 AI의 진입을 막고, 바이두의 어니봇(Ernie Bot, 文心一言) 등 자국산 모델을 고도화했다.
국가 사이버공간관리국은 생성형 AI 서비스 관리 규정을 통해 “AI가 생성하는 모든 콘텐츠는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을 반영해야 한다”라고 못 박았다. 기독교 신학이나 성경 해석 역시 이 AI 필터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왜곡되거나 검열될 위험성이 매우 높다. 중국 전역에 설치된 수억 대의 스마트 CCTV는 안면인식 AI와 연결되어 보행자의 걸음걸이(Gait Recognition)만으로도 신원을 식별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에 더해 개인의 준법정신, 소비 패턴, 소셜미디어 발언 등을 종합하여 점수화하는 사회적 신용 시스템(Social Credit System)은 기독교인이나 가정교회 리더들의 사회적 이동권과 경제 활동을 무형으로 압박하는 가공할 도구가 되었다.
이와 같은 첨단 디지털 감시사회의 도래는 과거 우리가 전개했던 모든 형태의 중국선교 방식을 무력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성경책을 캐리어에 담아 밀반입하거나, 인쇄된 신학서적을 보급하는 물류 중심의 선교가 유효했다. 온라인 초기에는 웹사이트나 이메일을 통해 성경공부 자료를 송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중국의 강력한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이 VPN 기술을 정밀하게 탐지하여 차단한다. 2022년 인터넷 종교정보 서비스 관리 방법에 따라 비인가 온라인 종교 활동은 모두 불법이 되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즉각적인 추적과 처벌의 대상이 된다. 중국 당국은 기독교를 서구 세력이 중국 체제를 전복하려 시도하는 색깔 혁명(Color Revolution)의 문화적 도구로 인식한다.
따라서 외부 선교사가 중국 현지인과 접촉하는 행위 자체를 국가 안보 위협으로 간주한다. 과거와 같은 대면 중심의 단기선교팀 방문, 현지 신학교 설립 및 대규모 집회는 현지 기독교공동체를 일거에 와해시키고 현지인들을 감옥으로 보내는 “선교적 가해행위”가 될 수 있다. 중국 청년세대는 매일 틱톡(抖音), 샤오훙수(小紅書) 등 고도로 최적화된 도파민 유발형 쇼트폼 알고리즘에 노출되어 있다. 정보의 대홍수 속에서 종교적 메시지는 무미건조한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받거나, 국가가 허용한 “종교중국화(Sinicization, 宗教中國化)”된 관제 기독교 사상만을 접하게 됨으로써 정통 복음주의 신앙에 대한 접근성 자체가 차단되는 등 심리적 장벽이 공고해지고 있다.
그러나 비관적인 환경 속에서도 낙망할 필요가 없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 영혼의 소외는 심화하며, 통제가 엄격할수록 참된 자유에 대한 갈망은 커지기 때문이다. AI 시대의 중국선교는 “기관” 중심에서 “생태계” 중심으로,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패러다임을 대전환해야 한다.
AI가 인간의 지능을 대체하고 디지털 감시가 일상을 조여올수록 역설적으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는 진짜 인간적 관계”의 희소가치는 극대화된다. 비즈니스, 유학, 전문 기술 등 합법적인 신분(Tentmaking)을 가지고 중국 사회의 유기적 세포 속으로 들어가는 마이크로(Micro) 선교사가 필요하다. 빅데이터가 감지할 수 없는 사적이고 깊은 신뢰 관계 속에서 일대일로 삶을 나누고 복음을 전하는, 초대교회 카타콤 방식의 고밀도 인격적 제자훈련만이 감시망을 우회하는 길이다. 검열을 억지로 우회하려는 은밀한 시도는 기술적으로 한계에 봉착했다.
이제는 중국의 법적 테두리를 준수하면서도 복음의 가치를 심을 수 있는 지혜, 즉 “비종교적 언어로 종교적 진리를 담아내는 기술”이 필요하다. 기독교라는 직접적인 도그마나 종교적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기독교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내포한 범용적 콘텐츠를 생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문학 강좌, 심리 상담 및 치유 프로그램, 코딩 교육, 외국어 교육 콘텐츠 속에 복음적 가치(용서, 회복, 사랑, 소망)를 녹여내어 위챗이나 바이두 플랫폼에 합법적으로 유통하는 방식이다.
현재 중국 내부의 문은 좁아졌지만, 전 세계로 흩어진 중국인 디아스포라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매년 수십만 명의 중국인 유학생, 주재원, 이민자들이 한국, 미국, 유럽, 동남아시아로 쏟아져 나온다. 이들은 본국의 디지털 감시망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에 놓여 있다. 해외 기독교 커뮤니티가 이들을 환대하고, 최고 수준의 신학교육과 영적 훈련을 제공하여 “디지털 복음의 전사”로 길러내야 한다. 영적으로 무장된 이들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거나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본국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하는 부메랑(Boomerang) 선교전략이 시급하다.
세계교회의 IT 전문가들과 선교학자들은 연대하여 중국어권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안전하고, 고도화한 기술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첫째, 중국어 신학 AI 개발이 필요하다. 중국 정부의 검열을 받지 않는 독립적 거대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중국어 신학 에이전트”를 구축, 현지 가정교회 지도자들이 안전한 암호화 채널을 통해 올바른 주석과 설교 자료를 공급받도록 지원한다. 둘째, 웹 3.0 및 탈중앙화 기술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블록체인 및 분산형 저장 시스템 (IPFS: Inter Planetary File System)을 활용하여, 국가가 삭제하거나 위변조할 수 없는 디지털 성경 및 신학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배포한다. 셋째, 메타버스 및 가상 기독교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한다. 가상현실(VR) 공간 속에서 은밀하게 모여 예배하고 성찬을 나눌 수 있는 탈국경적·익명성 보장형 가상 교회 모델을 실험적으로 개발한다.
미래의 중국선교는 “선진 서구/한국교회가 낙후된 중국교회에 복음을 가르친다”라는 식의 단방향 구조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서구 기독교 지형이 세속화와 포스트모더니즘의 파도 속에서 급격히 위축되고 있지만, 중국 가정교회는 수십 년간의 혹독한 박해와 통제 속에서도 살아남아 번성한 “고난의 영성”과 “야성적인 토착적 적응력”을 보유하고 있다. 미래의 선교는 세계교회와 중국교회가 동등한 파트너로서 마주 앉아, 기술 권위주의 시대에 기독교 공동체가 어떻게 거룩성을 지키며 생존할 것인가를 함께 연구하고 나누는 상호 학습 체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AI 시대, 중국선교의 가장 거대한 장벽은 시진핑 체제의 정치적 탄압도 아니요, 중국공산당의 첨단 AI 안면인식 기술도 아니다. 가장 큰 장벽은 바로 변화된 시대를 읽어내지 못하는 세계교회의 낡은 시선이다. 우리는 여전히 중국을 19세기식 제국주의 눈으로 정복해야 할 영토로 바라보거나, 20세기 냉전기식 눈으로 무조건 타도해야 할 붉은 제국으로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통제의 문이 조금 닫혔다고 해서 “이제 중국선교는 끝났다”라며 쉽게 절망하고 있지는 않은가?
21세기 세계교회의 선교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적 양식으로 재조정되어야 한다. “정복(Conquest)”이 아니라 “섬김(Service)”으로, “선교대상(Object)”이 아니라 “선교동역자(Partner)”로, “일방적 정보전달(Transmission)”이 아니라 “인격적 관계(Relationship)”로 나아가야 한다.
AI 시대, 중국선교를 향한 우리의 질문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어떻게 삼엄한 중국의 통제를 뚫고 안으로 들어갈 것인가?”라는 기술적·전술적 질문을 넘어, “하나님께서 이 첨단 디지털 문명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중국교회와 세계교회를 어떻게 융합시키고 계시며, 그분이 열어 가실 새로운 차원의 선교행전에 우리는 어떻게 거룩한 지혜로 동참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이 질문을 정직하게 껴안고 무릎을 꿇는 바로 그 지점이야말로, 디지털 감시사회의 장벽을 무력화하며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로운 중국선교의 새벽이 밝아오는 출발점일 것이다. ♣
♣쑨빈 | 중국인 사역자 |